이제 키코나이에서 하코다테까지 가는 열차만 타면 오늘 일정도 끝. 혼슈에서 홋카이도까지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는데 키코나이 도착한 후에도 꽤 기다려야 한다. 홋카이도 신칸센으로 신 하코다테까지 갈 수 있지만 청춘 18 옵션권은 키코나이에서 내려야 하니까. ㅠ_ㅠ
키코나이 재래선 플랫폼에 가는 건 아무 제지가 없다. 사무실에 나이 든 역무원이 한 분 계시긴 했지만 들락거리는 거 가지고 뭐라 하지도 않고. 아예 신경을 안 쓰고 있는 듯 했다. 개찰구도 없고 표 보자고 하지도 않는다. 남산만한 가방을 멘 채 어슬렁~ 어슬렁~ 플랫폼 쪽으로 향했다.
플랫폼 끝까지 가서 사진을 찍은 뒤,
뒤로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가,
내가 좋아하는 바닥에 카메라 놓고 사진 찍기를 시도. ㅋ
여행 전에 참고 삼아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많이 검색해 봤었는데 그 때 사진 많은 블로그는 대부분 건성으로 보거나 건너 뛴 것 같다. 내 블로그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지만, 정보 전달 못지 않게 중요한 게 나 개인의 만족이니까... 스스로 잘 찍었다는 사진 부지런히 올려 본다.
플랫폼에서 보니 건너 편에 상가 같은 게 보이기에 그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남는 게 시간이다. ㅋ
빨강과 파랑을 같이 써서 촌스럽지 않게 엮어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소도 그닥... -ㅅ-
애들 환장할 거고 철 없는 어른이도 한 개 정도 스을~ 쩍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놀라고 만들어 놓은 공간.
기념품 파는 곳에서 한참을 어슬렁거리다가 과자를 조금 샀다. 가방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쇼핑은 삿포로에서나 할 생각이었는데 여기 아니면 못 살 것 같아 보이는 게 좀 있는 듯 해서.
더 할 것도 없고 그래서 다시 플랫폼으로 이동. 무료 와이파이에 접속한 뒤 플랫폼 중간 쯤에 주저 앉아 태블릿으로 게임을 했다.
18시 50분 쯤 되니까 저 앞에서 열차가 한 대 들어온다.
하코다테에서 키코나이 쪽으로 오는 열차. 이 열차가 방향을 바꿔서 다시 하코다테로 가는 거다.
두 대의 열차인데 빨간색, 주황색. 무지개 색으로 도색한 건가? 노란 열차, 초록 열차도 있는 건가?
간단한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열차에 올라 탔다. 열차 안은 비교적 휑~ 한 편. 구글 지도를 실행해서 숙소 위치를 대충 알아놓으려고 검색하고 있는데 근처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콘크리트 전신주' 라는 게 있다. 저런 게 지도에 뜨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짧은 터널도 통과하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콘크리트 전신주도 보게 되는고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창문 아래에 날씨가 좋으면 하코다테 산이 보인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밤이라 아무 것도 안 보이지.
고기잡이 어선인지 엄청나게 밝은 빛이 보여서 잽싸게 한 장 찍어 주시고.
슬슬 하코다테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쯤, 예쁘게 생긴 처자 한 명이 남자 애들 두 명이랑 같이 탔다. 셋이 열심히 수다를 떠는데 젊은 애들한테서만 느껴지는 에너지 같은 게 막 전달된다. 좋을 때로고만.
다음 역인가 다다음 역인가에서 젊은 처자 두 명이 더 탔는데 세 명과 아는 사이였는지 막 아는 척을 하더라. 나중에 탄 두 처자는 날라리 느낌이 확~ 나는, 껌 좀 씹는 언니들 같아 보였다. ㅋ
유학 오기 전에 일본 여행을 일곱 번인가 여덟 번 정도 했었고, 어디를 가더라도 한글 안내가 있는데다, 지금은 일본에 산 지 10개월이 되었으니까, 분명 외국이지만 외국이라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그런데 하코다테에서는 역 건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외국이다!' 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일단 가장 오래됐다는 전신주부터 보고 숙소에 가기로. 가는 길에 뭔 2층 버스 같은 것도 보이고.
하코다테 산 전망대가 보인다. 원래는 이 날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간당간당해서 다음 날 가기로.
저 앞에 있는 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콘크리트 전신주라고 한다. 설명 없으면 그냥 지나치게 생겼다. ㅋ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서 한 번 찍어 주시고.
지하철에서 턱걸이를 해도 모른 척 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 하는 일본 사람들인데,
신호 걸려서 멈춰 있는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저런 걸 찍고 있어?' 라는 눈빛으로 대놓고 쳐다보기에,
쪽 팔려서 호다닥 찍고 도망가려고 급하게 카메라 들이댔다가 날아간 포커스.png
전신주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늘의 숙소, 하코바 쉐어 호스텔이 있다. 드디어 도착!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간단하게 체크 인. 1층 침대가 좋은데 1층은 자리가 없단다. 어쩔 수 없이 2층을 써야 한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는 순간 2층이면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수많은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했다. 정확하게 세어 본 건 아니지만 얼추 백 개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에서 신세를 진 것 같다. 그 중 최고는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망설이지 않고 지난 달(2019년 7월)에 묵었던 키쿠스이 게스트 하우스(https://40ejapan.tistory.com/368)라 대답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는 또 여기대로 최고다. 아아... 딱히 어디가 더 낫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숙소다.
키쿠스이 게스트 하우스가 뭔가 일본 전통의 분위기가 풍기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료칸의 분위기라서 무척 좋았다면, 하코바 쉐어 호스텔은 완전히 현대화된 최신식인데다 불편함이 조금도 없는 멋진 장소였다. 자세한 내용은 숙소 편을 따로 정리할 때 쓰도록 하고. 아무튼, 어쩔 수 없이 최고의 숙소는 키쿠스이 게스트 하우스와 하코바 쉐어 호스텔 두 군데를 꼽아야겠다. 공동 1위!
침대에 짐을 던져두고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 입었다. 배가 고프니 밥 먹으러 나가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 숙소 바로 옆에 엄청 요란 뻑적지근한, 삐에로 어쩌고 하는 가게가 있는데 뭔가 중국풍인지라 가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유람선 선착장 옆에서 똑같은 가게를 다시 봤다. -ㅅ- 더 헤매고 다녀봐야 의미가 없겠다 싶어 그냥 들어갔다.
맥주와 돈카츠 카레를 주문. 금방 나왔다. 맛은 그냥저냥 평범했는데... 이 염병할 것 때문에 새벽에 폭풍 설사!
밥 먹고 나서 맥주를 사려고 지도에서 편의점을 검색했다. 500m 이상 떨어져 있다. 오질라게 머네. 상당히 북쪽으로 올라온데다 밤이 되었는데도 더워서 땀 흘리면서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사진도 좀 찍고. 편의점에 가서 맥주와 자그마한 과자를 하나 사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굳이 지도 안 봐도 된다고 자신만만해하면서 가다가 엉뚱한 길로 가는 바람에 결국 200m 정도 돌아서 갔다.
체크인 할 때 4층 테라스에서 보는 야경이 멋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정말 그랬다. 끝내주는 경치였다.
갑자기 해무가 쫘~ 악~ 몰려와서 더 멋진 경치가 된 것 같다.
아베 ㅺ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일본 여행도 가지 말자고 난리인 모양.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지 일부 지인들이 괜찮냐며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홋카이도를 여행하던 시기에는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은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한국인들이 꽤 있었다. 내 뒤 쪽에는 아버지와 딸 사이로 추정되는 한국인이 사이 좋게 대화하고 있었고, 내 옆 쪽에는 '오늘도 이 자리' 라는 걸 봐서 전 날도 하코바에서 묵은 걸로 추정되는 한국인 남자 애들 셋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맥주 살 때 두 개 살까, 세 개 살까 고민했는데 두 개 사기를 잘했다. 아쉬울 때 끝내는 게 딱 좋다.
방으로 돌아갔더니 시원~ 하다. 도쿄의 숙소나 사카타의 숙소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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