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 】
늦게까지 잠이 안 와서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반짝! 떠졌다. '늦었다!' 싶어 시계를 보니 네 시 반. 안심하고 바로 다시 잠들었다가 이내 알람 소리를 듣고 깼다. 몸이 무거워서 뮝기적~ 뮝기적~ 더 이상 게으름 피웠다가는 여행이고 나발이고 다 뒤집어질 때가 되서야 간신히 일어나 널어놓은 빨래부터 걷고 샤워를 한 뒤 짐을 마저 꾸려 출발.
06:03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집에서 나와 시계를 보니 05:45. 15분만에 역까지 가야 한다. 다른 때 같으면 '다음 열차 타지, 뭐...' 라 생각하고 여유를 부렸을텐데 이 날은 그럴 수가 없다. 한 번이라도 열차를 놓치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몇 시간 늦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최악의 경우 목적지까지 못 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_ㅡ;;;
시작부터 잔뜩 쫄려서 꽈악~ 힘 주고 걸었다. 축지 3까지는 안 가도 축지 2 정도는 한 것 같다. 날이 덜 더워서 다행이었다.
덜 덥다고 했지, 안 덥다고는 안 했다. 가슴팍과 등줄기로 땀이 흘러 내리는 게 느껴진다. 출발하자마자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똥꼬에 힘주고 바짝 걸은 덕분에 역까지 10분 밖에 안 걸렸다. 10㎏ 가까운 가방을 짊어지고 1㎞ 넘는 거리를 10분만에 갔으면 노인치고 선방한 거지. 늘씬하게 쭉 빠진 다리와 한 때 유튜버들에게 인기 있었던 쿄호 젤리 마냥 탱탱한 종아리 덕분이다. 훗.
청춘 18 티켓은 사용을 시작할 때 역무원에게 날짜 도장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역무원 앞에 부부로 추정되는 외국인이 서 있다. 외국인은 일본어를 못하고 역무원은 영어를 못해서 뭔가 곤란한 상황인 것 같더라고.
초등학생에게도 발리는 영어와 일본어 실력이지만(이렇게 말하니 겸손으로 아는 분이 계십니다만, 실제로 그 수준입니다. -ㅅ-), 아는 사람이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니 과감히 나서서 오지랖 한 번 부려볼까 했는데... 근처에 가니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외국인 아줌마가 옆으로 비켜 준다. 괜한 오지랖 발동으로 흑역사 만들 뻔 했는데 다행. ㅋ
청춘 18 티켓의 개시다. 처음 도장을 받았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묘하다. 나이 40 먹고 청춘 18 티켓이라니. ㅋㅋㅋ
【 텐노지 → 오사카 】
열차는 제 시각에 도착하고 출발했다. 남북으로 긴 국토와 잦은 지진의 영향으로 일본은 열차가 상당히 발달한 편. 도쿄와 신 오사카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의 개통이 1964년 10월이니까 2004년 4월에 KTX가 다니기 시작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 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JR이 다른 회사의 열차에 비해 지연이 잦다.' 는 선입견이 있다.
'JR이 늦는 일은 자주 있다.' 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기에 이번 여행에 있어서 적잖이 불안했다. 환승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2분 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지연이라도 되면 다음 열차를 놓칠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일정이 죄다 틀어지고 마는 거다. 도쿄나 오사카 쪽에서라면 다음 열차 타는 걸로 해결되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한 시간에 한 대 다닐까 말까 하는 시골 쪽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골치 아파진다. 아무튼, 꽤나 긴장한 상태로 여행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열차 안은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회사 다닐 때에는 차 안에서 계속 하품하고 그랬더랬지. 먹고 사느라 고생이 많은 직장인의 삶. 역시, 학생 때가 제일 좋은 듯.
지나가다보니 쿄세라 돔이 보인다. 응? 쿄세라 돔을 지나가? 그러고보니 항상 미도스지線을 타고 우메다駅으로 갔지, JR을 타고 오사카駅으로 간 적은 없는 것 같다(JR이 병아리 눈꼽만큼이나마 싼데도). 나는 한 번 이용한 경로나 시설에 딱히 불만이 없으면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사람인지라.
오사카 바로 전 역이 후쿠시마네. 어떻게든 후쿠시마는 지나가게 되는 건가? ㅋ 하긴, 한자로는 복 복(福)에 섬 도(島), 복섬이라는 흔한 이름이니까 일본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지명이긴 하다. 아무튼, 21세기 최악의 핵 오염 지역인 그 후쿠시마 쪽으로는 안 간다. 멀리 빙~ 돌아갈 거다.
【 오사카 → 마이바라 】
정확하게 20분 걸려서 오사카 역의 2번 플랫폼에 도착했다. 갈아타야 하는 열차는 33분에 오니까 10분 정도는 여유가 있는 셈. 전광판에 뜨는 열차 정보를 보니 미리 알아본대로 9번 플랫폼에서 타면 된다. 신 오사카 정도는 아니지만 오사카 역도 꽤 크고 분주한지라 10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사람이 적은 쪽으로 가서 줄을 섰는데, 지지리 복도 없지. 하필 약(弱) 냉방 칸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약 냉방 칸인지 아닌지는 열차가 오기 전에는 알 수가 없으니... 몸뚱이에 원자력 발전소를 내장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강(强) 냉방 칸(같은 건 없습니다요. -ㅅ-)으로 가도 모자랄 판이고만은. 옆 칸으로 옮겨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한 시간 반 정도를 가야 하는데 괜히 옮긴다고 옆 칸으로 갔다가 자리 없으면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한다.
자리 잡고 앉아서 가는데 멈출 때마다 꾸역꾸역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이내 꽉 찼다. '앉아서 갈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싶을 정도. 그러다가 어느 역에서 우르르~ 빠져 나가기에 '응?' 하고 봤더니 교토였다. 나는 종점인 마이바라까지 가야 하니까 중간에 내리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환승 시간이 아슬아슬. 08:01 도착인데 08:03에 출발하는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달랑 2분 뿐이니 계단이라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점이 가까워오자 환승에 대해 방송을 한다. 노래 듣다 말고 안내 방송을 집중해서 들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3분. 조금 지연된 모양이다. 갈아타야 할 열차가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맞은 편인 7번 플랫폼에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내리자마자 호다닥 뛰어 잽싸게 갈아탔다. 빈 자리는... 없었다. 서서 가야 했다.
【 마이바라 → 오오가키 】
그렇게 30분 정도를 더 달려 오오가키에 도착. 여기도 환승 시간이 3분 밖에 안 된다. 갈아탈 시간이 촉박하니 주의하라고 안내 방송을 하더라. 그러지 말고 여유 있게 편성하라고!
【 오오가키 → 토요하시 】
내린 플랫폼이 1번인가 2번인가 그랬는데 타야 하는 곳은 5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서 막 뛰어간다. 나는 그 급한 무리에 휩쓸리지 않겠다며 양반 도포 자락으로 행차하듯이 느긋하게 걸었지만 솔직히 놓칠까봐 쫄아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환승 통로를 지나, 5번 플랫폼 쪽으로 가면서, 시계를 슬쩍 보니 아직 여유가 있다. ㅋ
맨 앞 쪽 열차까지 걸어가서 올라탔더니 역방향이긴 하지만 빈 자리가 있어서 냉큼 앉았다. 손전화에 충전기를 물린 후 가방에 넣고, 가방은 선반에 올렸다.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니까 가방을 안고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았다.
'왜 다른 자리는 다 순방향인데 내가 앉은 자리만 역방향이지?' 알고 보니 종점에서 등받이를 반대 쪽으로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을 때 옆에 앉은 거고. 창 쪽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중간에 내렸고. 나는 일어나서 등받이를 넘겨야 하는 타이밍을 놓쳤고. 열차 안의 모든 사람이 앞을 볼 때 혼자 뒤를 보면서 갔다.
열차 안에 사람이 많더라니, 나고야에 멈추는 열차였다. 나고야에서 우르르~ 내리고 우르르~ 타고. 중간 중간에 사진도 좀 찍고 그래야 하는데 환승 시간이 죄다 2분, 3분, 이 모양이니 사진 찍을 틈도 없다.
【 토요하시 → 하마마츠 】
토요하시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열차 갈아타느라 바빠서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못했다. 다행히 토요하시에서는 13분이라는 시간이 있어서 '사진을 좀 찍어야겠다.' 싶었는데 플랫폼에 도착하니 타야 할 열차가 들어온다. 일단 열차에 탄 뒤 바깥 쪽 사진을 좀 찍긴 했는데 영 맘에 안 든다.
토요하시에서 열차에 올라 탄 뒤 찍은 사진. 남들 블로그 보면 지나치는 역 사진들 잘만 찍더구만은.
여섯 시도 안 되었을 때 출발,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하마마츠에 도착했다. 시간을 돈과 바꾸고 있다.
집에서 나온지 네 시간이 지나자 무선 이어폰(소니 WF-1000X M3)이 숨졌다. 배터리가 다 됐다며.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도 여섯 시간은 간다고 광고하고 있는데 역시나 과대 광고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불량품을 받았거나. 집에 돌아가면 아마존에 문의 메일이라도 보내봐야겠다.
글 쓰다가 생각나서 메일을 보내려고 했는데 문의하고 자시고 하는 과정 없이 바로 반품 프로세스로 진입! 게다가 지금 주문하면 제품 수령은 8월 29일, 30일에나 가능한 것으로 나오니 새 제품으로 교환 받는 것도 한~ 참 기다려야 할 듯. 그래서 일단 제품 사용 후기에 배터리 사용 시간이 형편 없다는 식으로 글만 써놓고 반품 신청은 안 했음. 실망이다, WF-1000X M3.
시즈오카까지 가는 게 목적이었다면 별로 걱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열차가 자주 있으니까. 하지만 이 날은 가뭄에 콩나듯 열차가 오고가는 오쿠오이코조駅에 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놓치거나 하면 모든 일정이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그래서 꽤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열차는 제 시각에 딱딱 맞아떨어지지, 헤매는 일도 없지, 조금씩 여유를 찾게 됐다.
【 하마마츠 → 카나야 】
하마마츠에서도 열차를 잘 갈아탔다. 안 헤매고 이렇게 잘 간다. 누가 칭찬 좀 해 줘! 지금까지는 계속 종점에서 내렸지만 이번에 내릴 카나야 역은 종점이 아니다. 방송 잘 듣고 있다가 내려야 한다.
카나야 역에 딱 내려서 스윽~ 둘러보니 진짜 시골 역. 청춘 18 패스를 보여준 뒤 밖으로 나가서 다시 한 번 보니 제대로 깡촌이다. JR 카나야駅 바로 옆에 오이가와 카나야駅이 있고 코인 라커도 거기에 있다. 일단 안 쪽을 대충 둘러 봤는데 표 파는 사람이 없는 거다. '어디 갔나?' 싶어 잠시 기다리는데 나보다 늦게 온 사람이 표를 사고 있더라. 나도 슬슬 표 사야겠다 싶어 역무원에게 갔는데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그냥 멍 때리고 앉아 있는 건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JR 카나야駅에서 오이가와 카나야駅 쪽으로 바로 들어올 수가 있었다(하지만 표를 넣거나 IC 카드를 찍어야 하는 개찰구 뿐이라서 역무원에게 확인을 받은 뒤 지나가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어차피 역 밖으로 나간 뒤 오이가와 카나야駅으로 가야 했음요.). 그 쪽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더라. 잠시 기다렸다가 2일 프리 패스를 구입. 4,400円이나 한다. 지금 환율로 따지면 얼추 5만원 가까운 돈이다. '뭐가 이리 비싸?' 라 생각했는데, 운임 자체가 워낙 비싸서 패스 안 사고 그냥 타면 지갑에 빵꾸날 판이다. 패스 구입하려니까 역무원이 '어디 가냐' 고 묻기에 '오쿠오이코조 까지 간다' 고 했다. 뭔가 발음하기 어려운데 한 번도 안 씹고 잘 말해서 뿌듯했다.
【 카나야 → 센즈 】
열차가 올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기 앞에 서면 밖에서 내가 뭐하고 있는지 다 보이는 구조다. 사람들 지나다니는데 함부로 흉기를 꺼내들고 싶지 않아서 대변기 있는 쪽으로 들어갔더니 쪼그려 쏴 자세의 변기. 요즘 애들은 본 적이나 있으려나? ㅋ
화장실 앞의 자판기에서 오로나민 C 하나 뽑아 마셨다. 나에게는 에너지 음료라는 인상이 콱! 박혀 있는지라 쫌만 피곤하면 바로 저거 찾아 마신다. 이번 여행에서도 매일 한 병씩은 마셨던 것 같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오이가와線 카나야駅은 종점. 센즈駅도 종점.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는 험난한 여정 되시겠다.
나무로 된 벤치. 벤치도 참으로 오래된 분위기다. 일본 시골 가면 대체로 이런 분위기다.
오이가와線을 타고 갈 수 있는 곳들이 안내되어 있다. 이 동네에서만 한 3일 까먹어도 충분할 것 같다.
날은 푹푹 찌고, 에어컨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장소는 주변에 한 곳도 보이지 않고, 땡볕에 익어 간다.
서일본 JR은 파란색 이미지라면 동일본 JR은 주황색 이미지. 북쪽으로 가면 초록색이 된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 매달려 있는 형광등만 봐도 연륜이 보인다. 틀림없이 나보다 연세가 많으실 게다.
얽히고 섥힌 전신주의 이런저런 전선들. 저런데도 합선 안 되고 불 안 나는 거 보면 신기하다.
포커스를 바꿔보면, 뒤 쪽의 요상한 바람개비(?)가 눈에 들어온다. 모터 달린 거 같은데 대체 뭐지?
이 동네에서는 온통 저런 바람개비(?)를 볼 수 있었다. 그냥 쇠로 만든 바람개비가 아니라 뒷 부분에 모터 같은 게 설치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모터의 힘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 듯 했다. '간이 풍력 발전 같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차 밭에만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보성 갔을 때에는 본 적이 없으니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쪽은 JR 카나야 역. 지하도를 통해 반대 쪽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다음 날 보러 갈 예정인 유메노츠리바시의 쪼글쪼글한 사진도 붙어 있었다.
타고 왔던(것과 같은) JR 열차. 숙소가 있는 시즈오카 쪽으로 갈 때 다시 이 녀석의 신세를 져야 한다.
철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오이가와 열차가 들어온다. 진~ 짜 낡은 열차. '낡음 = 나쁨' 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아둥바둥 써대는 분위기라 아버지가 타던 열차를 아들이 타고, 할아버지가 쓰던 물건을 아버지에 이어 손자가 물려 받아 쓰는 경우도 있고, 뭐 그렇다. 그런 분위기다 보니 교체용 부품의 판매도 활발해서 우리나라 같으면 버리고 새로 살 볼펜의 교환 부품 같은 것도 엄청 많이 판다. 500円 짜리 볼펜의 손잡이 부분을 700円에 파는데 그게 팔리고 있으니.
우리나라라면 박물관 같은 곳에나 전시되어 있을 법한 열차가 버젓이 현역으로 뛰고 있다. 아니, 계시다.
ワンマン이라 쓰여 있다. One Man이라는 뜻. 카나야와 센즈 사이를 왕복한다는 안내판도 걸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열차가 다닌다면 낡은 열차를 아직도 탄다며 안전 불감증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내부는 이렇다. 내부마저도 제대로 쌍팔년도 분위기다. 좌석도, 손잡이도.
직접 손으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붙어 있었다. 복사한 게 아니라 실제 그림 같아 보였다.
위 쪽이 청춘 18 티켓, 아래 쪽이 오이가와線 2일 무제한 이용권. 둘을 합치면 16,250円이다. ㄷㄷㄷ
바로 다음 역이 '신 카나야'인데 증기 기관차나 토마스 기관차가 세워져 있기에 여기에서 내리는 사람도 많았다.
풀이 무성한 흙바닥 위에 놓인 낡은 나무 벤치. 믿기지 않겠지만 플랫폼이다. 열차에서 내리는 곳이다.
뭔가 영월에 갔을 때 봤던 풍경과 비슷해보인다.
오이가와線은 증기 기관차와 토마스 기관차 덕분에 먹고 사는지라 대부분의 역에 그 내용이 안내되고 있다.
이런 경치만 보면 카메라 들이대는 걸 보니 난 아무래도 큰 다리 성애자인 모양이다. -ㅅ-
물 색깔이 탁한 게 아쉬웠다. 속이 비춰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었다면 더 감탄하면서 볼 수 있었을텐데.
지나가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 온천으로 여행 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대부분의 역이 우리네 시골 역과 같은 분위기다. 한국에서는 이미 사라져 이제는 보기 힘든 풍경.
'지명' 을 '지나' 라 읽는 모양이다. 일본어는 한자 읽는 방법이 워낙 많아서 공부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요금이 엄청난 수준으로 올라간다. 프리 패스 없었으면 엄두도 못 낼 것 같은 수준이다.
일본에서 가장 짧은 터널이란다. 말이 터널이지, 시멘트 벽에 구멍 내놓은 수준이던데. ㅋ
다리 성애자입니다. 이 다리 말고 그 다리도 좋아합... 읍읍!
맞은 편으로 지나가는 열차는 그나마 좀 요즘 물건처럼 보인다.
열차는 힘겹게 앞으로 전진한다. 에어컨을 켜고 달리게끔 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낡은 열차. 초딩으로 보이는 애도 있고 중딩으로 보이는 애도 있는 등 '대체 뭐하는 패거리지?' 싶은 일행이 우르르~ 탔다가 시오고駅에서 한꺼번에 내린다. 그리고 꽤 가더니 어느 역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어린 아이를 안고 허둥지둥 뛰어 내린다. 애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한 모양. 열차는 그런 엄마와 애를 두고 가지 않는다. 기다린다. 하염없이 기다린다. 계속 기다린다. 애 엄마가 잔뜩 미안해하며 돌아오자 그제서야 출발한다. 시골 열차다.
중국 사람인지, 대만 사람인지, 홍콩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중국어를 쓰는 족속들이 엄청나게 떠들어댄다. 공공 장소에서는 목소리를 줄여야 한다는 교육 자체가 없는 걸까?
이게 역 건물. 안 무너지는 것도 신기하고, 새로 올릴 생각 안 하고 그대로 쓰는 것도 대단하고.
센즈에 도착하니 증기 기관차가 기름 냄새를 풍기며 멈춰 있었다. 정비하는 사람들이 뭔가 바쁘게 하는 중이었고.
【 센즈 → 오쿠오이코조 】
센즈에 도착했다. 배 고파!!! 오로나민 C 말고는 아무 것도 먹은 게 없다.
증기 기관차 사진을 잽싸게 찍었다. 센즈에서 오쿠오이코조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여유 시간이 3분인가 4분 뿐이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얼른 사진 찍고 가야겠다 싶어 마음이 급하다. 그 와중에 뒤에서 뭐라 뭐라 떠든다. 들리지도 않는다.
급하게 사진을 찍은 뒤 역무원에게 '오쿠오이코조까지 가고 싶습니다만...' 이라 해야 하는데 맘만 앞서서 '오쿠오이코조까지 갔습니다.' 라고 해버렸다. 일본어 10개월 배운 사람이 이 모양입니다. -_ㅡ;;;
역무원이 당황하더니 저 쪽을 가리키며 손짓을 한다. 그리고는 무전기인가 전화기인가에 대고 뭐라 뭐라 한다. 아까 뒤에서 뭐라 뭐라 한 게 열차 출발하니까 탈 사람들 빨리 오라는 내용이었던 모양이다. 출발 임박했을 때 내가 오쿠오이코조 간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열차에 알린 모양. -ㅅ-
급하게 열차에 올라탔는데, 이건 센즈까지 오는 동안 탔던 열차보다 더 낡아 보인다. 할아버지다.
출발하기 직전에 타는 바람에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엉거주춤 서 있어야 했다. 난쟁이 똥자루만한 나도 허리를 숙여야 할 정도로 천장이 낮은 열차였다. 서장훈 정도의 키라면 무릎 꿇고 앉아도 천장에 머리카락이 스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_ㅡ;;;
얼마 지나지 않아 빈 자리가 생겨서 잽싸게 그 쪽으로 가서 앉았다. 열차 진행 방향 기준으로 왼쪽이었다(센즈에서 오쿠오이코조로 갈 때에는 진행 방향 기준 오른쪽, 돌아올 때에는 왼쪽에 앉는 게 경치 보기 좋습니다. 반대로 앉으면 별로 볼 게 없음요. -ㅅ-).
중간에 젊어 보이는 직원이 검표하러 다니던데 마음은 '오쿠오이코조까지 갑니다.' 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는 '오쿠오이코조까지.' 밖에 안 나온다. 말을 끝까지 똑바로 해야 하는데 자꾸 생략하는 버릇이 들어서 큰 일이다. 최근에는 '뭐뭐 합니다만...' 하고 줄여버리는 게 입에 붙어 버렸다. -ㅅ-
산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니 에어컨이 없어도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분 좋은 날씨.
창문 밖으로 카메라를 내밀어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덕분에 곡선 구간에서는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진짜 낡은 열차다. 멋진 경치는 대부분 오른쪽으로 펼쳐지는데 왼쪽에 앉는 바람에 제대로 못 봤다.
터널로 들어가는 열차. 교토 아라시야마에서 탔던 토로코 열차와 비슷한 분위기다.
비 피할 정류장 달랑 하나 있는 역이 대부분. 역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ㅋ
여러 곳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합류하고 있어서 색깔도 다르고 소용돌이 치는 모양도 다르고.
다리 성애자는 부지런합니다. 엣헴!
이게 다른 블로그에서 봤던 디젤 기관차. 열차 힘이 부족해서 이 녀석이 뒤에 붙어 밀어준다고 한다.
솔직히 이 정도 풍경이면 다들 카메라 들이밀만 하잖아요. 나만 좋다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잖아요.
디젤 기관차가 뒤에 달라붙는 곳에서 시간이 좀 걸린다. 내려서 구경하라 하니까 죄다 내려서 사진 찍고 있더라.
물 색깔만 퍼랬더라면... 속이 비춰 보일 정도로 시퍼렇고 맑은 물이었다면...
뒤에서 디젤 기관차가 열심히 밀어준 덕분에 무사히 나가시마 댐에 도착했다.
타고 있던 열차는 쇼와 37년에 만들어진 녀ㅅ, 아니 분. 쇼와 37년이면 1962년이다. ㄷㄷㄷ
1962년생 유명인으로 톰 크루즈, 짐 캐리, 주성치, 양자경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인으로는 최양락, 최민식, 임재범 등... -ㅅ-
아까 열차에 탔을 때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아메(あめ=雨=비) 뭐라 뭐라 하기에 '내일 비 온다는 예보라도 있는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열차 안에서 '비 오니까 창문 닫으라' 고 안내 방송을 한다. '뭔 소리야, 하늘에 해가 쨍쨍한데.'
그런데 갑자기 개구리 왕눈이 눈알만한 빗방울이 미친 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우야, 이게 스콜이지 무슨!
터널 뚫은 게 1988년 3월. 서울 올림픽 하기 전. 국민학교 3학년 때다. -_ㅡ;;;
평소에 이런 사진 찍어보고 싶었기에 여한없이 셔터 눌러댔다. ㅋㅋㅋ
짧은 시간에 쏴아아~ 쏟아지긴 했지만 비는 금방 그쳤다. 지나가는 소나기였던 모양. 우산도 없었는데 다행이다.
이내 오쿠오이코조駅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내렸다.
손님들 대부분을 내려놓고 떠나는 오이가와線 열차. 40여분 후에 다시 타야 한다. 센즈로 돌아가야 하니까.
여기까지 와서 자물쇠 거는 커플들도 있고나. 다들 안 헤어지고 잘 만나고 계십니까? 흥...
사람들 내려놓고 떠나가는 열차. 곧 다시 만날게다. ㅋㅋㅋ
사람들과 같이 우르르 몰려다니기 싫어서 시간도 보낼 겸 지나온 길을 한 번 찍어 보고,
근처 지도를 한 장 찍은 뒤 슬렁~ 슬렁~ 걸어 본다. (이 때 지도를 대충 봐서 전망대에 못 갔다. 젠장!)
그래도 이 쪽 물은 회색을 띄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딱히 드러눕고 싶지 않은 장소에, 딱히 드러눕고 싶지 않게 생긴 벤치가 놓여 있었다. -ㅅ-
열차가 다니는 선로 옆에 도보 전용 통로가 있어서 다리를 건너며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경치가 끝내준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소 무서울 수도 있는 다리 되시겠다. 나와는 전혀 관계 없다. ㅋ
반대 쪽 경치도 멋지다. 맘 같아서는 선로로 걸어보고 싶지만... 하지 말라는 짓은 안 하는 사람이니까.
열차도 자주 안 다니는데, 번지 점프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한데. ㅋㅋㅋ
전망대 쪽으로 가려면 이 계단을 지나야 한다. 계단을 보자마자 포기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로우 앵글로도 찍어 보고,
파노라마 샷도 열심히 찍어 본다.
높은 곳에서 선로 전체가 담기도록 내려보면서 찍은 사진들이 많던데, 그 구도로 찍을 수 있는 장소는 없었다. 지금 글 쓰면서 알게 된 건데 전망대 반대 쪽으로 한참 걸어가면 사진 찍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 모양. 아쉽기 그지 없지만 다녀왔다면 바로 돌아가는 열차는 못 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 샷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맘.
이렇게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딱히 막아놓거나 하지 않은 걸 보면 가도 되는 모양이다.
다녀와서 사진을 볼 때에는 '느긋하게 여기저기 가볼 걸...' 싶지만, 막상 저 때에는 오랜 열차 이동 때문에 지쳐 있기도 했고 흘린 땀도 엄청났기 때문에 만사 귀찮았더랬다.
뭔 매도 한 마리 날아다니는 것 같고,
시커먼 거대 조류도 보이고.
일찌감치 구경을 마치고 돌아갈 때 타야 할 열차를 기다린다.
바람이 놀고 가는 곳이라고, 숲이 알려줬다고. 말은 참... ㅋㅋㅋ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마세요' 라고 쓰여 있다. 이 정도 쯤이야. 훗.
【 오쿠오이코조 → 센즈 】
몇 분 늦긴 했지만 돌아갈 때 타야 할 열차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왼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아까 못 본 경치를 제대로 보면서 갈 수 있다. ㅋ
타고 온 열차보다 훨~ 씬 길다. 이 사진, 정말 맘에 드는 사진 중 한 장이다. 잘 찍었다. ㅋㅋㅋ
아까 내린 비가 전선에 매달려 있었다.
아까는 반대쪽에 앉아 있었기에 제대로 보지 못한 나가시마 댐을, 느긋~ 하게 볼 수 있다.
무선 이어폰 배터리가 짝짝이로 방전. -_ㅡ;;;
경치 구경하기에 좋은 자리에 앉았지만 잠이 마구 몰려 온다. 꾸벅꾸벅 졸다가 센즈駅으로 돌아왔다. 코크 온(우리나라에서는 코크 플레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중인데, 자판기랑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포인트도 쌓고 주문도 하고 그러는 거임.) 자판기가 보여서 손전화랑 연결하는 건 성공했는데 주문이 안 된다. 몇 분을 붙잡고 끙끙거리다가 결국 포기. 등록한 라인 페이로 자동 결제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구형이라 안 되는 건가봉가.
토마스 기관차. 대체 이런 괴기스러운 녀석을 왜 좋아하는 거지?
【 센즈 → 카나야 】
다시 카나야駅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에도 한 시간 넘게 열차를 타야... ㅠ_ㅠ
이번에도 꾸벅꾸벅 졸고. 카나야駅에 내리니 IC 카드를 지원하는 자판기가 보여서 콜라 하나를 뽑아 마셨다. 하루종일 먹은 거라고는 오로나민 C랑 콜라가 전부. 여행 다닐 때 이렇게 먹는 걸 소홀히 하니까 누군가와 같이 다니기가 어렵다. 혼자 다니는 게 속 편하다.
【 카나야 → 시즈오카 】
카나야駅에서 JR로 갈아탄 뒤 시즈오카에서 내렸다. 구글 지도를 켜고 숙소를 검색. 가라는대로 갔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갑자기 훅! 바뀌면서 다른 곳을 목적지로 가리킨다. 오냐 오냐 했더니 구글 지도가 미쳤나봉가.
역에서 지하도를 이용해서 반대 쪽으로 건너면 바로 코 앞이 숙소인데 그걸 모르고 한~~~ 참을 빙~~~ 돌아 헤매고 헤맨 끝에 도착했다. 뭐, 처음이니까.
숙소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모아서 하기로 하고. 체크 인 하고 나서 샤워부터 했다. 숨지지 않으려면 밥부터 먹어야 한다. 옷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는데 근처 가게마다 죄다 처자들이 줄 서 있네. 줄 서가면서 밥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발길 닿는대로 마구 돌아다녔다.
손님 한 명 없는 가게를 발견해서 들어갔더니 자판기로 주문하는 시스템. 라면이랑 교자, 만두 세트를 선택했다. 라면은 면의 단단한 정도와 매운 정도를 고르라고 하더라.
음식이 나왔고 어찌나 배가 고팠는지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다. 매운 맛이 1도 없어서 아쉬웠지만 배가 고프니 허겁지겁 뱃 속으로 밀어 넣는다.
밥 먹고 나서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서 물만 산 뒤 숙소로 돌아갔다. 너무 피곤했다. 좀 쉴 필요가 있어. '맥주 일 잔 할까?' 싶기도 했지만 만사 귀찮아서 그대로 뻗었다. 이렇게 첫 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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