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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공부

1년을 공부했는데...

by 스틸러스 2019.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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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




다 늙어서 휴직계를 던지고 일본에 온 뒤 일본어를 공부한 게 벌써 1년 전의 일.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최근 슬럼프인지 실력이 전혀 늘지 않고 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의 수준이 JLPT N5 수준. 히라가나 정도는 바로 바로 읽을 수 있고, 가타가나는 버벅거리면서 읽는 정도? 정말 기본적인 단어 정도를 제외하면 한자로 쓸 수 있는 건 거의 없다시피 했고, 쓰지 못하니 읽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 일단 아는 동사, 형용사 자체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그나마 동사 활용도 배우고 형용사도 이것저것 주워 들어서 처음 왔을 때보다 늘긴 한 것 같은데, 1년이나 공부한 사람이라 생각되는 정도는 아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3개월 공부했을 때의 네 배 실력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닌 거지.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하게 생각하자면, 자기 나라 말도 십수 년을 써왔으면서 수시로 틀리는데 달랑 1년 배워놓고 자유자재로 구사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하지만 '벌어놓은 돈 다 까먹고 은행에 빚 내면서 공부하는 건데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 수시로 자괴감이 든다.




히라가나와 가타가나가 있긴 하지만 한자를 많이 쓰는 일본어인데다, 같은 한자도 읽는 방법이 워낙 다양하니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머리가 아파진다. 읽는 방법이 다른 한자가 수백(수천이겠지, 사실은)인데다 그걸 조합해서 또 달리 읽게 되고... 환장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간다' 라는 뜻을 가진 行く(이쿠). 그런데 같은 다닐 행(行)자 뒤에 う가 붙으면 이우라고 읽지 않고 오코나우(行う, 실행하다)가 된다. 이 行이라는 한자가 행선지라는 의미로 쓰이면 行く先가 되는데 이 때에는 '이' 나 '오코나' 가 아니라 '' 라고 읽어서 유쿠사키가 된다. 물론 영어도 i는 '이' 로 읽는 게 일반적이라지만 industry와 mind의 읽는 방법이 다르다. '이' 와 '아이' 로 달라지는 거지. 하지만 일본어처럼 요란하게 바뀌지는 않는다. 한글은 '가' 로 쓰면 그냥 '가' 로 읽지 그걸 '나' 나 '다' 로 읽지는 않잖아?




저런 경우가 부지기수다. 좋아하다의 의미를 가진 好き(스키). 그럼 이 걸 읽어보자. お好み焼き. 뒤에 있는 한자는 '굽다' 라는 의미를 가졌고 '야' 라고 읽는다. 그럼 오스미야키? 아니다. 좋을 호(好)라는 한자는 이 경우에 '코노' 로 읽는다. 그렇다. 오사카와 히로시마에서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자존심 내세우는, 그 '오코노미야키' 를 저렇게 쓴다. 저 한자가 호기심(好奇心)에 쓰이면 '스' 나 '코노' 가 아니라 '코우' 로 읽는다. 코우키신.



'더럽다' 는 뜻을 가진 형용사는 汚い. '키타나이' 라고 읽는다. 같은 한자 뒤에 れる가 붙어 汚れる라고 쓰면 동사가 되고 읽는 방법도 '요고레루' 로 바뀐다.


거의 모든 한자에 저렇게 음독과 훈독이 따로 있고 조합되는 다른 글자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지니 미칠 지경이다. 한국에서 올 때 일본어 상용 한자 책을 두 권이나 가지고 왔는데 당최 외울 맘이 안 생긴다.




거기에다 우리의 두음 법칙에 해당하는 연탁 현상이 있어서 사람들의 '들' 에 해당하는 達 ← 요 글자는 원래 '타치' 로 읽지만 친구라는 뜻으로 쓰이면 벗 우(友)자 뒤에 붙어서 友達(ともだち), 토모''가 된다.


굉장히, 아주, 대단히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とても의 경우 표기대로라면 '토테모' 라고 읽어야 하지만 절대 '' 로 들리지 않는다. 무조건 '' 로 들리는데 저걸 '토' 로 써야 한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하겠지만 어느 쪽이라는 뜻의 どちら는 '도찌라' 로 쓰고 읽거든? 같이 쓰다보면 どても가 맞는 게 아닌지 헷갈리게 되는 거다.


거기에다 일본식 한자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으로 나라 국(國)이라는 한자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國으로 쓰는데 정작 한자의 본 고장인 중국도 国으로 쓰고 일본도 저렇게 쓴다. 대만은 國으로 쓰지만 최근에는 国이라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더라.
서녘 서는 이렇게 → 西 쓴다. 네모 안에서 왼쪽으로 살짝 휘고 오른쪽으로 휙! 꺾인다. 그런데 저렇게 쓰지 않고 네모 안의 세로 선 두 개를 아래 쪽에 닿게 그냥 일자로 쭉! 내려 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듣도 보도 못한 한자라 '설마 서녘 서인가?' 라 생각했다가 정말이어서 놀라기도 했다.




일본어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나다니면서 간판을 부지런히 보는데, 자주 다니는 길에서 '読売新聞' 라는 간판을 봤다. 일본어를 1년이나 공부했는데 저게 '요미우리' 의 한자라는 걸 처음 알았다.


読 ← 얘는 읽을 독. 원래는 이렇게 → 讀 써야 하지만 일본식으로 간략히 줄여쓰는 한자 되시겠다. 뒤에 む가 붙으면 읽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読む(요무)가 된다. 売 ← 얘는 팔 매. 이 한자도 원래는 이렇게 → 賣 써야 하지만 일본에서는 간단하게 쓴다. 뒤에 る가 붙으면 팔다라는 뜻을 가진 売る(우루)가 된다.

読書(독서, 도쿠쇼)로 쓸 경우 読 ← 얘는 '도쿠' 가 되고 販売(판매, 한바이)에서 売 ← 얘는 '바이' 가 된다. 어디를 봐서 저게 각자 요미, 우리로 읽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냐고. 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요무 → 요미, 우루 → 우리 가 된 거니까 아예 어이없는 건 아닌데... 음... 왜 난 저렇게 읽을 생각을 못했지?

뭐, 콜롬버스의 달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알고 나면 '에이~ 그렇게는 나도 하지~' 하는 거.



아무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읽고 쓰는 것보다는 듣고 말하는 게 더 중요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공상과 망상 따위를 일본어로 설명하는 연습을 한다. 그 때마다 내 한계를 느끼게 되어 답답함이 가중되긴 하는데... 아무튼, 유학 초기에 나를 괴롭혔던 조사 문제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니까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다른 문제가 다가왔다.




과연 유학을 마칠 때까지 일본인들과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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