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갤까 하다가 1박 2일 짜리 짧은 여행이라 그냥 하나로 올립니다. 찍은 사진은 400장이 넘지만 그걸 다 올릴 수는 없으니까요. 기를 써서 거르고 걸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롤 바가 쥐알만하게 쪼그라드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글 쓰는 저마저도 중간에 한숨 자고 마저 쓰고 있는 거니까 보다가 혼수 상태에 빠지거나 버티지 못하고 뒤로 버튼을 누르신다 해서 정상인의 범주로부터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보겠습니다. 여행 기간은 2019년 10월 03일부터 04일까지.
[ 출발 ]
3년 전에 아마노 하시다테에 다녀온 적이 있다(https://pohangsteelers.tistory.com/1259). 그 때에도 원래는 이네까지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체력이 방전되는 바람에 포기했더랬지.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렸었는데, '아마노 하시다테를 보기에는 비 오는 날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아마노 하시다테에서는 허리를 숙여 가랑이 사이로 경치를 보는 것이 유명한데 그렇게 하면 '구불구불한 지형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데 맑으면 이상하지. 비가 와야지. 암, 그렇고말고. ← 하지만 정작 비 올 때의 경치는 그닥... -_ㅡ;;;
출발 전에 일기 예보를 보니 여행하는 이틀 내내 비가 내린다고 되어 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흐리다고만 했었는데. 나와 아마노 하시다테 사이에서는 비를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가 없는 모양이다. 에휴...
원래 계획은 여덟 시에 씻고, 여덟 시 반에 나가서, 아홉 시 조금 넘어 우메다에 도착한 뒤, 여유 있게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뮝기적거리다가 여덟 시 반이 되어서야 씻으러 들어갔고, 서둘러 옷 입고 나오니 아홉 시. 늦겠다 싶어 종종종종 걸었더니 10분 조금 더 걸려 텐노지駅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온 몸에서 육즙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ㅅ-
미도스지線을 타고 우메다에서 내린 뒤 안내를 보면서 터미널 쪽으로 이동했다. 우메다는 몇 번을 가더라도 헤매게 되는, 마치 미로와 같은 곳인지라 여러 번 확인하면서.
늦을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출발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표 파는 곳에 가서 손전화 화면을 보여주면서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습니다만, 표는 없어도 됩니까?' 라고 물어봤다. 손전화 화면을 이리저리 보더니 없어도 된다네. 기사님에게 손전화 화면을 보여주면 된단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뒤 화장실에 갔는데 달랑 두 칸 뿐인 점잖게 앉아 힘쓰는 자리는 이미 사용 중. 지금 당장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던 지라 일단 버스에 탔다.
만석은 아니지만 절반 정도는 탄 듯. 일본의 고속 버스 예매 시스템은 원하는 자리를 지정할 수도 없는데다 융통성이라고는 1도 없어서 빈 자리 많은데도 옆 자리에 사람 앉히는 경우도 종종 있는지라 혹시나 옆에 누가 앉지 않을까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육즙이 터져나왔고 그렇게 한 번 터진 육즙은 멈출 줄 모르고 질질 흐른다. 버스는 시동도 안 켜놔서 에어컨도 안 나오고. 더워서 숨지겠다. 자연 발화로 뉴스에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사님이 올라와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켜줬다.
아홉 시 50분 버스인데 49분에 움찔! 하더니 출발. '어? 아직 시간이...' 하면서 손전화 보니 바로 50분이 된다. 출발 시간에 베일 것 같다. 칼이다.
뒷좌석에 처자인지 아줌마인지가 앉는 바람에 얼마 눕혀지지도 않는 시트는 아예 못 눕혔다. 태블릿 만지작거리다가 정신 없이 졸고 있는데 휴게소에서 쉬고 간다는 방송. 열한 시 28분에 도착했는데 40분에 출발한다고 하는 걸 보니 다른 노선에 비해 짧게 쉬긴 하네. 화장실만 호다닥 다녀왔다.
고베 어쩌고 하는 이정표가 있어서 확인해보니 맞네. 왜 이 쪽으로 가는 거지? 버스 탈 때 예약한 거 확인하고 이름까지 맞는 거 봤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잘못 탔나 싶어 버스가 멈추는 곳을 급하게 확인했다.
버스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 단점이라면 한 시간이 지나면 접속이 자동으로 끊겨서 다시 연결해줘야 한다는 것. 횟수는 하루에 5회로 제한되어 있다.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면 따로 회원 가입 같은 걸 안 해도 바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5회 넘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 다른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면 또 쓸 수 있는 건지, 기기 자체의 고유 ID 같은 게 전송되어 접속이 안 되게 막는 건지.
[ 염병할 WF-1000X M3 ]
열두 시 10분이 넘어 아마노 하시다테 IC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 이어폰은 배터리 없다고 징징. 아홉 시부터 들었다 치면 세 시간 밖에 안 됐는데 이 모양이다. 배터리 충전 메시지는 20% 정도 남았을 때 듣게 되는데 저걸로는 한 시간 듣는 건 무리니까 결국 어떻게 해도 네 시간 연속 재생은 무리라는 말이 된다. 중간에 버스 안내 방송 듣는다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재생한 거 말고는 전 곡이나 다음 곡 듣기 같은 기본적인 컨트롤도 하지 않았는데 이 따위라니. 이러면서 아직도 연속 재생 여섯 시간입네, 최대 여덟 시간입네, 사기 치고 있는 거 보면 어이가 없다. 소니 손전화에 연결해도 이 모양인데 삼성이나 애플 기기에 연결하면 사용 시간이 어떻게 되려나? 아무튼, WF-1000X M3 사용 시간은 제조사 말 믿으면 안 된다. 무료로 제품 받아서, 혹은 소정의 고료를 받고 후기 썼다는 블로거들 말도 믿으면 안 된다. 실제 연속 재생은 최~~~ 대한 길게 잡아야 네 시간이다.
[ 아마노 하시다테 역, 치온지, 근처 ]
아마노 하시다테 역 앞에 도착했다. 오사카로 돌아갈 때에는 반대 편의 호텔 앞에서 타면 된다고 친절히 안내해주시는 기사님. 내리자마자 역 안의 관광 안내 센터로 돌진했다. 3년 전에는 엄청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저 그랬다. 뭔가 마지 못해 알려주는 인상. (다음 날에 오사카 가는 버스 타는 곳을 확인하려고 물어보러 갔을 때에는 피곤하신지 엎드려 계시더라.)
이네까지 가는 버스 시간표를 받고, 근처 지도를 한 장 얻은 뒤 밖으로 나갔다.
아마노 하시다테 역 바로 옆에는 목욕탕이 있다. 다음 날에 이용해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뒀다. -ㅅ-
자그맣고 조용한 시골 마을. 거주하는 사람도, 관광오는 사람도,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저 멀리 뷰랜드의 대관람차가 보인다.
일단 걸어서 치온지(智恩寺)에 갔다. 한 눈에 딱 봐도 연식이 꽤 있어 보이는 목탑은 중요 문화재.
치온지에서는 부채 모양의 오미쿠지를 300円에 팔고 있다. 알아서 동전 넣고 통에 있는 걸 꺼내는 시스템.
지난 번에는 동전이 없어서 못 샀는데 이번에는 동전이 있어서 하나 샀다. 가방에 매달아뒀다. ㅋ
딱히 더 볼 게 없어서 바로 유람선 타는 쪽으로 이동.
관광용으로 스피드 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냥 모터 보트도 아니고, 지붕이 있는.
일행이 있었으면 같이 타볼 수도 있었겠지만 혼자 저런 걸 타는 건 아무래도 쪽 팔린다. -ㅅ-
경치는 그닥 달라진 게 없다. 사진 보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사람은 자고로 물 근처에 살아야 한다.
기념 사진 찍는 사람이 많아서 잠깐 틈 났을 때 잽싸게 찍었다. 일본 3대 경치라며 여기저기 자랑질.
물이 참 맑다. 교토 북부는 우리나라 동해 쪽이라서 방사능도 덜 할 거다. 여름에 해수욕 와도 좋을 듯.
[ 식당 선택 실패! ]
대충 스윽~ 둘러본 뒤 식당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배가 엄청 고팠다. 치온지 앞에 있는 여러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갔는데 자리에 앉기 전에 주문 해달라고 영어로 써붙여 놨다. 그래서 카운터 앞에 멍~ 하니 서 있는데 아무도 안 온다. 종업원의 안내가 없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반대 편의 가게에 들어갔는데 여기는 빈 자리가 없는 상황. 게다가 한 눈에 봐도 엄청 바빠 보이는데 서빙하는 사람은 할머니 한 분 뿐이었다. 식사를 마친 테이블도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고. 일단 자리를 안내 받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는 이 쪽을 보지도 않는다. 음식 나르고, 주문 받고,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외국인 처자 두 명이 물 따라 마신다면서 생맥주 기계에 컵 갖다 대고 막대기 잡아 당겨서 할머니가 기겁하며 달려와 그거 아니라고 손짓 발짓 하는 일도 있었고.
계속 그대로 서 있다가는 선채로 굶어 죽겠다 싶어 서빙 준비하는 할머니 뒤로 스윽~ 가서 '한 명인데요.' 했더니 바로 뒤 쪽 자리에 앉으란다. 치워주겠다면서. 자리 잡고 앉으니 빈 그릇 치우고 테이블 한 번 훔쳐준 뒤 물 갖다 준다. 바지락 우동이랑 카츠동을 주문하고 맥주도 하나 시킬까 했는데 가격이 말도 안 된다. 아무리 관광지지만 이건 너무 하다 싶을 정도의 가격이라 맥주는 참았다.
잠시 후 바지락 우동이 나왔다. 냉동된 거 써서 그런지 식감은 별로였지만 워낙 배가 고팠던지라...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오시더니 카츠동도 주문한 거 맞냐고 확인한다. 혼자 2인분 시켜서 그런 모양. 맞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나온 건 오야코동. 누가 봐도 카츠동이 아닌데 그냥 먹었다. 꼭 카츠동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배가 너무 고팠다. 다 먹고 영수증을 보니 오야코동에 체크되어 있네. '바쁘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확인해놓고 이러니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구글 별점 구리게 주는 거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네.
혹시나 싶어 가게 이름 써둔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ㅅ- (有)梅渓
[ 뷰랜드 ]
3년 전에 가본 곳이긴 하지만 들리지 않기가 영 아쉬워서 뷰랜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에 못 보면 다음에 보면 되니까.' 라는 생각으로 여유롭게 다니는 편인지라, 같은 곳을 다시 간다고 해도 별 문제 없다. 다만 두 번째, 세 번째 간다면 그 전에는 가지 않았던 곳을 가야겠지. 하지만 한국에서나 가능한거지 직접 운전해서 다닐 수 없는 환경에서는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특급 아마노 하시다테가 서 있다. 3년 전에 저렇게 역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바로 돌아가버렸었지. T^T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야 뷰랜드.
3년 전과 비교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입장료는 왕복 850円. 역에서 50円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리프트를 타든, 모노 레일을 타든, 본인 마음이다. 모노 레일은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자주 다니니까 괜찮다.
리프트는 안전 바 같은 게 없는 플라스틱 의자. 땅으로부터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해봐야 2m 정도가 고작이지만,
고소 공포증이 있거나 이런 거 무서워서 못 탄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분들은 모노 레일을 이용하는 편이 낫겠다. 올라갈 때에는 그럭저럭인데 내려올 때에는 무섭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게 왜 무섭냐고 그러면 떨어질까봐 무섭다고 하던데, 살면서 맨 정신에 의자에서 미끄러진 적 없으면 괜찮다. 뭐, 말은 그런데...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건 워낙 개인적인 거니까. 내가 괜찮다고 해서 남이 공포를 느끼는 걸 하찮게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네모 반듯한 차량 두 개가 연결된 형태의 모노 레일. 안 쪽에도 직원이 타고 있다. 하루종일 엄청 심심할 듯.
도착!
뷰랜드에서 본 경치는 대략 이러하다. 흐린 날보다 맑은 날이 훨씬 보기 좋네. ㅋㅋㅋ
반대 쪽을 왕복하는 유람선과 관광용 보트들이 부지런히 내달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사진을 수십 장 찍었지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다 고만고만한, 똑같은 사진일테니 적당히 올리고 말아야지. -ㅅ-
일본인의 대관람차 사랑은 전국 어디를 가도 한 대 이상은 볼 수 있게 만들어 놨다. ㅋ
양궁하는 곳도 있더라. 사무실 안 쪽에 인형들이 잔뜩 있는 걸로 봐서는 점수에 따라 인형도 주는 모양.
자그마한 말 인형이 있었는데 아기들 노는 걸 보니 말랑말랑한 재질이라 타면 통통 튀는 모양이다.
예전에 동그란 풍선 위에 말 대가리 붙인 호피티라는 거 탄 기억이 있는데. ㅋㅋㅋ
옛날 생각도 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 번 타보고 싶었지만, 저 고무 말의 최후가 철 없는 아저씨의 엉덩이가 되게끔 할 수 없어서 참았다.
회전 목마 보면 그로테스크(grotesque)한 것들이 꽤 많다. 여기 있는 말도 하반신은 생선이다. -ㅅ-
표정도 괴기하고 뭔가 무서운데 고양이가 입에 물고 있는 건 새... 극 사실주의로 표현한 들 고양이인가봉가.
저 앞의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면 좀 더 높은 위치에서 경치를 볼 수 있다.
이 날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는데 출구 쪽은 막아놓고 입구 쪽은 안 막아 놨더라. -ㅅ-
오른쪽의 수납함(?)에 300円을 넣고 흙으로 빚은 납작한 돌 세 개를 꺼내 앞에 있는 구멍에 던져 넣는다.
그렇게 하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거다. 찰흙을 동글 납작하게 빚어놓고 한 개에 100円이나 받는 상술도 놀랍거니와, 만만하게 보고 던지지만 의외로 저 구멍 안으로 통과시키는 게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해볼 생각도 안 했다.
반대 쪽에도 케이블 카와 리프트가 운행되고 있다. 경치는 뭐, 비슷하고.
저 쪽을 통해 산을 올라가면 자그마한 버스를 타고 나리아이지(成相山成相寺)라는 절에 갈 수 있다. 소원을 빌면 무조건 이루어준다는 절이다. 3년 전에는 날씨 때문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가볼까 싶었는데... 결국 케이블 카 타는 돈도 아깝고 귀찮기도 해서 이번에도 안 갔다. -ㅅ-
기념 사진 명소. 중국인인지, 대만인인지, 한참을 차지하고 비켜줄 생각을 안 했다.
예전에는 중국어를 쓰면 다 중국인이라 생각했지만 일본에는 대만 사람들도 엄청 많다는 걸 알게 됐으니 이제는 중국어 쓴다는 이유로 중국인이라 단정 짓기가 어렵다. 중국인인지 대만인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저 족속들은 무례하고 남들 생각 안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통 사진 찍기 좋은 곳에 가면 차례를 기다리는 게 일반적이고 다른 사람 생각해서 오랫동안 차지하지 않고 있기 마련이잖아? 하지만 쟤네들은 그런 게 없다. 그냥 불쑥불쑥 들어와서 사진 찍고, 남들 기다리거나 말거나 한~ 참을 차지하고 계속 사진 찍고 있다. 사진 찍고 있는 데 앞으로 스윽~ 지나가버리는 일도 예사.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사람 없이 사진 찍으려고 꽤 기다려야 했다.
사진을 줄여놔서 잘 안 보이긴 하는데, 허리를 숙여 가랑이 사이로 보면 용이 승천하는 걸로 보인다고 써놨다.
좀 전에 전망대에서 내 뒤에 오면서 강한 바람에 꺅꺅 난리도 아닌 처자들이었는데, 대관람차 타고 있더라. 깡도 좋다.
연출된 거겠지만 증기를 뿜고 있던 열차. 작지만 오밀조밀하게 잘 꾸며놨다.
하루에도 수십 번, 양 쪽을 왔다갔다 하는 유람선. 3년 전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을 때 탄 적이 있다.
올라온지 30분이나 됐나? 볼 거 다 봤으니 내려가기로 한다.
3년 전에도 공사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뭔가 유적 같은 거라도 나온 건가? 몇 년을 파고 있네.
파란 색의 탄고 열차가 지나가기에 잽싸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특급 하시다테와 탄고 열차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 파란 색과 흰 색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지.
일본은 지역마다 맨홀 뚜껑의 디자인이 달라서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이네로 이동 ]
뷰랜드에서 역으로 돌아갔다. 버스 시간표를 보니 슬슬 준비해야 할 시간. 다음 날 오사카로 돌아가는 버스는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버스에서 호텔 앞이라고 들었지만 한 번 도 확인하려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간당간당할 것 같아서 그냥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갔다. 예정 시간에 딱 맞춰 버스가 도착. 뒷 문으로 올라타면서 정리권을 뽑았다. 그동안 버스나 전철은 늘 ICOCA(IC 카드, 우리나라의 티머니 카드 같은 것)를 써서 탔기 때문에 현금 밖에 안 되는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건 엄청 오랜만인 것 같다.
일본에서 버스 타는 거,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는 앞 문으로 타면서 돈 내고 뒷 문으로 내리지만 일본은 뒷 문으로 타고 앞 문으로 내리면서 돈 내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나라는 미리 준비 안 하면 못 내리니까 내릴 때 되면 알아서 꾸물꾸물 뒷 문 쪽으로 옮겨 가야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했다가는 위험하다고 기사님에게 한 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벨 누른 뒤 버스가 완전히 멈추고 나서 일어나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버스는 내가 내릴 때까지 계~ 속 기다려주고 승객들 중 누구도 빨리 안 내린다고 궁시렁거리거나 눈치 주지 않습니다.
도쿄 쪽은 SUICA, PASMO, 오사카 쪽은 ICOCA 등으로 대변되는 IC 카드가 있습니다. 일본 전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이게 있으면 버스 탈 때 찍고 내릴 때 찍는 식으로 요금을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선불식 카드니까 사용할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이 충전되어 있어야겠지요.
자그마한 시골 마을로 다니는 버스 같은 경우에는 IC 카드를 사용할 수 없기도 합니다. 이 때에는 현금만 내야 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기사님이 잔 돈을 거슬러 주지만 일본은 본인이 직접 준비해야 합니다. 버스 요금을 내는 통에 잔돈 교환기가 있으니까 그걸 이용해서 미리 잔 돈으로 바꿔두고 버스 요금 만큼 넣어야 합니다. 만약 버스 요금이 320円 나왔는데 500円 넣었다면 그걸로 땡입니다. 거스름 돈 안 줍니다. (1,000円은 100円짜리로 바꿀 수 있고 10,000円 같은 고액은 교환이 안 됩니다.)
IC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 한국 사람에게 생소한 것이 정리권입니다. 일본어로 세리켄이라 하는데요. 어디에서 탔는지 표시해주는 종이 쪼가리입니다. 뒷 문으로 버스에 타면 문 바로 왼쪽에 자그마한 흰 색 종이가 메롱~ 하고 있을 겁니다. 그걸 뽑으면 됩니다. 버스 앞 쪽 전광판에 숫자가 쓰여 있고 그 밑에 요금이 표시되는데 내가 뽑은 종이에 쓰여있는 숫자 밑의 요금을 내면 됩니다. 긴 거리를 이용할수록 요금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고요.
가던 중에 무지개 발견!!!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 만큼은 안 나오는고나.
무지개 찍는다고 계속 카메라 들이대니까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힐끗 쳐다 보신다. 포커스 잡는다고 반 셔터 누를 때마다 삐릭~ 삐릭~ 하고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계~ 속 나니까 이상하다 싶어 쳐다본 듯. 하지만 잠시 후 그 아주머니도 무지개를 발견하고 바로 손전화를 꺼내어 사진을 찍더라. ㅋㅋㅋ
이렇게 버스 앞 쪽에 다음 정류장이 안내되고, 내야할 요금이 표시된다. 시골에서는 가뭄에 콩나듯 영어 안내만 나온다.
교토나 오사카 같은 관광지에서는 일본어 안내에 이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 안내도 나오지만 시골 버스에서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된다.
바다 바로 옆으로 달리는 버스. 이렇게나 가깝게 달리는 도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슬슬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
[ 숙소 도착! ]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오오시마나카(大島中).
버스 정류장 맞은 편으로 바로 바다가 보이기에 사진을 몇 장 찍고.
얼마 걷지 않아 저 앞 쪽에 숙소 간판이 보인다.
여기가 내가 묵을 숙소.
이네 후나야의 다른 숙소들은 싼 곳이 10,000円 정도. 비싼 곳은 30,000円 가까이 한다. 저녁과 아침에 두 번 제공되는 식사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숙소로 설계된 건물이 아니라 가정 집을 개조한 형태라서 묵을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내가 묵은 숙소는 식사 제공 없이 5,000円이었다. 시설에 비하면 조금 비싸다 싶을 수도 있지만 다른 숙소에 비하면 훨씬 쌌으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했는데 저녁은 3,000円에 먹을 수 있고 아침은 1,000円에 먹을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숙박객이 나 뿐이었기 때문인지 밥 얘기는 아예 안 꺼내시더라. ㅠ_ㅠ)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다. 인기척 자체가 없다. 안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주인 전화 번호가 있기에 전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체크 인 하고 바로 구경하러 나갈 건데 굳이 전화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냥 밖으로 나갔더니,
맞은 편에 있는 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숙박객이냐고 물어보신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예약했다고 하니까 주인한테 전화하겠단다. 그래서 근처를 관광하고 오겠다고 하니까 그럼 체크인할 때 이 쪽으로 오란다. 맞은 편에도 같은 간판을 걸어놓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주인은 거기에 살고 게스트만 맞은 편의 집에서 자게 하는 것 같은데 일단은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이네 쪽으로 걸었다.
숙소에 있던 지도. 유람선 타는 곳을 지나 인포메이션 센터까지 갔다가 돌아오니 얼추 두 시간 걸렸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숙소를 이용하실 분이 있을까 싶어 팁을 적어 보자면,
저녁 늦게 숙소에 도착하는 경우라면 오오시마나카에 내려 바로 숙소로 가면 됩니다. 구글 지도를 보면 근처에 식료품 점도 있고 주류 판매점도 있다고 나옵니다만, 실제로 가보면 제대로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바로 숙소로 갈 예정이라면 먹을 것을 아마노 하시다테에서 미리 구입해서 가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숙소에 전기 포트나 인덕션 등 요리할 수 있는 도구가 전혀 없으니 그것도 감안하셔야 합니다. (맞은 편 집에 계신 분께 말씀 드리면 뜨거운 물 정도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오전 중에 이네로 넘어가거나 관광할 시간이 충분한 상태에서 이네에 간다면 오오시마나카에 내리지 마시고, 이네 후나야까지 들어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이네를 구경하고 나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던가, 무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 되겠습니다. 단, 캐리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어렵겠네요. 백 팩 하나 정도 메고 있다면 가능하겠고요. 캐리어를 끌고 있어서 걷는 게 불편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숙소에 들러 짐을 맡기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네로 가던가 걸어서 이네에 가야겠습니다.
[ 걸어서 이네 마을 안 쪽으로 ]
숙소에서 얼마 걷지 않아 보게 된, 그냥 방치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름한 신사.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교회 보듯 볼 수 있는 게 신사이고, 정말 자그마한 신사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걸 어렵잖게 볼 수 있는데 여기는 지금까지 본 모든 신사 중 가장 무관심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휑~ 했다.
안 쪽으로 들어가 구경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스산한 분위기.
개인지 늑대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석상도 코 부분이 날아가고 없다.
꽤 걷다가 지나온 길 쪽을 보니, 내가 지나쳐 온 모든 집들 역시 1층에 배가 들어가는 후네야였다.
비가 온다는 예보였지만 다행히 그럭저럭 맑은 편이었다.
18호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바람이 말도 못할 정도로 불었다.
평지였는데도 걷다가 몸이 밀릴 정도의 바람이었다. 게다가 바로 옆은 바다인지라 파도가 거세게 치는데 그것도 겁 나더라.
나무가 아예 드러누울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사진으로 보면 전혀 느낄 수 없지만 파도도 굉장히 무섭게 쳤다. ㄷㄷㄷ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지, 바람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불어대지, 이런 계단을 봐도 올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유람선 선착장인데 날씨 때문에 유람선은 당연히 운행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배 띄우면 뒤집어지지.
신사나 절 같은 거겠지? 설마 저기 살고 그러지는 않겠지? ㄷㄷㄷ
정박되어 있는 배들도 위태로워 보인다. 사진으로 보니 못 느끼겠네. 호그와트 신문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응? 학생복이라고? 귀신한테 옷 맞춰주는 곳인가? -ㅅ-
도리이가 보이지만 올라가 볼 엄두가 안 난다. 힘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아베 ㅺ와 자민당 포스터를 붙인 곳도 여러 군데 있었지만 원전에 반대하는 공산당 포스터를 붙인 곳도 꽤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공산당이라고 하면 학을 떼지만, 현재 일본 정치계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이 따위로 이끌고 가서는 안 된다며 아베 ㅺ 까거나 원전에 반대하며 친환경 정책을 지지하는 등의 정치 성향을 보이는 곳이 일본 공산당이다. 크게 지지 받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산 옆에 토끼 굴 같은 걸 뚫어놨는데 안 쪽이 살짝 보인다. 여기도 좀 무서웠다. ㄷㄷㄷ
낚시하는 사람들은 무섭지도 않은 건가, 이 날씨에 낚시하고 있더라.
아마노 하시다테와는 또 다른 디자인의 맨홀 뚜껑. 이런 건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본다.
도로 쪽에서 보면 이렇게 1층이 뻥~ 뚫려 있고, 거기에 배가 파킹(?)되는 식이다.
이렇게 보니 정말 물 위에 지어진 집처럼 보인다.
사진 찍으며 걷다 보니 시간이 제법 지났다. 꽤 걸은 끝에 인포메이션 센터에 도착.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물어봤다. 버스 타는 곳은 인포메이션 센터 바로 앞이 아니라 조금 더 내려 간 곳에 있다고.
근처에 원숭이도 나오는 모양. -ㅅ-
한국인들 후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숙소인 워터 프론트 요사소. 엄청나게 비싼 숙소다.
역시나 한국인들 후기에 자주 등장하는 이네 카페. 밖에서만 보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네 카페 바로 앞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용 자전거가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빨간 등대까지 가보고 싶지만 슬슬 어두워지니 돌아가야겠다.
[ 리턴 투 숙소 ]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버스를 탈까 하다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자전거는 이네 마을 여기저기에 흩어진 네 군데의 포인트에 세워둘 수 있는데 아까 지나온 유람선 선착장이 그나마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일단 거기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걸어서는 한참 걸렸는데 자전거를 타니 금방. 공용 자전거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서 세우는 부분이 죄다 부러지거나 망가져 있었다.
유람선 선착장에 자전거를 세워두면서 '왜 아까는 저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를 탔더라면 조금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자전거를 세운 뒤 숙소 쪽으로 계속 걸었다.
숙소 근처의 주류 판매점에 들어가니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맥주를 사고 싶다고 했더니 발포주 뿐인데 괜찮냐고 하신다. 달리 선택지가 없으니, 뭐. 발포주는 맥주보다 저렴한, 유사 맥주 같은 거다. 맥아라던가 홉이라던가, 들어가는 재료 자체가 다르다. 여섯 캔에 900円 밖에 안 하니까 가격 경쟁력이 괜찮긴 한데 확실히 맛은 없다. '몇 개 줄까?' 라고 물어보시기에 망설이다가 여섯 캔 샀다. 좀 많은가 싶지만 작은 캔이니까, 뭐. (당연히 다 마시고 잤다. -ㅅ-)
숙소 맞은 편의 벨을 누르니 아까의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이번에는 주인한테 연락한다 하지 않으시고 바로 안내해주시네. 이 날 머무는 사람이 나 뿐이란다. ㅋㅋㅋ 그럴 것 같더라니.
내부 안내를 받은 뒤 방으로 들어갔다.
[ 숙소에서 가볍게 일 잔 ]
바로 앞이 바다인 2층 다다미 방. 최신식 시설의 깔끔한 호텔이 아니더라도 정말 좋더라.
땀을 많이 흘렸기에 샤워부터 하고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방금 전에 발포주를 샀던 가게에 가서 과자를 한 봉다리 사들고 왔다. 그거 말고는 술 안주로 먹을만 한 게 없었다.
숙소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으니 신경 쓸 게 없어서 좋다. 엄청 느리긴 하지만 와이파이가 되니까 가지고 간 태블릿으로 유튜브 영상 켜놓고 술 마시면서 빈둥거렸다. 인사 담당자 ×이랑 통화하면서 짜증이 나서 기분이 영 좋지 못했는데 그 더러운 기분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풍경이 창 밖에 펼쳐져 있었다.
어두워지고 나서의 경치도 멋있다.
발포주는... 맛없다.
예전의 발포주는 더 심했다고 한다. 돈 없어서 맥주 값이 아까운 서민의 술 이미지였다고. 하지만 맥주 회사들이 꾸준히 개량을 거듭한 끝에 아사히에서 만든 발포주는 맥주와 맛 차이가 거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값은 훨씬 싸고. 이게 일본의 세금과 연관이 된 거라 그런 것도 있는데, 아무튼 맥주와 별 차이가 없다는 아사히의 발포주도 마셔봤지만 확실히 맛이 없다. 선입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옥수수 전분 탄 것 같은 맛.
잠자리가 불편한 건 아닌데 새벽에 여러 번 깼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계단 등을 껐더니 완전한 어둠. 창 밖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말고는 빛도, 소리도 없다. 늦은 새벽에도 차나 바이크 소리가 들려오는 집과는 다르다. 좋다.
[ 다음 날 아침, 마저 이네 구경 ]
아침에 일어나서 바깥 경치 보면서 실실 쪼개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보슬보슬 오는 게 아니라 쏴아아~ 하고 쏟아진다.
얘네들은 왜 이러고 있는 걸까요? ㅋㅋㅋ
날씨가 미쳤는지 비가 오다 그쳤다는 수시로 반복한다. 허...
체크 아웃이 열 시라서 아홉 시 반 쯤 짐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따로 체크 아웃 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냥 바로 버스 정류장 쪽으로 이동. 이네 쪽으로 들어가서 어제 미처 보지 못한 곳까지 보고 올 지, 그냥 아마노 하시다테로 돌아갈지 고민을 했다. 마침 버스 시간을 보니 아마노 하시다테 쪽으로 가는 게 아홉 시 39분, 이네로 가는 게 43분. 아... 어떻게 해야 할꼬?
망설이다가 이네 쪽으로 가는 게 낫겠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으니 이번에 제대로 보자고 생각한 거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그치고 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혼자 감탄하면서 바닷가 쪽과 비에 젖은 거리를 찍고 있는데,
하늘에서 매 두 마리가 바람을 타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난 먹지 말아 줘.
아마노 하시다테 쪽으로 가는 버스가 2분 정도 늦게 도착. 나는 길 건너 쪽에 서 있었는데도 버스가 멈추고 뒷 문을 열었다가 잠시 후 출발한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이 한 쪽에만 있기 때문에 반대 쪽에 서 있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렇잖아도 버스 시간표 밑에 반대 쪽으로 가는 버스는 길 건너 편에 멈춘다고 쓰여 있는 곳도 있었다. 아무튼, 혹시나 버스가 나 때문에 멈출까 싶어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뒤돌아 서서 나는 그 버스 안 탈 거라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줬는데도 멈췄다 가더라.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니까 혹시라도 놓치는 사람 없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네로 들어가는 버스가 도착해서 올라타니 안 쪽에는 중국어를 쓰는 관광객 뿐. 그러고보니 이네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죄다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이고, 희한하다 싶었던 건 아랍에서 온 듯한 처자들도 있더라는 것.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알고 일본의 깡촌까지 여행을 오게 된 걸까?
이네에 도착하니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리고 버스 안에는 나와 기사님 뿐. 나는 종점까지 갔다.
버스마다 종점이 다르기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가 탄 버스는 우체국 앞이 종점이었다.
땅과 같은 높이에서 출렁거리는 바다를 보니 기분이 묘~ 했다.
큰 배가 아니라 이렇게 작은 배를 타고 관광하는 코스도 있는 모양.
길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그냥 맞기에는 많은 비라서 카메라를 넣고 우산을 꺼냈다. 그랬더니 잠시 후 쨍~ 하고 해가 난다. 우산의 물기를 털어 가방에 넣은 뒤 카메라를 꺼냈더니 후둑, 후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 아, 어쩌라고!
그렇게 미친 날씨 때문에 궁시렁거리며 걷고 있는데 테트리스 하듯이 좁아터진 주차장에 경차를 밀어넣던 할머니가 뭐라 뭐라 한다. "네?" 하고 다가가니 다시 뭐라 뭐라 하시는데 통 못 알아듣겠다. 어떻게 왔냐고 묻는 것 같아서 관광 중이라고, 근처를 산책하고 있다고 했다. 대만 사람이냐고 하기에 한국인이라 했더니 그러냐 하시고는 대화 끝. 음... 중국어를 배우시는 분인가?
일본의 전통 집은 위 사진처럼 흙으로 벽을 쌓고 그 뒤에 나무를 덧대는 구조다.
포항에 남아 있는 일본식 주택에서도 저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닷가인데도 용케 저런 재료로 지은 집이 버틴다 싶더라니, 여기는 거의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당연히 폐가일 줄 알았는데 지나가면서 보니까 안에 배가 세워져 있더라. 창고처럼 쓰이고 있는 듯 했다.
드디어 빨간 등대에 도착. 숙소에서 보면 아득하게 멀어 보였는데 여기까지 왔다. ㅋ
여기저기에 배를 안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승합차 한대가 버스랍시고 멈춰 있었다. 도착했을 때가 18분이었는데 버스는 20분에 출발 예정.
아무래도 시골 마을이다 보니까 나이가 많은 분들이 많이 사신다. 그 분들을 위해서 승객이 많지 않은 곳은 저런 작은 차로 버스를 대신하는 모양. 저 차는 한 시간에 한 대도 아니고 세 시간에 한 대 정도? 그나마도 하루에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밖에 안 다니는 것 같더라. 나는 근처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는데 기사 님은 혹시라도 탈지 모른다고 생각하셨는지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시다가 출발 시간이 지나도 내가 탈 기미가 없자 문을 닫고 출발하셨다.
왔던 길을 돌아가던 중 이런 계단이 나왔다. 공원으로 가는 길이라는데,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길을 따라서 꽤 걸었더니 어제 본 적이 있는 이네 카페에 도착하게 됐다. '이렇게 금방일 줄 알았다면 아까 지나친 공원에 올라가 볼 걸...' 하고 후회를 했다. 하지만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힘들어.
배는 엄청 고프고, 힘은 없고. 마침 버스 비 내려면 잔 돈이 있어야 하니까 자판기에 1,000円 짜리를 넣고 음료수를 하나 뽑았다. 벌컥벌컥 마신 뒤 버리려고 보니 쓰레기 통이 없네? 보통은 자판기 옆에 캔과 페트병을 버리는 쓰레기 통이 있기 마련인데 이 동네는 어디를 가도 자판기 밖에 안 보인다. -ㅅ-
근처 소학교 사진 한 방 찍고,
인포메이션 센터를 어슬렁거리다가 2층에 식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밥 먹고 가려고 했는데 죄다 해산물 뿐. 새우 회는 괜찮은데 생선회도 올라가 있으니까 안 되겠다 싶더라. 버스 정류장에 가서 시간표를 보니 얼마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다. 기다리고 있으니 단체로 관광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르르~ 지나간다.
[ 다시 아마노 하시다테로 ]
정시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기사님과 나를 포함해 버스 안에는 달랑 세 명 뿐.
이네 쪽으로 갈 때에도 그랬지만 아마노 하시다테로 돌아가는 버스는 말 그대로 바다 바로 옆을 달린다.
버스 탈 때까지만 해도 케이블 카 타는 곳에 내려 절도 보고 그러려 했는데 비가 오락가락하는 걸 보니 만사 귀찮아졌다. 게다가 내려야 할 타이밍을 놓쳐서 결국 아마노 하시다테 역까지 가게 됐다. 역 앞의 목욕탕에 갈까 하다가 갈아 입을 옷도 없거니와 귀찮기도 해서 그것도 건너 뛰고. 치온지 앞의 식당에 들어가 밥이나 먹기로 했다.
밖에서 호객 중이던 처자가 안내해줬는데 영어가 굉장히 능숙하다. 창 쪽 명당으로 안내해주더라. ㅋ
우동이랑 가리비 술국 하나 시키고 맥주도 주문. 간에 기별도 안 가는데 2,000円을 훅~ 넘어간다. 너무 비싸, 이 동네. ㅠ_ㅠ
딱히 갈 데도 없고 할 것도 없어서 다시 역으로 돌아갔다. 역 안에 커피 파는 곳이 있기에 270円 내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무료 와이파이가 엄청 많기에 돌아가며 접속해서 게임도 하고, 유튜브 영상도 보고, 그렇게 빈둥거리며 네 시간을 까먹었다. 역에서 네 시간 보내는 것도 눈치 보이는데 카페에서 시간 보내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 리턴 투 오사카 ]
그렇게 시간 까먹고 있다가 버스 탈 때가 됐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 가니 중국어 쓰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버스가 도착했고, 자리로 찾아가니 양아치 하나가 옆 자리에 앉아 있네. 아마노 하시다테에 갈 때 탄 버스에 비하면 사람이 훨씬 많다. 게다가 이 버스는 USB 포트 없이 100v 콘센트 뿐.
출발한 지 한 시간만에 휴게소에 들어갔는데 내리지 않았다. 와이파이도 계속 끊겨서 유튜브는 도저히 못 보겠고. 책이라도 봐야겠다 싶어 전자책 어플을 열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안 열린다. 인터넷 속도 측정했더니 0.1mbps 나오더라. 에휴...
원래는 우메다에서 내려야 하는데 옆 자리 앉은 애한테 찌린내+담배 꼬랑내가 나는데다 영 불편해서 신 오사카에서 내려버렸다. 미도스지線 타고 텐노지 도착. 간만에 호라이 가서 교자 사들고 가려했는데 어찌 하다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1번 출구로 나와 버려서... 결국 편의점에 들러 또 한 3만원 어치 잔뜩 사들고 돌아왔다. 산 것도 없는데 편의점 갈 때마다 이러네.
집에 와서 밥 먹고 여행 마무리.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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