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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

오사카 → 오카야마 ⑧ 여섯째 날, 아코 → 오카야마: 약 7.08㎞ (합이 122.36㎞)

by 스틸러스 2019.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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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의 계획대로라면 이 날은 50㎞를 걸어야 했다. 아코에서 오카야마 사이에 그 어떤 숙소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저질러 보자!' 라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38㎞를 걷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으니 50㎞는 어림도 없다. 첫 날 걸었어도 그 정도는 못 걸었을텐데 3일 동안 하체가 너덜너덜해진 지금은 절대로 무리. 뭐, 남은 생을 두 다리로 걷지 않겠다는 각오라면 또 모를까.

그런 각오를 한다 한들 스물 네 시간은 가야 할 거다. 도착은 낮은 포복 상태에서 팔꿈치 다 까진 모습으로 하게 되겠지.



여기도 체크 아웃은 열 시 전에 해야 한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오카야마까지는 두 시간 조금 덜 걸린다는데, 점심 먹고 어쩌고 하면서 한 시간을 까먹는다 해도 13시 밖에 안 된다. 체크 인이 16시부터 가능하니까 세 시간을 어디에선가 보내야 한다. 다리가 아프니 돌아다닐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구라시키의 미츠이 아울렛에 가기로 했다.


무려 다섯 시에 일어나서 그 때부터 계속 빈둥거렸다. 아침 식사는 여덟 시에 하기로 했으니까 대략 2분 전에 내려갔더니,


이렇게 한 상이 차려져 있다. 뭔가 그럴 듯 하긴 한데 반찬 재활용하는 가게에서 밥 먹는 기분이다.


라이터로 고체 연료에 불을 붙여 국물 요리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밥을 뜬 후 김에 싸서 한 입 넣는다. 왜 일본 사람들이 한국 김에 환장하는지 알 것 같다. 아울러 '일본에서 김 만드는 회사들은 한국 김 안 먹어봤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입이 짧은 내게는 딱히 먹을만 한 게 안 보여서 계란말이를 한 입 답삭! 물었더니... 싱겁다. 아무 맛도 안 난다. 국물 요리는 아예 맹물. 옆에 있는 소스를 부어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다. 거기에다 국물 요리 덜어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었는데 노~ 랗게 뭔가 묻어 있다. '뭐, 이 정도 가격의 호텔이 그렇지.' 라 생각하고 닦아내려 했는데 안 닦인다. -_ㅡ;;;

20분도 안 걸려 거의 맨 밥 먹다시피 하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대충 씻고 나와 짐을 꾸렸다. 열 시 딱 맞춰 나가려고 했는데 밖에서 청소하는 소리가 거슬려 조금 일찍 나갔다. 체크 아웃 하려니까 소금 네 종류 중 하나를 고르라 하신다. 체크 아웃 선물인가보다. 깨소금을 골랐다(지역 특산품이 소금이다.).



어제도 지나가다 본 커피 가게인데 역시나 안을 전혀 볼 수 없어서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 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OPEN 팻말을 믿고 들어가보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할머니 한 분과 젊은 처자 두 분이 계신다. '따뜻한 커피 테이크 아웃' 해달라고 했더니 세 분이 다 일어난다. 응? 세 분 다 가게에서 일하는 분이셨어? ㅋㅋㅋ   소프트 밀크 뭐라 뭐라 하시기에 '블랙이 좋다' 고 했다. 300円 내고 커피 받아든 뒤 밖으로 나갔다.



날씨가 참 좋다보니 자연스럽게 길 가 벤치에 앉게 된다. 커피 맛은 잘 모르지만 뭔가 더 고소한 것 같기도 하고. ㅋ


'집에 있었으면 이런 고생 안 하고 얼마나 좋아!' 이러다가 금방 '집에 있어봐야 빈둥거리기 밖에 더 했겠어~' 이랬다가, 줏대없이 흔들리는 마음. 하지만 앉아 있을 때만 그렇다. 일어서서 걷자마자 'ㅽ 집에 있을 거얼~' 하는 생각 밖에 안 든다.



길 가에 있는 조형물 사진을 찍은 뒤,



뭔 절이 있다고 해서 보러 간다.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른다. 적당히 둘러 보고 그냥 나왔다.



그나마 이 동네 가게들은 문을 열고 장사는 한다.



전철 타고 구라시키를 향해 출발한다.



열차가 일찍 도착해서 멈춰 있기에 빈 자리에 앉았다. 화장실 삘이 오는데 다녀오기 귀찮아서 그냥 앉아 있었다.



시트 밑에서 따끈~ 따끈~ 하게 온기가 올라오니 잠이 솔~ 솔~ 온다. 앉아서 졸면서 고층 빌딩에서 떨어져 죽는 꿈 꾸다가 깼다. 단전 쪽에 가득 찬 내공을 분출하고 싶다는 욕구가 뇌를 자극해서 깬 거였다. '인베駅에 내려 내공을 분출한 후 근처 구경이나 좀 할까?' 했는데 이미 지나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사후네駅.

중딩 정도로 보이는 애들이 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오고, 또 나갔다 들어오고(정차 중에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림), 정신 없이 장난 치고 있기에 '왜 이렇게 오래 멈춰 있는 거지?' 라 생각했다. 속으로 '열 셀 때까지 출발 안 하면 내려서 화장실 가야겠다!' 했는데 30 넘게 셀 때까지 안 간다. 결국 내렸다.

화장실에 갔더니 완전 쌍팔년도 시절의 소변기가 찌린내 풍기며 떠억~ 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안에... 나방 한 마리가 휴식 중이다. 심각한 갈등에 휩싸였다. 저걸 맞춰서 선제 공격을 하느냐, 피해서 평화를 유지하느냐. 나는 전쟁을 피한답시고 일부러 비켜 쐈는데 저 혼자 놀라 포도독! 하고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참으로 대참사! 그러나 워낙 급했기에 고민하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조금만 고민이 길었더라면 나이 40 먹고 빤쓰에 예술할 뻔 했다.

다행히... 나방과의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내 내면의 평화 역시 금방 돌아왔다.



열차는 한 시간에 두 대. 30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역 사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열차는 12:00 출발인데 8분 전에 열차가 들어온다. 미리 들어오는 건가? 왜 저 쪽에서 오지? 저 쪽으로 가는 게 맞는데?



긴가민가 싶지만 일단 올라 탔다. 남는 게 시간인데, 잘못된 방향이면 다시 타면 되지. 여유로운 척 오지고요. -ㅅ-



출발까지 시간이 있어서 혼자 한자 읽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했다. 長이면 なが라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 거기에다 후네면 hune라 써야지, 왜 fune가 되냐? 뭐 그런 생각하면서. (일본 한자 읽는 법은 진짜... 아오!)



잠시 후 구라시키에 도착했다. 몇 번 와봐서 익숙하다. 바로 미츠이 아울렛 쪽으로 향했다. 아디다스 매장이 먼저 나왔지만 무시하고 나이키 쪽으로 향한다.

맘에 드는 반바지가 있긴 한데 사이즈가 너무 크다. XL 뿐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질렀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렇게 위에 입는 얇은 후드 하나, 반바지 둘, 이렇게 질렀는데 계산할 때 보니 반바지 하나는 영 핏이 엉망이다. 옷걸이에 있을 때랑 다르다. 살짝 후회되긴 했는데, 영 아니다 싶음 잠옷으로나 입을 생각으로 그냥 질렀다.

푸마에 가니 빨간 색 윗 옷이 눈에 확 들어온다. 잠깐 고민하다가 가까스로 참은 뒤 아디다스 매장으로 이동. 아디다스에서 마음에 드는 반바지 하나 발견해서 질렀다. 2,500円인데 세금 붙으니 2,700円. 현금으로 계산했다.



밥 먹어야겠다 싶어 푸드 코트에 갔더니 한식 파는 가게가 있더라고. 순두부 찌개를 주문했다. 맛은? 음... 음......

└ 가장 맵게 해달랬는데 매운 맛은 1도 느낄 수 없었고, 순두부 찌개라기보다는 달디 단 떡볶이 소스 먹는 기분.


밥 먹고 나서 커피 한 잔 해야겠다 싶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맥도날드가 눈에 딱 들어온다. 나는 맥도날드의 150円 짜리 커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사람. ㅋㅋㅋ   그래서 커피 한 잔 시켜 자리 잡고 앉은 뒤 블로그에 쓸 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지르지 않고 지나친 푸마의 빨간 옷이 계속 아른거린다. 결국 커피를 다 마신 뒤 다시 푸마로 갔다. 절뚝거리면서. ㅠ_ㅠ

빨간 옷 앞에서 몇 번을 들었다 놨다 고민하고 있으니 매장 직원이 와서 옷을 펼쳐 보여주며 뽐뿌를 넣는다. 하지만 결국 얇은 점퍼와 반바지만 사서 돌아왔다. 빨간 색은 너무 두꺼워서 지금 사봐야 못 입을 것 같았다. 올 겨울에는 올 겨울만의 빨간 옷이 또 나오겠지. 크흡!




전철 타고 오카야마駅에 도착. 서쪽 출구로 나가 숙소로 향해 간다. 1㎞도 채 안 되는 거리인데 엄청 힘들다. ㅠ_ㅠ



숙소에 가서 체크 인 하는데 일하는 젊은이가 어째 영 어리버리하다. 나중에 보니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더라. 침대는 1층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자리가 없다며 2층으로 주더라. 방에 올라가보니 빈 침대 있던데? 나보다 늦게 온 서양 처자에게 1층 배정해준 걸 보니 1층은 커텐이 있어서 여자들한테 주는 것 같았다(혼성 도미토리라서). 2층은 사방이 다 뚫려서 프라이버시고 나발이고.

샤워를 한 뒤 홑이불을 깔고 짐을 정리했다.



1층에 내려가 웰컴 드링크로 사케를 선택해서 한 잔 얻어 마시고.



맥주 마시면서 시킨 갈릭 쉬림프는 개실망. 저게 600円. 허... 세상에나. 쥐알만한 칵테일 새우 여섯 마리가 전부.



그나마 미트볼 & 치즈는 먹을만 했지만 역시나 비싸다. 700円이었나 800円이었나. 전반적으로 가성비가 엉망이다.


맥주를 다섯 잔인가 마신 것 같다. 대충 계산해보니 5,000円은 나올 듯. 지난 번에는 주문할 때마다 돈을 받더니 이번에는 나중에 따로 결제한다. 그런데 다 먹고 계산하니까 생각한 것보다 1,200円이나 덜 나왔다. 뭐지? 숙박한다고 싸게 해준 건가? 1,200円이나 덜 받을 리가 없는데? 내가 잘못 계산했나? 알바하는 젊은이가 초짜라서 어리버리한 건가? 뭐, 나야 좋지만. -ㅅ-

바깥에 있는 자판기에서 포카리 스웨트를 하나 뽑아 숙소로 돌아갔다. 따로 짐을 둘 곳이 없어서 죄다 침대에 올렸더니 비좁다. 19시에 잔답시고 누웠는데 맥주를 많이 마셨으니 화장실에 계속 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어폰 끼고 유튜브 영상을 두 시간 가까이 보는데도 화장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대로 뻗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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