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여행

걸어서 오사카 → 오카야마 ⑤ 셋째 날, 아카시 → 히메지: 약 32.18㎞ (합이 95.67㎞)

by 스틸러스 2019. 3. 28.
반응형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날 걷는 걸 포기했다. 걸으면서 수도 없이 고민했다. 이렇게 괴로운데, 이렇게 힘든데, 걸으면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데, 걸으면서 뭔가 고민한다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데, 그저 아프다 뿐인데, 계속 걸어야 하는 걸까? 다른 한 편으로는 '걷기 싫으니까 어떻게든 핑계를 찾는 게 아닐까?' 하는 자책도 했다. 하지만, 수백 번 생각한 결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국 포기했다.




이 날 걸어야 하는 거리는 38㎞ 정도. 첫 날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 날도 둘쨋 날처럼 30㎞ 안 쪽으로 걸었다면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32㎞를 걸은 뒤 포기했으니까.). 하지만 첫 날과 같은 거리를 걸어야 한다 생각하니 출발하기 전부터 계속 한숨만 나왔다.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같은 페이스로 걸어도 여덟 시간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첫 날과 같은 속도로는 절대 무리일 거다. 몸뚱이의 절반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원래는 아홉 시에 출발할 예정이었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물어볼 때에도 그 때 체크 아웃한다고 했지만 이 날은 한참 걸어야 하니까, 어둡기 전에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 시간 당겨 여덟 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일곱 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는데 나보다 먼저 나가는 사람이 한 명 있네. 침대 밖으로 나가보니 이 방에서는 나까지 세 명이 잔 모양이다. 길 가에 있어서 차와 전철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숙소 중에서는 가장 마음이 편했다.



첫 날 머물렀던 갈로 게스트 하우스의 호스트께서 주신 초콜릿. 아침 식사로 이거 하나 먹고 출발한다.



풰뤠뤄 뤄쉐처럼 동그란 초콜릿 하나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뭇잎 모양의 자그마한 초콜릿 여러 개가 들어 있었다. 맛있었다.



밖에 나가니 경치가... 진짜... 와... 밤에는 제대로 안 보였는데 날이 밝을 때 보니 경치가 정말 멋지다.


아침 일찍이라 그런가 리셉션은 문이 잠겨 있고 안에 사람도 안 보인다. 카드 키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방으로 돌아가서 수건 밑에 넣어두고 나왔다.



요코소고 나발이고 아파서 숨질 거 같다. 진짜 근두운이라도 타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도로 바로 옆으로 전철이 달리는, 내가 좋아하는 멋진 경치지만 경치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눈에 안 들어온다.



가스토 옆의 스테이크 가스토. 이른 아침이지만 남의 살 썰어 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먹는 동안이라도 쉬고 싶었다.



하아~ 38㎞... 하아~ 여덟 시간... 하아... ㅽ



커다랗게 쓴 ゆ. 목욕탕이 있는 모양이다. 뜨~ 끈! 뜨~ 끈! 한 탕에 푹 담그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 얼마나 좋아. ㅠ_ㅠ



형광색 농구 조끼가 걸려 있었다. 그러고보니 여행 4일 전에 네 시간 동안 농구한 것도 다리 상태 악화에 한 몫 했다.



'나중에 바이크 타고 여행하게 되면 여기 들러 실컷 빈둥거리다 가야지~' 라 생각했던 공원. 지금은 그냥 지나친다.



우리나라보다 빈 집 문제가 심각하다는 일본. 시골 마을 쪽으로 가면 이렇게 방치된 집들이 적잖이 보인다.

└ 겉에서 보면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지만 내부는 최신식 편의 시설을 다 갖춘, 그런 곳에 살고 싶다.



심지어 이런 맨션(우리의 아파트나 빌라도 일본은 대부분 맨션이라 부르는 듯)도 통으로 폐가가 되어 있기도 하다.



자줏빛 목련. 예쁘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봤으면 더 예쁘게 보였을 거다. 바이크 타고 가다가 봤으면 훨씬 예뻐 보였을 거다.



배가 고프지만 식사를 할만 한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 화장실도 가야 할 것 같으니까 편의점에 가서 볼 일을 보고 샌드위치를 샀다. 그리고 걸으면서 먹었다. 바로 옆에서 대형 트럭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우리나라 국도와 달리 상가가 있거나 주택이 있는 길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간혹 인도가 사라지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는 걷기 좋은 길이었다. 이 날 희한하게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신호가 자주 왔는데 그 때마다 편의점에 들러 물이나 커피를 사서 마셨다.



오늘도 전철 역이 보이면 손전화 들이대서 사진 찍고.



한참 걷던 중에 발가락이 아파 한적한 벤치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확인해보니 반창고에 구멍이 나 있다. 마찰 때문인 듯.



자그마한 시골 마을의 저 레스토랑은 디즈니의 지독한 저작권 지키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ㅋ



약 판다고 쓰여 있으면 그저 반갑다. 반창고랑 파스는 여분이 있었기에 먹는 진통제 있나 물어보려 했는데 약사가 없어서 실패.



이 동네에 산다면 매일 산책하기에 참 좋은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고즈넉하고 좋은 길을 걷는 것도 그저 힘들 뿐.



아키시와 히메지 사이에는 자전거 도로가 놓여져 있다. 걷기에도, 자전거를 타기에도 참 좋은 길이다. 하지만... 힘들어.



야트막한 경사로를 올라갔다가 내려가니까 눈 앞에 식당들이 쫘~ 악 보인다. 회전 초밥 가게가 눈에 딱! 들어오기에 길까지 건너 가며 가게에 들어갔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줄 서서 밥 먹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이기에 그 옆의 교자의 왕에 갔는데 거기에도 줄이 ... 결국 1.4㎞ 앞에 맥도날드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햄버거나 먹기로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걸음이 제법 빠르기에 그만큼 몸에서 열도 많이 난다. 그래서 남들이 춥다고 하는 날씨에도 땀 흘릴 때가 자주 있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만 챙기고 긴 팔 옷은 기능성 후드 티셔츠 하나만 챙겼다. 저거 안 챙겼으면 얼어 죽었을 거다.
발과 다리가 아프니 걷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그러니 몸에서 열이 나지 않는다. 거기에다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부는지, 몸이 밀릴 정도였다. 발바닥부터 허리까지 안 아픈 곳은 없는데 날씨는 춥고, 정말 힘들었다.



그 와중에! 이게 뭔 일이냐! 마사지 샵 발견!!! 세상에나!!! 빵이나 떡으로 해장하다 짬뽕 국물 만난 심정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 분이 접수하러 나오신다. 외국인이라고, 아직 일본어가 서툴다고 먼저 말했다. 오사카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어떤 코스가 좋겠냐고 하니까 하체 마사지를 추천한다. 45분 코스를 선택하고 안내해주는 곳으로 가 엎드렸다. 여기저기 주물러 주긴 하는데 당최 시원하지가 않다. 발바닥 누를 때 보면 힘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마사지를 받고 나서도 전혀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45분에 2,500円이니까 엄청 싸긴 한데 효과가 없어.


살려주세요... 제발...



그 와중에 마사지 샵의 소변기가 희한하게 생겼기에 사진 찍었다. 꺼지지 않는 블로거의 열정이시다!!! -_ㅡ;;;



유명한 스포츠 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안 쪽에 사람들이 있어서 대놓고 찍지는 못하고 옆에서 쭈구리처럼 살짝 찍었다.



꾸역꾸역 참고 걸어 간다. 이 때가 가장 힘들었다. 정말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やだ やだ やだ



히메지까지는 아직 19㎞나 남은 상황. 과연... 갈 수 있을까?



응? 나보다 한 살 많은 가게라고? 그렇게 안 보이는데? 들어가서 이것저것 마구 집어먹고 싶다. 크으~



JR 탈 수 있는 역이 있다는 이정표를 보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전철 타러 가고 싶었다.



이렇게 거대한 캐터필러는 처음 봤다. 아파서 죽을 거 같은데 그 와중에도 신기한 거 보면 블로그에 올리겠답시고 사진 찍는다.



이렇게 위를 보고 걸어야 하는데,



자꾸 땅을 보게 된다. 걷는 방법도 바꿔보고, 힘내자고 스스로를 다독거려 봐도 아무 효과가 없다. 계속 통증이 몰려 온다.




오카야마까지 96㎞. 엄두도 안 나는 거리다. 히메지까지는 아직도 13㎞를 더 가야 하는 상황.



젠장! 기억난다. 여기가 최악이었다. 도저히 앞을 보고 내려갈 수 없어서 뒷걸음질로 내려와야 했다.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결국... 포기했다. 더는 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종아리허벅지가 아픈 건 파스 발라가며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발바닥이 아픈 게 정말 괴로웠다. 20대 초반의 체력을 생각하고 자신만만해 했으니, 거기에다 전성기(?) 시절보다 한참 불어난 몸무게를 감안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발바닥 아픈 건 정말 힘들었지만, 악으로, 깡으로, 이 악 물고 걸으면 어찌 어찌 해볼만 하긴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건 무릎 때문이었다. 첫 날 통증이 있었던 곳은 왼쪽 무릎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졌다. 그런데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둘쨋 날 아침부터 느껴졌던 오른쪽 무릎 통증은 쉴 때를 제외한 걷는 시간 내내 사라질 줄 몰랐다.


6㎞ 정도만 더 걸어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평소 컨디션이라면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릴 거리가 두 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 됐다. 30분 정도만 더 걸어야 했다면 오른 다리를 질질 끌면서라도 갔을 거다. 두 시간... 절대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오늘 일정은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장 가까운 전철 역을 검색했다. JR 노선의 역이 근처에 있었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얼마나 힘들게 걸어온 길인데. 도저히 억울해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1.5㎞를 더 걸어 산요 전철이 다니는 이호駅까지 갔다.



오리지널 비틀. 번호판 버젓이 달고 있는 걸 보니 실제 운행하는 차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이런 올드 카가 꽤 많다.




이호駅에 도착했다. 정말 작은, 시골 of 시골 역. 역에 들어서자마자 전철이 도착했고 빈 자리가 많아 앉아서 이동했다.



이렇게 편한 것을. 이렇게 쉬운 것을. 그 고생을 하면서.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았다. 이미 포기해서 전철을 탔기에 포기한 것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스스로의 체력을 과신한 것,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 건방 떨었던 것을 후회했다.


숙소는 교구치駅 근처에 있었고, JR 히메지駅에서 한 정거장 거리다. 다리가 멀쩡했다면 걸어 갔을 거다. 하지만 이 날은 더 이상 걸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산요 히메지駅에 도착한 뒤 JR 히메지駅까지 가는 300m조차 힘들었다. '전쟁 포로가 강제로 끌려 가다가 체력이 안 되어 버려지면 이렇게 죽는고나' 하는 생각을 했다. -_ㅡ;;;   계단에서는 벽면의 손잡이에 거의 기대다시피 해서 내려가야 했고, 평지를 걷는 것도 포경 수술한 아이처럼 어기적~ 어기적~ 걸어야 했다.



역에서 내려 숙소로 가던 중 『 이니셜 D 』에 나왔던 차 아닌가 싶어 찍어 봤다. 86인가 85인가. 아예 다른 차인가?



드디어 숙소에 도착.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면 한 시간 반 뒤에나 볼 수 있었을 거다.



누르는 벨이 없어서 노크를 두 번 했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 전화를 했더니 문을 열어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낮에는 그냥 벌컥! 열면 되는 거였다. -_ㅡ;;;   숙소를 소개 받은 뒤 방으로 올라갔다. 문 옆 자리를 선택하고 나서 세탁기를 이용하고 싶다 했더니 400円을 내면 세탁을 해서 주신단다. 그리고는 빨래 담으라고 큰 바구니를 하나 주신다. 샤워하고 와서 빨랫감을 드리겠다 하고 일단 씻고 나왔다. 그리고 빨래를 부탁드렸다.




밥을 먹어야 했기에 호스트께서 소개해 준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아무도 없어서 내가 그 날의 1호 손님이 되었다. 한국인이라고, 오사카에서 걸어왔다고 하니까 엄청 놀라신다. 새우 오코노미야키를 주문했는데 내가 아는 오코노미야키보다 더 질척거린다. 사장님도 더 소프트하다고 말을 해주신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옛날 한국 축구 선수, 야구 선수 이야기도 하고, 사장님이 아는 한국어 단어도 듣고. ㅋㅋㅋ   일본인이 받침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게 쉽지 않은데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장님의 발음이 엄청 좋았다.

뭔 얘기하다가 나이 얘기가 나와서 올 해 40 먹었다고 하니까 깜딱! 놀라시더니 안에 계시던 분들에게 "이 사람 40이래!" 하고 말해준다. 그러자 처음 들어갔을 때 눈 인사 정도만 했던 분들이 나오셔서는 얼굴을 여러 번 보면서 잘못 들었냐며 다시 한 번 몇 살이냐고 물어본다. ㅋㅋㅋ   접대성 리액션은 아니라 생각하(고 싶)지만 아무튼 기분은 정말 좋았다. 가~ 끔 30대 같아 보인다 소리는 들었지만 20대인 줄 알았다니... 좀 과하셨어요. ㅋㅋㅋ



맥주 먹다가 사케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두 종류의 술을 조금씩 따라주시며 어떤 게 마음에 드냐고 하신다. 하나를 골랐다.

└ 1合짜리 자그마한 병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사진 찍으려 하니까 옆에 병까지 딱 세워주신다. ㅋㅋㅋ



얼음이 들어 있는 1合 짜리 병이 정말 예뻤다. 저런 거 하나 있었음 좋겠다 싶더라.



더 마시고 싶었지만 취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만 뒀다. 가지고 있는 돈이 간당간당해서 돈 찾으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근처에 패밀리 마트가 있긴 했지만 ATM에서 돈 뽑아본 건 세븐 일레븐 뿐인지라 좀 먼 세븐 일레븐까지 걸어갔다. 절뚝거리면서.

진짜... 첫 경험은 생각없이 막 들이대고 그러는데 한 번 경험했다 하면 좀처럼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하지 않는 게 내 한계인 모양이다. 아무튼, 편의점에서 맥주랑 과자를 조금 사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반바지 차림에 아이스크림 물고 절뚝거리며 걸으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힐끗 힐끗 보는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리셉션에서 호스트 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평소 학교에서는 말을 일부러 아껴 왔는데 술 한 잔 들어가니 봉인이 풀려서 미친 듯 떠들어댔다. 술 기운이 올라와 입에서 나오는대로 막 뱉었다.



호스트께서 1993년에 한국 갔을 때 찍은 사진이라며 보여주시기에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사진 찍었다. 세상에나.



한국 CD도 가지고 계셨다. 브라운 아이즈 3집에, 서태지와 아이들 2집에, 015B까지. ㄷㄷㄷ



한국인이 일본인과 결혼하여 게스트 하우스 차린 거라고 소개해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술이 올라온 상태에서 들은 거라...




한참 동안 떠들고 마시다가 끙끙거리며 2층으로 올라가 파스 붙인 뒤 잤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