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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

오사카 → 오카야마 ⑥ 넷째 날, 히메지에서: 약 9.01㎞ (합이 104.68㎞)

by 스틸러스 2019.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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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에서는 이틀을 머문다. 3일 동안 100㎞ 가까이 걸으니까 하루 정도는 휴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정을 짠 거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거 하나 칭찬해주고 싶었다.


내가 머문 날은 외국인보다 일본인 게스트가 더 많았다. 욕심 많은 호스트라면 한 방에 꾸역꾸역 다 때려 넣을텐데, 시로노시타 게스트 하우스의 호스트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적절히 갈라주셨다. 덕분에 여섯 명이 쓸 수 있는 방에는 세 명 뿐. 나 빼고 다른 두 명은 양키였던 것 같다. 역시나 암내 공격. 크으... 쟤들도 나한테 마늘 냄새나 동양인 특유의 냄새 같은 거 난다고 느끼려나? 한국인 암내 안 나는 게 외국인들에게 무척 신기한 일이라 하던데.




아무튼, 일곱 시에 한 번 깨고 그 뒤로는 이리저리 뒤척거리면서 시간 까먹다가 열 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갔다. 허리 아래를 파스로 도배하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내딛으니 바로 찌릿! 하고 올라오는 통증. 레고처럼 하반신만 똑 떼어내 다른 걸로 바꿔 끼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실은 밖에 안 나가고 그냥 숙소에 누워 있고 싶었다.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마사지 샵 검색해서 거기나 다녀오던가. 하지만 대부분의 게스트 하우스는 청소하는 시간이 있다. 보통은 체크 아웃 시간부터 체크 인 시간 사이가 청소하는 시간이고 그 사이에는 연박을 한다고 해도 비워주는 게 룰이다. 전 날 술 마시면서 여쭤봤더니 굳이 침대를 비우지 않아도 괜찮다 하시긴 했지만 뭔가 눈치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꾸역꾸역 나갔다. ㅠ_ㅠ



평소 내 걸음은 다른 사람들이 못 쫓아올 정도의 스피드인데, 이 날은 보행기 끌고 걷는 할머니와 나란히 걸을 정도의 속도였다.



히메지는 그닥 큰 도시가 아니라서 조금만 돌아다니면 어지간한 건 다 본다지만, 지금 내 다리 상태로는 그 조금도 엄청 힘들다.



저 멀리 히메지 성의 천수각이 보인다.



히메지 성은 예전에 가본 적이 있으니까 일단 가보지 않은 곳부터. 가장 먼저 간 곳은 히메지 시립 미술관.



날씨 때문에 뭔가 스산한 분위기였다. 여행 둘쨋 날부터인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실제로 쌀쌀하기도 했다.



야외에 전시되어 있던 조형물. 쫙 펼친 왼 손이 굉장히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난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조각가들 대단하다 싶다.



입구 양 옆을 장식하고 있던 조형물.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생소하니까 그저 사진부터 찍고 본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미술관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200円 뭐라 뭐라 쓰여 있기에 봤더니 프랑스 미술 관련한 특별 전시회 같은 게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 걸 보는 게 200円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볼 수 있는 건 다 보자' 싶어 돈 내고 들어갔다. 조각 작품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벽에 걸린 그림이다. 엄청 오래된 건 아니고 18 ~ 19 세기 작품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보이는 작품들은 내가 봤을 때에는 그저 낙서일 뿐이었다. 그냥 대충 슥~ 슥~ 줄 그어놓은 게 전부인 것 같아 보이는데 작품이란다. 문외한이라 개뿔도 모르겠다.

시립 미술관 전시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관 쪽으로 들어갔더니 아주머니께서 팜플렛을 나눠 주며 뭐라 뭐라 설명을 해주신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일본인이 아닙니다." 라고 했더니 화들짝! 놀라신다. 아니, 아주머니! 누가 봐도 한국인처럼 생겼지 않습니까! 그 과한 리액션은 뭡니까, 대체!




내부에는 다양한 그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개뿔 아는 것도 없지만 휙~ 지나가면서 대충 보고 마는 건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천~ 천~ 히 봤다. 뭐, 휙~ 하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다리 상태가 아니기도 했고.

뭔가 기념품이라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 ㅠ_ㅠ



밖에 나와 아까는 못 본 조형물 사진을 찍었다. 메두사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설명 없으면 아무 것도 모르는 문외한.



다음으로 간 곳은 히메지 역사 박물관. 여기도 1층은 무료지만 2층의 특별 전시는 500円이다. 히메지 지역의 전체적인 역사에 딱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전국 시대 무장에 대한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고, 왔으니까 보자 싶었다. 거기에다 2층의 특별 전시는 다음 날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뭔가 안 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촬영이 안 되는 곳도 있지만 모사품이 전시되어 있거나 금지 표시가 없는 곳은 사진 촬영을 해도 된다. 플레시는 ×

└ 박물관에서 사진 찍거나 동물원에서 사진 찍으면서 플래시 팡! 팡! 터뜨려대는 무지몽매한 자들이 의외로 많음.




안 쪽으로 들어갔더니 이런 것들도 전시되어 있더라. 히메지의 역사와 무슨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옛날 생각 나서 찰칵!



이게 뭔지 아는 어린이~~~ 있을까아요옹~ 이 녀석의 정체를 안다면 100% 빼박 아재다.   (빙수 만들 때 얼음 가는 기계)



여기저기 동글동글한, 오리지널 철인 28호의 장난감이 전시되어 있었다. 색깔이 조금 다른데. ㅋ



레슬링과 영화 포스터. 일본의 문화는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전해져 비슷한 감성과 추억을 만들어냈다. (식민 지배의 영향이기도.)



이런 것들도 고스란히 베껴 만들어 팔았다. 국민학교 때 운동회 하는 날이면 리어카에 이런 거 싣고 와서 파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과자도 마찬가지. 지금도 잘 찾아보면 팔고 있는 것들 있을 거다. 저 노란 포장의 캬라멜은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닌텐도의 패미컴이나 세일러 문, 도라에몽, 포켓 몬스터 같은 것들도 엄청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겠지.



오로나민 C가 얼마나 오래된 음료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게다. 지금까지 똑같은 디자인과 맛으로 팔리고 있다는 게 놀랍지.



박물관에서 나왔다. 히메지 성의 천수각은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



히메지 지역의 역사에 대한 유료 특별전은 3월 24일이 마지막. 또 비슷한 전시를 기획해서 하고 그러겠지만.



히메지 일대를 돌며 관광지마다 사람들을 싣고 내리는 히메지 루프 버스. 가이드 북에서 보긴 했지만 타 본 적은 없다.



박물관에서 나와 히메지 성 쪽으로 걸어가는데 바람이 너무 쌀쌀하다. 춥다. ㄷㄷㄷ 떨면서 느릿~ 느릿~ 걸어간다. 춥지, 아프지, 배 고프지, 총체적 난국이다. ㅠ_ㅠ




천수각은 다녀온 적이 있으니(https://pohangsteelers.tistory.com/1254) 들어가지 않았다. 배가 고프니 밥부터 먹어야겠다 싶어 히메지 성 맞은 편으로 건너 갔는데 대기표에 이름 써가며 기다려야 한다. 줄 서가며 밥 먹는 걸 정말 싫어하니까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근처에 밥 먹을만 한 다른 가게가 없는 지 찾아 다녔다. 그리고 건물 측면에서 완전 휑~ 한 가게를 발견! 들어가서 혼자 2인분을 주문했다. 맥주도 시켰는데 맥주 잔이 지저분. 나중에 다 먹고 계산하는데도 거스름 돈 줄 때 돈 착! 착! 세어서 확인 시켜주는 과정 건너뛰고 그냥 주더라. 역시, 장사 안 되는 가게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편의점에 가서 치간 칫솔 사고 파스를 사기 위해 드럭 스토어를 찾아 다녔는데 당최 안 보인다. 결국 구글 지도에서 검색을 한 뒤 드럭 스토어에 가서 파스를 샀다. 여러 장 들은 것 치고는 말이 안 되게 싼 걸 샀는데 아무래도 그냥 습포제인 것 같다.

맘 같아서는 택시 잡아서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히메지 성 쪽으로 가서 히메지 동물원에 들어갔다. 텐노지 동물원에 다녀와서도 썼지만 나는 동물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히메지 동물원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텐노지 동물원 쪽은 양반이다. 엄청난 덩치의 흰 곰이 정말 작은 우리에 갇혀 있는데 역시나 정형 행동을 하고 있었다. 좁은 곳에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렇게 가둬 놓고 코카 콜라가 목구멍으로 넘어 가냐고. 아오.



쌍팔년도에 큰 인기 끌다가 망한 유원지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인데도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국가 단위의 사업이나 대기업은 디지털에 가까운데 국민들의 삶에 가까운 건 아날로그라는 게 이 나라의 미스터리 아닐까 싶다. 전 세계 최초로 워크맨을 만든 나라도 일본이라는 나라고, 이런저런 다양한 생활 가전 시장에서 상당히 선전하는 일본인데, 막상 살아보니 죄다 아날로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카드 찍고 타는 전철도 아직 종이표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지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카드 결제가 널리 퍼져 있지 않는 것도 그렇고.



아마도 예전의 해자가 아닐까 싶은데, 지금은 여자 중학교 / 고등학교가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복 받은 학교다.



아파서 최대한 안 돌아다니겠다고 마음 먹었는데도 10㎞ 가까이 걸었다. 절뚝거리며 숙소로 돌아와 파스만 붙이고 그대로 드러누워 잠들었다. 꽤 잤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보니 겨우 한 시간 지나 있을 뿐. 밥 먹으러 가야겠다 싶어 근처의 새우 요리 가게에 갔는데, 너무 비싸다. 한 끼에 3,000円이 넘으니 부담스럽다. '어제 갔던 가게로 갈까?' 하다가 다시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다시 검색해보니 근처에 라면 가게가 있다. 거기에서 라면이랑 교자 먹으면서 생각했다. '멀쩡한 집 놔두고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냐, 난.'



밥 먹고 편의점에서 맥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스트께서는 또 맥주 사들고 오니 조금 놀라신 듯. ㅋㅋㅋ   민망해서 텔레비전 보면서 홀짝거렸다. '일본의 100대 성'에 대해 방송하고 있더라.



숙소 평가해달라고 떠서 몇 자 쓰자마자 호스트께서 답글을...



히메지 성과 오사카 성이 1, 2위를 다투게 됐다. 개인적으로 히메지 성이 타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실제로 히메지 성이 1위!

└ 히메지 성은 축성 이후 보수만 해서 유지해 온 반면, 오사카 성은 무너지고 재건하기를 반복해서 역사적 의미가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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