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많이 마셔서 새벽에 부지런히 화장실 들락날락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일 없이 잘 잤다. 다만, 침대가 삐그덕거려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아래 층이든 위 층이든 누구 한 사람이 뒤척이면 소음과 진동이 생긴다. 불편하다.
여섯 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스마트 폰 보면서 빈둥거리다가 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가방을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전 날 미리 꾸려둔 가방을 다 풀어 헤쳤더니 침대가 난장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리는 여전히 아프다. 이제는 오른쪽 발가락도 말썽이다. 밴드를 붙였어야 했나 후회했다. 햇볕 드는 곳에 있으면 따뜻하긴 한데 여전히 제법 쌀쌀한 날씨.
마사미 님과 만나기로 한 우동 가게로 가서 5분 정도 빈둥거리고 있으니 마사미 님이 오셨다. 반갑게 인사하고 차 안에서 수다 삼매경.
한참을 가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는데 이 동네는 히로시마 현에 속해 있다. 허... 엄청 멀리 갔네.
이즈모 타이샤에 도착했다. 좀 더 가까운 곳의 주차장은 유료인데 무료 주차장이 있어서 거기에 차를 세웠다.
이 동네는 소바가 유명하다고 해서 마사미 님이 유명 소바 가게를 검색하는데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다. 마사미 님의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 안내하는 것도 그렇고 영 엉망이다. 아무튼, 혼자였다면 절대 갈 것 같지 않은 비싸 보이는 소바 가게에 가서 따뜻한 소바를 먹었다. 인스턴트 말고, 가게에서 파는 따뜻한 소바는 처음이다. 그냥저냥 먹을만 한 맛이다. 뭔가 특별하다거나 그런 건 없다.
은근슬쩍 내가 돈 내려고 했더니 마사미 님이 어림없다는 듯이 계산서를 빼앗아 가신다. 만날 이렇게 신세를 진다.
각 건물들 앞에는 QR 코드가 찍힌 팻말이 있었는데, 그걸 스마트 폰으로 찍으면 한글로 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상세하지는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이즈모 타이샤는 매년 10월에 일본 전국의 신들이 모인다는 곳 답게 상당히 큰 규모였다.
역사가 있는 신사이기도 하고 규모가 크기도 합니다.
매년 음력 10월에 일본 전국의 800만에 달하는 신들이 이 곳에 모여 남녀의 인연을 맺어준다고 합니다. 때문에 음력 10월에는 다른 신사에 가서 뭔가를 빌어봤자 들어주는 신이 없으니 무용지물일지도. 실제로 음력 10월을 신이 없는 달(神無月, かんなづき - 칸나즈키)이라 부르지만 유일하게 이즈모 타이샤에서만 신이 있는 달(神有月·神在月, かみありづき - 카미아리즈키)이라 부릅니다.
현재의 본전 건물은 1744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느닷없이 등장한 토끼.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머리에 동전이 올라가 있다. ㅋㅋㅋ 젊은 처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
설명은 이런 식으로 나온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인터넷에서 본 글인데, 일본에서는 미개한 토속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그 글 작성한 사람은 열심히 교회 다니는 듯 했고. 나는 전지전능하다는 서양 귀신 믿는 것보다는 토속 신앙 믿는 쪽이 훨씬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일요일에 교회 주변 가보면 불법 주차로 개차반인데 저 따위 것들이 무슨 천국을 가네 마네. 고등 교육 받고 전지전능한 신이 있네 없네 하는 것 자체가 바보 짓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가 '아주 오래 전의 사람들이 곰이나 호랑이를 신으로 믿거나 용을 부르네 마네 했다' 는 걸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짓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가까운 미래의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공간에 모여 있지도 않는 존재에게 소원을 빌고 죄를 용서해달라 하면서 재산 을 갖다 바쳤다' 는 소리를 들으면 무척 어이 없어 할 게다. 그 어이 없는 짓을 혼자 실컷 할 것이지 남들한테 강요하는 것도 같잖고. 아무튼, 교회든 성당이든 불법 주차해가면서 회개하네 어쩌네 하는 쓰레기들 꼬라지나 안 보고 살았음 좋겠다.
우리 말로는 금줄 또는 인줄이라 하는 저것, 일본어로 시메나와(しめなわ)라 한다. 이즈모 타이샤의 것이 일본에서 가장 무겁단다.
저기에 동전을 박아 넣으면 인연이 맺어진다는 설(아마도 신사 쪽에서 유포한 게 아닐까 싶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지만 그렇게 모인 동전이 엄청난 액수일테니까. -_ㅡ;;;)이 있어서 동전 박겠답시고 던져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짱짱하게 엮인 짚 사이에 동전을 박아 넣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 그래서 아래로 늘어진 부분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동전 못 던지게 막은 건지, 아니면 죄다 점잖은 사람들 뿐이었던 건지, 그 누구도 동전을 던지지 않았고 바닥에 떨어진 동전도 전혀 없었다.
다른 신사에서는 헌금을 하고 박수를 두 번 쳐서 신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데 이즈모 타이샤에서 네 번 친단다. 두 번은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고, 나머지 두 번은 미래의 연인(인연?)을 위해 치는 박수란다. 뭐, 그렇단다.
얘들은 동전 없네? 라 생각했는데, 배 위에 깨알 같은 동전들. ㅋㅋㅋ
이즈모 타이샤를 슬~ 쩍 둘러본 뒤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즈모 타이샤는 공부를 좀 하고 다음에 다시 가보고 싶다.
다음 목적지인 마츠에 성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신지호(신지 호수, 신지코)가 나오는데 누가 보더라도 바다로 착각할 만 하다.
└ 파도까지 밀려오는 저 엄청난 크기의 호수가, 일본에서는 일곱 번째 밖에 안 된단다. 대체 비와호는 얼마나 큰 거야?
마츠에 성에 도착했다. 마츠에 성 앞의 주차장은 유료다. 우리나라는 국가 사적 주차장은 대부분 무료인데.
마츠에 성은 한글 안내가 잘 되어 있어서 참 좋았다. 대충 구색만 갖추려 하지 않고 일본어 설명을 고스란히 번역해놨다.
1611년에 지어진 천수각이다. 최근 지어진 시기를 입증하는 자료가 발견되었다. 해체, 재건하지 않은, 예전 그대로의 건물.
성 내부에 우물이 있다는 게 특이하다.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할 경우 물 부족으로 항복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 같다.
선반 같이 생긴 이 곳에 올라가 외부에서 올라오는 적병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간 뒤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다시 지어진 천수각과는 다르다. 전부 계단이다.
└ 마츠에 성의 천수각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꽤나 가파른 경사의 계단으로 올르내리면서 구경해야 한다.
천수각의 기둥으로 쓸 수 있는 두꺼운 나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서였는지, 나무 여럿을 덧댄 후 고정한 형태가 많았다.
메이지 정부 시절 폐성이 결정되어 없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지역의 지주와 무사들이 모금을 한 뒤 소유권을 구입하여 폐성을 막았다.
스마트 폰 카메라 성능이 대단하다. 아웃 포커싱, 인 포커싱 번갈아가며 시도해본다. ㅋ
꼭대기 전망대에는 국보 지정을 알리는 내용의 문서 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저게 바다지, 어디를 봐서 호수야. -_ㅡ;;;
목조 건물이라서 화재에 대한 대비가 철저해야 한다. 스프링 쿨러가 설치되어 있었다.
와이맥스의 일종이라는 와이브로는 LTE에 밀려 서비스가 완전 종료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목조 건물에 저렇게 문어발 식으로 연결해두는 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오래 전 마츠에 성의 모습이 액자에 걸려 장식되어 있다.
마츠에 성은 오사카 성과는 아예 다른 느낌.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좋았다.
하늘은 파랬지만 날씨는 꽤나 쌀쌀했다.
마지막으로 천수각 사진 한 번 더 찍고 돌아 나왔다.
마츠에 성만 보는 데 670円이 필요하다. 싸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정도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마사미 님은 겨우 두 곳만 본 게 아쉬워서였는지 다른 곳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오카야마로부터 상당히 멀리까지 왔기 때문에 돌아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터. 그냥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말씀드렸다. 돌아가는 길 역시 온 거리 이상으로 멀다. 나야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관계 없지만, 장거리 운전 경험이 많지 않은데도 나이도 있는 마사미 님에게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 거다. 거기에다 고속도로 통행료와 식사비, 입장료,... 돈도 엄청 쓰셨을 거 같은데. ㅠ_ㅠ
구글은 449㎞를 이동한 것으로 나왔지만 마사미 님의 차로는 470㎞가 찍혔다고 한다. 서울 → 부산 보다 먼 거리를 운전하신 거다.
마사미 님의 집 근처로 가서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교자와 가라아게를 시켜 맥주를 마시며 부지런히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한 때 떠드는 걸로 밥 벌어먹고 살던 사람이고 말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무리 스트레스 참아가며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착한 사람인 척 실실 쪼개고 다녀도, 결국 나 싫다는 사람은 어디에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런 것들 앞에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뒤로는 말을 일부러 줄이고 살았다. 그런데 마사미 님 앞에서는 완전히 무장 해제되어 온갖 쓰잘데기 없는 얘기까지 다 떠들어댔다. 그만큼 편하고 좋은 분이다, 마사미 님은.
두 잔째 맥주를 받아들고 마시는데 맞은 편에 앉은 어린 것들이 연신 담배를 물어대는 통에 짜증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마사미 님도 엄청 피곤할 것 같은데,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그만 마시고 돌아가자고 했다. 숙소에서 더 마시면 되니까.
편한 걸로 따지면 히바리 하우스 쪽이 훨씬 낫지만 그 쪽은 마사미 님이 오시기 영 불편한 곳이라 일부러 캄프 호우칸초를 숙소로 잡은 건데,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마사미 님이 그걸 다 알고 계신다. 내색하지 않아도 알아주시니 생색내기 좋아하는 나는 오히려 죄송스럽다.
차 안에서 '구라시키에서 산 옷들 때문에 이미 가방이 터질 것 같다' 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때문에 쇼핑백 한 가득 가지고 오신 먹거리들을 다 주지 않으시고 유럽 여행 가서 사왔다는 맥주와 안주만 건네 주신다. 그렇잖아도 가방이 무거웠을 유럽 여행이었을텐데, 나 주겠다고 일부러 챙겨오셨다 생각하면 정말이지... 다른 복 하나 없어도 인복은 있다던 점쟁이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마사미 님이 주신 유럽 맥주와 안주. 안주만 하나 까서 먹어봤는데, 진짜 매운 맛은 1도 없다. 맥주는 아까워서 못 먹고 있는 중.
마사미 님과 헤어진 후 숙소로 돌아갔는데 1층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전부 숙박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어딘가에서 단체로 술 마시러 왔나 보다. 일단 2층 올라가서 샤워 좀 하려 했더니 샤워 룸은 전부 사용 중. 한참 기다려도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손가락, 발가락 다 부어 터졌겠다. 결국 세수만 하고 화장실에서 옷 갈아 입은 뒤 침대에 드러 누웠다. 1층에 내려가서 맥주 한 잔 더 할까 하다가 사람 많던 거 생각해서 안 갔다. 피곤했는지 바로 딥 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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