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서 상태가 좀 좋아지면 '걸어볼까?' 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예 배제했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포기하는 순간에 이미 휴식 후 다시 걷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발바닥까지는 괜찮은데 무릎은 금방 나을 것 같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게 아닌가 계속 생각했으니까.
딱히 할 것도 없고 술 기운 돌 때 얼른 자자 싶어 일찍 잔다고 누웠다. 자다가 새벽 한 시에 깨서 앞 동네와 변기의 면회를 성사 시키고 왔는데 고작 두 시간 지난 후 뒷 동네가 변기 만나고 싶다고 난리여서 또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방으로 돌아오면 양키 암내가 코를 공격하고. 깊이 잠들 수가 없다.
아홉 시부터 짐 싸고 슬슬 정리를 했다. 샤워하러 들어가 퉁퉁 부은 발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못난 주인 만나서 10대 때부터 만날 인대 늘어나고, 터지고 그러더니 나이 먹고도 개고생... 미안하다, 다리야. ㅠ_ㅠ 뜨거운 물이 닿으니 밤새 파스를 붙여놓은 곳이 쓰라리고 따갑다.
이게 원래 예정대로라면 걸어갔어야 할 거리. 휴우...
체크 아웃 하고 나가려 하니 사진 찍자고 하셔서 숙소 정문에서 오징어 샷을 찍었다. 설마 어딘가에 걸거나 하지는 않으시겠지.
어제 지나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전철 타러 역까지 가야 한다. 숙소에서 전철 역까지 가는 것도 괴롭다.
숨은 고양이 찾기
『 일본의 100대 성 』 에서 1위 한 것도 있고 그러니까 히메지 성 천수각에 올라가볼까 하다가 다리도 성치 않으니 다음에 다시 오자고 생각했다. 코코엔도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나마 덜 아팠던 왼쪽 무릎까지 아파오는데다 양쪽 발목이 너무 아프니 걸을 생각만 하면 짜증부터 난다.
일본에는 각 지역마다 성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전국 시대에 쌓아진 것들입니다. 전국 시대가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딱 정해진 게 아니라서 학자마다 의견이 제각각입니다만, 대개 1400년대 후반부터 1600년대 초반까지로 봅니다. 조선의 8대 예종(1468~1469), 9대 성종(1469~1494), 10대 연산군(1494~1506), 11대 중종(1506~1544), 12대 인종(1544~1545), 13대 명종(1545~1567), 14대 선조(1567~1608), 15대 광해군(1608~1623)이 통치하던 때와 같은 시기입니다.
조선은 왕이 중심이 되어 전국을 통치하는 중앙 집권의 국가였지요. 반면 전국 시대의 일본은 각 지역을 다스리는 다이묘들 수십 명이 날뛰고 있었습니다. 지방 자치라기보다는 서로 최고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통일되지 않은 작은 국가들의 난립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각 동네마다 짱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금의 틈만 보이면 옆 동네 잡아 먹고, 잡아 먹히고, 난리도 아니었던 겁니다. 자신의 세력을 내세우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방어를 위한 이유에서도 성을 쌓고, 주위에 해자를 파고, 천수각을 올렸습니다.
그 난리 통에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의 완수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아 에도 시대를 열면서 전국 시대가 끝나게 됩니다. 그 후 여기저기의 성들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중앙 정부 입장에서는 그 성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지방 세력을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을 부수라는 명령을 내려 상당수의 성이 없어집니다.
이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미국에 밀려 본토 폭격까지 당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남아있던 성들도 대부분 박살이 납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국 시대에 만들어진 성이 가진 관광 자원으로서의 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금 등을 통해 성을 다시 짓고 보수합니다. 오사카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필수 방문 코스처럼 여겨지는 오사카 성 역시 시민들의 모금으로 다시 지어진, 건축물로서의 역사는 100년도 채 되지 않은 것입니다. 오사카 성 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 여행에서 볼 수 있는 각지의 성들은 거의 대부분이 다시 지어진 것들입니다. 대부분의 성벽은 반듯하게 잘리고 깨끗하며 천수각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천수각은 성의 중앙에 우뚝 솟은 탑 모양의 건물입니다. 다이묘들이 먹고 마시고 싸고 자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천수각에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인정 받아 국보로 지정된 성은 다섯 개입니다. 시마네현의 마츠에 성, 나가노현의 마츠모토 성, 아이치현의 이누야마 성, 효고현의 히메지 성, 시가현의 히코네 성입니다. 국보 아랫 단계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성은 모두 일곱 개로, 고치현의 고치 성, 카가와현의 마루가메 성, 후쿠이현의 마루오카 성, 에히메현의 마츠야마 성, 오카야마현의 빗추 마츠야마 성, 에히메현의 우와지마 성,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 성입니다.
참고로 일본의 100대 성은 여기 → https://namu.wiki/w/%EC%9D%BC%EB%B3%B8%20100%EB%AA%85%EC%84%B1를 참고하시면 되고요. 100대 성이라 해도 수준이 같지는 않습니다. 히메지 성이나 마츠에 성처럼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도 있고, 오사카 성처럼 역사적인 의미는 없지만 지역의 랜드 마크인 경우도 있으며, 기노 성처럼 아무 것도 없이 성터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나마 성 안에 들어가지 않고 볼 수 있는 것들이나 천천히 둘러봤다. 히메지 성은 한글 안내에 야박한 편이다.
나무로 지은 건물이 수백 년을 온전히 버티기란 어려운 일. 때문에 보수 공사는 필연적이었다. 최근 공사에서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내진 설계를 강화하고 낡은 부분을 보수했다.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나무 기둥은 인공 자재를 쓰지 않고 나무로 대체하려 했지만 비슷한 크기와 굵기의 나무를 구하기 어려웠고 간신히 구한 나무도 이동 중에 부러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나무 두 그루를 이어붙인 뒤 보수 공사를 마쳤고 기존의 자재는 이렇게 전시를 하고 있다.
히메지 성 역시 QR 코드를 찍으면 한글 안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내용이 영 부실해서 결국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히메지의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588 게스트 하우스는 아케이드 시장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헤에~
상가 안을 걷다가 마사지 샵을 발견했다. 걸어가겠다고 했던 길을 전철로 가게 되었으니 다음 목적지의 호텔 체크 인까지는 시간이 엄청 남는데 딱히 할 것도 없는 상황. 마사지를 받는다 해도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마사지 샵의 영업 시간이 열한 시부터. 기다리기 싫으니까 그냥 역 쪽으로 걸어 갔다. 쩔뚝! 쩔뚝! ㅠ_ㅠ
밥이라도 먹고 가야겠다 싶었는데 식당도 죄다 열한 시부터. 1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내키지 않아서 그냥 전철에 올라 탔다.
맞은 편의 아줌마가 잠시 앉아 있는가 싶더니 이내 일어서서 어디로 갔다가, 다시 왔다가, 정신이 없다. 그러더니 아이오이에서 가방을 의자에 올려둔 채 휠체어 밀고 내린다. 그러더니 반대 편 선로에 도착해 있던 오카야마 가는 열차로 옮겨 탄다. '응?' '뭐야?' '내린 거야?' '가방은?' '가방은 왜 안 가지고 가?' 가방 가지고 가라 말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타고 있던 열차의 문이 닫혀 버렸다. 하도 앞에서 부산스럽게 왔다갔다 하기에 내리는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도 있고.
종점인 반슈아코駅에 도착했다. 가방을 들고 내리는데 마치 내가 가방을 훔쳐 가는 것 같고 주위 사람들은 다 의심스럽게 날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이상하다. 역무원에게 가서 '아이오이에서 내려 오카야마로 가는 열차로 환승한 아줌마가 두고 내렸다.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라고 번역기를 돌려 보여줬다. 아이오이에서 내렸냐고 물어보기에 그렇다고 말했다. 저걸 고스란히 내 주둥이로 나불나불 떠들어야 되는데 아직 쫄려가지고. -ㅅ-
ICOCA 잔액이 10,000円 밑으로 떨어져서 충전한 뒤 밖으로 나갔다. 걸어가면 여덟 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전철로 30분만에 와버리니 뭔가 허무하다.
역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다시 역과 붙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라면 가게 앞에서 망설이다가 들어갔다. 한 명이라 했더니 바 테이블 자리에 앉으라 한다. 그걸 못 알아들어서 혼자 맨 구석 자리로 갔다가 자리 안내를 다시 받았다. -_ㅡ;;; '손님도 없는데 그냥 앉게 해줄 것이지' 하고 궁시렁거렸는데 잠시 후 손님들이 엄청 들어온다.
라면이랑 교자 먹은 뒤 커피라도 한 잔 했음 싶은데 딱히 차를 마실만한 곳도 안 보인다. 체크 인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고. 시간 때울만한 곳이 없어서 결국 또 걷는다. 제기랄.
역 앞의 조각상. 이게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동네가 『 47인의 사무라이 』 로 엄청 유명한 동네였다.
아직 말끔해보이는데 못 들어가게 막아놨더라. 건물주가 쫄딱 망한 건가. -ㅅ-
아마도 이 동네에서는 나름 힙한 가게가 아닐까? -_ㅡ;;;
히메지처럼 역에서 아코 성까지는 一자로 쭉! 뻗은 길. 다만 관광지로서의 유명도는 히메지와 비교가 안 된다. 그냥 시골 마을.
큰 길 따라 걷다 보니 내가 예약한 숙소가 나왔다. 아직은 체크 인 시간이 아니라서 들어가지도 못한다.
길 가의 돌 의자가 비젠 야키 모양으로 예쁘게 놓여 있었다. 저 색깔, 저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들더라고.
호텔 옆의 카페 겸 레스토랑. 밖에서 안이 잘 안 들여다보이니까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아코 성에 도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돈 더 내고서라도 얼리 체크 인 했으면 싶은데...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렵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느 성이나 해자를 두르고 있다. 대부분 2중 해자인데 복원하면서 해자는 하나만 살려놨다.
성으로 들어가는 정문.
물이 고여 있는 모든 곳에서 잉어로 위장한 거대 괴수를 볼 수 있다.
전 날과 내가 방문한 날에만 내부 공개한다고 써붙여놨던데, 내부라고 해봐야 뭔가 특별한 게 있어 보이지 않던데.
저 멀리 뭔가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기에 '펜션인가?' 싶었는데...
시립 박물관이었다. -_ㅡ;;;
박물관을 보려면 200円을 내야 한다.
죄다 일본어 안내 뿐이라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도 47인의 사무라이에 대해 엄청 전시해놨더라.
아래로 늘어지는 벚꽃 나무인 것 같던데. 꽃이 활짝 피면 정말 예쁠 것 같았다.
한국이라면 틀림없이 펜션이었을 거다, 이렇게 생긴 건물은. ㅋ
여긴 오오이시 진자. 우리 말로 하면 큰 돌 신사(大石神社)가 된다.
이 사진 찍은 곳 근처에 에마를 거는 곳이 있다. 특이하게 리락쿠마 에마가 있더라고. 300円이었다.
└ 에마를 걸지 않고 집에 가져가도 되는지를 몰라서 무녀 복장을 하고 앉아 있는 처자에게 물어봤다.
└ 가져가도 된다 하기에 600円 내고 두 개 가지고 왔다. 얇은 합판에 그림 그린 건데 귀엽다. ㅋ
여기도 47인의 사무라이. 온통 그 얘기다.
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돌로 만든 창이 부러져서 저렇게 보수를 해뒀을꼬.
이 쯤에서 『 47인의 사무라이 』 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일본을 제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 자리를 맏아들에게 물려준 후 은퇴하는 척! 합니다. 그러나 실은 오고쇼라 불리면서 일본의 내정을 비롯해 외교까지 두루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지방 영주들이 세력을 키워 중앙 정부에 덤비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각 지역의 영주들을 일정 기간 동안 에도(지금의 도쿄)에 살게 강제합니다.
아코 성의 성주인 아사노 나가노리는 이 제도에 의해 에도에서 살게 되었는데 막부 고위직 관리인 기라 요시나카와 티격태격하다가 급기야 칼을 뽑아 부상을 입힙니다. 에도 성 안에서 칼을 뽑을 경우 할복하는 것이 법이었기 때문에 아사노 나가노리는 원치 않는 자결을 하게 됩니다.
성주가 죽었기 때문에 아코 성의 주인이 바뀝니다. 아사노 나가노리를 섬기던 이들은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되고 맙니다. 그들은 주군의 죽음이 부당하다 여기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러나 복수를 염려한 이들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수 따위는 생각도 안 하는 것처럼 온갖 위장을 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약속한 날 주군의 원수인 기라 요시나카의 목을 베어 주군의 무덤에 바칩니다. 사사로운 복수에 대한 벌로 이들에 대해 할복 명령이 내려지고, 이들은 명령에 따라 모두 자결합니다.
이 이야기가 추신구라(忠臣藏)라는 이름으로 극화되어 책으로도 나오고 연극으로도 나오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주군의 복수를 다짐한 이후의 고생담에 자꾸 살이 붙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주군의 복수를 해낸 충신들로 추앙받게 되면서 더욱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요즘이야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있으니 예전만큼의 인기가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게는 지금까지도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 그래서인지 아코 지역은 의외로 노년층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러나 저 유명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아코 성은 자리만 남아 있고 대부분의 건물은 볼 수 없는 상태.
유난히 활짝 피어 있는 목련 한 그루.
머리 위를 맴돌던 매 한 마리.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은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성을 한 바퀴 돌다보니 아까의 박물관이 근처에 있었다.
노인 관광객들이 꽤 있긴 했지만 장사하는 가게는 역 → 아코 성 큰 길 옆에 있는 곳들 뿐. 골목 쪽은 장사하는 곳이 없었다.
도저히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춥기도 하고,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닌다. 머리 위에 질~ 질~ 이라는 자막이 떠 있을 것 같은 걸음 걸이로 아코 성 일대를 돌아다녔다. 배가 고팠는데 밥 먹을만한 식당이 없다. 유난히 한 곳이 인기여서 줄까지 서가며 먹더라고. 뭘 파나 싶어서 봤더니 굴구이 같은 걸 팔고 있었다. 당연히 줄 서기 싫어하는 나는 그냥 패스.
구글 지도로 검색해서 편의점에 갔다. 편의점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너무 아파 한동안 허리를 굽히고 헉헉거리고 있어야 했다. 편의점이 코 앞인데 꼼짝도 못하고 한참을 멈춰 있어야 했다. ㅠ_ㅠ 맥주랑 안주할 간식, 빵 정도만 사서 호텔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5분도 안 걸릴텐데 10분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호텔 자동문이 안 열려서 손으로 밀고 들어갔다. "스미마셍~" "스미마셍~" 아무리 외쳐 봐도 반응이 없다. 너무 힘들어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걸걸한 목소리로 나처럼 누가 나오길 바라며 불러보다가 반응이 없으니 화장실에 간다. 그 사이에 할머니 한 분이 오셨는데 호텔에서 일하시는 분인가 보다. 미안하다고, 잤다고. ㅋㅋㅋ
외국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권 달라는 소리를 안 한다. 대충 숙박부 작성하니까 아침은 몇 시에 먹겠냐고 물어본다. 자꾸 일곱 시 얘기를 하기에 몇 시까지 식사 제공하냐고 물으니 여덟 시까지란다. 그래서 여덟 시에 먹겠다고 했다.
전철 타고 왔냐고 묻기에 걸어 왔댔더니(히메지까지 뿐이지만) 예상대로 놀란다. 어제는 자전거 타고 온 미국인이 있단다. 아, 예... 더 할 말이 없어서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오래된 숙소 티가 난다.
작지만 깔끔하고 있을 건 다 있는 방이다.
나는 이~ 상하게 물통(?)이랑 변기가 저렇게 떨어져 있는 게 싫더라고. 정이 안 가. -ㅅ-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게 뭐냐면, 패트 병에 끼워서 쓰는 휴대용 비데. 그냥 휴지로 닦고 말지 저렇게까지. -_ㅡ;;;
뜨거운 물, 찬 물 섞어 쓰는 방식이나 벽에 붙은 샴푸 짜내는 통 같은 걸 보면 오래된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오긴 하는 건지 한국어로도 쓰여 있는 게 신기했다.
텔레비전과 전기 포트도 있고,
인터넷 공유기도 있다. 인터넷은 빵빵 잘 터졌다.
자그마한 냉장고는 LG 제품! ㅋ
여기에서도 이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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