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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

걸어서 오사카 → 오카야마 ④ 둘째 날, 고베 → 아카시: 약 24.78㎞ (합이 63.49㎞)

by 스틸러스 2019.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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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듯 자다가 움찔! 하고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네 시. 아직 더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양키들 특유의 암내가 코로 밀려들고 귀에는 코 고는 소리가 몰려들어왔다. 코와 귀가 괴롭다.

여섯 시부터는 알람 공격이 시작됐다. 대체 뭐하는 ㅺ인지 알람 혼자 외롭게 한 시간을 우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참으로 잔인한 ㅺ. 저럴 거면서 알람은 왜 맞춘 거야. ㅽ




암내와 소음의 콜라보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몹시 괴로웠다. 밖에서 차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는데 "치아아악~" 하는 걸 보니 땅이 젖어있는 모양이다. 이 날 비가 예보되어 있었기 때문에 걷는 동안 비가 내릴까봐 살짝 쫄아 있었다.

일단 어플로는 그냥 흐린 걸로 나오긴 하는데. 아무튼 파스도 없어서 그냥 잔 덕분에 다리 상태가 영 걱정스러운데 그 와중에 비까지 오면 정말 최악이다. 겁이 덜컥! 났다.


오늘은 노에비아 스타디움까지 가서 고베 아이낙의 홈 개막 경기를 보고, 다음 숙소인 게라게라 게스트 하우스까지 가는 일정이다. 20㎞ 조금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불과 하루 만에 포기를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다. 전철 타고 가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보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다리가 아팠으니까.

시끄럽다고, 냄새 난다고, 속으로 궁시렁거리다 다시 잠이 들었다. 잠깐 잔 것 같은데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아홉 시. 열 시까지 체크 아웃해야 하니 슬슬 씻고 출발해야 한다. 일단 여기저기 흩어놨던 짐부터 좀 챙기고.



상큼하게 모닝 도옹. 벽 짚고 먹은 거 확인하는 저 처자는 언제 봐도 섹시하다. 귀국할 때 똑같은 거 하나 사서 가지고 가야지. ㅋ



어디에서 왔는지 표시하는 지도.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는 이미 빽~ 빽~ 하게 핀이 꽂혀 있었다.



전 날 호스트 분께 '오사카에서부터 걸어왔다' 고, '다리 아파 죽을 것 같다' 고, '마사지가 간절하다' 고 했었더랬다. 그걸 기억하시고는 체크 아웃 한다니까 근처 마사지 샵 위치를 알려주신다. 약도까지 있다. 일부러 알아보신 모양이다. 정말 친절하시다.

밖으로 나오니 아침까지 비가 오긴 왔었던 모양인지 땅이 다 젖어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나갔을 때에는 비가 내리고 있지 않았다. 약도를 보고 마사지 샵을 찾아 가는데 당최 안 보인다. 비슷한 가게조차 안 보인다. 그 와중에 몇 발 걷지도 않았는데 발바닥이 아파 온다. 결국 마사지 샵을 찾는 건 포기. 당장은 드럭 스토어부터 찾아서 파스 사는 게 더 간절하다. 그 와중에 구글 지도가 말썽을 부린다. 어제까지는 잘만 됐었는데 희한하게 길을 못 찾는다. 대중 교통과 도보 코스는 아예 못 찾고 차로 이동하는 경로만 표시한다. 몇 번을 해도, 목적지를 바꿔도 마찬가지. 어제 업데이트 하더만 뭔가 잘못된 건가? 일단은 자동차 기준으로 안내하는 걸 보고 걸어 간다.



숙소 근처의 신 고베 역 뒤에는 누노비키 폭포가 있다. 거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로 만든 조형물이 있기에 일단 한 장 찍으시고.



뭔 정자 같은 건물도 있더라. 잡상이 잘 안 보이니 한국식인지 중국식인지 알 수가 없다. 지붕 가운데를 보면 중국 쪽 같은데.



한국에 비해 일본이 압. 도. 적. 으로 발전이 늦은 게 놀이터. -_ㅡ;;;   그나마 여기는 제법 요란한 놀이터에 속한다.



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하~ 얗게 피어 있는 걸 보면 참 예뻐 보였다. 이 시기에 일본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다.



미리 검색한 건 7㎞ 정도였는데 찻길은 9㎞ 정도로 나온다.



지난 번에 고베 갔을 때에도 봤던 가게인데... 저 김치 라면,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불끈 솟아 오른다. ㅋ



빌딩 이름이 드래곤. 아무리 그렇다 한들, 건물 한 가운데 용을 떠억~ 하니 박아 놓을 것 까지야. ㅋㅋㅋ




그냥 지나가려 했는데, 사진을 찍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왕대포라니. 일본인들은 오해하지 않을까?

└ 역시나 신기한 건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다른 블로그에서도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가타가나로까지 왕대포라 써놨어.




응? 태극기? (숨은 태극기 찾기. ㅋㅋㅋ)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고 그 앞에 경찰 닭장차 있는 걸로 봐서 영사관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일본 경찰 닭장차는 처음 봤다.



뭔가 도시 같은 분위기. 하지만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비가 와서 그런 건 아닐텐데. 뭐가 다른 걸까?



한국의 교회 만큼 자주 볼 수 있는 게 신사. 일본에서는 오히려 교회나 성당 쪽이 보기 힘든 쪽에 속한다.



하루 전 발병한 전철 역 사진 찍기는 이 날에도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역만 보였다 하면 사진부터 찍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 가정 요리 간판을 달고 장사하는 음식점이 있었다. 한국 가정식이 뭘까.

└ プルコギ(부루코기)는 불고기겠지? 일본어 자판에서 자동 완성 되는 걸 보니 이미 고유 명사가 된 모양이다.

└ クッパ(쿳파)는 뭐야? 설마 국밥을 저렇게 쓴 거? 사전 찾아봤더니... 맞네. 국밥을 저렇게 쓰고 읽다니.



배가 고파서 '밥 먹고 싶다' 는 생각이 간절한데 대부분의 식당이 열한 시부터 영업이다. 한 20분 남았는데 그냥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고픈 배를 안고 아픈 다리로 할딱거리며 걷고 있는데 '가장 맛있는 라면' 이라 써붙여 놓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영업중이라고 팻말을 걸어놨기에 안으로 들어가니 주방에서 준비 중이던 두 분이 화들짝! 놀란다. '응? 왜 놀라지?' 라 생각하면서 한 명이라 하니까 아직 안 된다고, 열한 시부터라고 한다.

죄송하다 사과 드리고 나오면서 '영업중이라고 붙여 놓고 이게 뭐야.' 하며 궁시렁거렸는데, 나오면서 보니 입구에 붙어 있던 건 준비중 팻말이었다. 한자가 비슷하지도 않은데 배가 고프니 헛 것이 보인다. 두 번째 날의 시작인데 아침부터 이미 만신창이 상태다.

営業中 ← 이게 영업중 / 準備中 ← 이게 준비중 '가운데 중' 빼고는 전혀 비슷한 게 없는데... -_ㅡ;;;



드디어! 육교에 노에비아 스타디움으로 가는 방향을 안내해주는 이정표가 등장했다.



쭉! 뻗은 거리에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나는 아무 침대라도 쭉! 뻗고 싶을 뿐이고. 하지만 이대로 쭉! 가지 않으면 안 되고.




전철 역 찍는 병과 함께 발병한 물 & 다리 찍는 병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쪽 팔리지 않았다.



출발한 지 두 시간만에 이미 10,000 걸음을 돌파했다.





경기장에 가까워지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후욱~ 후욱~



저 멀리 거대한 건물이 보이긴 하는데... 설마 저건 아니겠지 싶어 빨간 도리이 쪽으로 가지 않고 지도 안내대로 갔다.



꽤나 커 보이는 니토리 매장도 있고 야마다라는, 뭘 파는지 모를 가게도 보인다. 여기를 지나치니 맞은 편에...



노에비아 스타디움이 나타났다. 아까 본 건물이 맞았다. 거대한 규모에, 그리고 돔 경기장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비셀 고베의 개막 플랑 카드에 비하면 무척이나 성의 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이는 고베 아이낙의 개막전 홍보 플랑 카드.



비셀 고베의 홈 경기장이긴 한데, 이 날은 고베 아이낙의 경기라서 여기저기에 팀의 로고가 붙어 있는 게 보인다.



인터넷으로 구입하지 않으면 2,000円이라 본 것 같은데 현장에서 구입해도 1,500円이었다. 서포터 쪽 말고 일반석으로 샀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니 더 장관이다. 와... 정말 정말 멋진 경기장이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좀 어둡게 나온 게 윗 쪽, 실제와 비슷한 정도의 밝기로 나온 게 아랫 쪽



여자 축구인데 서포터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여자 프로 축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자 축구의 인기도 제법이었다.


포항에 정나미가 떨어졌을 때 '여자 축구에 정을 붙여 볼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현대제철을 응원할까 싶어 유니폼을 사려고 담당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성의 없는 답변에 실망해서 시작도 안 하고 그만둔 적이 있었다. 남자 축구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열심히 응원하는 서포터들을 보니 그 때의 일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의 여자 축구도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더라면 홍보 담당자의 반응이 조금은 달랐을테지.



원정 팀은 일본 체육 대학. 원정 서포터는 한 명도 안 보였는데 나~ 중에 저 쪽에 앉아 있는 분이 몇 분 계시기는 했다.




먼 곳을 찍으려니까 카메라 두고 온 게 영 아쉬웠다. 하지만 RX10을 들고 왔다면 걷는 내내 궁시렁거렸을 게 분명하다.



선발 소개할 때 제대로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일본 체육 대학의 20번 선수도 한국 선수인 것 같더라. 이름이 한국 이름이다.


영어로 LEE SONG A 라고 쓰기에 이송아 선수라 생각했다. 네×버에서 검색해보니 관련 내용이 전혀 없더라고. 단순히 '여자 축구가 그닥 유명하지 않으니까, 국가 대표로 선발되거나 하지 않으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봐야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을 수 있겠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자로 李誠雅라고 쓰는데 그럼 이성아 선수가 된다. 전 소속팀은 세레소 오사카의 여자 팀. 경력을 보니 U-17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대표. -_ㅡ;;;   그렇다. 북한 선수였던 거다. 단순히 이름만 보고 한국 선수라 생각했었는데.

아무튼, 강한 피지컬로 저돌적인 플레이를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3월 30일에 베가르타 여자 팀과의 경기에서 한 골 넣긴 했는데 팀은 1 : 3 으로 졌더라.



선발 소개 화면 한 번 요란하다. 장내 아나운서도 엄청 업! 되어서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ㅋㅋㅋ



드디어 소개되는 이민아 선수. 일본인에게 힘든 받침을 쓰지 않고 소리나는대로 이미나라 표기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전반 시작 직전의 모습. 거의 원 톱의 위치에서 엄청 부지런히 뛰어다닌 이민아 선수.



초반은 고베의 분위기였다. 이민아 선수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지, 몸이 덜 풀린 건지, 몇 번의 패스가 잇달아 미스. 이민아 선수를 응원하러 갔는데 3번 선수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볼 키핑이 엄청나게 좋고, 침착해서 상대가 압박을 들어와도 여유롭게 처리했다. 그게 그냥 걷어내는 게 아니라 다 전방의 미드필더에게 연결이 되니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윤영선 선수가 성남에서 뛸 때의 모습 같았다. 여유 부리면서 슬렁슬렁 하는 것 같은데 어찌나 안정적인지 조금의 불안감도 느껴지지 않는 수비. 정말 좋은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해보니 '사메지마 아야' 라는 선수다. 등 번호나 이름이 있는 굿즈 하나 살까 했는데 홈페이지에는 살만한 게 없어.)

  • 고베 서포터 쪽에서 '대~ 한민국' 의 짝짝짝! 짝짝! 응원과 같은 박자의 응원을 해서 조금 놀랐다.

  • 관중 연령은 전반적으로 좀 높은 듯. 애들 데리고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아 보였다. 평일 낮 경기였으니까 직장인들은 오기 힘들었을 거다. 봄방학(일본은 4월에 학기가 시작)을 한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같이 온 게 아닌가 싶다. 이 날 3,683명이 입장한 것으로 나오던데 이 정도면 우리나라 K2 리그의 인기 이상이다. 일본 프로 스포츠의 넓은 팬층이 부러웠던 순간.

  • 공이 거의 전용 구장 수준으로 되돌아 왔다. 우리 팀이 몰아칠 때 바로바로 돌려주고, 좀 밀리거나 하면 느릿~ 느릿~ 돌려주고 그래야 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그냥 팍! 팍! 돌려준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공 나갔을 때 좀 쉬어야 하는데 빠릿빠릿하게 돌려주는 볼 보이들이 얄미웠을지도. ㅋㅋㅋ

  • 개인 기량은 확실히 고베 쪽이 좋았다. 여자 축구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 재밌더라. 배구랑 배드민턴도 여자 쪽을 더 좋아한다. 힘으로 우겨 넣는 남자 쪽보다는 뭔가 기술이 있고 랠리를 주고 받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힘 빼고 기교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자 축구라 해도 남자 축구와 확 다른 건 아니지만 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느슨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 이민아 선수는 거의 원 톱으로 뛰었다. 최전방에서 부지런히 오프 사이드 트랩을 피해가며 손 드는데 제 때 들어가는 패스가 한 번도 없었다. 김승대 선수처럼 줄타기를 하는데 이명주 선수처럼 제 때 팍! 찔러주는 선수가 없는 거지. 스피드를 앞세워 상대 수비가 돌아오기 전에 마무리 해야 하는 속공 상황에서도 7번 선수가 이민아 선수에게 패스를 넣지 않고 자꾸 스피드를 죽여서 좀 얄미웠다.

  • J 리그에서는 출입구에 줄이 잔뜩 밀려 있어도 가방 안을 들여다 보기는 하던데, 나데시코 리그(일본 여자 프로 축구)에서는 가방 검사를 따로 안 하더라. 그래서인지 집에서 가지고 온 걸로 보이는 캔 음료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여러 명 보였다. 나는 경기장 내의 음식점에서 야끼 소바, 가라아게, 맥주를 사먹었는데 맛은 그닥.

  •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카레인가를 팔고 있기에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뭔가 아르바이트 같은 건가? 죄다 같은 옷 입고 있는 걸 보니 어느 학교 운동부인가 싶기도 하던데. 차라리 그 카레 사먹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포항 유니폼 입고 갔었는데 '대표팀 유니폼 입고 갈 걸 그랬다' 고 후회했다. 사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대표팀 유니폼 챙길까 하다가 그냥 간 거여서 더욱 아쉬웠다.

  • 여자 축구가 확실히 더 좋은 건 남자 축구보다 손을 덜 쓴다는 것. 화면에는 반칙 장면에서나 한 번씩 잡히는지만 실제로는 손을 엄청나게 써댄다. 잡아 당기고, 밀고, 난리도 아니다. 덕분에 유니폼은 질질 늘어나기 일수. 여자 축구도 손을 쓰긴 하는데 남자 축구보다는 확실히 덜 쓰는 것 같더라. 그게 좋았다. 축구는 발로 해야지.

  • 시간이 엄청 잘 간다. 전반전이 금방 끝났다.

  • 고베 아이낙이 선제 골을 넣었고, 이후 후반에 교체로 들어간 선수가 추가 득점에 성공. 2 : 0 으로 이기는가 싶었는데 만회하기 위해 일본 체육 대학이 갑자기 몰아친다. 수비하느라 바빠서 후반 종반 무렵에서야 코너 킥을 처음으로 얻었는데 혼전 중에 우겨넣는데 성공. 하지만 경기는 그대로 끝나서 결국 고베 아이낙이 2 : 1 로 이겼다.

  • 이민아 선수는 누가 봐도 아웃 될 거라 생각할만한 공을 끝까지 쫓아가서 살려낸 뒤 코너 킥을 만들어 내 홈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경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에는 개인 기량으로 박스 안에서 찬스를 만들었지만 수비에 막혔다. 골 넣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 경기가 끝나고 하이 터치 행사가 있다고 안내를 하더라. 기다렸다가 이민아 선수를 직접 보고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나는 앞으로 다섯 시간을 더 걸어야 하는 사람. 눈물을 머금고 그냥 나왔다.
    굿즈는 어디에서 사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나오자마자 굿즈 파는 곳이 딱 보이네. 등번호와 이름 마킹한 유니폼도 있냐고 물어보는 중에 이미 마킹된 유니폼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이즈 표기가 XO인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이게 가장 큰 거냐고 하니까 그렇단다. 여자 축구 유니폼은 처음 사보는 거라 사이즈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일단 가장 큰 걸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
    이민아 선수 유니폼을 한 벌 사고, 열쇠 고리도 하나 샀다. 카드로 결제하려고 하니까 잽싸게 다른 사람을 불러 오더라. 일본은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가게도 많지만 된다고 해도 할 줄 아는 직원이 드물다. 아무튼... 그렇게 20만원 넘는 돈이 한 방에 훅! 나갔다. J 리그 유니폼, 진짜 비싸다. 감바 오사카 유니폼도 사고 싶은데 겁 나서 못 사겠다. ㄷㄷㄷ



밖으로 나와 마지막으로 경기장 사진을 한 번 더 찍었다. 그리고 다시 구글 지도 보면서 전진 앞으로!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발바닥이 터질 듯 아파도,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전철 역 보이면 무조건 사진 찍고,



장사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가게 앞에 이름 모를 풀때기가 엄청나게! 와아~ 하고 입 벌린 채 찰칵!




이렇게 반듯하게 쭉~ 뻗은 길을 걷는 게 정말 기분 좋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없어. ㅠ_ㅠ



걷다가 라이프 발견! 나는 저장 용량이 크지 않은지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한다. 다행히 일본은 편의점에도 화장실이 있고, 내가 걸은 길에는 이런저런 가게들이 많이 있어서 화장실 때문에 곤란한 적은 없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약 사러 갔다. 싼 걸로 파스 하나 사고 반창고도 다시 구입. 파스 같은 경우 다섯 장 들은 대형이 2,000円 넘어가는데 서른 장 든 게 900円도 안 한다. 브랜드 때문인가? 싼 건 파스가 아니라 시원하게만 해주는 건가? 아무튼 약 산다고 2,259円 까먹었다. 약 값으로만 10만원 가까이 썼다.



문 닫은 술집 앞에 나무 벤치가 있기에 남들 눈 신경 안 쓰고 퍼질러 앉아 발가락에 반창고 붙이고, 여기저기 파스도 덕지덕지 붙인 뒤 다시 출발했다. 한결 낫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고.



구글 지도가 바닷가 옆으로 안내를 해준 덕분에 정말 멋진 경치를 보면서 걸을 수 있었다.




철길을 따라 걷다 보니 역시나 덕후의 나라답게 철덕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사다리까지 갖다 놓고 전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더라. 일본은 아마추어가 아마추어답지 않은 경우가 많다. 먹고 살만 하니까 뭔가를 취미로 해도 엄청 깊이 파게 되고 그러니 프로 수준이 되어버린다. 철덕들을 지나치며 생각했다. '어디 순간 이동 가르치는 도장 같은 거 없냐?'

가벼운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바이크 투어러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나도 바이크 사면 저렇게 투어 다닐테다!' 하고 다짐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렇게 쭉! 뻗은 길만 보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멋있지 않나, 이런 길?



혼다의 S660. 타카라쿠지(복권) 사서 덜컥! 5,000만円 짜리라도 당첨되면 냉큼 질러버릴테다.



걷고 있는 길 맞은 편에 가스토(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가 보이는데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단 횡단 했다가는 뉴스에 나기 딱 좋은 길이라 엄두도 안 냈다. 포기하고 한참을 더 걸어가니 졸리 폴리(역시나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파스타 전문점.)가 보인다. 집 근처에도 있는데 간 적은 없던 곳이다.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자리 잡고 앉아 혼자 메뉴 두 개를 시킨 뒤 다 먹어치웠다. 맥주도 두 잔 마시고. 그렇게 밥 먹는 데 2,000円 넘게 썼다.

출발하기 전에는 '많이 걸으니까 살이 쪽 빠지지 않을까?' 라 생각했지만 그만큼 더 처먹게 되니 살이 빠질 일이 없다.




밥 먹으면서 30분 넘게 쉬었는데 나와서 다시 걸으니 바로 또 아파 온다.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의 AR 기능을 잘 써먹었는데 어두워지니까 주변 지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써먹기가 어려워졌다.





19시가 넘어 간신히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는 야경이 기가 막히다. 정말 멋진 곳에 자리 잡은 게라게라 게스트 하우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정말 힘들었다. 1㎞만 더 걸으라고 했다면 길바닥에 그냥 주저 앉았을 거다. 무릎 아파 숨질 것 같은데 게스트 하우스 리셉션이 2층이라 힘들었다. 실컷 올라가서 체크 인 했더니 방은 또 1층. ㅠ_ㅠ   그나마 침대가 1층이라 다행이었다.

방을 안내 받은 뒤 100円 내고 수건을 빌렸다. 바로 샤워를 하는데, 수압이 엄청나다. 피부에 구멍내고도 남을 것 같은 물줄기가 쏟아진다. 씻고 나와 대충 짐 정리를 한 뒤 2층으로 다시 올라가 맥주만 두 잔을 마셨다. 뭔가 아쉽지만 그냥 일찌감치 쉬어야겠다 싶어 침대로 돌아갔다.



발바닥에도 붙이고, 발목, 종아리, 무릎,... 이제 겨우 이틀째인데, 반도 못 갔는데, 안 아픈 곳이 없다. 진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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