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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

걸어서 오사카 → 오카야마 ③ 첫 날, 집 → 고베: 약 38.71㎞

by 스틸러스 2019.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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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쉬어도 모자랄 판에, 출발하기 전인 18일과 19일 모두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느라 10㎞ 이상을 걸었다. 대체 뭘 믿고 저랬는지, 과거의 내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기분. 아무튼, 그 덕분에 두 다리에서 잔잔하게 근육통이 몰려 왔다. 인터넷에서 샀던 파스는 영 효과가 없는 것 같아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대형 파스를 사들고 왔는데 이건 효과가 확실했다. 자는 동안 후끈거리고 따끔거려서 여러 번 깨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전 날 사다 둔 샌드위치와 커피로 배를 채운 뒤 뮝기적거렸다. '아... 가기 싫다.' '방구석에서 숨만 쉬고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숙소 예약까지 다 해둔 마당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꿈지럭~ 꿈지럭~ 거리며 짐을 싸서 출발한다. 날씨가 화창해서 틀림없이 더울 거라 생각하고 반팔 차림으로 나갔다.



봄다운 화창한 날씨. 이번 여행에서 비가 예보된 날은 단 하루 뿐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출발했다.



평소 학교 가면서 걷던 길로 텐노지駅 쪽으로 간다. 항상 걷는 길이지만 뭔가 느낌이 다르다.



금방 큐즈몰에 도착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항상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곳.



집에서 학교, 학교에서 집, 이렇게만 다니(진짜라고!)거나 어디 간다 하면 아예 멀리 가버리니까 집 근처인데도 처음 보는 곳이다.



뭔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싶더라니... '부랑자, 노숙자들이 많으니 안 가는 게 좋다' 는 신이마미야駅 근처였다. ㄷㄷㄷ


신이마미야駅 부근은 우범 지대로 꽤 유명하다. 역 근처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니고, 아이린 지구라 불리는 특정 지역이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관련된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무조건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다른 곳에서라면 혐한 발언을 듣고는 발끈! 해서 '이 새끼가! 너 방금 뭐라 그랬어!' 하고 대응할 경우 적당히 티격태격하거나 가위, 보를 낼 수 없는 가위, 바위, 보를 몇 번 하다가 상황이 끝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바로 칼 맞는다는 거다.



일본에 오기 전에 '제발 일본에 가서는(는? 느은?) 싸우지 말라' 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고 온(대체 왜! 내 주위 사람들은 나처럼 선량한 비폭력 주의자에게 그런 조언을 하는가!) 나인지라 아예 문제 생길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근처에도 안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 동네의 외지인은 대부분 중국 관광객인 것 같은데 한글로 된 간판도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인들은 이 동네로 안 올 거 같은데...



확실히 동네에서 뿜어지는 분위기가 텐노지駅 쪽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 사람도 오는 것을 꺼리는 동네라고 들었다.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겠지만 때가 잔뜩 낀 작업복 차림으로 찌린내 풍기며 길에 침 탁탁 뱉어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걸어다니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다른 곳에 비해 많았고, 이른 아침인데도 길바닥에 엉덩이 깔고 앉아 풀린 눈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는 아저씨들도 많았다. 애써 못본 척 하며 계속 걸어갔다.




출발한지 한 시간도 안 되었을 때라 아직 쌩쌩하다. -_ㅡ;;;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인가보다. 집에만 있었다면 일본을 떠날 때까지 몰랐을테지. '역시 나오기를 잘했다' 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 역 건물에 AK나 롯×마트, 홈×러스 같은 매장이 붙어 있는 것처럼 일본에는 대부분 이온몰이 붙어 있다.

└ 저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핑크색 로고만 보면 괜히 반갑더라. -_ㅡ;;;



KFC도 일본에서 보면 뭔가 반갑다. 온통 롯데리아랑 맥도날드 뿐이라서 그럴까? 하지만 희한하게 한국보다 맛이 없다.

└ 미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미군 애들과 그 가족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그래서 미국인 입맛에 맞춘 닭도 한국보다는...


나는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인데, 그렇게 입고도 땀이 질질 흐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죄다 패딩에, 목도리에,... 나라면 찜통 속 만두처럼 되어버렸을 거다. 12월이나 3월에 일본인들의 옷차림을 보면 오바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추위부심(?)이 한 몫 하는 것이겠지만.



내가 이만큼 왔다! 라는 걸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전철 역이 보였다 하면 무조건 사진 찍었다.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ㅋ

└ 그 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 전철 역 사진 찍는 건 극히 드문 일일테니 저런 거 사진 찍는 건 열에 열이 외국인 관광객.

└ 하지만 유명한 장소도 아니고, 그냥 동네 역이다보니 사진 찍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힐끗 보고 간다.



세피아 톤으로 살짝 보정하면 뭔가 일본스러운(?) 사진이 될 것 같은, 나름 잘 찍었다 싶은 사진인데 항상 그 살짝이 부족해서...

└ 한국에서는 '낡은 것 = 나쁜 것' 이라는 공식이라도 있는 듯 하지만 일본은 세월을 껴안고 있는 것들에 대한 존중이 있다.



항상 다니던 곳만 왔다 갔다 했으니까 새로운 곳을 본다는 게 그저 신나고 재밌었다. 떠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때까지는.




이온몰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는데 붙어 있는 전철 역 이름이... 도-무마에? 돔 앞? 무슨 돔이 있는 거지?



응? 쿄세라 돔? 교세라 돔? 한국 연예인들이 콘서트 하고 그런다는 그 교세라 돔? 여기가 거기야?



헐! 맞네. 인터넷 뉴스 기사로나 보던 그 교세라 돔이 여기네. 교세라 돔이 오사카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네. 허...



  • 교세라 돔에 대한 것은 https://namu.wiki/w/%EA%B5%90%EC%84%B8%EB%9D%BC%20%EB%8F%94%20%EC%98%A4%EC%82%AC%EC%B9%B4 ← 여기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 링크 타고 왔다갔다 하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재미있는 내용만 몇 가지 추려보자면,

    • 1997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오사카에 있으니 이 동네를 연고로 하고 있는 한신 타이거즈의 홈 구장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릭스 버팔로즈의 홈 구장이라고 합니다. 흠...

    • 킨테츠 버팔로즈가 망해서 지금의 오릭스 버팔로즈가 되었는데 망한 이유 중 하나가 1년에 15억(원이 아니라 엔)에 달하는 구장 운영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 요미우리를 홈으로 하는 자이언츠가 여기에서 홈 경기를 2회 개최한다고 합니다. 후쿠오카를 홈으로 하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도 여기에서 홈 경기를 한다고 합니다. KBO로 따지면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LG도 홈 경기를 하고 롯데도 홈 경기를 한다는 건데... 아무리 전국구 인기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라지만 제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네요.
      ※ 쿄진(거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는 자이언츠의 경우에는 자신의 고향을 연고로 하는 팀이 있는데도 그 팀을 응원하지 않고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 팀입니다. 자이언츠 소속 선수는 어지간한 연예인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후쿠오카를 연고로 하기 전에 간사이 지역을 연고로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 3 ~ 4 만 명의 관중이 동시에 뛰어오르면 주변에 진도 1 ~ 4 의 진동이 전달된다고. ㄷㄷㄷ   주변에 철거가 완료되지 않은 가스 탱크들이 있어서 단체 점프가 우려되는 공연은 허가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허... -_ㅡ;;;

    • 도쿄에 돔 구장이 생겼는데 오사카에도 있어야 하지 않냐! 라는 지역 감정(?) 때문에 만들어진 시설이라고 합니다. 일본에 살다 보니 도쿄로 대표되는 관동 지역과 오사카로 대표되는 관서 지방의 지역 감정에 대해 종종 듣게 되는데요. '전라도, 경상도 사이보다 더하고만?' 이라 생각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도쿄의 스카이 트리가 꼽히니까 그 꼴 못 보겠다고 텐노지에 아베노 하루카스 박아버렸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사실처럼 언급되고 있고요.




'구글이 맘만 먹으면 정말로 지구를 지배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것은 GPS 신호가 잡히지 않는 지하에 들어갔는데도 정확하게 위치 잡아가며 안내를 했을 때였다. 하지만 그런 구글도 헤맬 때가 있었으니, 교세라 돔 같이 거대한 복층 건물이 주변에 있을 때다. 건물 주위를 돌고 있으면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지 밖에 있는지 당최 갈피를 못 잡고 엄청 헤매더라. 하지만 구글도 이러한 약점을 알고 있었는지  얼마 전에 AR이라는 증강 현실 기술을 내놓았다. 구글 지도를 실행한 뒤 카메라로 주위의 건물이나 이정표를 인식 시키면 곧바로 위치를 수정해서 안내하는 기능이다. 아직 베타 버전이긴 한데 이번에 엄청 유용하게 써먹었다. 역시나 구글. 만에 하나라도 쟤들이 지구 정복하겠다고 하면 괜히 개기지 말고 그냥 복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_ㅡ;;;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엄청난 인파였다. 진짜, 태어나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몇 만 명이 모여 있는 건 여러 번 봤다. 축구장에서, 야구장에서, 공연장에서. 하지만 그런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뭔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있는 거지?' '야구 경기할 시간이 아닌데?' 싶어 몰려있는 사람들을 봤더니 죄다 트와이스 로고가 있는 뭔가를 들고 있더라. 온통 트와이스 굿즈. 연령층도 어찌나 다양한지 애들부터 어른까지. 줄이 하도 길어서 이리 구부러지고 저리 구부러지고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난리도 아니다. 줄의 가장 끝에는 스태프가 '여기가 줄의 끝입니다.' 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어슬렁거리며 대열을 따라가고 있었다. 콘서트는 틀림없이 저녁에 할텐데 오전 열 시부터 저렇게 줄을 서고 있었다.

(여행 끝나고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3월 20일과 21일에 저기에서 트와이스 콘서트가 있었다고. 한국에서는 일본 젊은 층에서 다시 한류 열풍이 분다고 난리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트와이스의 인기만큼은 정말 확실했다. 엄청나더라.)



구글 지도의 AR 기능. 증강 현실을 활용하여 정확하게 위치를 잡는다.


교세라 돔을 통과하고 나니 이어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졌다. 구입 당시의 스펙대로라면 세 시간은 연속 재생이 되어야 하는데 몇 년 지났으니 배터리 수명이 줄어든 것도 있을테고. 워낙 소형 제품이라 배터리 교체 같은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 될 것 같고, 요즘 나오는 제품들의 성능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 소니에서 차기 무선 이어폰을 내놓는다면 그걸 구입할까 싶다. 그 때까지만 잘 버텨다오. 여름에 헤드폰 쓰고 땀 뻘뻘 흘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걸을 때 위험하지 않을까?' '주위 소리를 듣는 것도 여행의 일부가 아닐까?' 하면서 이어폰을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지고 간 것이었는데, 안 가지고 갔으면 심심해서 숨졌을지도. -_ㅡ;;;)



구글 지도 보고, 이정표 보고, 그러면서 방향 잡아 걸었다. 역도 자주 보이고 사람들도 많은 곳이라서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다.



길이 없는데 가라고 안내되어 있어 깜딱! 놀랐더랬지.


일단 지도에 표시된대로 가보니 주차 타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있다. 거기에 타고 지하로 내려간 뒤 지하 통로를 걸어 맞은 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는 거였다. 지하 통로에서 물 속이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걸어서 지나간다는 게 신기했다. 다리를 만드는 쪽이 훨씬 쉬웠을텐데.   뭔가 특별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경험이라 생각해서 영상을 찍고 싶었지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기는 다음에라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냥 지나쳤다가 사진 찍어야겠다 싶어 몇 걸음 되돌아가 찍은 사진.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JIN이다. ㅋㅋㅋ


우리나라 사람들은 3음절 이름이 대부분인지라 이니셜을 쓸 때에는 성에서 하나, 이름에서 둘을 따와 쓴다. 이름이 개구리라면 GGR이 되겠지. 나 같은 경우 그런 식으로 쓰면 JJS가 되는데 죄다 자음이라 외국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가운데에서만 세 글자를 따와 JIN으로 써왔다. 그런데 일본에서 그렇게 쓰면 이름 뒤에 さん(상)을 붙이는 바람에 '진상' 이 되어버리고 만다. 뭐, 아니라고 할 수 없긴 한데... -_ㅡ;;;   그래도 대놓고 진상이라 불리면 좀...

어찌 되었든 오랫동안 써온 이니셜이라 JIN 보니 반가워서 한 장 찍어봤다. 그러고보니 일본에서 유명한 안경 브랜드 중에 JNS도 있다. 괜히 반갑더라.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때 스윽~ 들이밀며 증거 자료로 제시하고 싶은 마음에 역만 보였다 하면 사진을 찍어댔다.



길고 짧은 다리를 여러 번 건넜는데 그 때에도 역시나 어김없이 사진을 찍었다. 뭔가 그냥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라서. ㅋ



집 근처의 데라다초에서 전철을 타면 320円으로 30분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인데, 두 시간 가까이 쉼 없이 걸어 도착했다.



전철 역 근처의 뭔가 사람 사는 동네 분위기에서, 내가 생각하던 좀 휑하고 삭막한 분위기의 도로로 접어들었다.



두 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걸어왔는데도 다섯 시간 반을 더...



출발 전에 먹은 것이라고는 편의점 빵 쪼가리와 커피 뿐이었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목도 그리 마르지 않았지만 땀을 제법 흘렸으니 미리 수분을 보충해야겠다 싶어 자판기에서 포카리 스웨트를 하나 뽑았다. 목 마르지 않은 상태라 생각했는데 마시기 시작하니 벌컥벌컥. 안 마셨다면 쪼그라들어 사라졌을 사람처럼 마셨다. 슬슬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미련한 짓이다. 농담으로 돈 없어서 걸어 간다고 하긴 했지만 20일에 출발해서 27일에 돌아오는 일정이니 일주일을 밖에서 자야 한다. 게스트 하우스의 하루 숙박비가 3,500円이라 해도 ×7 하면 24,500円. 신칸센 타고 왕복하고도 남는 돈이다. 저기에 밥 사 먹는 돈, 술 사 먹는 돈, 파스 사는 돈,... 일본은 파스 값도 비싸다.




하지만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니까. 하고 싶은 일이니까 한다, 그런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는 것도 아니니까. 더 나이 들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몸뚱이가 되기 전에 하는 거지.



앞 쪽에 휑~ 한 도로(43번 국도)가 보이는데 그런 길로 접어들기 전에 자그마한 공원이 있기에 잠시 쉬고 화장실에도 들렀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통증이 종아리를 거쳐 허벅지와 넓적다리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아프면 어쩌자는 거냐' 며 내 몸을 타일렀다. 약국에서 우리나라의 물파스 같은 걸 구입했었는데 그걸 바르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졌다. '효과 좋고만!' 하고 감탄하며 다시 걸었다(몇 발 걷자마자 통증이 돌아왔다. 제기랄!).



뭔가 굉장히 길어보이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긴장!





사진 찍어가며, 맞은 편에서 오는 자전거 피해가며, 꽤 걸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꽤나 먼 거리.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바람이 제법 강했지만 딱 기분 좋은 정도.




왔던 길로 돌아가면 텐노지駅, 앞으로 가면 고베. 반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포스코 굴뚝 같다.



앞 쪽으로는 인도가 안 보인다. 잠시 끊어지는 모양이다. 안내문을 보고 지하를 통해 반대 쪽으로 건너 갔다.






바이크 투어러. 정말 부러웠다. 바이크 뿐만 아니라 자전거, 아니 심지어 아이들이 타고 노는 퀵보드까지도.

└ 바퀴 달린 모든 것이 부러웠다. 뭐가 되었든 굴러가는 걸 탈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일본의 PC방. 영화 감상이나 잡지, 만화도 볼 수 있고 음식을 시켜 먹거나 샤워를 하고 자는 것도 가능하다. 가보고 싶더라.

└ PC의 성능은 그닥 좋지 않아서 게임에 적합하지는 않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구글 지도는 여기에서 계속 앞으로 나가라고 안내하는데 앞에 떠억~ 하니 안 된다고 써붙여 놨다. -_ㅡ;;;



횡단 보도는 없고, 이 따위로 생겨 먹은 건널목이 자꾸 나와서 엄청 짜증났다. 아파서 숨지겠는데 빙빙 돌아가야 돼!


자전거도 이용할 수 있게 하려고 했기 때문인지 계단이 아니라 빙글빙글 도는 완만한 경사로였는데, 이런 육교가 세 개인가 네 개 정도 계속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도 있었지만 달랑 한 층을 오르내리는 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귀찮아서 투덜거리며 걸어서 건넜다. 하지만 세 번째 육교에서는 포기했다. 그냥 엘리베이터 탔다.



삭막한 도로 변을 지나 주택가에 들어섰다. 그렇지. 이런 길이어야 좀 걸을만 하지. 하지만... 아파... ㅠ_ㅠ



동네에 있는 것 치고는 꽤나 큰 규모의 신사가 나왔다. 신사 옆에 공원이 있기에 거기 벤치에 앉아 잠시 정비를 했다.


종아리에 파스 바르고, 허벅지에도 바르고, 넓적다리에도 바르고, 무릎에도 바르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파스가 마른다 싶으면 또 바르고, 또 바르고. 조금 떨어진 옆 쪽의 벤치에 앉아 있는 아기 어머니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제발 저를 선량한 아저씨로 봐주세요.' 라는 마음으로 잠시 앉아서 쉬었다. 왼쪽 발가락이 영 불편하더라니, 물집이 잡혀 있었다.



20년 전, 군대에서 행군할 때 발바닥과 발가락에 청 테이프를 감게 하더라고. 왜 저러나 싶었는데 그게 물집 생기는 걸 막는 노하우였다. 반환점을 돌아 한참을 더 걸은 뒤 도착 전 마지막 휴식 때 테이프를 떼어냈는데, 길고 긴 행군 동안에도 괜찮더니 그 잠깐 동안 물집이 생겨버렸다. 그 때 발바닥 & 발가락에 테이핑하는 효과를 절실히 느꼈는데... 멍청하게도 이번에는 그냥 출발해버렸다. 20년 전에 비해 몸무게는 늘어나고 체력은 떨어졌는데 준비도 제대로 안 한 거다. 그만큼 스스로의 몸뚱이를 과신했다. 큰 실수였다(복선. -_ㅡ;;;).



동네마다 달라지는 맨 홀 뚜껑 디자인. 이런 것도 찍어가며 부지런히 걸었다. 힘든 와중에도 블로그에 올릴 사진 생각하면서.



엉덩이 밑으로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느껴져 계단을 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첫 날인데 이러면 어떻게 하나... 하아~



수심은 그닥 깊어보이지 않았지만 폭이 상당히 넓은 강이었다. 회룡포 같은 분위기였다. 다리는 수준이 달랐지만.



벚꽃도 품종이 여러 가지인데 성격이 급한지 유난히 일찍 피는 녀석이 있다더라고. 이 녀석이 그런 녀석인 것 같았다.

└ 다른 곳의 벚꽃 나무들은 봉오리(츠보미)도 채 벌리지 않았는데 여기는 아주 그냥 활~ 짝 피었더라. 신기했다.



뭔지 모르지만 바로 앞에는 노~ 란 색의 꽃도 피어 있었고. 일본은 어디를 가나 꽃을 볼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근처에 여자 대학이 있는 모양이더라. 단체로 면접이라도 보고 오는 건지 까만 정장 차림의 처자들이 떼로 우르르~




아픈 다리로 한참을 더 걸어가니 맞은 편에 코난이 있다. 배가 고팠기에 밥 먹어야겠다 싶어 그 쪽으로 건너 갔더니 이런저런 식당들이 많다. 초밥도 먹고 싶고, 돈카츠 세트도 먹고 싶은데 가게 안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 많은 가게에는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좀 한적한 곳을 찾다보니 그나마 마츠야가 한가해 보인다. 마츠야는 자판기로 음식을 주문하는 시스템인데 한국어를 지원하는 곳이 많다. 내가 들린 곳도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어서 주문은 어렵지 않은데 결제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음식을 선택해서 장바구니(?)에 넣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은데, 그걸 계산하는 방법을 모르겠는 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리저리 헤매는데도 알 수가 없다. 음... 이거, 혹시... 하고 지폐를 밀어넣었더니 쏙~ 잡아먹고는 거스름 돈을 내어준다. 뭐야, 이거. -_ㅡ;;;

작은 사이즈의 맥주는 한 모금 거리 밖에 안 된다. 자판기 앞에서 헤매는 꼴을 보고 외국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인지 숟가락을 같이 주더라. 젓가락으로 먹어도 관계 없긴 한데, 숟가락 있으면 굳이 젓가락을 쓸 필요는 없지. 순식간에 뱃 속으로 밀어 넣었다. 뭐라도 먹으니 그나마 살 것 같다.

밥 먹고 나서 코난이 있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드럭 스토어가 있다. 일반 면 반창고 말고 젤리 타입의 쫀쫀함이 느껴지는 반창고를 721円이나 주고 샀다. 다시 밖으로 나가 비어 있는 벤치에 앉아 번갈아가며 양말을 벗은 뒤 양쪽 발가락에 반창고를 붙였다. 그러고나니 훨씬 낫다.


또 한~ 참을 걸어 가다가 DVD를 파는 가게 앞이 좀 한적해 보이기에 길가에 앉아 다시 파스를 발랐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도 하나 뽑아 마시고.



한참을 더 걸어가니 엄청나게 큰 신사가 나왔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이렇게 바로 옆에 있는데 보고 가야지' 싶어 들어갔다.

└ 여행 계획을 짜면서 크게 실수한 것 중 하나가, 걷다가 만나는 이런저런 멋진 곳에서 보낼 시간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




5円 짜리, 1円 짜리 탈탈 털어 넣은 뒤 여행하는 동안 참한 처자랑 눈 맞게 해달라고 빌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난 후 그냥 나오기가 뭐 해서 500円 짜리 부적 샀다. 무스비(むすび) 뭐라 뭐라 쓰여 있더라. 마사미 님 드린다고 안전 운전 기원하는 부적도 하나 샀다(깜빡 잊고 못 드리고 옴. -ㅅ-).

여행이 끝날 때까지 썸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었다. 여자 사람하고 말 한 마디 못했다. 1円, 5円 짜리만 넣어서 안 들어줬나보다.



데라다초에서 여기까지는 환승 시간 포함해도 50분이 안 걸린다. 요금은 450円. 그걸 여섯 시간 가까이 걸어서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 풍경이 괜찮았다는 거다. 그저 쌩쌩 지나다니는 차도 옆을 걷는 것이었다면 훨씬 더 힘들었을 거다.



어떻게 하면 보닛만 저렇게 완전히 녹슬어 버릴 수 있지? 한국에서는 한 번을 못 본 알파 로메오인데 일본에서는 종종 보인다.


발가락이 다시 아파 왔다. 왜 이렇게 아픈가 싶어 신발을 벗고 확인해보고 싶은데 앉을 만한 곳이 당최 안 보인다. 아파하면서 더 걷다가 애들 바글바글한 공원 입구에 올라 앉아 신발을 벗었다. 반창고가 밀려 다 까져 있었다. 다시 반창고를 붙이고 좀 쉬다가 출발했다.



철길을 따라 엄청 오래 걸은 것 같은데 당최 남은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천하의 구글 지도를 의심하는 건방진 짓을 했다.





    

4.8㎞ 걷는데 47분 걸렸다고? 엄청난 페이스인데? 뭔가 잘못된 것일 거다. 저런 페이스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는데.



전체 경로의 ⅛ 정도만 남겨 놓고 있었다. 죽을 것 같았다.



슬슬 고베 시내로 접어든 것 같은 느낌이다. 마트가 보여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뒤 근처의 베스킨 라빈스에 들어갔다.



매장 안에는 손님이 전혀 없었다. 트리플을 주문했더니 뭐라 뭐라 한다. 가만히 보니 트리플은 콘 위에 아이스크림을 세 번 떠서 올려주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나의 피로를 해소할 수 없다!' 싶어 파인트로 주문을 바꿨다. 세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골라야 하는데, 나의 최애 ' ' 가 보이지 않는다. 응? 일본에는 없어?! 레인보우 샤베트가 없다고?!




나 같은 초딩 입맛에 어울리는 건 오렌지 어쩌고 하는 것 밖에 안 보이기에 일단 그걸 고르고, 다른 걸 쭈~ 욱 훑어 보는데 당최 끌리는 게 없네. 그래서 세 가지 고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전부 오렌지 뭐시깽이로 다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잠시 앉아서 쉬는데 뭐라 뭐라 한다. 못 알아들어서 "에?" 하니까 다시 말해주는데, 들으면서 뭔 뜻인지 부지런히 생각해보니 '포장 후 먹을 때까지 오래 걸리느냐' 그런 뜻인 것 같았다. 가지고 가서 먹을 때까지 오래 걸리면 드라이 아이스를 넉넉하게 넣어야 하니까 물어보는 것 같더라고. 응? 난 매장에서 먹고 갈 건데?



여기에서 먹겠다고 했더니 난처해한다. 이미 포장을 했다는 거다. 그러면서 플라스틱 뚜껑을 열어 거기 묻은 아이스크림을 보여주기에 괜찮다고 했더니 뚜껑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닥닥 긁어 다시 컵에 올린 뒤 내어준다.

힘들어 숨질 것 같은데 달달하고 시원한 게 들어가니 좀 살 것 같다. 혼자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 버리는 곳을 못 찾아서 좀 헤매다가 밖으로 나갔다. 생각해보니 밥은 5,000원 짜리 먹으면서 아이스크림을 10,000원 주고 먹었네.




베스킨 라빈스(우리나라에서는 줄여서 '베라'라고 부르는 모양이더만. 일본에서는 31의 일본식 영어 발음인 '싸티왕'이 된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이동 거리를 기록 중이던 시계가 멈췄다. 배터리 잔량이 4% 밖에 안 되니 자동으로 기록을 멈추고 시계 기능만 수행하게끔 되더라.


    

평소 3㎞ 정도는 우습게 생각했는데... 하체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상황이다보니 한숨만 나왔다.



      ,...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누가 뺨이라도 톡~ 건드리면 그 핑계로 울고 싶을 정도였다. 왜 나이 먹고 사서 고생인지 엄청 후회했다.



빨리 숙소에 도착해서 쉬고 싶은 마음에 통증을 참으며 걷는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계속 걸으면 괜찮은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에 걸려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려 하면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신호빨이 정말 거지 같았던 게, 쉼없이 오래 걸어서 '이번에 좀 쉬었음 좋겠다.' 고 생각하며 걸으면 횡단보도에 도달하기 전에 신호가 딱! 바뀌었다. 높으신 냥반들 멈춤없이 가시라고 경찰이 신호등 조작하는 것 마냥. 반면, 한창 페이스 올려서 '이대로 돌파다!' 라고 생각하면 거짓말처럼 빨간 불로 바뀌었다. 오질라게 복도 없네. 제기랄!



꽤 밝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어두웠다. 귀차니즘을 이겨내며 이 사진을 찍을 때의 심정은 '사진이고 나발이고! ㅽ!'



갈로 게스트 하우스는 이 번이 두 번째. 지난 번과는 반대 쪽 길로 가고 있어서 낯익은 길이 아니다. 거의 다 왔는데 힘이 안 나.



    

1분 동안 170m 이동. 그 1분은 최근 가장 괴로운 1분이었다. 작작 앵앵거리라고? 38㎞ 걸어 봐!!!



겨우 겨우 숙소에 도착. 처음에는 호스트께서 알아보지 못하시다가 잠시 후 모자 때문에 몰라봤다며 반갑게 인사해주신다. 체크 아웃 할 때 조용히 열쇠만 두고 간 것까지 기억하고 계셨다. 숫한 사람들이 방문할텐데, 내가 좀 인상적이었나봉가. ㅋㅋㅋ

일단 샤워부터 했다. 발가락에 생긴 물집이 터져 꽤 쓰라렸다. 히메지에서는 걷지 않고 쉬는 날을 하루 잡아놨으니까 빨래는 그 때 하기로 했다. 샤워하면서 허벅지를 만져보니 딴~ 딴~ 하다. 당장 쥐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주 의 ! 낳아준 엄마가 봐도 욕할 정도로 혐오스러운 발 사진이 나올 겁니다.












안 본 눈 사겠다는 분들이 넘쳐날 것 같아 쥐똥만하게 줄였습니다.

└ 하지만 모바일에서는 화면을 꽉~~ 채워 보일텐데...

└ 부디 폰에 토하지 않으셨기를. 죄송하게 됐습니다.



씻고 나와 잘 때 입을 옷으로 대충 갈아입은 뒤 밥 먹으러 나갔다. 당장 밥보다 마사지 샵이 더 중요했다. 그냥 스윽~ 나갔는데 친절한 호스트께서 허겁지겁 따라 나오시더니 어디 가냐고 묻는다. 밥도 먹고 마사지도 받으려 한다 했더니 마사지 샵은 못 본 것 같다 하신다. 그리고 근처 식당을 소개해주시고.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서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빨리 이동하고 싶었다. 적당히 듣고 다녀오겠다고 인사한 뒤 일단 신 고베 역이 있는 쪽으로 갔다. 역 쪽으로 가야 뭐가 나와도 나올 것 같았으니까.

무릎에서는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나고, 들리지 않을 뿐 허리 아래에서는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또 걷는다. 간산히 역에 도착. 지난 번에 밥 먹었던 가게에 가려 했는데 가게 안에 사람이 너무 많다. 결국 역 밖으로 다시 나갔다. 근처에 식당도 안 보이고, 드럭 스토어도 안 보이고. 산노미야 쪽으로 갈까 하다가, 한참 더 가야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대로 멈췄다. 뒤로 돌아 다시 숙소 쪽으로 이동.

접골원이 보이긴 하는데 20시까지다. '15분 전인데 아무래도 무리겠지?' 싶어 들어가지 않았다. 당장 자기 전에 붙일 파스가 간절한데, 드럭 스토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구글 지도로 검색했더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결국 포기하고 절뚝거리며 걸어 숙소 근처 편의점에 도착했다.



차가운 빵 두 개로 요기를 하고, 맵다는 과자를 안주로 맥주를 마셨다. 맵부심이 아니라, 매운 맛이 1도 없다. -ㅅ-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혼자 맥주 홀짝이고 있는데 잠시 후 호스트께서 들어오셨다. 어디 다녀오시는 모양이다. 지난 번에 그랬던 것처럼 폭풍 수다. 지난 번보다 일본어가 많이 늘었다며 칭찬해주시는데, 정작 나는 학교에서 배운 거 다 까먹고 기억도 안 난다.


22시 넘어 맥주를 다 마신 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인사한 뒤 침대로 들어갔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딥 슬립.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핏빗이 기록한 이 날 고생의 흔적. 무려 38㎞ 이상을 걸었다. 내 인생 최대 거리일 거다.


내가... 내가...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찌이이!!!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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