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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

24시간(1박 2일)의 고베 여행 ① (평양 냉면)

by 스틸러스 2019.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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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올리려고 했는데, 나 같아도 끝까지 안 보겠다 싶어 결국 쪼개서 올립니다. -_ㅡ;;;

지난 주,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먹고 마실 게 충분하니 밖에 나갈 필요도 없었다.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빈둥거리다보니 피 같은 주말이 훌떡! 지나가 있더라. 엄청 후회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물론 월세가 비싸니까 방에 오래 머물수록 이번 달은 뽕을 뽑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장점(이냐?)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바보 짓이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개뿔 쓰잘데기 없이 빈둥거리는 것 따위로 소중한 시간을 까먹다니.




그리하야... 이번 주에는 '어디가 됐든 여행을 다녀오겠다' 고 마음을 먹었다. 맨 처음 가려고 했던 곳은 이네. 교토부에 속해 있지만 교토라는 생각은 1도 안 드는, 교토 역에서 두 시간이 걸리는 아마노 하시다테까지 간 뒤에도 한 시간을 더 가야 하는 상당히 먼 곳이다. 문제는 교통비와 숙박비. 기를 쓰고 싼 것만 골라가며 아끼고 아껴 예산을 짜봤지만 30만원은 깨질 것 같았다. 이네 쪽은 게스트 하우스나 호스텔이 없고 죄다 료칸 뿐이었기에 하루 자는 데 15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유학생 신분이라서 패스도 못 쓰니 교통비만 따져도 어마어마한데 하루 자는 데 필요한 돈이 저러니,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절대 무리. 바로 포기했다.




어디를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까지 가본 적이 없는 와카야마 & 고야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고야산에 있는 절에서 홍보를 담당한다는 20대 땡중 ㅅㄲ가 트위터에 혐한 맨션을 날렸다. 설사 그게 맞는 소리라 한들 '까도 우리가 까' 야지, 남이 까면 기분 나쁘거든. 저 따위 개소리나 하고 있는 것들한테 일부러 찾아가서 돈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나와 살아보니 한국 관광객들 추태가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등산복 입은 꼰대들이 술 처먹고 꼬장 부리는 꼴도 보고, 발정난 어린 ㅅㄲ들이 여자들한테 껄떡거리는 꼴도 보고, 가관이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 문제가 들어가는 순간 일본 사람들은 입 다물고 있는 게 그나마 상책인데 땡중 놈이 손모가지를 함부로 놀린 거지.




아무튼. 여행지를 정하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금요일이 되어 버렸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미처 정하지 못한 상태. 먼 곳까지는 갈 수 없으니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하는데, 걸신 들려 사람도 뜯어 먹을 듯이 달려드는 사슴 따위를 보려고 나라에 가는 건 그닥 내키지 않는다. 남은 건 고베. 고베는 간사이 여행을 하면서 몇 차례 갈까? 말까? 고민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갔다.


일단 가이드 북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는 게 이진칸. 우리 말로 하면 외국인 집이다. 개항 시기부터 외국인들이 살았기에 특이하게 생긴 집들이 많아서 그거 보러 많이 간단다. 나는 그런 데 1도 관심이 없는 사람. '뭐? 그래? 그렇다면 이건 어때? 스타 벅스 1호점이다!' 라고 한들, 스타 벅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끌리는 건 야경인데, 야경 보려면 결국 고베에서 하루 자야 하거든. 간사이 여행 할 때에는 캐리어 끌고 다니며 오사카 또는 교토에서 고베까지 다니는 게 싫어서 안 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벼운 차림으로 갈 수 있으니까. 그래, 고베로 가자!


고베로 가기로 마음 먹은 뒤 숙소부터 잡았다. 고베 쪽은 저렴한 숙소가 많더라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 묵는 데 25,000원 정도? 서너 군데를 두고 잠시 고민하다가 한 곳을 골라 예약했다. 일단 숙소 저질렀으니 귀찮다고 안 갈 수도 없다. 본전 생각나서. 환불도 안 되는데. ㅋ



빨래가 잔~ 뜩 밀려 있었기에 일단 세탁기를 돌린 후 빨래를 널고, 대충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달랑 하루만 자고 오는 여행이라 캐리어 질질 안 끌고 가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즐겁다. 미리 알아본 시간이 있어서 거기 맞추려고 결국 축지. 10분만에 텐노지駅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노래라도 들어야 덜 심심한데 오랜만에 꺼낸 1000X M3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한답시고 기다리고 있더라. 무조건 최신 버전을 고집하는 병 아닌 병이 있는지라 업데이트를 선택했더니 한~ 참 걸린다. 집에서 텐노지駅까지 가는 동안 반도 안 끝났다.


오사카駅에 도착할 때까지도 업데이트는 끝나지 않았다. 우메다駅은 너무 복잡해서 오사카駅으로 간 건데 결국 거기에서도 헤맸다. 여차저차해서 4번 플랫폼에 가니 열차가 하나 서 있는데 저게 맞겠지 싶어 그냥 타버렸다. 아니면 내려서 돌아가지, 뭐. -_ㅡ;;;


그러는 동안 업데이트가 끝났다. 기존에는 구글 어시스턴트만 지원했었는데 이번에 업데이트하고 나니 아마존 알렉사도 지원하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쓸 일도 없고. 안내 음성 추가된 것도 달라진 점인데 혹시 한국어 있나 싶어 만지작거려보니 있다! 그래서 한국어로 변경하려니까 음성 파일 다운 받은 뒤 설치해야 한다고 또 한나절이다.




다시 한~ 참을 기다린 끝에 결국 음성 변경까지 완료. 그런데... 한국어 음성 안내가 진짜 뭣 같다. '전원을 켭니다' 도 아니고, '전원 켬' 이러고 있다. 목소리도 어색하고 억양도 부자연스럽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 싶어 일본어로 바꿨다. 그러는 사이 배터리 잔량은 100%로 나왔다가 10%로 나왔다가, 미친 × 널뛴다.


그렇게 헤드폰 붙잡고 씨름하는 사이에 고베에 도착했다. 신 나가타駅에서 내렸다. 여기에는 평양 냉면 가게가 있다. 인터넷으로 고베 여행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곳인데 보자마자 가보자고 생각했다. 물냉면이 진짜 먹고 싶었는데 12월에 한국 가서도 못 먹고 와서.



신 나가타駅에서 광장이 있는 반대 쪽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광장 쪽으로 나가는 바람에 한 바퀴 빙~ 돌아서 가야 했다.



사진이 좀 밝게 나와서 살구 색으로 보이는데, 실은 옅은 갈색이다. 저~ 앞 쪽의 높은 건물이 보이면 맞게 가는 거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갔더니 금방 도착. 한글로 '원조 평양 냉면' 치면 된다. 높은 건물에서 좌회전하면 저~ 앞에 가게가 보인다.

└ 이 ㅆㅂ 염병할 구글 ㅅㄲ들, 한글로 나오는 지도에도 떠억하니 일본해라고 써놨네. 아오, ㅆㅂ 것들.



멈춰 서서 사진 찍으면 남들이 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걱정되는 분위기여서 걸으면서 찍었더니 포커스가 집 나가버렸다. -ㅅ-

└ 쪽팔림은 순간이고 사진은 영원한데 그걸 알면서도 만날 체면 찾고 남들 눈치 보다가 찍어야 할 타이밍에 못 찍고 후회한다.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는데 내가 갔을 때에는 휑~ 했다. 혼자라고 하니까 존박이 사인 남겨놓은 자리 앞으로 안내해주셨다. ㅋ

└ 다녀오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박찬일氏는 유명한 쉐프 겸 글 쓰는 분이란다. 이번에 오사카의 술집 소개하는 책을 썼단다.

└ 이런 때에 일본 가라고 부추기는 책 따위를 내냐고 쌍욕하는 것들 많더라. 흥선대원군 모시는 종교 하나 만들지 그러냐.



미지근한 면수를 먼저 갖다 주셨다. 맛은... 그냥 맹물인데 목으로 넘기고 나면 살~ 짝 간이 된 게 느껴지는 정도랄까?

└ 한국의 냉면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육수 같은 맛을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한국에서 먹던 것에 비하면 그냥 물.



백김치.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맛이 느껴져서 좋았다. 뭐, 나는 절대적으로 매운 김치 쪽이지만 백김치도 나쁘지 않았다.



같이 주문한 생맥주가 먼저 나왔다. 밥 먹기 전에 다 마셔버리고 싶지 않아서 백김치를 안주로 조금씩 아껴가며 홀짝 홀짝 마셨다.



야키니쿠동과 냉면 大(스페셜을 시키면 남길 거 같아서... -ㅅ-)를 시켰는데 밥이 먼저 나왔다. 그냥 한 눈에 봐도 맛있어 보인다.



양념장이라며 알려주신다. 원래의 맛을 느끼고 싶어서 밥에도, 냉면에도 넣지 않았다. 앉아서 찍었는데 얘는 왜 또 포커스 날아갔냐.

└ 내 카메라 보고 말레이시아에서 온 처자가 나를 사진 좀 찍는 사람으로 오해하던데, 이런 사진 보여주면 바로 수준이 탄로나겠지.




'일본 땅에 뭔 평양 냉면이냐?' 할텐데, 일제 강점기에 북한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분들이 1936년에 차린 가게라고 한다. 올 해 기준으로 83년 전이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자식들과 며느리가 대를 이어 장사를 계속 하고 있단다. 본점이 있고 근처에 분점이 두 개 있다고 하는데 분점은 못 봤다. 메뉴는 일본어로 된 것 뿐이었다. 직원 분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하는 글을 봤는데, 나는 들어가서 인사하고 주문하는 것까지 그저 일본어로 해서 한국어 하시는 걸 보지는 못했다(일본어 공부한 지 3개월이 지났는데, 그 정도는 한다... 라고 해봐야 한 명입니다, 이거 주세요 정도가 고작. -ㅅ-).

한국의 평양 냉면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쪽으로 맛이 변해갔지만 이 곳은 최초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원래에 가까운 평양 냉면이라고 한다. MBC에서 2018년 7월 16일에 방송한 다큐멘터리에서 소개가 되었다고. 그 때 냉면성애자 존박이 와서 먹고 갔다네.


사실, 나는 입맛이 엄청 저질인지라 이 집이 맛있다, 저 집이 맛집이다, 이런 거 다 쓰잘데기 없다. 나는 어지간하면 맛있다고 한다. 만약 내가 맛없다고 하는 가게가 있다면 거긴 '음식물 쓰레기를 돈 받고 파는 집' 인 거다. 건강식이니 뭐니 하는 것도 필요 없다. 인공 조미료를 마구 때려 넣던, 설탕으로 범벅을 하던, 맛있으면 그만이다.


술 먹고 난 후 최고의 해장은 냉면이라고 아득바득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평양 냉면과 함흥 냉면의 차이가 뭔지도 모른다. 그저 안 끊어지는 쫄깃한 면이 짭잘하고 시큼한 국물에 담겨 나오면 그걸로 좋아하는 거다(단 한 번도 물냉과 비냉 사이에서 망설인 적이 없다. 무조건 물냉이다. -ㅅ-).



야키니쿠동을 먹고 있을 때 나온 냉면은, 내가 아는 냉면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면도, 고명도, 내가 아는 것과 상당히 달랐다.



일단 먹던 밥부터 마저 먹기로 했다. 고기와 함께 밥을 먹는데... 갑자기 울컥! 하더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너무 놀랐다. '응? 내가 왜 이러지?' '나 왜 울컥하는 거지?' 엄청 당황했다. 야키니쿠동에 무슨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울컥할 이유가 없는데 밥 먹다 울 뻔 했다. 간만에 밥 같은 밥 먹어서 그런 건가? 아무튼... 스스로 당황해서 감정 추스리느라 심호흡하고 쌩 쇼를 했다.




밥을 다 먹은 후 냉면을 먹기 시작했다. 면이 쫄깃하긴 하지만 한국에서 먹던 냉면의 면처럼 질기지는 않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물냉면의 시커먼 면은 오질라게 안 끊어지잖아? 그런데 이 면은 굳이 힘주지 않아도 그냥 댕~ 댕~ 끊어진다. 그래도 라면이나 우동의 면보다는 훨씬 탱탱한 편이다. 국물은 밍밍했다. 미지근한 면수보다는 간이 강한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에서 먹던 냉면 국물의 달고 신 맛은 없다. '이렇게 밍밍하게 먹는 게 평양 냉면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냥 먹었다. 보통 싱거우면 양념장이라도 풀텐데 원래의 맛대로 먹어보겠다 싶어 양념장은 전혀 풀지 않았다. 솔직히 내 입맛에는 백령도 냉면이 훨씬 입에 맞다. 하지만 일본에서 냉면 먹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다.


글 쓰면서 MBC의 다큐멘터리 화면을 찾아봤는데, 네×버에서는 더럽게 끊긴다. 한 3초 나오다가 20초 버퍼링하는 통에 도저히 못 보겠다. 유튜브는, 한. 번. 도. 안 끊어지고 잘 나왔다. 아무튼, 방송을 보니 미리 만들어두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딱 그만큼만 반죽한다고 한다. 메밀이 4, 전분이 3, 밀이 3의 비율이란다. 면은 손으로 뽑는다는 글이 있던데 굵기가 너무 일정해서 '수타가 아닌 거 같은데?' 라 생각했거든.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한 반죽을 가지고 기계에서 면을 뽑더라. 면 만드는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반죽은 손으로 하고 면은 기계로 뽑는 거다. 그렇다고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반죽하는 거 보기만 해도 충분히 힘들어 보였다. 그나저나... 방송에 나왔던 분들, 실제 가게에서 다 뵈었던 분들이다. 뭔가 신기하더라.




그저 냉면 먹었을 뿐인데, 고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부른 배를 부여잡고 가게를 나섰다. 야키니쿠동 + 냉면(大) + 생맥주 = 1,850円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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