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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일기

2020년 03월 27일 금요일 비옴 (さようなら、大阪)

by 스틸러스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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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는, 스크롤의 압! 뽝!


  • 일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자려고 누웠지만 집 안은 난장판이지, 맘은 싱숭생숭하지, 쉽사리 잘 수 없었다. 한 시간 자다 깨고, 다시 한 시간 자다 깨고. 그 와중에 창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젠 저 소리도 못 듣는고나.' 라 생각하니까 마음이 짠~ 해져서 슬펐다. 일본에 온 첫 날부터 들었던 사이렌 소리와 폭주족이 내는 굉음, 이제는 들을 수 없다.




  • 원래는 다섯 시에 일어나서 마저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날씨가 쌀쌀해서, 무엇보다도 움직이기가 싫어서, 이불 밖으로 쉽사리 나가지 못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게 여섯 시 반. 집 안은... 엉망진창이다.

  • 뭔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 또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잔뜩 밀렸을 때, 나는 바닥에 깨를 잔뜩 쏟았다는 상상을 한다. 엉망이 되었지만 한 알, 또 한 알,... 반복해서 줍다 보면 어느 새 깨끗해져 있을 거다. 시간이 걸릴지언정 천천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대로 된다(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진공 청소기로 쑤와아악~ -ㅅ-).

  • 하지만 저렇게 생각을 한다고 해도 정작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아~~~ 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나 몰라라 도망칠 수 있으면 이대로 두고 도망가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고, 세 시간 뒤에는 관리 회사에서 사람이 나와 집 상태를 볼 거다. 그 전에 깔끔하게 치워놔야 한다.

  •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유리와 병은 또 그 나름대로, 분리해서 담기 시작하는데 끝이 없다. 계속 나온다. 이 좁아터진 집구석에 뭔 짐이 저렇게 많나 싶고, 한편으로는 멀쩡한 걸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웠다. 고스란히 한국에 싸들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짜... 물건과 함께 순간 이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그렇게 부지런히 치워 간신히 좀 비워냈다. '하루에 큰 봉투 하나씩이라도 비워냈으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후회를 몇 번이고 했다. 혹시라도 귀국을 앞두고 있는 유학생 or 워홀러라면 돌아가기 전에 날마다 조금씩 버려두세요. -_ㅡ;;;

    • 일본은 쓰레기 버리는 요일이 정해져 있어서 아무 때나 버리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수시로 버리라는 말을 하느냐고? 제가 살았던 집은 쓰레기 버리는 요일과 관계없이, 1층에 위치한 쓰레기 창고에 던져 놓으면 알아서 가져가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그거 하나는 편했습니다. 혹시나 이런 곳에 계신다면 수시로 버리는 게 좋다는 얘깁니다요. 녜, 녜.

  • 그렇게 치우다보니 진공 청소기, 전기 주전자를 버리는 게 걱정이 됐다. 그냥 버리면 안 되고 소다이고미로 버려야 할 것 같더라. 그래서 부랴부랴 노트북으로 쓰레기 접수 사이트에 접속. 역시 4월 2일 수거로 뜬다. 일단 200円 짜리 세 장 신청. 가방도 스티커 붙여 버리기로 했다.

    • 일본에서 이게 참 힘들더라. 우리나라 같으면 그냥 재활용 수거함에 넣으면 될지, 따로 대형 쓰레기 수거 신청한 뒤 스티커 붙여야 할지, 그닥 고민이 되지 않는다. 진공 청소기나 전기 주전자 같은 경우는 그냥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면 된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그렇게 하면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괜히 잘못해서 한국 사람 전체를 욕 먹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서 함부로 하기로 그렇고.




  • 대충 치워놓은 뒤 아홉 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근처 우체국에 가서 소다이고미 스티커를 사야 하고, 라인 모바일 USIM도 우편으로 반납해야 한다. 짐 정리 과정에서 나온 자잘한 것들도 후나빙으로 한 상자 더 보내야 한다.

  •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비 맞으며 우체국까지 가서 후나빙을 보내려 한다고 말을 한 후 송장을 받아든 순간 전화가 왔다. 가스 회사에서 나온 거였다. 마지막 요금을 내기로 한 게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였는데 20분이 지나도 안 오기에 우체국에 갔었거든. 하필 그 때 오신 거다. 타이밍 참...

  • 지금 용무가 있어서 우체국에 왔다, 10분 뒤에 돌아갈 건데 조금만 기다려 달라, 대충 그렇게 말했더니 알겠다고 하신다. 맘이 급하다. 부랴부랴 송장 쓰고, 후나빙 한 상자 접수 완료. USIM 반납하려고 미리 봉투와 우표를 준비했었는데 그 와중에 우표가 어디로 빠졌는지 봉투 밖에 안 보인다. 제기랄. 결국 우표 값을 따로 내서 USIM도 반납 준비 완료. 엑스페리아에서 USIM을 빼버렸으니 이제 일본 전화 번호는 쓸 수가 없다. 혹시라도 EMS가 반송되거나 관리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고 해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는 거다. 하아...




  • 소다이고미 스티커를 잊지 않고 구입한 뒤 시계를 보니 얼추 10분 정도 지났다. 뛰다시피 돌아갔더니 1층 로비에서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가 기다리고 계시더라. 2,000円 살짝 넘는 돈을 내고 가스는 해지 완료. 문제는 전기 요금인데, 검색해보니 다음에 일본에 올 때 내라 하고 말았단다. 저게 뭔 소리인가 싶어 잠시 알아보다 말았는데 결국 그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건 나중에 메일로라도 물어봐서 내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ㅅ-

  • 방으로 돌아가 마저 치우고, 바닥을 닦고, 이런저런 털(?)들을 제거하고,... 그러고 있는데 열 시가 조금 넘으니 관리 회사에서 사람이 나왔다. 까칠해보이는 아저씨.

  • 방으로 들어와 이것저것 둘러 본다. 그러다가 천장에 있는 수납장에 붙인 행거를 봤다. 이게 뭐냐고 묻기에 내가 붙인 건데 억지로 떼어내다가 망가질까봐 그대로 뒀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손으로 잡아 뜯으려 하는데 붙인 지 오래 되서 그런가 안 떨어지더라. 제거하는 데 비용이 들 것 같단다. 얼마 정도 드냐니까 3,000円 정도 든단다. 어떻게 하겠냐고 한다. 지금 내도 되고... 그 다음은 못 들었다. 내가 보증금 조로 낸 돈이 있었던가? 긴가민가 싶다. 아무튼 거기에서 공제한다는 얘기인가 확실히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지금 내겠다고 했다. 3,000円을 내니까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영수증 써주더라.

  • 정작 걱정했던 방바닥 코팅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여름이 되니 방바닥에 맨 살이 끈적하게 들러 붙기에 물티슈로 빡빡 닦으니까 코팅이 막 벗겨지더라고. 그냥저냥 괜찮긴 한데 코팅이 벗겨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보면 티가 확 난다. 복구 비용 쌔게 부르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었는데 그 얘기는 안 하고 애먼 행거만. -ㅅ-




  • 화장실 쪽을 점검하면서 나한테 『 패러사이트 』 봤냐고 물어보시더라. 봤다고 하니까 어땠냐고 물으셔서 남들이 다 재밌다고 하는데 나는 그저 그랬다고 했다. 예전에 『 살인의 추억 』을 재밌게 보셨단다. 영화 제목을 한국어로 정확하게 발음하셨다. 까칠해보였는데 은근 재미있는 아저씨였다.

  • 치운다고 치웠는데도 미처 버리지 못한 것들이 있어서 아저씨가 쓰레기 봉투를 가져다 주셨다. 거기에 남은 것들을 다 버렸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서 따로 모아둔 배터리들도 그냥 거기에 넣어 버렸다. 설마, 터지거나 하지는 않겠지. ㄷㄷㄷ
    바닥 청소할 때 쓰려고 산 밀대 봉도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버렸다. 갈아 끼우는 1회용 청소포만 사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거라서 그냥 둔 건데, 결국 버려야 했다.
    휴지랑 청소 용품이 좀 남았는데 그대로 뒀더니 이건 뭐냐고 물어보더라. 새 거라서 버리기 아까워 그냥 뒀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남이 쓰던 거 쓰는 거 같을테니 버리는 게 나을 거라더라. 그래서 멀쩡한 휴지도 두 뭉치나 그냥 버렸다. 너무 아깝다, 진짜.

  • 쓰레기 창고에 미리 버려둔 소다이고미는 밖에 내놓으라고 하신다. 창고 문이 자동으로 잠기니까 수거 업체 사람들이 못 가져 간다는 거다. 3월 28일에 수거하는 것도 있지만 4월 2일에 가져가는 것도 있는데. 저 쓰레기들이 밖에서 일주일 가까이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일단 내놓긴 했는데 너무나도 멀쩡한 것들이라 '폐품 주워가는 할아버지들이 가져갈 게 틀림없어!' 라고 생각했다. Yさん이 가져가기로 한 멀쩡한 책상도 그냥 버리고... 아오, 아까워~




  • 쓰레기 창고를 가득 채운 내 쓰레기를 보고 뭐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말 없더라. 깐깐하게 굴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태클은 1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너무 정석대로 했나 싶더라. 시기가 시기인지라 나 말고도 방 빼는 사람이 몇 명 있는 것 같았는데 봉제 인형이나 기타 이런저런 것들, 소다이고미로 신고해서 버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것들을 죄다 봉투에 넣어 그냥 버려놨더라. 저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내가 너무 규칙대로 딱딱 맞춰서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 복사한 열쇠 두 개까지 건네고 나니 정말 그대로 끝이다. 원본 키를 넘겨 받을 때 특수 키라서 비싸니까 잃어버리면 손해가 크다고, 꼭 복사하라 했던 것도 기억이 나고, 일반 열쇠가 아니라서 복사 비용이 비싸다며 20만원 가까이 내고 복사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두 개를 복사했는데 잃어버리거나 하는 일 없이 잘 살다 간다.
    이제는 저 방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네. 계약 기간은 3월 31일까지지만, 들어갈 수 없는, 앞으로 다시 갈 날이 없을 게 분명한, 1년 6개월의 추억이 담긴 오사카의 집. 안녕...




  • 터질 것 같은 24인치 캐리어 위에 34인치 모니터 상자를 올리고, 일주일 치 식량이라도 든 것처럼 빵빵한 가방까지 메니까 스스로가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다. 이 꼴을 해서 데라다초駅까지 가야 한다. 벤덴초에서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코스모스퀘어駅까지 가야 한다. 환승 시간을 포함해도 30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인데, 짐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왔다. 빗방울이야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괜찮다지만, 이걸 가지고 전철을 탄다 생각하니 막막하더라.

  • 결국... 술 처먹고 맛탱이가 가지 않는 이상 탈 일이 없었던 택시를 탔다. 큰 길에서 짐을 잔뜩 들고 서 있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많던 택시가 한 대도 안 보이더라. 그러다가 잠시 후 한 대가 와서 손을 들고 세운 뒤 트렁크에 모니터와 캐리어를 넣고, 가방과 함께 뒷좌석에 올랐다.

  • 코스모스퀘어駅까지 가달라고 했다가 이내 오사카항 국제 페리 터미널까지 가달라고 목적지를 수정했는데 내비게이션에 안 나오는 모양인지 한참을 만지작거리더라. 그 와중에도 택시 요금은 부지런히 올라가고. 급하냐고 묻기에 천천히 가도 된다고 했다. 13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열한 시도 채 안 됐으니까.

  • 이마미야 쪽을 지나가는데 오사카에 1년 6개월을 살면서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진짜, 부랑자들 사는 곳 같더라. 분명 쓰레기 더미로 보이는데 여기저기에 가격표를 붙여놓고는 팔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아무튼, 그렇게 일본의 뒷골목 같은 곳을 지나 한참 만에 도착. 30㎞가 채 안 되는데 우리 돈으로 거의 6만원 정도 나온 것 같다.

    • 코보레구치駅 근처에서 오사카항 국제 페리 터미널까지, 대략 28㎞ 정도? 한국에서 비슷한 거리를 찾아보니 포항시청에서 경주역까지 27.4㎞가 나옵니다. 택시 요금은 25,730원으로 예상되고요. 일본의 택시 요금이 우리나라의 세 배까지는 안 되고 두 배는 조금 더 되는 것 같습니다.




  • 터미널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휑~ 하다.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서 대충 자리 잡고 앉은 뒤 스마트 폰만 만지작 만지작. 일본에서 쓰던 손전화의 USIM을 반납해버렸기 때문에 미리 이 날 아홉 시부터 24시간 동안 로밍을 신청했는데, 안테나가 거의 안 선다. 이동통신용 비아그라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먹이고 싶다. 창 쪽에 달라붙으면 그나마 터지긴 하는데 너무 느리다. 속이 터진다.

  • 결국 포기하고 태블릿에 미리 다운로드 받아둔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일본에서 넷플릭스에 접속하면 당연히 일본 서버로 접속이 되니까 일본에 제공되는 영상만 뜬다. 자막은 일본어 뿐이고, 지브리의 작품은 안 뜨는 등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VPN으로 우회 접속한 뒤 앱 종료하지 않고 빠져나왔는데 그렇게 하니까 문제없이 다운로드 받아둔 영상을 볼 수가 있었다.
    한~ 참을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 를 보고 있는데 유니폼 입은 아저씨가 오더니 문진표를 주며 써달라고 한다. 코로나 관련해서 증상이 있는지 없는지 쓰는 거다. 문진표를 다 쓰고 나니 경찰 제복 같은 걸 입은 젊은이가 와서 가지고 있는 짐을 엑스레이 검사해도 되겠냐고 물어본다. 응, 그러라고.

  • 짐을 끌고 안 쪽으로 가니 내용물이 뭔지 물어본다. 일본에서 쓰던 모니터라 얘기를 하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렸다. 캐리어도 올리고 나니 건너 편으로 가서 기다리란다. 가방은 안 올려도 되냐니까 뭐가 들었냐고 묻기에 유학 끝나서 귀국하는데 남은 거 다 넣었다라고 대답했다.
    가방을 열어본다거나 한 번 더 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검색기 한 번 통과하고는 끝이다. 공항이었다면 틀림없이 열어보고 난리였을 건데, 배라서 검사가 좀 허술한가 싶더라.




  • 그렇게 검사를 받고 나오니 매표소 문이 열려 있었다. 짐을 한 쪽에 밀어두고 줄을 섰다. 미리 예약한 화면을 보여주고 표를 받는데 3,700円을 또 내야 했다. 표 살 때 17만원 정도 냈으니 표 값이 20만원 넘는 셈이다. 저 3,700円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매표소 앞에 쓰여 있긴 했는데 미처 보지 못했네. 아무튼, 코로나의 여파로 식당도 운영하지 않고 공용 시설은 다 폐쇄란다. 에휴...
    짐이 많은데 가지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본인이 들고 갈 수 있는 만큼 가지고 갈 수 있단다. ㅋㅋㅋ

  • 처음에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는데 아까의 경찰 제복을 입은 젊은이가 또 오더니 무슨 용무로 한국에 가냐고 물어본다. 유학이 끝나서 돌아간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하며 사라진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긴 했지만 눈만 봐도 세상 둘도 없이 순한 사람임을 알 수 있을텐데 어찌 그리 의심하는고?

  • 14시 30분부터 승선이랬는데 한 시간 정도 남았더라. 앉아 있다가 졸음이 밀려와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40분이 넘었는데, 여전히 수속을 안 하고 있다. 때 되면 어련히 부를까 싶어 맘 놓고 있었는데 15시가 채 안 되어 입장하라고 한다.

  • 안으로 들어가 출국 심사를 받았다. 유학 끝나서 돌아간다고 하니까 이제 이 재류 카드로 다시 입국할 수 없다면서, 한국어로 된 서약서에 사인 하란다. 사인하면서도 뭔가 짠했다. 일본에서의 1년 반 동안 내 신분을 증명해줬던 플라스틱 카드에 구멍이 나는 걸 보는 기분이 참...




  • 안으로 들어가 길을 따라 이동하니 셔틀 버스가 왔다. 걸어가도 될 것 같은데 굳이 버스를 태우네. 버스에 타 짐을 세워두고 빈 자리에 앉았는데 뒤에 있는 젊은 애들이 ㅆㅂ, ㅈㄴ,... 모든 문장에 저 상스러운 말이 붙는다. '저 따위로 말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는 건가?' 싶어 짜증이 왈칵! 밀려왔다. 싸대기 한 번 오지게 쳐버렸음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나도 젊었을 때 저랬을텐데, 어찌 이리 꼰대가 되었을꼬 싶어 뜨끔! 했다.

  • 버스에서 내려 짐을 들고 배에 오르니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더라. 첫 번째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괜찮았는데 두 번째 에스컬레이터에서 캐리어를 잘못 놓는 바람에 캐리어와 모니터가 기울어 체중이 뒤로 쏠리게 됐다. 여차하면 뒤로 굴러 자빠질 위험천만한 상황이라 허리에 힘을 바짝 줬더니 담이 왔다. 뽝!!! 엄청난 근육통!!! 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내려 허리를 굽히니 말도 못하게 아프다. 제기랄!




  • 받은 표에 방 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열쇠를 받아 가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리셉션이 있는 층의 방이었기에 다시 계단을 오르거나 하는 일 없이 방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신발 벗는 공간이 있고 그 옆에는 화장실 겸 샤워실. 내부는 방처럼 생겼다. 거기에 3단 매트리스를 깔고 눕게 되어 있는 구조. 가장 비싼 방이다. 일단 화장실이 안에 있는 게 좋더라. 가장 저렴한 표를 샀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장 비싼 방에서 편하게 쉬면서 갈 수 있게 됐으니, 이걸 전화위복이라 해도 되는 건지 어떤 건지.

  • 하루종일 아무 것도 안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부랴부랴 매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튀김 우동 컵라면과 과자를 집어들고 계산을 하려 하니 7,500원. 하지만 원화는 가지고 있지 않다. 엔으로도 결제가 가능하지만 이 경우 확실히 손해인 게 뭐냐면, 지금 환율로는 7,500원이면 700円이 채 안 된다. 하지만 무조건 1,000원 = 100円으로 계산을 해버니 750円을 내야 하는 거다. 손해 본다고 해봐야 1,000원도 채 안 되지만 저 돈이 그렇게 아깝더라. 고로! 팬스타 드림을 타실 분들은 원화를 미리 준비하시길. 특히나 지금처럼 엔화가 더 비쌀 시기에는.

    • 카드 결제도 된다고 하지만 통신 상태가 엉망진창인지라 카드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라면에 물을 받아 방에 가져다 둔 뒤 다시 매점으로 갔다. 일본 맥주만 팔고 있었는데 350㎖ 짜리 기린이랑 삿포로 밖에 없었던 듯. 밖에 있는 자판기는 아사히 맥주만 팔고 있는데 500㎖짜리가 있더라고. 350㎖ 짜리 깨작깨작 마시고 싶지 않아서 자판기로 맥주를 샀다. 한 캔에 300円이니까 배에서 파는 것 치고는 그리 비싼 것 같지 않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니 우당탕! 맥주가 떨어지면서 품절 표시등이 켜진다. 다시 동전을 넣고 그 옆에 버튼을 눌렀더니 맥주가 나오면서 이번에도 품절 표시등이 반짝. 응? 이게 뭐야? 살 때마다 품절이 뜨냐? 버튼이 네 개 있었는데 두 개는 내가 품절 표시등을 켜버렸고, 다행히 세 번째 버튼은 내가 산 뒤에도 품절이라 안 뜨더라. ㅋ

  • 그렇게 맥주 세 캔 사들고 왔다. 일단 라면부터 먹어 치우고, 바나나 킥을 안주로 해서 맥주를 마셨다. 두 캔 마시니까 배가 불러서 한 캔은 저녁 먹은 뒤 마시기로 하고 한 쪽으로 밀어뒀다.

  • SBS가 잠시 나오는가 싶더라니 이내 끊긴다. 아무래도 일본이니까 한국 채널은 제대로 안 잡힌다. 게다가 와이파이는 전혀 안 잡히고, 인터넷도 되다 말다 난리다. 딱히 할만한 게 없다. 결국 다시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미리 다운로드 받아둔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야지. 가장 먼저 본 게 『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이었다. 초반에 사람들의 인터뷰 공세에 지친 스파이더맨이 도망을 치는 장면에서 전철이 지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집에서 코보레구치駅을 볼 때와 똑같이 느껴져서 금방 또 짠해졌다.




  • 상당히 괜찮다는 평이 많던 뷔페 식당은 폐쇄. 밥은 도시락으로 대체한단다. 18시에 준다더니 20분이 더 지나서야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슬슬 오겠다 싶어 준비하고 있었더니 이내 노크. 네~ 하고 맨 발로 종종거리고 가서 문을 여니 식권을 달란다.
    식권은 배 표에 붙어 있는데 배 표가 어디 있는지 안 보여서 막 찾고 있으니까 여직원이 "거기 바닥에 있네요." 라고 알려주셨다. ㅋ

  • 불고기였는데 다른 것도 맛있었지만 쌈장에 고추랑 마늘 찍어 먹은 게 최고였다. 진짜 별 거 아닌데 저런 아무 것도 아닌 게 간절했다. 한국에서 너무 흔한 한 끼인데, 이게 참 소중하더라.
    게 눈 감추듯 후다닥 먹어 치운 뒤 빈둥거리다가 지도를 보니까 히메지를 지나 아코 아래 쪽을 지나가고 있더라. 손전화 신호는 죽은 지 오래지만 텔레비전은 이것저것 잘 나왔다. KBS랑 SBS도 나오고, OCN이랑 TvN도 나오고.

  • 배 앞 부분을 CCTV로 볼 수 있는 채널도 있었는데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아무 것도 안 보이더라. 세토 대교를 지나가는 항로였지만 어두우니 아무 것도 안 보일 것 같아서 억지로 보려고 버티지 않고 영화 보다 졸리면 자고 그랬다. 세토 대교는 내게 좀 특별한 곳이라서, 나름의 인연이 있는 곳이라서 야경이라도 봤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 방이 엄~ 청 덥다고 들었는데 나는 딱 좋더라. 바닥이 온돌로 난방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엉덩이 닿는 부분은 뜨끈뜨끈했다. 다른 데 짚어보면 냉골이었던지라 난방이 되는 건지, 체온 때문에 엉덩이 닿은 부분만 뜨뜻한 건지 확신이 없었지만 아무튼 춥지는 않았다. 천장에서는 에어컨 나오고 있었고.

  •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태블릿으로 영화 보다가 손전화 터지면 네일베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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