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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일기

2020년 03월 25일 수요일 맑음 (ただ···悲しい)

by 스틸러스 202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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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의 40세 남성이라면 장가 가서 애 키우며 회사 다니는 게 일반적일테지. 회사 사람들도 그렇고, 고등학교 동창들도 그렇고, 보통의 삶이 저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 범주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는 사람. 장가도 안 갔고, 당연히 애도 없다. 그 와중에 회사 쉬고 유학을 결심해서 저질러버렸으니, 보통의 범주 안에서 본다면 상당히 이상한 사람일테지.

  • 무엇보다도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버는 족족 써버렸기 때문에 집이 없다. 은행 빚 내서 30년 동안 갚아가며 집 장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생각. 2년 마다 꼬박꼬박 이사 다닐지언정 전세나 월세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더 나이 들면 또 어떻게 바뀔랑가 모르겠지만.

  • 한국에 집이 없으니, 그동안 잔뜩 불려놨던 짐을 둘 곳이 없었다. 다행히 고모가 혼자 사시는 집에 빈 방이 있어서 거기에 짐을 다 부려놨더랬다. 5톤 트럭으로 한 가득이었지. 당장 일본에서 필요한 것들로 짐을 꾸렸는데 나름 줄이고 줄였는데도 우체국 6호 상자로 네 개나 나오더라. 24인치, 20인치 캐리어 두 개를 가득 채웠고.

  • 그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안 쓰다가 버리고 가는 것들도 있고, 비싸게 사서 똥 값에 넘기게 된 것도 있다. 그런 걸 생각해보니 그냥 없는대로 와서 조금 불편하게 살다 갈 것을, 괜히 욕심 냈고나 싶더라.

  • 보낼 건 다 보냈고, 남아 있는 건 20인치 캐리어에 넣은 뒤 그 20인치 캐리어를 24인치 캐리어에 넣어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가지고 갈 수 있는 양이 줄어든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20인치 캐리어는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기로 했다. 다행히 Lさん이 가져가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지.

  • 간사이 공항의 입국 면세점에서 산 양주도 두 병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어떻게든 처분해야 했다. 술을 가지고 배에 탔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던데 어찌 되었든 홈페이지에서는 술 가지고 못 탄다고 공지하고 있으니까.

  • 저녁에 Lさん이 집에 왔고, 둘이서 오랜만에 일 잔 했다. 나는 도수 쌘 술은 쥐약인데 조니 워커 12년산이 40도짜리더라. 그래서 콜라를 타 마셨다. 한참을 수다 떨며 부지런히 마셨고, Lさん과 헤어졌다.

  • 캐리어에 이것저것 챙겨주고,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함 맘과 함께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 나갔는데, 품 속을 뒤적거리더니 편지를 전해주더라. 손을 흔들고 방으로 돌아와 읽어봤다. 그래도... 1년 6개월, 헛 살지는 않았고나 싶더라.

  • 예전에, 처음 본사에 들어갔을 때였다. 그 전에도 안면이 있던 사람인데 목과 어깨가 뻣뻣~ 하더라. 내가 그 사람한테 업무로 뒤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니와 그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내 앞에서 그렇게 뻣뻣할 수가 없는데, 엄청 고자세더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뻣뻣함의 이유를 알게 됐다. 본사는 처음이니까 구조도 모르고, 돌아가는 시스템도 잘 모르니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봐야 하는 것들이었다. 자기는 아는데 나는 잘 모르니까, 그걸 벼슬처럼 여기고 있더라. 시간이 지나면 나도 곧 익숙해질 것들인데 말이다.
    저 냥반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만났는데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나보다 먼저 와서 익숙해져 있다는 이유로 또 목에 힘 주더라고. 한 마디 해줄까 하다가 참았다. 대신에 내가 그 곳의 환경에 익숙해지자마자 나보다 일찍 와서 더 잘 알텐데 왜 이런 것도 모르냐고 쏴주었다.

  • 저 냥반의 뻣뻣함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했다.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은 사람, 어색한 사람 앞에서 그 사람보다 먼저 경험했다는 이유로, 익숙해져 있다는 이유로 건방 떨지 말자고. 그래서 내가 먼저 몸 담고 있는 곳에 새로운 사람이 오거나 하면 최대한 먼저 말 걸고, 필요한 거 없나 물어보고, 누가 보면 오지랖 떤다고 할 정도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 물론 상대가 여자인 경우에는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일부러 먼저 말 걸고 그러지 않았다. 나름 소심한 아저씨다, 내가. -ㅅ-

  • Lさん이 처음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10월에 입학해서 이미 3개월 동안 학교의 시스템에 익숙한 상태였는데 Lさん은 1월에 입학해서 모든 것이 어색할 때였다. 게다가 수업도 50% 밖에 못 알아듣겠다고 하더라. 나는 먼저 경험했으니까, Lさん보다는 조금 더 아니까,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었다. 그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런데 그게 그렇게 고마웠던 모양이다. 몇 번을 고맙다고 했었는데, 편지에서 또 고맙다며 인사를 했더라. 지금은 Lさん이 나보다 훨씬 일본어도 잘 하고, 인기도 많고, 여러 가지로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는데도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 참 좋은 녀석이라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가 되어도, 꾸준히 연락하고 지낼만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역시, 모두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 간만에 양주를 마셨는데 부대끼거나 힘든 게 없었다. 하긴 젊었을 때 양주 먹고 맛탱이 간 건 워낙 개처럼 먹었으니까 그런 거고. 오늘은 딱히 할 일이 없다. 짐이나 정리할까 싶은데 그마저도 그냥 내일로 미룰까 싶다.
    우체국에서 상자 하나 더 사야 하나 고민했는데 피규어도 그렇고, 버리기 아까워서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Lさん이 다 가져가줬다. 따로 뭔가를 더 보내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일 가전 제품 수거하는 업체에서 오면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책장 정도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내가 버리겠다고 해서 스티커 붙여 내려놔야겠다. 그리고 나서 캐리어에 남은 짐 다 때려 넣고, 방 청소 싸악~ 하고. 27일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나 샤워하고, 이불 싸서 버리고. 그러고 나면 끝. 계속 이어질 것 같았던 일본 생활이 끝난다.

  • 금요일에 비가 올 거라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비 올 확률이 줄어드는 일본이다 보니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 예보대로라면 50%가 넘으니까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일본에 와서 지금 이 집에 들어온 날도 비가 왔었다. 우산도 없어서 비 맞으며 편의점까지 걸어가 도시락을 사들고 온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 우산을 샀었던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 1~2년 지나면 일본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아련하게 떠올라 너무나도 그리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굳이 그 때까지 갈 것도 없다. 벌써부터 이 코딱지만한 집이 그리워진다. 날마다 보던 하루카스도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시원한 맘은 1도 없고 그저 섭섭하기만 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새로운 즐거움, 괴로움,... 여러가지 일들이 있을테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마음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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