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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일기

2018년 09월 28일 금요일 맑음 (관서외전 레벨 테스트, 다가오는 태풍)

by 스틸러스 2018.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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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관서외전의 레벨 테스트가 있는 날.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미리 알아보려고 한참을 검색해도 관서외전 레벨 테스트 후기는 찾아볼 수가 없더라. 있다 해도 몇 년 전에 올라온 글이고 그나마도 테스트 했다~ 우리가 만나~ 이루지 ㅁ.... 이건, 아니고 아무튼. 관서외전에 한국인 은근히 많다던데 어찌 후기 하나 없을꼬? 유학원 오리엔테이션 때 봤던 사람들은 다들 메릭이나 츠지 다니는 학생들일까?



7월 1일에 JLPT N5 시험을 봐서 9월에 우수한 성적(은 개뿔)으로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긴 했지만, 시험 보고 나오는 순간부터 뇌세포들은 본연의 임무인 망각에 집중하기 시작, 지금은 히라가나만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정도고, 가타가나조차 절반은 까먹었다. 벼락치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5세용 학습지 두 권을 ¥1,000 넘게 주고 사왔지만... 한 5분 풀다 딴 짓, 또 한 5분 풀다 딴 짓, 공부 못하는 애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반복하다가... 역시나 공부 못하는 애들의 주특기 중 하나인 '내일로 미루기'를 시전하여 냅다 누워버렸다. 일찌감치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해야지~  하고 드러누웠지만 유튜브 영상 이것저것 보느라 세 시간을 날리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일곱 시 쯤 눈을 떴고... 바로 공부해야 했는데 컴퓨터를 켜고 말았다. 승패 마진 고작 +1인데 다른 팀이 하도 죽 쑤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4위 하는 걸 가지고 뭔가 대단한 업적인 것처럼 기사 써대는 꼬라지를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블로그에 주절주절 까대는 글 쓰다가 졸지에 한 시간 반을 까먹었네. 더 뮝기적거리면 늦을 것 같아서 잽싸게 샤워를 한 뒤 집을 나섰다. 남들은 춥다고 하겠지만 몸에 열이 넘치는 나에게는 딱 좋은 날씨. 이런 날 천천히 걸으면 참~ 좋은데 망할 몸뚱이는 일본에 온 뒤 좀처럼 기어 변속을 안 해서... 걸었다 하면 초고속 보행이다. 남들이 보면 경보 선수가 길에서 훈련하는 줄 알 거다. 쌩~ 하니 걷는 바람에 선선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땀구멍 개방! 집에서 몇 분 안 걸리는 사거리에서 신호 기다리려고 멈추니 등으로 땀이 땀이 쪼로록~ 아오, 찝찝해. ㅠ_ㅠ




길 건너 학교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많다. 오~ 다들 나보다 먼저 학교 가는 학생들이겠지? 며칠 전 미리 알아본 길을 따라 촥! 촥! 촥! 촥! 걸어가는데 앞에 한국 사람인가 싶은 남자 사람, 여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냉큼 추월한 뒤 보란듯이 좌회전! 그런데... 그 길이 아니다. 한 블럭 더 가야하는데 덜 가서 좌회전 해버리는 바람에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골목 사이로 빠지는 길도 없어서 결국 큰 길로 다시 나가 학교로 가야 했다. 한 번 가봤는데도 이 모양이라니. -ㅅ-   내가 추월했던 커플이 쟤는 왜?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ㅋㅋㅋ


학교 앞에 가니 회색 양복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안내를 해주고 계셨다. 여러 나라 글로 안내가 된 종이를 들고 계셨는데 맨 위를 보니 한글. 그 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기에 "강코쿠진데스.[각주:1]" 라고 했는데 내가 입은 옷을 보더니 "아! 코리아! ㅋㅋㅋ" 하신다. 한국 국가대표팀 유니폼 입고 있었거든. ㅋㅋㅋ


출처: 나이키 홈페이지(https://www.nike.com/kr/ko_kr/t/men/ap/football/soccer/893912-100/choq54/as-kor-m-nk-brt-stad-jsy-ss-aw#7)



6층의 64번 교실로 가라고 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 있다. 혼자 계단으로 가는 게 편하겠다 싶어서 계단으로 타박타박 올라간다. 6층 정도면, 뭐... 계단으로 가도 괜찮지. 이미 땀구멍도 터져버렸겠다. 젠장...   할딱거리며 6층에 도착했는데 64번 교실이 안 보인다. 이 쪽이 61번, 여기는 62번,... 그렇게 헤매고 있는데 한국 사람으로 추정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쪽으로 오다가 내가 돌아나오는 걸 보자 반대 쪽으로 간다. 반대 쪽에 있는 교실로 가보니 64번이라는 번호는 안 보이는데 앞에 韓囯이라고 써붙여 놔서 거기 들어갔다.


이미 몇 명이 앉아 있더라. 빈 자리에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아 있다가 할 것도 없고 해서 물 마시러 나갔는데 정수기가 없네. 자리로 왔다가 다시 나가 와이파이 비밀번호 확인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스마트 폰 만지작거리면서 시간 보내다가, 선생님 들어와서 전화기 가방에 넣고 얌전히 기다렸다.


한글로 된 종이를 나눠주는데 한국에서 일본어 관련 시험 본 적이 있는지 쓰는 란이 있고, 모국어를 쓰는 데 지장이 있는지 없는지 체크하는 란이 있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 하라고 넓게 비워둔 공간에는 아무 것도 안 썼고. ㅋ


잠시 후 한국의 유학원에서 면접 볼 때 만났던 한국인 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간단한 안내를 해주시는데 끝부분에서 태풍 얘기를 하신다. 아... 그렇잖아도 쫄리는데. ㅠ_ㅠ

시험이 시작되면 전화기는 다 꺼라, 필기와 인터뷰 끝나면 집으로 가도 된다, 열한 시 몇 분 부터 플리 마켓이 3층에서 열리니까 보고 갈 사람은 보고 가라, 이런 이야기가 진행됐고... 바로 시험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시험지에는... 한글은 단. 한. 글. 자. 도. 없다. 죄다 일본어. 읽고 답을 쓰는 건데 객관식 문제는 아예 없고 전부 주관식이다. -_ㅡ;;;   어찌 어찌 읽고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는 있겠는데 답을 못 적겠다. 예를 들자면, 문제의 답은 '먹고 있습니다.' 라서 '食べています。'라고 써야 하는데 '먹다(たべる)' 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다. 중간에는 당신의 나라에는 어떤 종류의 먹을 거리가 있냐고 묻는 것도 있었는데 답으로 ○○도, □□도 있다는 식으로 쓰라고 했다. 그런데 거기 맞춰 쓸 실력이 안 되서 그냥 '유명한 것은 김치, 불고기가 있습니다(有名なのはキムチ、焼肉があります。)' 라고 썼다. 지금 와서 보니 불고기도 틀렸네. 나는 火肉로 섰다. ㅋㅋㅋ   웃을 일이냐. 무식이 죄다. ㅠ_ㅠ


아니! 일본어 배우러 왔는데! 어! 일본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어! 그렇잖아도 시험 보고 있는데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한 명 들어왔다가 영어로 일본어 배우러 와서 모른다면서 나가더라. 그렇지! 저런 선진국 마인드! 몹시 훌륭하다! 아니, 배우러 왔으면 아예 몰라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왜 다들 선행 학습 하고 오는 거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백지 내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싶어 어떻게든 한 글자라도 더 쓰려고 문제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시더니 61번이라고 적힌 자그마한 코팅된 종이를 주며 인터뷰 하러 가라고 한다. "하이!" 하고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으니 지금 바로 가란다. 풀던 문제지를 덮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61번 교실, 내 뒤에 있던 젊은 처자는 62번 교실. 아까 헤맨 덕분에 61번, 62번 교실이 어디인지 아니까 바로 그 쪽으로 간 뒤 똑똑~ 노크를 하고 안에서 들어오라고 하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처자가 나 따라 61번 교실에 들어온다. 내가 책상 위에 61번 번호표 내려 놓으니 안에 계시던 선생님이 내 뒤의 처자에게 62번 교실이라고 안내를 해준다. 처자가 알아듣고는 나갔는데 이번에는 교실 앞 문 열고 다시 들어온다. ㅋㅋㅋ   선생님이 걱정되는 듯 바라보니 다시 나간다. 맞은 편이 62번 교실인데 앞 쪽이 62번 교실인 줄 알았나보다. 혹시라도 같은 반 들어가게 되면 그 때 봅시다, 젊은 처자~ ㅋㅋㅋ



드디어 인터뷰 시작. 역시나 한국어로 묻거나 하는 건 없다. 그냥 일본어다. 바로 일본어다. 온통 일본어다. 맨 먼저 이름을 물어본다. 『 너의 이름은 』 덕분에 名前(なまえ - 나마에, 이름) 알아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님. 이름을 얘기하니까 들고 있는 목록에서 찾기 시작한다. 약간 시간이 걸린다. 그러더니 아, 츄~ 라고 한다. 그건 러블리즈가 부른 노래 제목입니다만... -_ㅡ;;;


출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91306&memberNo=12054588


역시 주 발음 못하고 츄~ 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또 뭐라 뭐라 하는데 1도 못 알아듣겠다. "고멘나사이~ 니홍고가 하나세마셍." 이라고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체크를 하고 또 무슨 얘기를 막 하시는데... 긴장은 되지, 앞에 있는 카세트 플레이어는 신경 쓰이지(인터뷰 과정을 녹음하고 있는 줄 알았다. -_ㅡ;;;), 대화 도중 한 단어 알아듣고 눈치껏 대화하기 신공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뭔가 물어보신 것 같긴 한데 하나도 기억 안 나고... "코토시 제이에루피티 에누화이부 레베루 파스시마시타(今年JLPT N5レベルパスしました。 - 올 해 JLPT N5 레벨 패스했습니다)."라 하고, "코도모 레베루(子供レベル - 어린이 수준)." 라고 한 마디 덧붙였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적고... 잠시 후 듣기 평가라며 카세트 플레이어 버튼을 누른다. 젠장! 난 인터뷰 녹음하는 줄 알았는데!


테이프에서 녹음된 메시지가 나오는데 남자와 여자가 대화하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두 사람은 어디에 갔느냐는 것. 두 번째 질문은 왜 갔느냐는 것. 첫 번째 질문은 수월하게 대답했고, 두 번째 질문은 여행이라고 찍을까 하다가 그냥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인터뷰가 끝났다. 아마 히라가나, 가타가나 배우는 가장 낮은 등급의 한 단계 위로 배정 받지 않을까 싶다. 번호표를 들고 필기 시험 치던 교실로 돌아가서 선생님 주라기에 가지고 가서 선생님 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런 말도 다 일본어로 했는데 어떻게 알아먹었나 싶다. -ㅅ-


교실로 가서 선생님께 번호표 드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초 스피드 인터뷰였다. 같이 나간 처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더라. 차례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아마도 내가 가장 단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문제를 마저 푸는데... 봐도 모르겠다. 한자 대충 읽고, 한자 위에 후리가나 있어서 읽어보면서 우리 말과 비슷한 단어 떠올려 보고, 뭐 그렇게 꼼수 부려서 대충 이해는 하겠는데 답을 못 쓰겠다 이거지. 적당히 쓰다가... 뒤 쪽으로 가니 예문도 길어지고 당최 안 되겠다 싶어 안 풀고 그냥 냈다. 나는 필기도 끝났고 인터뷰도 끝났으니 이제 집에 가도 된다.



소감이라면... 일단은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싶었다는 점? 온통 애들(?) 뿐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이가 있어 보이는 아저씨, 아줌마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늙은이(?)들은 늙은이들대로 통하는 게 있지 않겠냐 싶어서. 다만... 그 사람들이 일본어를 나보다 잘해서 더 높은 반으로 편성이 되면 만날 일이 없다는 거. -ㅅ-


서양 애들이랑 초반에 수다 떨고 놀고로 서양 애들 많은 반 들어갔음 좋겠다. ㅋㅋㅋ




플리 마켓 보고 갈까 하다가 그냥 나왔다. 밖으로 나와 텐노지 역 쪽으로 갔는데... 막상 난바 가려니까 귀찮다. 모자 하나 사려고 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축구화도 하나 사야 하는데.


일단 집으로 갔다. 가는 도중 태풍 대비해서 먹을 것 좀 사다놔야 하지 않나? 싶어 세븐 일레븐에 들어갔다. 아르바이트 구한다고 써붙여놨던데 일본어 어느 정도 되면 저기서 알바해도 되겠다. 가깝고. ㅋ


엔화가 980원 밑으로 떨어졌기에 환전하려고 ATM에 카드 밀어넣었더니 인터넷에서 본 것 처럼 화면에 한글이 뜨고 음성도 우리 말로 안내를 한다. 그런데... 돈이 안 나온다. 카드를 넣으면 언어 선택하는 화면이 나오고, 그 다음이 신용카드 / 보통예금 / 당좌예금 중 하나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보통예금 선택했더니 안 되는 거다. 그래서 다시 카드를 넣고 당좌예금으로 진행했는데 똑같이 오류 나면서 안 된다. 신용카드는 현금 서비스일 것 같아서 안 해봤다. 일본 와서 아마존/니토리에서 물건 살 때 잘 썼던 카드고, 난바에서 오프라인 결제도 문제없이 했던 카드다. 현금 인출 카드 겸용인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스마트 폰으로 국민은행 앱 실행한 뒤 인증 관련해서 채팅으로 물어보고... 인출 안 되는 거 물어봐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국민카드 문제일 거라 생각해서 상담 안 받고 그냥 채팅을 끝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카드 결제 잘 되는데 현금 인출 안 되는 거니까 국민카드가 아니라 국민은행에 물어보는 게 맞는 거잖아? 다시 채팅으로 문의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메일 보냈는데... 한 시간 지났는데 아직 답변이 없다. 점심 시간이라 그렇겠지. 15시 정도까지 기다려보고 답장 없으면 다시 채팅으로 문의해야 되겠다.


오늘은 집에서 빈둥거릴 예정이었는데 오사카에서 공 차는 사람들 있어서 확인해보니 내일 아침 일찍부터 운동한단다. 마침 위치도 집에서 멀지 않다. 구경도 할 겸 가볼까 싶은데... 그러려면 축구화 사러 가야 한다. 어차피 갈 거, 오늘 갔다 올까? 내일부터 비 온다고 하니 못 돌아다닐텐데.

  1. "한국인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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