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해본 일본 공항이라고 해봐야 간사이, 요나고, 나리타가 전부. 오카야마 여러 번 갔었지만 정작 오카야마 공항은 가본 적도 없다. 간사이 공항으로 일본 들어간 적이 가장 많은데 입국 심사할 때 뭔가 물어보거나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여행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렇게 훅~ 들어가면 그만인데... 유학으로 일본 땅을 밟으려면 입국 심사 때 재류 카드를 발급 받아야 한다. 외국인 등록증 같은 거다. 입국 심사를 하는 여러 개의 부스 중 재류 카드를 발급해주는 곳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공항에서 입국 관련 서류를 검토해주는 분께 미리 유학생이라고 말하거나 준비해 간 서류를 보여주면 된다.
시간이 쬐~ 끔 걸리긴 하지만 바로 재류 카드를 발급해준다. 신용 카드 정도의 크기이고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재류 카드에는 내가 어떤 자격으로 일본에 장기 체류하는지, 기간이 얼마인지 등이 사진과 함께 나와 있는데 주소는 없다. 내가 어디 살지 모르니까 당연한 거다. 이 재류 카드를 들고 자신이 살게 될 동네의 주민 센터 같은 곳에 가서 전입 신고를 해야 한다. 재류 카드 받고 나서 14일, 즉 2주 이내에 하는 것이 원칙. 제 때 못하면 피곤해진다고 듣긴 했는데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19일(수)에 입국해서 20일(목)에 부동산 계약을 마치고 집을 구했다. 비가 와서 돌아다니는 게 꺼려지는데다 인터넷이 빵빵하게 터지는 덕에 밖으로 안 나갔다. 그리고 21일(금), 22일(토), 23일(일)은 한국에서 보낸 짐과 인터넷으로 지른 것들을 받느라 집 지키고 있었다. 일본어도 안 되는데 부재 중 배송이라도 오게 되면 배송해주는 쪽이나 나나 서로 피곤하다.
한국에서 유학을 사유로 장기 정지를 걸고 왔기 때문에 일요일에서 월요일 넘어가면서 손전화가 먹통이 됐다. 일본에서 손전화를 개통하려면 전입 신고를 먼저 해야 하는데... 하필 24일(월)이 일본의 휴일이다. 한국에서도 추석 연휴 기간이긴 했지만, 일본도 쉬는 줄 몰랐다. 아무튼... 그래서 월요일에 아무 것도 못하고, 대신 구약소가 어디인지 위치 파악을 미리 해뒀다.
텐노지駅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JR 텐노지駅 동쪽 출구로 나간다. 나간 방향 정면으로 아베노 하루카스가 보일 거다. 거기서 왼쪽의 큰 길 따라 걸어간다. 길 건너거나 하지 말고 그냥 계속 걸어간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걷다 보면 고가 도로 비슷한 게 나오는데 그 때 오른쪽을 보면 코난이 보인다. 가타가나로 커다랗게 쓰여 있는데 스포츠 어쩌고, 골프 저쩌고 쓰여 있는 커다란 매장이다. 그 쪽으로 향하는 횡단보도 있으니 건너고... 거기서 코난 매장을 왼쪽에 두고 길 따라 걸어내려간다. 꽤 걸었다 싶을 즈음 오른쪽에는 맥도날드 보이고 그 맞은 편에 야트막한 아베노 구약소가 보일 거다.
내가 있는 아베노区는 텐노지区 바로 옆이다. 텐노지区에는 츠지 요리 학교와 관서 외어 학교가 있어서 한국인 유학생이 꽤 있을텐데... 다들 텐노지区에 살지는 않을텐데... 희한하게 아베노区 전입 신고 후기 같은 건 별로 없더라. 뭐, 아무튼.
구약소가 여덟 시 반부터인지 아홉 시부터인지 몰라서 일찌감치 준비를 한다는 게... 뮝기적거리다가 예정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우산을 챙겨들고 나갔는데... 밖에 나가자마자 땀이 줄줄 흐른다. 천~ 천~ 히 움직이면 그나마 나을텐데 경보하듯 걷는 게 몸에 붙어버려서 천천히 움직이는 게 더 어렵다.
구약소 도착해서 복도에 있는 안내 직원에게 미리 뽑아간 내용(転入届 - 텐뉴우토도케 - 전입 신고)을 보여줬다. 10번으로 가라고 안내해준다. 그 쪽으로 가서 다시 뽑아간 글자를 보여주니 서류를 하나 준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코팅이 된 한글 안내 종이를 준다. 그거 보고 그대로 쓰면 된단다. 그리고 뭐라 뭐라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고 딱 하나(番号 - 반고 - 번호) 알아들었다. 아, 다 쓰면 번호표 뽑으라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인터넷 검색해보면 유학이나 워킹 홀리데이 와서 전입 신고나 휴대 전화 개통 등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엄청 많다. 남자들이 쓴 글은 거의 없는 것 같고, 대부분 젊은 처자들이 쓴 글이다. 최근 글 위주로 검색해서 보고 참고를 했다. 많이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다들 일본어가 굉장히 능숙한 것 같아 보인다. 워킹 홀리데이 왔다가 유학으로 다시 왔다는 사람도 꽤 많이 보이고.
그. 러. 나. 나는 일본어 수준이 거의 바닥이다. 한국에 있을 때 혼자 공부해서 JLPT N5 시험 간신히 합격한 수준인데, 그나마도 7월 1일에 시험 끝난 후 공부를 아예 안 하는 바람에 가타가나는 홀랑 다 까먹고 한자 건너뛰면서 히라가나로만 간신히 외운 500개 남짓의 단어도 거의 다 까먹었다.
그런 수준의 나이 든 아저씨가 좌충우돌 헤매는 이야기니까, 어지간하면 나보다 나은 환경이 아닐까 싶다. 일본어 아예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내가 사실 상 일본어를 거의 모르는 수준이니까.
한글 안내 참고해서 천천히 기록을 했다. 글씨 예쁘게 쓰고 싶은데 개발괴발이다. 다 쓴 뒤 번호표를 뽑았고, 이내 차례가 찾아왔다. 나한테 종이 줬던 여직원에게 가니까 이 쪽이 아니라며 옆 자리 남자를 가리킨다. 그 쪽으로 가니 내가 쓴 종이를 받아들고 하나, 하나 확인을 한다. 내가 사는 곳의 주소는 ○○市□□□区◇◇◇町◇☆-☆☆-☆☆◎◎-◎◇◇◇町◇△△△△号 ← 이러한데, ◎◎-◎◇◇◇町◇가 건물 이름이다. 주소에도 ◇◇◇町◇가 들어가고 건물 이름에도 들어가서 두 번 반복된다. 한국에서 우편물 보낼 때 건물 이름 안 쓰고 ○○市□□□区◇◇◇町◇☆-☆☆-☆☆△△△△号 ← 이렇게만 썼는데도 잘 도착했다. 그래서 그렇게 썼더니... 커다란 장부 같은 걸 가져와 확인하고 나서는 오른쪽 아래 여백에 건물 이름까지 다 쓰라고 하더라. 꼼꼼하다.
하루 전에 검색했을 때, 한국의 본적과 주소를 쓴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한국의 주소를 한자로 바꿔 프린트 했다. 그런데... 본적... 아... 본적이 어디더라? 당최 기억이 안 나서 결국 가족 관계 등록부 열람하는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개 질알 염병, 온갖 쓰레기 플러그 인을 다 깔아야 한다고 나온다. 짜증 대폭발! 그 와중에 공인 인증서도 필요했는데 한국에서 쓰던 컴퓨터에 받아놓고 일본에 가지고 온 노트북에는 저장한 적이 없어서 스마트 폰에 있는 공인 인증서를 복사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또 빌어먹을 플러그 인 깔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본적 알아냈는데... 도로명 주소는 한글 위주라 한자로 변환이 안 된다. 결국 옛날식 주소를 알아내어 한자로 바꾼 뒤 인쇄. 그렇게 본적과 주소를 한자로 변환해서 미리 준비해갔는데... 막상 구약소 가니 한국의 주소 쓰는 란에 그저 韓囯이라 쓰고 땡이다. 난 대체 왜 그렇게 고생하면서 준비해간 것인가?
P.S. 이건 구약소마다 다른 것 같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일본어가 안 되지만 친절하게 이것 저것 알려주면서 도와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신청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바로 되는 게 아니라 신청하고 나서 시간이 좀 걸리니까 나중에 오라고 안내를 하는데 나 같은 경우 한 시간 뒤에 오라고 하더라. 쥬지 항(十時 半 - 열시 반)이라고 했는데 내가 14시 30분으로 알아들어서 종이에 그렇게 쓰고 물어봤더니 다시 얘기해준다. 아, 쥬지... 쥬지... 열시! ㅋ
전 날 미리 검색해서 인쇄해 간 종이에 의료 보험 가입(医療保険加入 - 이료오호켄 카뉴우)과 주민표 발급(住民票発行 - 주우민효오 핫코오)이 같이 적혀 있었기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 필요하다고 했더니 종이 하나 더 준다. 주민표 발급 신청하는 종이인데 거기에는 이름과 주소 정도만 쓰면 된다. 의료 보험 가입은 2층으로 가야 한다며 창구 번호를 알려준다. 그리고 나서 한참을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데 역시나 거의 다 못 알아듣고 검은 옷(黒い服 - 쿠로이 후쿠) 한 마디 알아들었다. 아, 2층에서 일 마치면 내려와서 검은 옷 입은 사람한테 말하라는 건가 보다.
일단 2층 올라가서 알려준 자리로 가니 번호표 뽑는 기계가 있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종이를 들이밀고 일본어 못한다고 했더니 뭔가 복사하고 그러다가 한글로 인쇄된 종이를 주고 끝. 이 날 바로 의료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2~3일 뒤에 집으로 서류가 오면 그걸 가지고 다시 구약소에 가서 보험에 가입하면서 보험료를 책정하는 식이다.
종이를 받아들고 아래로 내려가 10시 30분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와이파이가 잡혀서 인터넷 찔끔찔끔 하고 있는데... 잠시 후 와이파이가 죽는다. 신호가 안 잡힌다. 응?
멍 때리고 앉아 기다리다가 열 시 반이 조금 안 되어 안내해주는 분에게 갔다. 아까 와이파이 될 때 미리 번역기 돌려놓은 문장을 보여줬다. '한 시간 전에 전입 신고를 했는데 열 시 반에 다시 오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그랬더니 뭐라 뭐라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 이번에도 일본어 못한다고 하니까 급 당황. 뭔가 설명을 하기에 대충 눈치로 들었다. 27번이 크게 적힌 코팅 종이를 받아었는데 잠시 후 모니터에 27번 뜨면 내 차례란다. 아... 2층에 가서 보험 일 마치고 나면 바로 안내하는 분께 갈 것을... 괜히 30분 낭비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모니터에 27번이 떴다. 쫄랑쫄랑 가니까 재류 카드를 주고 서류 뭉치를 하나 준다. 주민표도 하나 뽑아주고. 재류 카드 뒤에 주소를 쓰는데 인쇄된 게 아니라 손으로 쓴 글씨다. 주민 등록증 처음 만들 때 기억이 나는고만. ㅋㅋㅋ
그렇게 전입 신고가 끝났다!!! 미취학 아동 수준의 일본어로 일본에 유학 와서 전입 신고까지 무리 없이 끝냈다. 스스로가 기특하다. 나 정도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깨가 한없이 올라간다. 양키들이랑 일할 때에도 단어 하나 간신히 알아듣고 리액션하고 대꾸 했는데 양키들이 쟤는 영어 할 줄 안다고 떠들고 다녀서 죄다 나한테 와서 불라불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일본어도 그렇게 눈치로 적당히 듣고 버티는 중이다. ㅋㅋㅋ
전입 신고 마치고 주민표 뽑았으니 이제 손전화 개통하러 간다!!!
'각종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인 페이 충전하기 (서비스 정책 위배로 이용 제한... 해제한 이야기) (13) | 2018.10.03 |
---|---|
일본의 국민 건강 보험에 가입하기 (0) | 2018.09.29 |
한국 카드로 일본에서 예금 인출한 이야기 (2) | 2018.09.28 |
일본에서의 살림 장만 (0) | 2018.09.26 |
손전화 개통한 이야기 (0) | 2018.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