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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나는~ 행복한 사람~

by 스틸러스 2018.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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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내가 존경하는 선배


 B: A 선배의 부인


 C: 여직원


C는 한 때 사무실 권력을 휘어잡고 있던 이에게 수시로 성추행 당했던 사람.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겠지만 당시 성추행을 저질렀던 사람 역시 '그게 왜 성추행이냐', '나는 그런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니다', 뭐 그런 식으로 말하겠지. 아무튼.

A 선배는 유달리 정의감에 불타는 남자. 우연히 C의 이야기를 듣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서서 여러 차례 C가 곤란에 처할 뻔한 상황에서 구해주고 부지런히 여론 조성해서 부당한 일 안 생기도록 노력했더랬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C가 A 선배와 그 부인인 B를 까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진급 발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C는 본인이 B보다 먼저 진급할 거라 생각한 모양. 경쟁자인 B를 까야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는지 여기저기에서 그렇게 까고 다녔다네.




진급 순서는 B > 나 > C 이렇게. 본인이 유별나게 근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자인 B나 내가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본인이 먼저 한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다. 주위에서 바람을 엄청 넣은 모양.


그냥 직장 동료인데 먼저 진급하고 싶은 욕심에 그랬나보다 해도 사실은 좀 얄밉고 짜증날텐데, C는 A 선배에게 신세를 여러 번 진 적이 있는 사람. 그런데 고작 진급 1, 2년 빨리 하겠다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결과적으로 B가 진급했고 C는 미끄러졌다. 다들 당연하다 생각했고. 다음은 나인데, 나는 진급 앞 둔 시즌에 유학을 선택하면서 진급 대상자에서 제외. 그리하여 올해 C가 진급했다. 순서대로 하는 진급이니 당연한 건데 선배는 그마저도 짜증나는 모양인지 울분을 토한다. 하긴,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람이니.





진급 소식을 듣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워야 하는데 그런 게 1도 없었다. 그저 아무 느낌 없었다. '아... 이제는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정도로 내가 거리감을 느끼고 있고나' 싶어 희한하게 느껴졌다.


15년 넘게 다닌 회사라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고, 직장에서의 위치도 적당한지라 회사 다니는 게 그닥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국 사람 때문에 힘든 거거든. 나 같은 경우 한동안 잘 지내다가, 쓰레기만도 못한 AH 77I, 벌레만도 못한 AH 77I 랑 동시에 일하게 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그걸 참고 버텼다면 올해 진급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 사람 하나 치고 쇠고랑 찼을 가능성이 더 높다. 진급을 포기하고 유학을 선택해서 만날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지만, 나는 지금이 몹시 행복하다. 하고 싶은 공부하고, 원하던 일본에서의 생활을 하는데다,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으니까.

불과 3개월 만에 회사 생활 따위 깨끗하게 잊을 정도로 즐겁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금전적인 문제만 없다면, 누가 한 달에 300만원씩만 준다면 일본에 아예 눌러 앉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시간이 지나면 이 시기가 몹시 그리워지겠지. 그러니까 좀 더 즐겨야겠다고 생각한다. 유학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갈 날이 분명 오겠지. 그 때에는 또 그 때대로 즐겁게 살아야지. 지금은 마음을 넓히고 날카롭던 내가, 가시를 품고 있던 내가, 좀 더 말랑말랑해지는 시간이다.




진급 소식 듣고 나니, 나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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