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장일기

2019년 06월 11일 화요일 흐림 (온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by 스틸러스 2019. 6. 11.
반응형

지금 우리 반은 다들 나서는 걸 꺼려하는 분위기라 대표를 뽑는다던가 하는 게 어렵다.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을 누군가 맡아 하게 되면 최대한 돕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뭘 해달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하는 편. 체육 대회 때 가능한 종목에 동그라미 쳐달라고 하기에 '여러 개 체크하면 그 중에서 몇 개 추리는 모양이다.' 라 생각하고 달리는 거 빼고 다 체크했더니, 체크한 종목 전부 나가야 된단다. -ㅅ-



체육 대회라 하기 민망한 대회가 진행된 장소. 배구 대회를 했던 곳과는 다른 곳이다.



날이 좀 쌀쌀할 때에는 눈 뜨면 일곱 시였다. 알람 같은 걸 맞추지 않아도 항상 그랬다. 지금은 눈 뜨면 다섯 시 반이다. 그대로 일어나기에도, 다시 자기에도 애매한 시각이다. 그대로 일어나면 하루종일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다시 자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래봐야 한 시간 정도 간신히 잘까 말까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눈 뜨니 다섯 시 반이었고 혹시 몰라서 알람을 맞춰놓고 다시 누웠지만 한참을 뒤척거리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다.
어제 저녁에도 그러더니 자꾸 기침이 나와서 '감기인가?' 싶어 뜨거운 물에 녹여 먹는 감기약을 하나 먹었다. 약 먹느라고 커피는 건너 뛰었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오늘 시험 볼 한자를 외우려고 하는데, 알고 있는 게 절반 이상이라서 나도 모르게 여유를 부리게 된다. 느긋하게 외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더니 미친 듯 쏟아지는 잠.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턱을 괸 채 잠이 들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언제나처럼 맥도날드에 갔다. 라인 쿠폰을 검색해보니 660円짜리 데리야키 치킨 버거 세트를 110円 할인해주는 쿠폰이 있다. 그 쿠폰을 보여주면서 이거 쓸 수 있냐니까 당연히 쓸 수 있다고 한다. 점심 시간마다 맥도날드에 갔더니 이제는 직원들 대부분이 낯익다. ㅋ



오후에는 선택 과목 수업. 주둥이만 열면 Fuck, Fuck 해대는 양키 ㅺ는 오늘도 어김없이 떠든다. 정말이지, 닥치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순둥이 모토조노 선생님 봐서 참았다, 진짜.

쉬는 시간에 모토조노 선생님이 내 종아리 얘기 또 하고... ㅋㅋㅋ   회식하고 바로 돌아갔냐고, 더 마셨냐고 물어보고... ㅋㅋㅋ


선생님 없어서 더 못 마셨다고 하려 했는데 입에서 안 뱉어진다. 아직 한~ 참 멀었다, 내 일본어는. 하긴, 방학 빼고 실제로 공부한 시간만 따지면 6개월 밖에 안 되는데 내가 천재도 아니고.


수업 마치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짧은 시간 동안 흥건하게 젖은 옷을 벗어놓고, 선풍기로 땀을 식혔다. 그러면서 태블릿으로 게임 한 판 하고, 옷 갈아입은 뒤 가방 싸들고 나갔다. 그동안은 '집에 들러 옷만 갈아 입고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못 갔는데 오늘 드디어 약해 빠진 의지에 채찍질해서 교류 센터로 가게 됐다. 학교에 가지고 갔던 책들 싹 빼내고 공부할 책만 챙겼는데도 무겁다. 교류 센터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바람이 엄청 강하게 불어서 시원하긴 했지만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땀 흘리는 게 너무 싫어서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계속 머리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종종종종 걷게 된다. 걷는 속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탄산 음료가 땡기기에 밖에 있는 자판기에서 콜라를 하나 뽑았다. 160円인데 거스름 돈 꺼내려고 손가락을 넣었더니 뭔가 많이 잡힌다. 꺼내어 보니 60円. 누가 20円 두고 간 모양이다. ㅋ
안으로 들어가니 신문 읽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 밖에 안 계신다. 맞은 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마사미 님이 앞으로는 번역기 쓰지 말고 일본어로 대화하자고 하셔서 일본어로 메시지 보냈다. 사전으로 검색하랴, 문법 맞나 확인하랴, 정신이 없다. 그렇게 이번 주에 오카야마 가는 걸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신문 보던 아주머니는 금방 나가셨고, 광활한 책상에 나 혼자 앉아 있었는데 초딩 네 마리가 오더니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외국인이라서 망설여졌나보다.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자기들끼리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내 옆 쪽으로 자리 잡는다.

초딩들이 자리 잡고 앉은 지 얼마 안 되어 카운터에서 상담하는 아주머니가 엄청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전화로 상담해주는 게 그 분들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모양인지 초딩 네 마리가 광역 도발을 시작한다. 미친 듯 처 떠든다. 초정리에서 광천수 솟아 오르듯 짜증이 샘 솟아 오른다. 아오.
오늘 아침에 학교 가면서 '초딩이나 신문 빌런이 설쳐도 짜증내지 말자!' 고 다짐했었더랬다. 하지만...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현실은 확실히 다르다. 화내지 말자고 한들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시끄러우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는 분도 계시지만 오늘 일하는 분들은 전부 애들 떠드는 것에 그닥 신경 쓰지 않는 타입. 도서관 같으면 조용히 하라고 하겠지만 교류 센터에서는 그러기도 어렵다. 더구나 나는 외국인이고 떠드는 것들은 자국의 미래, 희망, 꿈인 어린이 아닌가. ㅽ

상담하는 분의 통화가 끝나자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또 떠들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서 처 떠들어라, 제발. 아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태블릿을 꺼냈다. 그리고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지금 이 일기다.). '분노의 타이핑을 보고 좀 닥쳐주지 않으련?' 하는 마음이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떠든다. 옘병.


잠시 후 초글링들이 짐 싸들고 사라졌다. 다시금 찾아온 마음의 평화. 이 때다 싶어 내일 수업할 내용을 잽싸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삘 받아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른 초글링 두 마리가 와서 또 떠든다. 아오, ㅽ! 근처에 해처리 멀티라도 펼쳐졌냐. 신문 빌런이 없으니까 초글링들이 떼로 난리고만.

적당히 예습했다 싶어 JLPT N4 책을 꺼내어들었다. 지난 해에 구입해서 들고 온 건데 아직 새 책이다. 오늘 간신히 두 페이지 풀었다.



시계를 보니 18시 하고도 30분. 16시 조금 안 되어 교류 센터에 도착했으니까 두 시간 반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슬슬 돌아가야 한다. 이란과의 평가전을 봐야 하니까. 하지만 공부를 너무 조금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평소에는 '빨리 돌아가고 싶다!' 는 마음이 간절한데 오늘은 '조금 더 할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밖에 나가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어제 저녁부터 계속 오늘 비 오는지 확인했는데 확률이 50% 이상이었다. 날씨 어플 두 개가 모두 그랬다. 인공 지능 스피커도 비 올 지 모른다 했고. 그래서 하루종일 우산 들고 다녔는데... 결과적으로 안 왔다.

집에 도착해서 옷 벗어 세탁기 돌리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샤워를 했다(원래 샤워는 5분 이내에 하는 거랬다. -ㅅ-). 그리고 나서 비빔면 세 봉다리 까서 게 눈 감추듯 먹어버린 후 빨래를 널었다.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비 온다는 예보인데 일단 지금의 하늘로 봐서는 안 올 것 같다. 내일 아침까지만 안 오면 된다. 지금 바람이 꽤 부는 걸 보니 내일 학교 가기 전까지는 빨래 다 마를 거다. 꼭두새벽에 갑자기 비 내리는 불상사만 없다면 오늘 세탁기에서 고문 당한 빨랫감들이 다시 세탁기로 들어가야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다.



내일이 봄 학기 마지막 수업이다. 모레 오후에 테스트를 보면 일주일 짜리 짧은 방학. 우리 반에서는 J양이 유학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옆 반에서는 E양이 대만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올 해 1월 학기에 왔으니까 6개월이 채 안 됐는데 돌아가는 거다. 원래 그 정도만 계획하고 온 것인지, 지쳐서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 말 들어보니 최근 제대로 공부도 안 하고 힘들다고 했다 그러던데.
한국어 배운 적이 있다며 첫 만남에서 한국어 몇 마디 하던, 인상이 참 좋은 친구였다. 같이 밥이라도 한 끼 먹었어야 했는데 돌아간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네. 낮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두 시간 지나 답장 오고, 그 뒤로 언제 돌아가냐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씹고 있다. -ㅅ-

사람 앞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J양도, E양도. 내일 오다가다 만나게 된다면,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고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나이 먹으니 이렇게 된다.



처음 일본에 올 때까지만 해도 아직 한참 남았다 싶었는데, 시나브로 시간이 흘러 어느 덧 1년을 향해 가고 있다. 인사 담당자는 연장이 안 될 지도 모른다는 개소리를 하고 있지만 나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무조건 연장될 거라 믿고 있다. 아무튼, 부지런히 공부해서 1년 지날 무렵부터는 학교 밖의 여러 사람도 만나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었음 좋겠다.

마사미 님이 이번에는 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어중간하게 대답했다가 마사미 님에게 서울 ↔ 부산 거리를 운전하게끔 한 게 얼마 전인지라, 이번에는 오카야마 근처로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네 가지 중 하나를 고르라 하시기에 와인 공장에 가보고 싶다 했다. 기린 맥주 공장은 지난 번에 다녀왔었는데 와인 공장도 있는 모양이다. 나카모토 선생님이 와인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한 병 사들고 가서 선물로 드려야지. ㅋ


집에 와서 VPN 켜고 KBS 홈페이지 통해 축구 보는데 계속 끊긴다. 답답할 정도로 끊긴다. 망할 집구석의 인터넷 속도를 측정해보면 10Mbps도 안 나온다. 5Mbps 간신히 넘어간다. 인천 공항에서 500Mbps 가까이 나오던 걸 생각하면 정말 짜증나는 수준이다. 처음에는 인터넷 따로 신청 안 해도 된다고 좋아했는데, 속도 보면 속이 터질 것 같다. 차라리 돈 내고 빠른 인터넷 쓰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 말 나온 김에 한 번 알아볼까?

A 대표팀 경기 보다는 새벽에 있을 U-20 4강전이 더 기대 된다. 그거 보려면 일찍 자야 한다. 일기 다 썼으니 바로 퍼질러 자야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