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노는 날이 되면 늦잠도 자고 하느라 평소보다 더 잔다는데, 나는 '지금 못 자도 나중에 잘 수 있다' 는 생각으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고는 정작 낮잠 같은 건 자지 않는 바람에 평소보다 잠이 부족해진다. 오늘도 마찬가지. 새벽에 깨서는 태블릿으로 유튜브 영상을 한 시간 정도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고 일곱 시도 되기 전에 또 깼다.
문제 1 ) 새벽 몇 시에 깼을까요?
① 2:00 ~ 2:30
② 3:00 ~ 3:30
③ 4:00 ~ 4:30
④ 5:00 ~ 5:30
⑤ 6:00 ~ 6:30
딱히 할 게 없지만 당연하다는 듯 컴퓨터 앞에 자리 잡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배가 고파서 라면 하나 먹어 치우고 또 빈둥빈둥. 바깥 날씨가 엄청 좋은 것 같아서 문을 열고 확인해봤더니 최근 들어 가장 좋은 날씨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집에서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디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은 어제, 여행 비용이 30만원 정도로 예상되어 바로 포기했던 '이네 후나야' 에 갈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30만원이나 드는 이유는 숙박할 수 있는 곳이 료칸 뿐이었기 때문인데,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유스 호스텔을 이용하면 비용이 ⅓ 정도로 확~ 줄어든다. 저 유스 호스텔이 3월부터 이용객을 받는다고 했기 때문에 1월에는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는데, 어느덧 3월이 되어버렸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메일을 통해 예약하는 시스템인지라 금요일에 숙박 가능하냐고 써서 보내고 아침에 답장을 확인하니, 누군가 이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숙박할 수 있다고 한다. 금요일에 이용하겠다는 사람은 나 뿐이라서 안 된단다. 이게 뭔...
이네까지 가려면 교토에서 아홉 시 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메일 확인한 게 열 시 무렵이니 어차피 못 간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도 갈 수 있긴 한데, 이미 시간을 많이 까먹었으니 다음으로 미루는 게 낫겠다 싶더라. 가까운 곳 중 갈만한 곳이 있을까 싶어 검색하다가, 수업 중에 선생님이 소개해준 곳이 떠올랐다. 월요일 오후에 두 시간만 수업해주시는 젊은 선생님이신데 수업 중에 본인이 사는 곳에 대해 농담 섞어 몇 마디 하신 적이 있거든. 거기가 떠올라서 검색을 해봤다.
다카라즈카 가는 쪽이네. ㅋ 어떻게 가는지 대략 파악하고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씻은 뒤 집을 나섰다.
날씨가 정말 좋다. 요 며칠 엄청나게 불어대던 바람도 잠잠해져서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씨가 되었다.
집 앞의 유치원? 어린이 집? 아무튼, 오늘 졸업식이 있는 모양이더라. 맞은 편의 학교는 며칠 전에 이미 졸업식을 한 것 같고.
텐노지駅까지 간 뒤 미도스지線을 타고 출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맨~ 뒷 칸으로 갔다.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고. 하긴,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난바와 우메다를 다 지나가는 게 미도스지線이니까. 잠시 후 우메다에 도착. 우메다는 처음 오사카 왔을 때, 그러니까 2014년에만 가보고 그 뒤로는 한 번도 안 갔던 것 같다. 오랜만에 왔는데도 여전히 북적북적. 거기에다 더럽게 복잡하기까지.
그 선생님은 날마다 우메다를 거쳐 출근한다는 건데...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출퇴근 거리나 시간이 길어지면 엄청나게 짜증내는 사람이거든. 신도림 쯤은 우스운 수준의 우메다를 거쳐 출근하고 퇴근하다니. 역시 직장인의 삶은 힘들고만(그러는 나도 1년 6개월 뒤에는 도로 직장인. 제기랄!).
한큐線을 타야 해서 그 쪽으로 갔다. 헤매지 않고 한 번에 가기는 했는데, 몇 번 플랫폼에서 타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4번인지, 5번인지, 6번인지. 구글에서 검색한 것과 같은 시각에 출발하는 열차가 4번(응? 5번이었던가? -_ㅡ;;;) 플랫폼에서 출발한다고 표시되어 있었기에 올라갔더니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빈 자리에 앉자마자 출발. 평일 낮이라 한가하다 싶었는데 두 정거장인가 지나니까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 탄다. 그리고 금방 또 쭈우욱~ 빠진다. 전반적으로 한산하다. 좀 전에 우메다의 북적거림이 거짓말 같다.
이케다駅에서 내렸다. 개찰구 밖으로 나가니 출구가 오른쪽, 왼쪽으로 갈리는데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1도 모르겠다. 이정표에 사츠키야마 동물원에 대한 안내는 없더라고. 느낌이 딱 왼쪽이라서 그 쪽으로 나갔다. 뭔 육교 같은 곳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혹시라도 이케다駅에서 내려 사츠키야마 동물원으로 가실 분이 계시다면, 왼쪽 출구로 나간 뒤 육교 같이 생긴 길로 도로를 건너시고요. 계단 내려가면 아케이드 시장이 나올 겁니다. 그 시장 따라 쭈욱~ 걸어 올라가시면 시장 끝에 동물원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거 보고 자그마한 마을 길 따라 가시면 됩니다. 시장 구경도 하고, 이 쪽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반듯하게 쭉~ 뻗은 길을 천천히 걷는다. 날씨가 좋은 날은 그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름 모를 절도 나오고.
저 멀리 뭔 다리 같은 게 보여서 잽싸게 찍고.
구글 지도가 또! 이상한 길로 안내를 한다. 미심쩍지만 구글 지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정말 이 길이 맞나? 동물원이 있다고?
음... 맞고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정문은 아닌 것 같다. 뒷문이나 옆문 같은데. 구글은 어찌해서 이런 길로 안내를 해줬을꼬.
물이 전혀 흐르지 않고 있어서 아쉬웠다. 여름에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줄줄줄 흐르고 있으면 더 멋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계단 끝에 보이는 쪽문.
응? 한자로 쓰면 五月山? '5월이면 고가츠(ごがつ) 아닌가?' 라 생각했는데, 음력 5월을 사츠키(さつき)라 한다네.
검은 기둥 뒤에 가려진 양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저 기둥을 열심히 핥고 있었다. 카메라 들이대니까 안 그랬던 척 하는 거 보소.
슬슬 더워지는데, 저 털가죽 걸치고 있으면 얼마나 힘들까. 동물원에서 털 깎아주기도 하나 싶었다.
다들 이름이 있는가보더라. 사육사는 그냥 딱 봐도 얘가 얘고 쟤가 쟤고, 다 아시겠지.
이 동네 벤치는 다 이런 녀석이 붙어 있더라고. 뭔가 싶어 봤더니 카피바라인 모양이다. 역 근처 벤치도 이렇게 생겼었더랬지.
짧은 공간을 어슬렁거리며 빙글빙글 돌기에 갇혀 있는 스트레스 때문에 저렇게 됐나(정형 행동이라 그러던가?) 싶었는데...
└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 먹기 시작. 여기 동물들, 카메라 들이대면 하던 짓을 안 하는 스킬이 있다.
아... 식사 중이신 걸 촬영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뒤태가 드러난 사진이 될 줄은... -_ㅡ;;;
사진 찍고 있으니 뭐라도 줄거라 생각하고 다가와서 입맛 다시던 녀석. 나 먹고 살기도 힘들다, 임마. -ㅅ-
훗... 이제 이 정도 일본어는 해석이 가능하신 몸이다. ㅋㅋㅋ (また来てねまってるよ: 또 와요)
하루에 담배 한 갑씩 피우면서 안 씻고 건들거리는 동네 형인 줄 알았다. 알파카란다. 진짜, 엄청 건들거리면서 서 있었다.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타는 체험이 가능한 곳이었는데, 아무도 하고 있지 않았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모양.
하지 말라는 건 직접 그려서 붙여 놨다. 애들이야 몰라서 실수한다지만 알고도 하지 말라는 짓 하는 나이 먹은 것들이 문제지.
참새 한 분이 얌전히 앉아 대가리만 이리저리 돌려대고 있기에 줌으로 당겨 찍었는데 카리스마 있게 잘 나왔다. ㅋㅋㅋ
뭔 계단이 있어서 올라갔더니 주차장이 나오더라. 사진 찍으려고 일부러 올라간 척 하며 넓~ 게 한 장 찍고 다시 내려갔다.
오리지널 사이즈(?)의 말은 아니고, 조랑말? 뭐, 그런 품종. 내가 지나갈 때 똥이라도 발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잽싸게 지나갔다.
정말 작디 작은 동물원이어서 구경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관람객도 대부분 어린 아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가파르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제법 계단다운(?)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일본은 어디를 가도 집 앞을 꽃으로 꾸미는 곳이 대부분이라서, 그냥 동네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걷다 보니 시장이 나온다.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을 했다.
시장에는 오래된 장난감 가게도 보이고, 이래저래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이라도 좀 찍고 싶었지만 쪽 팔려서... 이렇게 못 하고 지나쳐버리면 두고 두고 후회가 된다. ㅠ_ㅠ
근처에 갈만한 곳이 없나 싶어 지도를 보니, 라면 박물관이 근처에 있다. 걸어서 금방이다.
가로로 긴 건물에 컵라면 박물관이라고 영어로 박혀 있다. 저 동상은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안도 모모후쿠.
관람 시간은 09:30 ~ 16:30. 화요일은 쉬는 날이다. 입장료는... 무료!
└ 입장료가 무료인 곳에 대해서 사전에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입장료 안 내는 곳은 반드시 중국인 단체 관람객이 있다는 것!!!
└ 가이드 포함한 관광 상품을 만들 때 한 푼이라도 더 남겨 먹기 위해 입장료 안 내는 곳을 꾸역꾸역 끼워넣는다.
온갖 종료의 라면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는 반대 쪽으로 들어가서 이 쪽 벽을 보면서 나와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다녔다. -ㅅ-
응? 형이 여기서 왜 나와?
일본에 와서 지금까지 각각 100개 정도는 먹은 것 같은, 내 생존 필수템. 진짜 저 두 개를 가장 많이 먹은 것 같다.
닛신 치킨 라면의 마스코트인데 사진 액자 때문에 다 가려졌네. 그나저나... 생각해보면 이거 좀 잔인하지 않냐?
└ 이 안에 제가 죽어 잘린 채 들어 있답니다, 뭐 이런 거잖아? 삼겹살 집에 돼지가 웃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
만푸쿠. 우리 식으로 읽으면 만복이 되는데, 안도 모모후쿠에 대한 이야기를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송 중에 있다.
└ 아침에 15분씩 하는 드라마라서 학교에 갈 준비하면서 보고 있다. 은근히 재미있다. 전개도 상당히 빠르고.
└ 점점 안도 모모후쿠(극 중에서는 만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위주로 흘러가지만 처음에는 여주인공 위주였다.
지난 해 10월 1일부터 시작, 올해 3월 30일인가 31일인가에 끝난다. 끝나고 나면 스페셜 방송 하고 어쩌고 할 게 분명하다. ㅋ
밖으로 나와 건물 다 나오도록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이케다 역으로 향했다.
라면 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 그래서 중국인 단체 관람객이 자주 온다. 막대기 위에 요상한 인형 달고 다니는 가이드가 중국인 떼를 우르르~ 몰고 다닌다. 라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직접 인스턴트 라면을 만드는 거다. 준비된 컵에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써서 자기만의 포장을 할 수 있고, 라면 역시 원하는대로 토핑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든 라면은 밀봉한 뒤 에어백에 넣어 가지고 갈 수 있다. 줄이 엄청난데다 만들어봐야 들고 다니기 번거로우니까 시도할 생각조차 안 했다. 은근히 서양 애들도 많이 오더라.
다시 이케다 역으로 가서야 알게 되었는데, 역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라면 박물관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아무튼... 이케다는 자그마한 마을이고, 관광 시설이 많지 않아서 따로 시간을 내 구경 갈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여유가 있다면, 라면 박물관도 볼 겸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나는 워낙 아는 것 없이 가서 대충 보고 말았는데, 좀 더 알아보고 동선을 제대로 짜서 나중에 한 번 더 다녀올까 생각 중이다.
내일은 아침 일찍 사카이 쪽으로 가서 구경을 할까 했는데, 느닷없이 G군에게 농구하자는 연락이 왔다. 시간은 언제가 좋겠냐고 투표 만들어서 툭 올려놓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다. 뭐여. 내일 농구 하자는 거여, 말자는 거여. 일기 다 쓰고 한 번 물어봐야겠다.
집에 돌아오다가 편의점에 들러 군것질거리 잔뜩 사들고 왔다. 오늘도 맥주 일 잔 하고 자야겠다.
'포장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년 03월 18일 월요일 맑음 (클래스 멘토 테스트 / 겨울 학기 종료 / 오사카 성) (0) | 2019.03.18 |
---|---|
2019년 03월 16일 토요일 흐림 (NKS-405에서 친구들과 농구) (0) | 2019.03.16 |
2019년 03월 14일 목요일 맑음 (기말 테스트 / 학기 종료) (0) | 2019.03.14 |
2019년 03월 13일 수요일 맑음 (엄청난 바람 / 지진 / 수업 끝!) (0) | 2019.03.13 |
2019년 03월 12일 화요일 흐림 (17과 테스트 / 정신 놓고 보낸 하루) (0) | 2019.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