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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잡다

오늘의 개소리

by 스틸러스 2019.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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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 일본 맥주를 주로 마셨다. 최애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였고, 그 다음이 아사히나 기린. 편의점에서 네 캔에 10,000원 이벤트를 하니까 국산 맥주 가격과 차이가 거의 없기도 했고, 하이트나 카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일본에 오고 나서 한일 관계가 엉망이 된 후 나름 불매에 동참하겠다고 다른 맥주를 알아봤는데, 일본에서는 자국 맥주가 잘 나가니까 그런가 몰라도 버드와이저나 하이네켄 같은 수입 맥주 사는 게 더 힘들더라.


https://www.ytn.co.kr/_cs/_ln_0104_201911281906000510_005.html

YTN 기사다. 지난 해 10월에 86억원 어치의 일본 맥주를 수입했었는데 올 해 10월에는 0원이란다. 아예 수입을 안 했다는 얘기다. 수입해놓은 걸 풀어놔도 안 팔린다는 거지.



토요타, 혼다 등에서 이런저런 파격적인 할인을 내세우자 판매량이 회복되었다라던가, 유니클로에서 히트택 무료로 뿌린다니까 줄 서서 기다리고 난리였다는 기사가 있었더랬다. 거기에 개, 돼지 운운하며 하늘 보고 침 뱉기 바빴지.



차 살 때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결정에 관여한다.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성능 위주로 따지는 사람도 있고, 어떤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는 사람도 있다. 가격? 굉장히 중요하다. 차가 1~200만원 하는 게 아니니까.


사회 초년생이 2,000만원 정도 하는 차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전역한 후 복학해서 고생 끝에 졸업하고 가까스로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집에서 회사까지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 주위에서는 중고 차 사는 걸 말린다. 수중에 2,000만원이 있을 리 없지. 오히려 대학 등록금 낸다고 학자금 대출 받은 게 있어서 월급 받으면 빚 갚을 일부터 생각해야 할 판이다. 여기저기 돈 나갈 일이 차고 넘치니 차는 60개월 할부로 하자. 2000 ÷ 60 = 33.3 만원이 된다. 이자가 한 푼도 없을 경우다. 할부 이자가 5%라고 한다면 한 달에 35만원이 꼬박꼬박 나간다.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되지, 꼬박꼬박 월세 내야지, 전기랑 가스 & 수도 요금 내야지, 인터넷이랑 손전화 사용 요금도 내야지,... 월급은 통장을 스치운다. 그런 와중에 할부 이자를 없애 준다고 하거나, 100만원 할인해준다고 한다면? 혹~ 하지 않을까?


좀 더 비싼 중형 차나 대형 차의 경우는 이런저런 혜택의 폭이 더 크다. 그럴 경우 더욱 더 고민이 되겠지.


일본 메이커가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고 해서 갑자기 일본 차로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디자인이나 가격,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 등 여러 요소를 따졌을 때 후보 군에 든 차들을 추려내고 추려낸 끝에 남은 차가 일본 차일 거다.


나 같은 경우 세단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조건 해치백이다. 남들이 드림카로 페라리, 포르쉐를 언급할 때, 나는 골프를 이야기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나를 거쳐 간 차가 세 대인데 웨건 - 해치백 - 해치백이었다. 그런 내가 차를 새로 사려 한다고 치자. 개뿔 가진 것 없이 재직 증명서 하나로 은행과 노예 계약을 하면 만져볼 수 없는 돈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드림카인 골프도 현실에서 몰 수 있다. 여러가지를 따져본 끝에 폭스바겐 골프 / 푸조 308 / 현대 i30 / 토요타 코롤라 해치백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일본 차를 사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코롤라를 지우려는 찰라, 무이자에 현금 ○백 만원 상당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단 칼에 무 썰 듯 쳐낼 수 있을까?



맥주는 그게 가능하다. 대체제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편의점 냉장고를 보면 맥주가 수십 종이다. 아직 마셔보지 못한 맥주도 수두룩하다. 여행은?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거리도 가깝고 비슷한 문화도 많은데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서 일본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불매 운동의 여파로 가는 게 눈치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일본 여행만 다니다가 갑자기 스위스로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만 일본을 대신해서 대만으로 가던가, 필리핀이나 태국으로 갈 수도 있다. 홍콩도 있고 싱가폴이나 말레이시아도 있다.


그런데 차는 그렇지 않다. 여러 가지 요소를 따지고 또 따져본 끝에 남은 게 일본 차인데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걸 내치는 건 쉽지 않은 거다. 차도 종류가 엄청나게 많지 않냐고? 주머니에 돈이 차고 넘치면 무슨 걱정이겠냐. 자기 사정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고려한 끝에 내린 결정인 거지. 거기에다 한 번 마시고 땡인 맥주와는 다르다. 몇 년, 어쩌면 십 년 넘도록 타고 다닐 수도 있는 게 차라는 물건인 거다.


유니클로 히트텍은 아니지 않냐고? 쌍방울 매리야스 있지 않냐고?


공짜에 혹하는 건 자낳괴들에게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거다. 공짜로 준다는데 그걸 마다하고 돈 쓴다고? 투철한 애국심으로? 글쎄.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 유혹을 이겨내고 신념을 지켜내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칭찬 받아야 하는 거지, 그렇지 않은 다수의 보통 사람이 비난 받을 필요가 없는 거다.


나는 히트텍의 효과를 그다지 믿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고, 발열 내의가 필요할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공짜로 준다고 해도 줄 서가면서 받을 일이 없을 거다. 원래 내의 자체를 안 입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안 한다고 무작정 남을 까는 건 공감 능력 결여가 있다는 장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자란 녀석인 걸 대외에 공포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지.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대만 애들 보면서 특히 그런 생각이 더 든다. 한 때 아시아의 4대 용이라며 자뻑했던 네 개의 나라 중 세 개의 나라는 다 떨어져 나갔다.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1990년대에 이 네 개의 나라의 엄청난 성장률에 주목해서 그렇게 불렀더랬지. 21세기가 되고도 20년이 된 지금은 어떨까?


검색해보면 자세한 수치를 확인할 수 있을테니 대략적인 것만 언급하겠다. 대만이 약 5,900억 달러. 싱가폴과 홍콩이 3,640억 달러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1조를 훌~ 쩍 뛰어넘어 2조에 더 가까운 정도다. 21세기에 누구도 우리나라와 대만 or 싱가폴을 비교하지 않는다. 비교 대상이 안 되는 거다.


국민성도 있지만, 과거를 등한시하지 않으면서 모래알 같아 보여도 뭉칠 줄 아는 힘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고 부지런히 침 퉤퉤 뱉어가며 스스로 못 까내려 안달일 필요가 있을까? 물론 국뽕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무작정 내가 내 명치 친다고 객관적이고 쿨한 게 아니다. 쥐새끼나 닭대가리 같은 것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해내고 있다.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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