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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일기

2019년 10월 14일 월요일 흐림 (태풍은 지나가고 / 주절주절)

by 스틸러스 201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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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래 보기 드문 최강의 태풍이라는 하기비스가 지나갔다. 이미 금요일부터 재난 주관 방송사인 NHK는 하루종일 태풍과 관련된 뉴스를 내보냈고, 다른 방송사들도 화면 왼쪽과 아래에 태풍의 현재 위치와 각종 경보, 주의보 상황을 자막으로 띄우더라. 덕분에 메인 화면 크기가 작아졌다. 한국에서는 화면 하단에 흐르는 자막 형태로만 알렸던 것 같은데 본 방송의 크기를 줄여가면서까지 재해 정보 전달하는 게 신기하다면 신기. 그만큼 각종 자연 재해에 대비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이겠지.
  • 마트와 편의점의 먹거리, 마실거리가 동 났다는 뉴스도 나오던데 이걸 가지고 사재기 한다고 까는 사람도 있더만. 지진이나 태풍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어 물건이 채워지지 않고 1~2주일 지나는 걸 경험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렇게 한단다. 게다가 이번에 알게 됐는데, 일본 여기저기 자판기가 널려 있는 게 자연 재해 같은 비상 시에 그냥 꺼내어 먹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란다. 자연 재해에 대비해서 자판기가 많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부숴서 꺼내 먹거나 하는 건 아니라네? 아니, 그럼 지진 나서 간신히 몸만 빠져 나왔는데도 자판기에 동전 넣고 음료수 뽑아 마셔야 하는 건가? 나는 모든 버튼을 다 누른다던가 해서 급할 때에는 그냥 꺼내 먹고 지자체나 정부에서 보상해주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하면 잡혀가고. 하지만 그런 건 없는 듯.



  • 오사카는 태풍의 경로에서 비껴나 있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비가 오는 것 말고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때때로 강한 바람이 불긴 했지만 평소의 장마 때처럼 비가 오는 정도? '하루종일 비가 오는고나~' 하고 신기하게 여기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걸 본 게 처음도 아니고.
  • 하지만 도쿄 쪽은 피해가 큰 것 같다. 시즈오카나가노 쪽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난 듯. 아침에 NHK 뉴스를 보는데 자위대 헬기가 여기저기 훑고 다니고 방송사 카메라가 그걸 찍고 있더라고. 강이 범람해서 주택가를 덮친 곳에서 촬영하고 있었는데 헬기에 타고 있는 기자가 멘트 치는 도중에 스튜디오에서 말을 끊고 뭐라뭐라 하는 거라. 헬기 로터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는지 버퍼링이 좀 있긴 했는데, 결국 의사가 제대로 전달됐다. 화면에 나온 집의 2층에 사람이 있다는 거다.
    카메라가 스튜디오의 아나운서 말을 듣고 다시 집 쪽을 잡으니까 주택 2층에서 몇 사람이 서 있고 아주머니 한 분은 흰 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그 옆 집에도 사람이 있었고.



  •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니까 '그저 남의 일이다' 하고 마음 놓고 보는 거지, '저게 내 일이었다면...' 하고 생각하니까 등 뒤로 전기가 짜르르~ 흐르는 느낌. 처음에는 사망자 6명에 심정지 1명이라고 자막에 떴었는데 얼마 후 사망자 7명이라 뜨고 심정지에 대해서는 안 나오는 걸 보니 병원에서 돌아가신 모양. 내가 텔레비전 보면서 코 후비고 있는 동안에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 있고, 세상과의 끈을 놓는 사람이 있고나 싶어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 네×버가 일베 2중대가 된 지 오래지만, 버릇처럼 댓글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후회한다. '왜 이 딴 걸 봤나' 하고.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한 요즘이지만, 태풍이 일본으로 가서 다행이라는 둥, 더 강한 피해를 못 줘서 안타깝다는 둥, 저게 사람 새끼인가 싶은 댓글이 차고 넘친다. 하긴... 세월호 때부터 이미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들이 대놓고 처 싸돌아다니고 있으니. 인터넷에서야.



  • 아베 ㅺ를 중심으로 한 골 빈 일본 것들이 나대는 꼬라지는 나도 당연히 꼴 보기 싫고. 온갖 피해를 당한 선조들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는 것도 사실인데다. 그런 피해를 일으킨 일본 지도부를 만든 건 결국 정치에 무관심하다며 면죄부를 들려 하는 일반 국민들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한테 죽기를 바란다는 말을 해서야 되나' 라는 당연한 생각이 드는 거다. 고유정이나 이춘재 같은 사회 암적인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 마사미 님을 비롯해서 학교의 선생님들도 그렇고, 좋은 일본인만 만난 덕분인지 자연 재해와 관련된 뉴스에 험한 댓글 다는 것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쌀이 찌푸려진다. 반대로 한국의 재해에 일본인들이 악플 달면 발끈! 할 거면서. 역사적 피해자니까 역사적 가해자의 불행에 행복해해도 된다는 생각은 너무 1차원적 아닌가? 아무튼, 나는 되고 남은 안 되고는 개인적으로 정말 싫어하는 생각인지라 네일베의 댓글 꼬라지가 한심하기 그지 없다.



  • 태풍은 동쪽으로 갔지만 혹시 몰라서 토요일 내내 방구석을 굴러 다녔다. 일요일은 교류 센터에 가서 공부할 계획이었지만... 『 민더스트리 』 라는 게임 때문에 타임 슬립 당하고 말았다. 저거... 진짜 위험한 게임이다. 딱 한 판만, 딱 요것까지만, 했는데 반나절이 지나가 있다.



  • 안드로이드나 iOS용은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스팀에서는 6,000원 정도에 살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기부 형태로 원하는 금액을 내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데 나는 가난한 유학생이라 기부금 안 내고 공짜로 받았다. 염치가 없고만. (글 쓰면서 생각해보니 이미 6,000원 어치 이상의 즐거움은 얻고도 남았는데 너무 염치 없는 것 같아 돈 내고 와야겠다. -ㅅ-)
  • 아무튼. 시간이 되면 적들이 내 기지 쪽으로 공격하러 오고 그걸 막아내는 디펜스 게임이다. 보통의 디펜스 게임은 적을 물리치면 거기에 대한 보상이 나오고 그 보상으로 방어력을 키워서 점점 강해지는 적을 막아내는 형식인데, 이 게임은 전략 시뮬레이션 형태를 띄고 있다. 여러 자원을 채취해서 방어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이게 은근히 빠져들게 된다. 모바일은 조작하는 게 어려워서 적당히 하다가 그만뒀는데 PC로 하니까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마우스를 붙잡고 있게 된다.
  • 아무튼... 게임하다가 일요일을 다 까먹었다. 그리고 월요일. 한국의 직장인들에게는 괴로운 월요일이겠지만 일본은 체육의 날인가 뭔가라고 해서 공휴일 되시겠다. ㅋ



  • 토요일에 렌트카와 숙소 빌리는 걸 끝낼 계획이었지만 손도 못 댔기에 나름 걱정이 됐었나보다. 아이슬란드 여행과 관련한 꿈을 꾸는 바람에 깊게 자지 못했다. 대여섯 시간 자는 동안 너댓 번은 깬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태블릿 붙잡고 빈둥거리다가, 일기 쓰려고 컴퓨터를 켰다.





  • 나는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친절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사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사람이고. 물론 젊었을 때의 객기로 온갖 피해를 다 주고 산 과거가 있으니 생각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그나마 사람 같이 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친절과 배려가 몸의 중심에 떠억~ 하니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인 것이지. 훗.
  • 그런데 외부 사람들이 인식하는 나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억센 사람이다. 회사 다닐 때에야 그런가보다 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일단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이, 젊었을 때의 객기로 설치고 다니는 걸 본 경우다. 20대 초반, 중반에 나대고 다니는 걸 본 사람들이니까, 자기 경험이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라 평가하는 거지. 그 사람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거기에 뼈와 살을 덧대어 점점 더 흉폭하고 잔인한 나를 만들어주는 거고.
    그 외에는 일부 벌레나 쓰레기들 때문에 쌘 놈이 된 경우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벌레만도 못한, 쓰레기 같은 것들을 보게 된다. 문제는, 저런 것들과 자주 부딪치게 된다는 거다. 내 성격 상 피하는 게 상책인데 일로 만나면 피할 수도 없다. 몇 번 접어주고 져주지만 저런 것들은 상대가 그렇게 배려한다는 걸 알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참다 못한 내가 개질알을 하게 되고, 그걸 본 사람들이 '역시...' 라는 평가를 하게 되는 거다. 지금의 인사 담당자가 저런 것들 중 하나인데... 그동안 수 차례 참아왔지만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휴직 기간 연장을 위한 서류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게 이미 지난 주인데 감감무소식이다. 하긴, 7월에 보낸 톡을 10월에 읽는 ㄴ이니 오죽할까. 이제 더 이상 저 ㄴ한테 기대하지 않는다. 딱 그 따위 수준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제 수준에 걸맞는 행동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 아무튼, 지금은 회사라는 배경을 완전히 걷어낸 상태니까 그저 머리 까지고 배 나온 마흔 살 아저씨일 뿐. 그러니까 '학교에서의 평가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닌 모양이다. 여전히 좀 드센 캐릭터인 모양이다. 내가 나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지, 만날 쌘 캐릭터만 담당하다보니 쌔지고 만 건지.



  • 학교 생활하면서는 일단 나대지 말자가 모토다. 나이 먹고 나대면 진짜 추하거든. 그래서 수시로 나대고 싶은 본능이 치솟아오르지만 억누르고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모양. 게다가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꼰대 짓도 절대 하지 말자고 수백, 수천 번 다짐하는데 그것 역시 나도 모르게 발동이 될 때가 있다.
    고로! 한국 학생들과 어울릴 일을 최대한 만들지 않는다. 일본 말이 서투니까 다른 나라 애들하고 있으면 나대는 것도, 꼰대짓도, 하고 싶어도 못한다. ㅋㅋㅋ   한국에 있을 때에도 일본에 가면 한국 애들이랑 어울려서 우르르~ 다니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고, 젊은 애들 노는데 나이 든 아저씨가 끼어봐야 좋을 게 없다 싶기도 했고. 그렇게 자발적 아싸로 살고 있는데다 딱히 설쳐대는 것도 없는데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 신기함을 넘어 희한할 정도.
  • 게다가 이 학교에 온 뒤로 공부하는 학생의 이미지가 박혀 버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를 제외하면 40년 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금요일 수업에서도 조사 관련된 문제에서 W양과 M양이 헤매기에 아는대로 몇 마디 해줬더니 '사스가 주상' 이러던데, 그런 얘기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만 나 자신은 과대 평가 받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아니까 뭔가 뜨끔! 하다. 내가 같은 반의 다른 친구들보다 나은 실력이었으면 이미 월반했지 이러고 있을라고. ㅋ
  • 이틀이나 놀았으니까 오늘은 진짜 공부하러 가야 한다. 학교보다는 교류 센터에 가는 게 낫겠다 싶은데 혹시 쉬지는 않을까 싶어(지금까지 공휴일에 쉰 적이 한 번도 없는 교류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한다는 핑계도 덧대어 컴퓨터를 켠 거다. 이제 일기 다 썼고 확인도 마쳤으니 컴퓨터 끄고 씻으러 가야지.
  • 태풍 지나가고 나니 파~ 란 하늘이 보여서 날씨의 변화무쌍함에 조금 놀랐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엄청난 바람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놀라서 깼다. 지금은 그저 잔뜩 흐린 정도인데 비 온다는 예보가 있네. 우산도 챙겨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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