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자려고 당연하다는 듯이 전기 장판 코드를 꽂은 뒤 드러누웠다. 잠시 후 등이 뜨~ 뜻~ 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난 안 추운데 전기 장판 왜 켰지?'
굳이 안 켜도 되는 걸 왜 켰나 싶어 바로 코드 뽑았다.
최근 며칠, 잠 드는 게 쉽지 않아서 최강의 수면 유도 효과가 있다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자곤 했다. '우주(의) 끝을 찾아서'라는 영상인데, 소문만큼 안 자고 버티기 어려운 영상이다. 하지만 자기 전에 영상 보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아 안 보기로 했다. 로또 당첨 등의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가 곧 잠이 들었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잠도 덜 깨어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와중에 머리맡에 있는 태블릿으로 네이버 만화부터 봤다. 네이버 만화는 수요일에 올라오는 작품이 최고다. 만화 다 보고 나서 게임 찔끔 하다가 씻고 나갔다.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도 땀이 나지 않는다. 반 팔 티셔츠를 입은 덕분이다. 11월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반 팔 티셔츠. 긴 팔 입으면 낮에는 더워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이게 입동의 날씨라니. 일본 날씨도 미친 게 분명하다.
교실에 1등으로 도착. 화장실에서 휴지 조금 뜯어와 칠판 닦고 간단히 청소를 했다. 저녁에 교실 창문 닫고 전등, 에어컨/히터 끄는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 교실 청소는 날마다 안 하는 모양이다. 내 자리 근처에는 지우개 가루가 수북~ 하다. 빗자루 어디 있는지 알면 내가 쓸겠고만은.
오늘은 지난 주에 봤던 6과 시험의 결과가 까지는 날이다. 1교시에 한자 테스트하고, 2교시에 공부할 거 조금 하다가 시험지를 돌려 받았다. 87점. 보너스 점수 1점 더해봐야 88점. 선생님이 반 평균이 88점이랬는데, 간신히 반 평균에 걸쳤다. 1등이 96점? 지난 번에는 그래도 2등은 했는데 이번에는 반 평균에 딱 걸린 점수라니. 뭔가 굉장히 못 본 기분이다. 그나마도 선생님이 부분 점수 막 주고 그래서 저 점수지, 그렇잖으면 더 형편 없었을 거다. 수업할 때 칠판에 한글도 써주던 선생님인데 시험지에도 한글로 설명 써놨더라. 극강의 친절함이다.
생각해보니... 학교 다닐 때를 전부 따져봐도 국민학교 때를 제외하면 저런 점수를 받은 적이 없다. 보통은 저 점수의 반토막이 고작이었다. 반 평균 까먹는 거야 일도 아니었지. 중학교 때, 학기 시작 후 내리 세 번을 우리 반이 꼴지하는 바람에 반 평균 까먹는 사람만 쳐맞은 적이 있는데 그 때 혼자 대걸레 자루 몇~ 개를 부러먹도록 맞고 친구들 어깨에 걸쳐져 끌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ㅆㅂ
아무튼. 학창 시절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훌륭한 점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학교 다닐 때는 대부분 싫어하는 과목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라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국어랑 국사는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는데.
국어 공부 열심히 한 덕을 조금 보긴 한다. 일본어 공부할 때 문법적인 게 나오면 그럭저럭 쫓아가는 게 수월하다. 아무튼. 6과 시험 점수는 좀 실망스럽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6과에서 공부한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삽질했던 걸 떠올린다면, 느리긴 해도 나아지긴 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남들보다 '압도적인 강함' 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강함을 바탕으로 웃으며 압살' 하는 타입이다. 온라인 게임을 할 때에도 만렙까지 부지런히 키운 뒤 쪼렙들 노는 곳 가서 버스 뛰어주고 그랬다. 쪼렙들에게 "와~" 소리라도 들으면 쿨한 척 하면서 내심 좋아하고. ㅋ 지금의 수업 같은 경우도 JLPT N5 공부했던 게 바탕이 되어 그나마 좀 아는 척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슬슬 따라잡힌 것 같다. 아니, 추월 당한 것 같다. 나보다 한참 어린데 훨씬 잘 하는 애들도 많다.
나이 많다고 다 잘해야 할 필요도 없는 거고, 딱히 점수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마음만 그렇지 막상 욕심이 난다. 문제는, 욕심만 나고 공부하기는 싫다는 거. ㅋㅋㅋ
점심 시간에는 맥도날드까지 갔다가 그냥 왔다. 해피밀 세트 시켜서 슈퍼 마리오 장난감 모으는 건 포기했다. 모아봐야 한국 돌아갈 때 짐만 될 것 같아서. 교실에서 다른 애들 밥 먹는데 책 보고 있기도 애매해서 커피라도 사마시려고 간 건데 주문 받는 사람이 부족한지 줄이 엄청 길다. 바로 포기. 그냥 나왔다. 학교로 돌아가면서 편의점에서 커피라도 살까? 했지만 귀찮아서 통과. 결국 점심은 그냥 굶었다. 어제 이것저것 군것질 많이 한 덕분에 배 고프다는 생각은 안 든다.
수업 마치고 교실에 남아 공부 좀 하다 가려고 하는데... 거의 다 남는다. 땡~ 하면 집에 가는 두 명 정도만 칼 같이 교실을 빠져나가고 그 외에는 다 남은 듯. '대만 애들 틀림없이 떠들텐데 다른 교실에 가서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공부 시작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애들이 안 떠든다. 별 일 일세.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이 떠들기 시작하니까 덩달아 떠든다. 얘네들은 마치 누가 떠들어주기를 바라는 애들 같다. 한 명이 떠들기 시작하면 우~~~ 떠든다. 그래도 다른 날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하고 싶지만, 슬슬 배도 고파오고 해서 짐 꾸려 교실에서 나왔다.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로프트에 갔다. 지우개 사러.
지금까지 지우개 다 써서 없어진 적이 없다. 지우개가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없어진 적이 없다. 반도 못 쓰고 투척용 무기로 활용하거나 정신 건강을 위한 게임(지우개 따먹기)용으로 사용될 뿐이었지. 일본 유학 오기 전에 공부 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연필로 풀었던 구몬 학습지 지운다고 지우개 두 개 다 쓴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 쓰는 지우개도 멀쩡한데, 종이로 된 포장지가 벗겨져 없어지는 바람에 알몸(?)이 됐다. 그걸 필통에 그대로 넣고 다니니 필통 안의 모든 펜이 하얀 지우개 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더라. 지우개에 옷을 만들어 입힐까 했는데, 그러려면 접착제나 테이프 같은 게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귀찮으니까... 그냥 지우개를 새로 사기로 했다.
필기 도구 있는 쪽으로 가서 어렵잖게 지우개를 찾았다. 내가 사려는 건 펜 타임의 지우개. 샤프처럼 누르면 나오는 녀석이다. 역시, 있다. 디자인 끝내준다. 진짜 슬림하고 예쁘다. 하지만. 경험으로 안다. 저런 거 사봐야 바로 후회한다는 걸. 그걸 뻔히 알면서도 그걸 집어들었다.
가까스로 참아내어 그나마 조금 더 두껍고 투박하게 생긴 펜 타입 지우개 하나, 평범한 지우개 하나, 이렇게 두 개 계산했다.
집으로 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라면 샀다. 먹고 싶은 라면보다 ¥50 정도 싼 게 있어서 그냥 그걸로 샀다. 불과 500원 차이인데 그걸 마음대로 못 쓴다. 훗! 이렇게 아껴서 흥청망청 쓰는 거지.
하마터면 맥주 살 뻔 했다. 간신히 참았다. 이제 대충 알 것 같다. 이 망할 몸뚱어리, 맥주를 넣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게 이틀이다. 이틀 지나면 3일째 되는 날 강력하게 맥주를 넣어달라고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어쩐지. 수요일마다 술이 땡기더라니. 힘들게 참았다.
편의점에서 다섯 개 묶음으로 파는 즉석 밥도 발견했고, 마요네즈도 여러 종류 있는 걸 봤다. 사다 놓을만한 거 많더라. 주말에 날 잡아서 장 봐도 되겠다. 후쿠시마 쌀로 만든 밥 팔고 있겠지? -_ㅡ;;; 처음이자 마지막 먹는 건데 라면만 먹기 아쉬워서 교자도 하나 사들고 왔다. 집에 와서 바로 먹고, 커피도 일 잔 하고, 일기 쓰고 있다.
조금 전에 월급 들어온다고 메일 왔던데. 보너스도 없고 그 와중에 기여금은 꼬박꼬박 떼어가고, 매 달 뻔한 돈. 기대도 안 된다. 그래도 그 돈 덕분에 아르바이트 안 하고 가지고 온 돈 까먹으면서 살 수 있는 거니까. 감사하자.
야구 시작하면 야구 중계 켜놓고 공부 계속 하려고 한다. 야구야, 뭐. 아무 팀이나 이겨도 상관 없으니까 공부하는 데 지장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벌써 수요일이 지나갔다. 내일은 7과 테스트가 있다. 하루가 금방 지나갈 것 같다. 그리고 금요일이고. 금요일 지나면 주말. 토요일은 반 친구와 축구 보러 간다. 오늘 그 친구한테 부리람 FC 유니폼 비싸냐고, 사다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내일 물어봐야지.
야구할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슬슬 책상 앞에 앉든, 엎드리든, 공부할 자세를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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