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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일기

2020년 02월 10일 월요일 흐림 (大変なの...)

by 스틸러스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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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이 '우울증' 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우울증이 '1년 365일 우울한 증상' 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게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함이 찾아오는 병' 이 우울증이다. 우울함의 '유지' 가 아니라 '빈도' 가 문제라는 거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세상에 우울증 아닌 사람이 어디 있냐?' 라고 한다. 맞다. 그만큼 흔한 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정신은 건강하다고 믿으려 하기 때문에 우울증 환자임이 분명한데도 아니라고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 보통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부지런히 교차하고, 하루동안 겪는 일로 인하여 그 감정이 수시로 바뀐다. 그러나 우울증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우울함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거다. 예를 들어 정상인 상태에서는 그저 기분이 나쁘거나 짜증이 나는 걸로 끝나는 일도, 언짢음과 짜증에 이어 우울함이 오는 게 우울증이다. 보통 일주일에 우울함을 느끼는 일이 다섯 번 정도 된다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스무 번, 서른 번을 느끼게 되는 거다.

  • 고로, '우울증 걸렸다더니 낄낄거리고 잘 노네?' 라는 지적은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짓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해서 세상 만사가 우울하지는 않은 거다. '제기랄... 우울증에 걸려서 로또 1등이 됐는데 우울해.' 라거나 '최애 아이돌이 와서 백허그 해줬는데도 우울해.' 따위의 일은 없는 거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즐거울 때에는 즐거움을, 행복할 때에는 행복함을 느끼는 거다.
    증상의 무거움과 가벼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우울증이 우울함 외의 감정은 죄다 차단하는 걸로 아는 사람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라 불릴 정도로 흔한 병이다.

  • 우울증에 대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약물 치료가 가장 좋았다. 약을 먹으니 세상 만사 귀찮고,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방바닥으로 녹아 스며드는 기분이 들더라.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좋더라. 생각도 없어지고.
    그런데 저게 약의 부작용이란다. 사람마다 약이 미치는 영향이 달라서 똑같은 증상이더라도 약을 다르게 써야 한단다. 약을 바꾸고 나니 저렇게 질질 늘어지는 일은 없어졌다. 그럼 약물 치료 말고 좋은 방법은 뭐냐? 방구석에서 혼자 빈둥거리는 거다.

  •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일이 남보다 잦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면 그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를 히어로라 부르며 애타게 찾는 거다. 이런저런 사회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게 독재자의 등장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바탕으로 여러 부조리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거다. 그러나 권력은 타락하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한다. 타락하지 않는 독재자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뜬금없이 뭔 얘기인고 하니, 나 역시 우울해진 원인을 나 말고 다른 것으로부터 찾았다. 그 원인이 학교에 있었기에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린 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하는 게 즐거웠었는데 학교에 가기 싫어지니 당연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져버렸지.

  • 돈은 점점 떨어져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꺼려지는 상황. 전에는 그나마 은행 대출이라는 최후의 보루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이미 사용해버린 상황인지라 더 기댈 곳도 없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에서의 생활이 즐겁지 않으니 돌아갈 궁리만 하게 된다. 그러면서 돌아갈 경우 즐거운 일만 머리 속에 떠올린다. XC40을 받아 차박하는 상상 따위 말이다. 회사의 거지 발싸개 같은 것들에게 휘둘리는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 평소에는 토요일 하루가 됐든, 일요일 하루가 됐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주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그 와중에 방구석을 보니 돼지 우리도, 이런 돼지 우리가 없다 싶은 거라. 그래서 토요일에 대청소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 다음 날로 미뤘다. 그렇게 일요일이 됐고, 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간신히 청소를 시작. 학교의 선택 과목 수업에서 받은 교재들, 싹 버리려고 했는데 나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병도 가지고 있는지라 도저히 못 버리겠더라. '언제 보더라도 한 번은 본다.' 싶어 결국 안 버렸다. 책장을 대충 정리하고 쓰레기만 버렸다.

  • 그 와중에 일본에 처음 와서 받았던 서류들을 보게 됐다. 전입 신고 할 때 일본어가 안 되니까 미리 번역기 돌린 내용을 인쇄했던 종이도 있었고, 휴대 전화 가입하려고 발급 받은 주민증도 있었다. 그런 걸 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 당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회사 생활. 그 것으로부터 도망치겠다고 선택한 유학. 두려움과 설렘을 가지고 시작한 유학 생활. 마냥 즐거웠던 시간들. 그리고... 지금.

  • 긴 시간도 필요 없고, 불과 2~3년만 지나면 그리워 할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거다. 그런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할 수 없더라. 이건 자괴감과는 다른 거다. 왜 내가 이러고 있나 하고 반성하게 되는 거다.

  • 한국에 있을 때에도 벌레만도 못한 것들 상대하느라 지쳐서 그만두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고 있으니까 존경하는 선배가 그러더라. "× 같은 ㅺ는 그 ㅺ인데 왜 네가 그만두냐." 고. 들어보니 딱 맞는 말이다. × 같은 건 그 ㅺ잖아. 그런데 내가 힘들어하고, 내가 고민하고, 그러다 내가 그만두면, 그 ㅺ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니냐. 내가 즐거워하고 신나게 지내야 그 ㅺ가 속 쓰려 할 거 아니냐.

  • 그래서 억지로라도 기운을 짜내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태도를 바꾸는 건 이상하잖아. 그렇잖아도 요즘 입 다물고 찌그러져 있으니까 친구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미안한데. 그래서 오늘은 적당히만 찌그러져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입을 열려고 노력했고. 그런데...

  • 수업이 끝난 후 바로 교실을 박차고 나오는데 뒤에서 누가 부르는 거라. 이어폰을 빼고 돌아보니 모토조노 선생님이다. 괜찮냐고. 걱정이 된다고 하시네.
    좋아하는 선생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도 못할 짓인지라,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는데 나아지고 있다.' 고 말하려 했는데, 하필 그 때 스웨덴 뻐킹 가이 7H AH 77I 가 지나갔다. 나한테 괜찮냐고 묻는 걸 듣더니 계단 내려가면서 선생님은 괜찮냐고 말을 탁! 가로챈다. 아오, 개념 없는 ㅺ.
    나카모토 선생님이랑 밥 먹으면서 저 염병할 ㅺ에 대해 물어봤더니 선생님들도 이미 다 알고 계시더만. 이상한 애라고. 대놓고 나쁜 말 안 하시는 나카모토 선생님이니까 이상하다고만 했지, 사실은 개자식이라는 걸 다들 알고 계실 거다. 아무튼, 저 7H AH 77I 가 말을 가로채는 바람에 선생님에게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그저 괜찮다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죄송스럽고만.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에 목요일 오전 수업만 빠지는 건 다들 알게 되겠지. 그러면 목요일 오전에 수업 들어오는 로리콘 ㅺ가 싫어서 결석한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게 될 거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지. 어찌 되었든 다시는 꼬라지 안 봤으면 좋겠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 한자 시험은 백지를 냈다. 입학 후 처음으로 0점 맞는 거다. 아는 한자도 있었으니까 아는대로 썼다면 서너 개는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보란듯이 백지 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다. 담임 선생님이 목요일에 수업한 한자와 인쇄물을 나눠 주시던데, 바로 찢어버리지 못하고 챙겼네, ×× 같이. 그냥 버릴 거다. 필요 없다.

  • 우울증이 도진 덕분에 지난 번에 산 맥주는 역대급으로 빨리 먹어 치웠다. 그리하여 새 맥주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잠시 후 도착할 예정. 오늘은 맥주나 홀짝거리며 빈둥거리며 보내고, 내일은 공부하러 가야겠다. 교실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도서관으로 갈까 싶기도 하다. 도서관보다는 교실이 나은데 공휴일에는 2층도 쉬니까 교실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은 문 여는 걸 확인했으니까 도서관으로 가야 할까?
    교류 센터는 일단 제외했다. 학교에는 대만 애들이 제일 많지만 교류 센터는 중국인 밭인지라 지금 같은 시기에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 다만, 유학을 계속 해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에 대해서는 후자가 역전한 상태임은 여전하다. 걱정한대로, 슬슬 그만두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지고 말았다. × 같은 인사 담당자 ×은 여전히 내가 보낸 카카오 톡 메시지에 아무 응답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인데, 학비 납부 마감일 전까지 연락이 없거나 해서 유학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한국 돌아가서 변호사와 상담한 뒤 고소라도 할까 싶다. 알아보고 연락 준다는 답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사람을 근무 기피자로 몰아가면서 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땡이다.
    방학 때 복직하고 개학 전에 다시 휴직해야 한다고? 내가 그게 말이 되냐고 따졌더니 남들은 다 그렇게 한다고 했다, 분명히. 그래놓고 ○○ ○○○에 민원 올려서 그게 타고 내려가니까 한다는 소리가 내 오해였다고? 오해? 분명히 남들은 다 그렇게 한다 해놓고 오해? 저런 ×이 담당자랍시고 앉아서 월급 받아 처먹고 있으니... ㅽ

  • 후우... 아무튼. 기운내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손바닥 뒤집듯 금방 되는 일은 아니지만. 기운 내자. 기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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