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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일기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맑음 (8과 테스트 / 흘러 넘치는 피곤)

by 스틸러스 2019.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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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여러 번 일어났다. 그냥 자도 새벽에 한, 두 번은 깨는데 피스 하고 난 뒤부터는 한 시간도 못 자고 깬 뒤 다시 잠들고, 또 한 시간도 못 자고 깨어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피곤할 수밖에. 게다가 시험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서인지 당최 못 자겠다.


결국 새벽 세 시에 깨서, 태블릿 붙잡고 두 시간을 까먹다가,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맥도날드에 가서 한 시간 정도 공부를 한 뒤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샤워하고 나워 어영부영 하다보니 그냥 바로 학교에 가도 되겠더라. 그래서 곧장 교실로 향했다. 자리 잡고 앉아 공부를 하다가 시험이 시작. 지난 번에 출석 번호 순서대로 구두 시험을 봤으니, 이번에는 역순이겠지 싶었는데 앉은 순서대로 간다. 역시나 치바 선생님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어떤 문제가 나올지 뻔히 아는 상황인데도 제대로 말하는 게 너무 어렵다. 게다가 선생님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겠다. 간신히 테스트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문제를 마저 풀었다.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좋은 점수를 확신할 수가 없다. 지난 번 시험은 내 뒤에 열네 명이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좋은 성적을 받았음 좋겠는데...



아침에 학교 갈 때까지만 해도 '피곤하더라도 교류 센터에 들러 다음 주 수업할 부분은 미리 공부하자!'고 생각했지만,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날씨도 구리고, 한 잔 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집에 와서 대충 밥 먹고, 맥주 일 잔 했다. 그러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더라. 자리 바꾸는 게 어떻겠냐는 거다. 다만, 자리는 자율적으로 바꾸라고 한다.



자율. 좋지. 나도 누군가의 강제력이 동원되는 것보다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지금의 좌석 배치다. 친한 것들끼리 몰려 앉는 바람에 엄청 시끄럽다. 대만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본어보다 중국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들린다. 어느 정도냐면, 같은 조가 되어 수업을 진행하는데 조원 중 중국어 문화권 애들이 둘 이상 있으면 일본어로 대화하지 않고 중국어를 써버린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멍 때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다.


자율도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거지, 지금처럼 기본적인 예의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자체를 모르는 것들 사이에는 절대 무리다. 월요일에 다른 자리에 앉아 보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에는 앉는 자리만 달라지지 짝은 그대로일 거다. 100% 확신한다.



평소 같으면 그냥 한숨이나 쉬고 말았을텐데, 술김이라 번역기 돌려 담임 선생님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월요일 HR 시간에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한다. 그림이 딱 그려진다. 월요일에 일찍 오는 순서대로 다른 자리에 앉을 건데, M상은 다른 자리에 앉을지 그대로 앉을지 잘 모르겠고. 내가 개념없는 L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이내 Q군이 오겠지. 어? 하고는 자기도 적당한 곳에 앉을 거고, Lㄴ은 저가 앉던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놀라지만 나한테 말은 못 걸 거다. 내가 저를 엄청 싫어한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웅성웅성하다가 수업이 시작되겠지.


국적, 나이, 성별 등은 자기 노력에 따라 결정된 게 아니다. 그러니 그 딴 걸로 남들보다 낫다는 생각을 갖거나 대접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꼰대 문화권에서 수십 년 살았던지라 나도 모르게 나이를 벼슬화하는 꼰대짓을 하기도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노력은 한다. 대만에서 온 것들,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우루과이 같이 출신 국가가 하나 뿐인 친구들 위해 중국어로 쳐 떠드는 돌대가리 짓은 안 할 것다. 실제로 L상은 대만 친구들과 중국어로 수다 떨긴 하지만 일본어로 최대한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지나치게 말이 많은, 말하고자 하는 의욕이 차고 넘치는 L군과 짝이 되는 건 피곤할 듯 하고... W상이나 S양이랑 나란히 앉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만날 수업 빠지는 Y상이나 담배 냄새 쩌는데다 수업마다 졸고 있는 A상은 절대로 피해야 할 상대이고, Lㄴ과 Pㄴ은 교실 제일 구석에 나란히 처박아 뒀으면 좋겠다. 어차피 저것들, 만날 중국어로 처 떠들기나 하고 수업 중에는 스마트 폰만 쳐다 보고 있으니까.




자꾸 불만이 많아지는 게, 슬슬 일본 생활과 학교에 익숙해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짜증 지수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걸 보면 방학할 때가 되긴 된 모양이다. 빨리 방학했음 좋겠다. 겨울에 오키나와에도 다녀오고 싶은데, 가능할까? 아무래도 돈이 부족할 것 같아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지금처럼 놀기만 하면 생활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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