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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일기

2019년 01월 25일 금요일 흐림 (배구 대회)

by 스틸러스 2019.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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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입학한 이후 전교생이 참여하는 행사는 교토로 갔던 소풍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전교생 참여 행사가 있었다. 배구 대회. 하고 많은 종목 중에 배구라니, 좀 뜬금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에게 배구는 보는 스포츠지, 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배구는 조금 다르다. 일본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구를 자주 하는 것 같더라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봐도 그렇고, 주위에 있는 학교를 봐도 배구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거든.


학생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단체 종목으로 대회를 진행해야 할텐데 축구나 야구 같은 건 여학생들이 참여하기 어려울테니 배구를 선정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공으로 하는 운동은 대부분 좋아하지만 골프, 당구, 볼링은 보는 것과 하는 것을 다 안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종목이고, 배구는 보는 것만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종목이다. 그래서 '차라리 농구였다면...'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아무튼, 지난 번에도 그랬던 것처럼 일단 교실에서 출석 체크. 그 후 우르르~ 몰려 이동한다. 때 아닌 외국인 떼에 당황하는 일본인들. ㅋㅋㅋ   텐노지駅에서 JR로 교바시까지 간 뒤 케이한線으로 갈아탔다. 모리구치駅에서 내리니 바로 체육관이 보인다. 우르르~ 몰려 들어가니 실내화 갈아 신으란다.


신발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크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여기에서 배드민턴 치면 정말 재미있겠다!'



반 별로 줄 선 뒤 바닥에 잠시 앉아 있는데 한국인 H군이 ×발 ×발 해댄다. 굳이 실내화 필요 없을 거 같은데 왜 실내화 챙겨 오라 했냐면서 엄청 궁시렁거리더라. 에휴... 실내 스포츠 안 해 봤으니 저런 소리하지. 평소 신던 신발 밑창에는 보이지 않게 돌 같은 게 박혀 있다고. 그 신발로 실내 코트에 들어가면 코트 바닥 다 망가진다고. 여기저기 패인 코트 바닥에 땀이나 물 같은 거 고이고 그러면 농구나 배드민턴 같은 실내 스포츠 할 때 미끄러져서 심하게 다칠 수도 있다고. 거기에다 우리는 시설 빌려 쓰는 입장인데, 빌려주는 쪽의 지침 따르는 게 당연한 거지. 곧 서른 될 녀석이, 참.




잠시 서 있다가 2층으로 올라갔다. 한 겨울의 실내 체육관이 얼마나 추운지 아니까 단단히 입고 혹시 몰라 깔깔이까지 챙겨 갔는데, 난방을 하는 건지 채광이 좋은 건지, 전혀 춥지 않더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구경이나 할까 했는데, 선수로 뛰어야 한단다. 처음에는 선수 두 명만 뽑았었는데 체육관 도착하니 전부 다 뛰어야 한다고 한다. 엥?


다른 반이랑 연합해서 팀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우리 반 자체가 한 팀이란다. 9인제라서 남자들은 어지간하면 다 뛰어야 한단다. 축구 좋아한다고 하도 말하고 다녔더니 애들이 스포츠 맨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 빼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라서 같이 하기로 했다.


첫 경기부터 뛰었는데 쉽게 갈 수 있는 걸 어렵게 간다. 배구 경험자는 거의 없을 것이고, 아마추어의 실력이라고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니까 괜한 멋 부릴 필요 없는 게 배구다. 가장 중요한 건 리시브. 반드시 세 번 만에 넘길 생각하지 말고 한 번이든, 두 번이든, 그저 넘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 쪽에서 먼저 실수하게 되어 있다. 그걸 똥폼 잡으면서 때린답시고 설쳐대다 자멸하는 거다. 고로... 배구 경험이 거의 없는 아마추어들은 서브만 잘 받아도 반은 간다. 실제로 이 날 경기 대부분은 상대 서브를 못 받아서 계속 점수 내어주는 식으로 흘러갔다.


우리 반 같은 경우 대만인 M군이 의욕 과다로 설쳐대는 바람에 상대에게 끌려 갔는데, 배구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한국인 L군이 서브로 내리 다섯 점인가 여섯 점 내면서 역전 시켜버렸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이 날 경기는 시간제로 운영하더라고. 한 점인가 두 점 차로 뒤집고 나서 경기 끝나는 바람에 대역전승! ㅋㅋㅋ   L군의 서브가 엄청 컸다. 거기에다 여학생들도 서브 잘 넣었고. 나는 뭐... 있으나 마나 한 정도에 서브 실패는 덤. ㅋㅋㅋ



잠시 후 다른 팀 경기 스코어 기록하는 걸 했는데 한 쪽 팀 여학생 서브가... 끝장난다, 진짜. 그리 힘주어 넣는 것 같지 않은데 서브가 이리 가고 저리 가고 길게 가고 짧게 가고. 진짜 잘 하더라. 그 경기 후의 다른 경기도 엄청 마른 여학생과 조금 통통한 여학생이 서브 기똥차게 넣더라. 운동 잘하는 처자, 멋있어 보였다.




두 번째 경기 역시 자멸. 아홉 명이 코트에 섰는데 내가 정중앙이어서 리시브가 가장 많았다. 한 번에 그냥 넘겨버리면 재미 없으니까 될 수 있으면 앞 쪽으로 토스하려고 했는데 한 번 받아 올린 공을 때린답시고 뻘 짓 해서 까먹은 점수가 꽤 된다. 그냥 넘기기만 하면 되는데, 에휴... 지고 싶지 않았지만 상대가 알아듣게 말하는 게 어려우니까, 그냥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즐기기로 했다. 그 와중에 다시 시작된 L군의 서브 공세. 상대가 잇달아 리시브에 실패하자 급하게 대책 회의하고... ㅋㅋㅋ   한 3분만 더 있었음 뒤집을 수도 있었을 건데, 아쉽게 됐다. 두 경기 모두 MOM은 L군. 압도적이었다. ㅋ



경기 끝나고 시상식하는데 이번에는 앞에서 미국인 C군이 F×××! A×× H×××! 하면서 혼자 질알. 왜 화났냐고 물어보니까 이게 뭐하는 짓이냐면서 궁시렁 궁시렁. 저가 좋아하는 철권 대회였다면 저 질알 안 했겠지.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주축이 되는 행사니까 적당히 물러서 있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하는 게 더 낫다 싶은데, H군이나 C군은 아예 겉돈다.


출석 마친 후 해산. 13시가 지났기 때문에 밥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한국인 L군과 L양, 셋이 츠루하시 한인 타운으로 갔다. 지난 번에 갔던 고깃 집 갔는데, 알바가 우릴 기억하고 있었다. ㅋ   지난 번에도 고기 남겼었는데 이번에도 남겼다. 고기가 꽤 훌륭하다 싶지는 않았지만 두툼해서 좋았다. 뭔가 고기 먹는다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적당히 먹고 나왔다. 지난 번처럼 이번에도 12만원 넘게 나왔다. 애들이 3만원씩 내고, 나머지는 내가 내는 걸로. 뭐, 한 살이라도 더 먹었으니 더 내는 게 맞지. ㅋ


같이 츠루하시 역까지 가서 애들 전철 타러 들어가는 거 본 뒤 걸어서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니 라면 생각이 간절해서 신라면에 밥 말아 먹고, 누워서 한 숨 잤다. 자다 깨서 축구 보고. 축구 보다 빡쳐서 다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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