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 올 확률이 50%라고 했다. 흰 구름이 파란 하늘을 다 가리고 있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다. 오후부터 내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예전부터 항상 여분을 준비했다. 텔레비전 리모컨에 들어가는 건전지를 살 때에도 두 개가 아니라 네 개를 샀다. 일단 두 개 끼우고, 나머지 두 개는 서랍 같은 곳에 보관해두는 거지. 좋아하는 과자를 살 때에도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먹고 하나는 고스란히 모셔뒀다. 심지어 포항 유니폼을 살 때에도 두 벌씩 사서 지금 검빨 유니폼만 30벌이 넘는다.
그런 나이기에 대형 마트의 1 + 1 같은 행사는 무척이나 고맙다. 그런 게 없어도 하나 사면서 하나 더 사는 게 나라는 인간인데, 이제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가 따라오는 거다. 사방에 편의점이 널려 있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더라도 하루, 이틀이면 도착하는 세상인지라 저렇게 여분을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게 사실이지만, 어쩌겠어,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걸.
저렇게 살려면 집이 넓어야 한다. 그렇잖아. 당장 쓰지도 않을 것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니까. 게다가 나는 중고 제품 쓰는 걸 꺼려하는 사람인지라 100에 99는 새 걸 지르는데 상자도 안 버린다. 버는 족족 써버리는 주제에 넓은 집이 필요한 인간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최악이다.
일본에 오기 전의 홈 스위트 홈, 평택의 투 룸은 전세 1억짜리였고 열여덟 평인가 열다섯 평인가 그랬다. 4층짜리 건물인데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가까이에 편의점, 세차장, 도서관, 농협 마트, 카페 등이 있는, 정말 훌륭한 곳이었다. 비록 근처에 되먹지 못한 것들이 살아서 피곤할 때가 종종 있긴 했지만.
아무튼, 집이 꽤 넓어서 커다란 책장을 다섯 개나 놓고 살아도 여분을 쌓아놓고 박스를 보관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그러다가 월세 71,000円 짜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 자세한 크기도 몰랐는데 얼마 전에 퇴거 신청하면서 계약서 봤더니 일곱 평도 안 되더라. 100円을 1,000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월세가 71만원이 되는데 저건 관리비랑 수도 요금 등이 포함된 거고 순수 월세는 63,000円. 전세 1,000만원을 월세 10만원으로 계산한다는데 그렇게 따지면 전세 6,300만원 짜리 집인가?
아무튼, 쥐알만한 집인지라 뭘 쌓아놀 수가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딱 쓸 것만 사서 쓰고 그랬다. 그런데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안 바뀐다. 결국 또 여분을 사들이게 되더라. 좁은 집에 적응해서 나름 쌓아놓고 살았다.올해 9월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거기에 맞춰 이것저것 사들이고 아껴 쓰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3월에 돌아가는 걸로 마음을 바꾸니 남아있는 걸 처리하는 것도 일이다. 당장 휴지도 남아돌고, 이래저래 처분이 고민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며칠 전부터 코가 한 쪽씩 번갈아가면서 막히기에 감기인가? 싶었는데, 오늘은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띵~ 한 게 어질어질하다. 새벽에는 뭔가 숨 쉬는 게 조금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300m 정도 뛰고 나서 숨이 찰 때처럼 내가 들이마신 공기가 폐까지 다 전해지지 않는 느낌? 코로나 19가 폐렴 증상을 동반한다는데, 이거 뭔가 이상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됐다. 머리까지 띵~ 했으니까.
하지만 딱히 밀폐된 공간에 간 적도 없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는데... 나갔다 오면 꼬박꼬박 손 씻고 그랬는데. 아... 찝찝하다.
오늘은 큐즈몰에 다녀올 생각이다. 큐즈몰에 비쿠 카메라가 있는데 스위치 라이트 핑크가 있나 보려고. 아마 없을 게 분명하지만, 일단 가보고 여차하면 스위치 라이트를 지를 생각. 스플래툰 2 사고, 동물의 숲은 한국에 가서 한글판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넷플릭스면 됐다고, 안 사도 된다고 버텼지만 결국 지르게 되는 모양이다. -ㅅ-
혹시 모르니까 마스크 두 개 겹쳐 쓰고, 드럭 스토어에 가서 소독용 알콜 있나 물어봐야겠다. 될 수 있으면 안 돌아다녀야 하겠지만 당장 내일은 우체국에도 가야 하고,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코로나 19 검사하는 데 돈 드나? 일본은 증상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요청을 해도 검사를 해주지 않는다. 결국 한국에서 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은 열도 없고 그래서 애매하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고령의 고모에게 전염이라도 시키면 큰 일이니까, 부산항에 내리면 검사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머리가 띵~ 하고 어질어질한 게 제대로 못 자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다. 정오가 다 되어 가는데, 대충 씻고 나가서 호다닥 볼 일 보고 들어와야겠다.
머리가 띵~ 하면서 어질어질한 증상은 밖에 나가자마자 사라졌다. 호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다시 어질어질하다. 이게 빨리 써서 없애버리려고 몇 시간 동안 향초를 태웠기 때문인지, 그냥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집에 있으니 편해서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코로나는 아닐 거다. 그럴 리 없어.
큐즈몰에 있는 비쿠 카메라에 다녀왔다. 지난 20일에 발매(한국은 4월 6일인가에 발매한다더라.)된 핑크색 스위치 라이트가 전시되어 있었다. '어라? 인터넷에서는 죄다 품절이던데 살 수 있는가베?' 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SOLD OUT이더라. 게임기도 그렇고, 타이틀도 그렇고, 전부 가격이 표시된 빈 상자만 전시해놓고 있었다. 그걸 들고 카운터로 가면 제품을 주는 모양이다. 하긴 워낙 작으니 도둑들의 단골 표적이 되겠지.
마이크로 SD 카드 같은 경우는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단순히 100円 = 1,000원으로 계산해도 비싼데 지금 환율 적용하면 일본에서 32GB 살 돈으로 한국에서 128GB 살 수 있다. 아, 물론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서도.
아무튼. 집에서 나설 때에는 스위치 라이트 본체, 스플래툰 2 타이틀, 액정 보호지, 컨트롤러 정도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핑크가 있기에 사자! 했다가 전시된 실물을 보니 별로여서 에이~ 했는데 다른 색깔로 살까? 하다가... 결국 안 사고 그냥 왔다. 정말... 한참을 망설였다. 사기로 했던 것들의 가격을 다 합치면 40만원이 조금 안 되는데, 개뿔 버는 것도 없으면서 왜 돈 쓸 궁리나 하고 있나 싶어 포기했다. 진짜... 산다와 안 산다가 딱 선 하나 차이인데. 그 선만 넘었으면 샀을텐데. 결국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잘 참았다 싶다. 뭐, 한국에 돌아가 2주간 격리해야 한다고 하면 그냥 질러버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마사미 님과 두 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다. 멀쩡한 세탁기를 버려야 한다는 얘기를 했더니 안타까워 하시더라. 오카야마였다면 친구들 통해서라도 처분할 수 있었을 거라면서. 하아... 진짜... JLPT N5 수준을 같잖게 보고 어떻게든 되겠지라 생각했다가 오카야마 이과 대학에 못 간 게 이렇게 한이 된다. 오카야마로 갔더라면 돈도 덜 쓰고 9월까지 2년 꽉 채웠을지도 모를 일인데.
아무튼. 비 온댔는데 어째 점점 맑아지는 것 같다. 밖에 빨래 널어도 될랑가.
원래 토요일에 비 올 확률이 60%였는데 그게 일요일로 넘어갔고, 아까 확인해보니 30%로 떨어졌더라. 갑자기 바람이 강해지긴 했는데, 지금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 수가 없네. -ㅅ-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속 좁게시리 내 나이 반토막 밖에 안 되는 녀석들을 미워하고 싫어하며 나쁜 말도 많이 했는데...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저랬던 게 다 의미없게 느껴진다. 뭐, 물론 1학년 때 지독하게 싫어했던 M ㅺ나 3학년 때의 L ㄴ 따위는 여전히 똥물이나 뒤집어쓰길 바라고 있지만서도.
여행으로 왔을 때와 살러 왔을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여행으로 왔을 때에는 아무 것도 안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살러 왔을 때에는 당장 전입 신고부터 시작해서 손전화 개통까지, 다 내가 해야 했다. 누구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에서 내 나이, 내 경력 정도 되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들 부려가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시켜 놓고, 그나마 개념 있다 소리 들으려면 밥 한 끼 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모두가 매 년 한 살씩 먹는 나이가 왜 벼슬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해야 한다. 자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군지 알아!' 따위는 개소리다. 내가 누군지 뭣이 중헌디? 회사라는 간판을 떼어내면 나는 그저 머리 까지고 배 나온 아저씨일 뿐인 거다.
그런 환경에서도 나름 잘 버텼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모자 쓰고 학교에 가도 되는 게 즐거웠고, 꼰대 같은 기지 바지 대신에 짝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어도 되는 게 신났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뭣 같은 구두 안 신고 운동화 신어도 괜찮았다는 거다. 츄리닝 입고 슬리퍼 차림으로 학교 오는 것들도 있었지만 나는 운동장이 없으면 학교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다 아저씨니까, 한여름에도 반바지 입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나름 꼰대력이 터졌지만 그래도 회사에 비하면 엄청나게 자유로운 거였다.
이제 그 자유를 뒤로 하고 회사로 돌아간다. 발이 편한 니트 구두라고 광고하는 걸 보고도 '이런 거 신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기 검열이 필요한 곳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업무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고, 생활 환경도 확 달라지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다만,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여유로운 척 하는 게 가능하긴 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카모토 선생님, 모토조노 선생님, Hさん, Lさん, Mちゃん, Sちゃん과는 한 번 더 만나고 싶었지만... 돌아갈 날이 일주일도 안 남았으니 무리 아닐까 싶다(라고 썼는데 Sちゃん이 언제 돌아가냐고 라인 메시지 보냈네. ㅠ_ㅠ).
계획했던 여행도 다 틀어지고, 심지어는 덴포잔도 못 가는 상황인지라 너무 아쉽다. 한일 관계가 언제쯤 다시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이게 일본에서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당분간은 일본 땅을 밟을 수 없을 것 같아 뭔가 안타깝다. 회사에서 정년까지 잘 버틴다면, 오카야마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 나이가 되면 또 생각이 달라지겠지. 50 정도 먹고 필리핀에 갔다가 거기에 확! 꽂혀서 필리핀 타령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 오늘 마사미 님과 통화하면서 한국인의 일본어 발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これ, こちら, こんなに 등은 모두 KO로 쓰지만 실제 발음은 GO로 들린다, 그러니까 쓸 때에는 코레, 코치라, 콘나니가 맞지만 발음은 전부 고레, 고치라, 곤나니로 들린다. とても는 토테모가 맞지만 도테모로 들린다. どうぞ(도~ 조)의 도와 똑같이 들린다라고 했더니 이해를 못하시더라. 많이라는 의미를 가진 たくさん(탁상~) 같은 경우에도 일본인들의 발음을 들어보면 '타~ㄱ상' 으로 들리는데 대만 애들은 꼭 '타. 쿠. 상.' 이라 하더라고 했더니 그것도 이해를 못하신다. 일본인도 쿠 발음을 한다는 거다. 나는 전혀 안 들리는데.
언어라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외국인들도 한국어가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며 텔레비전이나 보는 것들이 그들의 노력이나 어려움을 간과하고 그저 저 쉬운 걸 왜 못하냐고 짖어대는 거지. 맞춤법은 거지 발싸개 같이 쓰면서 말이다.
집에 와서 프리미엄 몰츠 작은 거 세 캔 마시고, 아사히 큰 거 한 캔 마셨다. 2,000㎖도 안 되는데 취기가 올라온다. 요즘 피곤하긴 피곤한 모양이다.
라인 모바일의 데이터 잔량이 10GB 이상이다. 지난 달에 남은 게 넘어와서 여유가 있는 상황인데 이번 달 내내 방구석에서만 굴러 다녀 데이터를 쓸 일이 없었다. 데이터 남긴다고 환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일은 일부러 1층에 내려가 유튜브로 쓰잘데기 없는 거 켜놓을까 싶다. -ㅅ-
라인 모바일 해지를 위해서 USIM 카드를 반납해야 한다. 27일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배 타러 가면서 우체통에 넣을까 하는데, 그 전에 마사미 님께 보내는 편지라도 써야겠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계시겠지만, 일본에 온 이후에 신세 진 것 만이라도 편지를 통해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의 날에 맞춰 꽃 보내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마사미 님도 그렇고, ○○ 선배도 그렇고, ○○이도 그렇고,... 나 같은 개차반에게 참으로 친절히 대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은혜와 원수는 반드시 갚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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