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일기

2018년 11월 02일 금요일 맑음 (술 먹는 건 즐거웁도다! ㅋㅋㅋ)

스틸러스 2018. 11. 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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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점심은 L 양과 함께 먹었다. 한국인 L 군은 점심 시간이 되자마자 사라져서 미리 예약(?)하지 않는 한 같이 밥 먹기가 어렵고, 대만 애들은 이미 같이 밥 먹는 그룹이 나눠져서 같이 가자고 하기도 애매하다. 결국 어중간하게 붕~ 뜬 나랑 L 양이 항상 같이 먹는다. 사실 점심을 먹어도 집에 오면 또 뭔가 먹고 싶어지니까 살 빼려면 점심은 굶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L 양이 밥 먹기가 어색해진다. 혼자 먹던가 그래야 하니까.


같이 밥 먹는데 L 양도 어제 너무 힘들었단다. 나도 어제 멘탈 깨져서 정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다행히 하루 만에 회복이 되었지만, L 양은 여전히 힘든 모양. 저녁에 술이라도 한 잔 하겠냐고 하니 덥석! 문다. ㅋㅋㅋ



학교 마쳤는데 L 양은 오늘 담임 선생님과 면담한단다. 나는 뮝기적거리다가 앞 쪽 날짜 다 차서 남는 날로 했는데 잽싸기도 하지. ㅋ   그럼 집에 다녀오겠다 해서 집에 갔다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학교로 갔다. 학교 앞에서 만나 일단 텐노지 역 북쪽으로 이동. 거기 괜찮은 가게 있다고 해서 갔는데... 나쁘지 않았다. 딱 그냥 일본 현지 이자카야. 관광객이 많이 올 것 같지 않은 위치인데 한국어 메뉴도 있고 영어 메뉴도 있다. 한국인 알바가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어 번역이 잘 되어 있었다. '되'지 고기나 닭고기 '뒤'김 같은 게 보이긴 했지만.



L 양이 사케 한 번도 안 마셔봤다고 해서 마셔보라고 했는데 별로인 모양. 그래서 하이볼 추천했는데 그것도 별로인 모양이다. 억지로 마시지 말라 하고 맥주 시켜줬다. L 양이 한 모금 마신 하이볼은 내가 마셨는데 왜 인상 썼는지 알겠더라. 다른 가게보다 위스키 비중이 확~ 높다. 내가 달달하다고 했더니 술맛은 전혀 안 날 거라 기대했다가 배신 당한 L 양. ㅋㅋㅋ




화장실 두 번인가 다녀오더니 "오빠, 나 좀 챙겨요."가 나왔다. 공포의 멘트! 술이 취했다는 증거! 화들짝! 놀라서 그만 먹으라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사케 두 잔인가 마시고 하이볼 한 모금에 맥주 한 잔 마셨는데 저 멘트가 나오다니... 지난 번에는 소주 두 병 가까이 먹었는데, 주량 엄청 오바한 거였고만. 아무튼. 원래는 전철 태워 보내려고 일부러 JR 역 근처에서 먹은 건데 술도 깰 겸 걸어가겠단다. 혼자 보내려니 마음이 안 놓여서 결국 데려다 준다고 했다.


같이 제법 걸어 L 양 집 근처에 도착. 걷는 사이 술이 다 깼다고 해서 그럼 맥주 한 잔 더 먹고 가서 자라고 했다. L 양이 힘들어하는 건 외로움 때문이었는데 나 같은 아저씨라도 같이 있어주는 게 그나마 도움이 되는 모양인지 바로 집에 안 들어가려 하더라. 지난 번에 L 군과 같이 맥주 마셨던 가게에 들어가서 일단 맥주부터 시켰다. 안주를 시켜야 하는데 온통 일본어라 뭐가 뭔지 알 수가 있나. 한참을 고민. えび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아래에 エピ가 또 있다. 뭐는 히라가나고, 뭐는 가타가나고, 뭔 차이지? 일 하는 분 불러서 물어봤는데 뭐라 뭐라 하는데 잘 모르겠다. かき 뭐라 뭐라 하기에 메 다시 보니 눈에 들어온다. 굴도 들어있는 건가? 잘 모르지만 일단 시켜봤다. 잠시 후 안주가 나왔는데... 하아... 인생 안주를 만났다. 세상에나. 일본에서 먹어 본 모~ 든 음식 중에 최고다.



탱글탱글한 새우가 씹히는데 후추의 알싸한 맛이 느껴지면서, 막, 뭐, 응, 그렇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진짜 맛있다. 굴도 끝내줬고, 가리비 관자도 최고였다. 국물 살짝 떠서 먹어봤는데... 국물은 에러. 당연히 얼~ 큰~ 한 맛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느끼한 기름 맛. 국물보다 건더기가 짱이다. 버섯이 많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도 최고였다. 아... 또 먹고 싶다.



순식간에 맥주를 다 비웠다. 다른 술을 시키고 싶은데 메뉴 본들 잘 모르니까... 주방 쪽에 놓여진 커다란 술병 중에 유자가 그려진 게 있기에 그거 달라고 했더니 시원한 얼음 잔에 금방 가지고 왔다. 술 맛 1도 안 나고 달달하면서 살짝 신 맛이 난다. 메뉴에서 찾아보니 사과 맛 뭐시기도 있고 그렇던데 다음에 시켜서 먹어봐야지. ㅋ



유자 사케도 금방 마시고... 안주가 남아서 다른 술 하나 더 시키려고 메뉴 보는데... 술 이름이 '바람의 숲'이다. 이름 한 번 기똥차네. 그걸 시켜봤는데... 향도, 맛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주전자? 술이 따라져 있던 그릇이다. 어쩜 이렇게... 멋지게... 감탄, 또 감탄.


계산하고 나가면서 일본에서 먹은 음식 중에 최고였다고 되도 않는 일본어로 떠들면서 엄지 척! 하고 나왔다.





L 양 집에 보내고, 나는 왔던 길 되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전철 탈까 하다가 달랑 한 정거장이고 내려서 또 걸어야 하니까 그냥 걸었다. 집까지 그리 멀지 않으니까... 저 가게는 이제 내 단골이다. 한국에서 친구들 오면 데리고 가야지. 진짜, 인생 안주다.



집에 왔지만 술이 고파서... 어제 사다놓은 맥주 홀짝거리며 빈둥거리다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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