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일기

2020년 01월 13일 월요일 맑음 (의지박약)

스틸러스 2020. 1. 1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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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두고 굳이 교류 센터까지 가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넓직한 책상이 맘에 든다. 학교의 책상은 1인용의 작디 작은 사이즈지만, 교류 센터의 책상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축구장으로 써도 될만큼 광활하다. 둘째, 왕복하면 5㎞ 이상 너끈히 걷게 되니까 최소한의 운동이 된다. 일본에 와서 만날 맥주나 처마시고 운동은 전혀 안 하니 살이 빠질 생각을 안 하는데, 걷기라도 해야 한다. 셋째, 혹시 모를 인연에 대한 기대다. 교류 센터니까 아무래도 외국인이나 외국인과의 교류를 희망하는 일본인이 많다. '오다가다 만나서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 같은 게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교실에서 공부해야겠다. 교류 센터에는 빌런들이 너무 많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도 있고, 코 앞에서 쉴 새 없이 콜록거려서 감기라도 옮으면 어떡하나 걱정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가장 싫어하는 빌런은 대가리 빌런인데, 근처의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것 같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손으로 이마부터 정수리까지를 쉴 새 없이 쓸어대는데, 초당 1회는 되는 것 같다. 틱인가? 틱 장애의 일종인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제 또래의 여학생 두 명이 맞은 편에 앉아 있을 때에는 그 짓거리 안 하더라고. 결국 그냥 버릇이 아닌가 싶다.


맞은 편에서든, 옆에서든, 계속 저 짓거리를 하면 엄청 신경 쓰이기도 하거니와 뭔가 기분이 더럽다. 머리털이나 비듬 따위를 숨 쉬며 들이마시는 건 아닐까 싶어 찝찝한 거다.


졸음이 몰려 오기에 커피 마셔가며 아둥바둥하다가 간신히 잠이 달아나 공부하려는 찰라, 대가리 빌런이 등장했다. 참고 공부해보려 했지만 결국 포기.


집에서는 절대 공부 안 하는 걸 스스로가 너무 잘 아니까, 학교로 갔다. 그런데 학교도 문이 닫혀 있더라. 측면의 쪽문은 살짝 열려 있던데 로비에 불이 꺼쪄 있으니까 들어가는 게 꺼려졌다. 결국 그냥 돌아왔다.


집에서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으니까, 금방 허리가 아파온다. 항상 그 핑계를 대고 공부를 안 했는데, 오늘은 키보드 치워놓고 모니터 앞에서라도 책 좀 봐야겠다.



나가기 전에 널어놓은 이불은 거대한 빨래집게 하나를 튕겨내며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저 집게, 힘이 엄청 강한 녀석인데 튕겨나가다니. 오늘 바람이 어지간히 센 모양이다. 강하긴 하더라.


그나저나, 일본에서는 남자가 폴라 티셔츠 입으면 안 되는 건가? 내 최애 겨울템이 폴라 티셔츠라서 자주 입는데, 희한하게 올 해에는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특히 처자들이 실실 쪼개며 지나간다. 예전에 유니클로 만화 티셔츠 입고 다닐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뭔가 이상한 느낌인 건가? 선생님께 여쭤봐야겠다.


내일이 시험이니 책 좀 봐야 하는데, 배 고프답시고 즉석 밥 두 개 때려 넣고 나니 아무 것도 하기가 싫다.


마사미 님이 주신 오카야마의 포도 맛 젤리는 유통 기한이 지난 해 11월까지였네. '뭐, 죽기야 하겠냐.' 라 생각하고 그냥 먹었다. 슬슬 책 좀 봐야겠다. 만날 말로만 공부한다, 공부한다, 사실은 빈둥거리기만 하는데. 하아... 이 박약한 의지, 어떻게 다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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