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일기
2019년 06월 07일 금요일 비옴 (장학금 / J양의 송별 회식)
스틸러스
2019. 6. 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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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다. C군이 '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하냐?' 고 말하기 전에는. 쉬는 시간에 슥~ 오더니 '처음 가는 사람도 있는데 가는 길을 알려줘야 하지 않겠냐?' 고 한다. 아니, 저가 알려주면 될 것을, 왜 나한테 와서... -_ㅡ;;;
J양과 그냥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늘 같이 붙어 다니는 L씨와 같이 셋이서 밥이나 먹을까 하고 꺼낸 일이 커져버렸고 졸지에 모임의 주동자(?) 같은 게 되어버렸다.
- '지도 그려주면 되지 않냐?' 고 하니까 '네가 그릴 거냐?' 고 물어본다. 구글 지도로 대충 그리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러겠다.' 고 하니까 '이미 그려놨냐?' 고 물어본다. 구글 지도 갈무리해서 파워 포인트로 대충 만들면 금방이니까 '집에 있다.' 고 뻥 쳤다. '대단하다!' 고 감탄하면서 간다. 지도 만드는 게 뭔 대수라고.
- 집에 와서 파워 포인트를 켠 뒤 구글 지도에서 가는 길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냥 큰~ 지도에서 경로만 표시하려고 했는데 로드뷰처럼 보는 게 가능하더라고. 그래서 가는 길의 주요 배경을 일일이 갈무리해서 만들었다. A4 한 장으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만들려면 사진을 쥐알만하게 줄일 수밖에 없더라. 어디가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라 그냥 적당히 줄여서 만들었더니 네 장이나 된다.
- 가지고 간 지도를 아침 댓바람부터 붙여대는 건 너무 설치는 것 같기에 1교시 마치고 화이트 보드 구석에 슥~ 붙였다. 하지만 저 지도가 뭔 도움이 될까 싶은 게, 약속 시간이 수업 마치고 두 시간 후니까 다들 교실에 남아 있다가 같이 이동할 것 같은 거다. 길 아는 사람이 같이 가는데 굳이 지도가 필요 있나. C군이 '같이 갈 사람은 14시 40분에 1층에서 만나자.' 고 메시지 남겨놓은 걸 보니 안 해도 될 짓을 한 것 같다. C군에게 낚였다.
- 어제는 정말 기분 더러운 꿈을 꿨다. 회사에서 내가 가장 혐오하는 ㅺ가 하나 있는데, 나와는 아예 다른 세계의 생명체인지라 상종 자체를 안 하고 싶은 존재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혐오하는 수준인데, 저 ㅺ가 꿈에 나왔다. 일본에 온 후 벌써 두 번째인데, 희한하게 지난 번에도, 이번에도, 저 염병할 ㅺ가 나보다 상사로 나오는 바람에 꼼짝없이 개소리하는 걸 듣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어찌나 싫은지 꿈에서조차 덤벼들어 싸웠다. ㅋㅋㅋ
- 일본에 유학 오기 직전에 저 개만도 못한 ㅺ와도 트러블이 있었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ㅺ와도 트러블이 있었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중간 고참이었고, 해당 지사(?)의 내 파트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었는데다, 나름의 성과도 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덕분에 신뢰도 꽤 얻고 있었지만 나보다 나이 많고 경력 많으면서 개만도 못한 인생을 사는 ㅺ와 몇 살 처먹지도 않은 것이 벌써부터 월급 도둑질하는 데 맛들려 기본적인 업무도 똑바로 못하는 ㅺ 사이에서 엄청 마음 고생을 했다.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ㅺ를 하나만 꼽아 보라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정도로 혐오하는 ㅺ다.
- 두 번 다시 안 봤음 싶은, 죽었다 소리 들으면 만세 부를 수도 있을 정도로 싫어하는 ㅺ를 꿈에서 봐서인지 아침부터 기분이 언짢았다. 거기에다 열 시쯤부터 내린다는 비는 이미 쏟아지고 있었다.
- 점심 시간에는 비도 오고 하니까 그냥 교실에 남아 있으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앉아 있기가 뻘쭘해서 결국 맥도날드에 갔다. ⅓ 지점 쯤 갔을 무렵 갑자기 스콜 수준으로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홀딱 젖어버렸다. 신발에 방수 코팅액을 발랐는데도 불구하고 양말이 젖어버렸다. 제기랄. 그냥 교실에 남아 있을 걸.
궁시렁거리면서도 맥도날드에 도착해서 평소와 달리 빅맥 세트를 주문했다. 먹고 나서 교실로 돌아와 빈둥거리고 있다가 오후 수업 시작. 예정된대로라면 오늘 3과 안 들어가는 게 맞는데 들어가버리더라. 그래도 진도는 많이 안 나갔다. 5교시에 한 20분 남았는데 수다 떨다보니 금방 지나가버렸다.
- 아침에 선생님으로부터 쪽지를 받았는데 14시 45분까지 33호 교실로 오라고 되어 있더라고. 쪽지 받고 딱! 느꼈다. 장학금이고나! 나 됐고나!
- 하지만 설레발은 필패.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자 싶어 수업 마치고 얌전히 3층으로 내려갔다. 교실에 모인 학생은 아홉 명. 전부 열 명 준다고 했으니 확실하고나 싶더라. 장학금을 받는 학생 중 가장 낮은 등급의 반은 2C였다. 내가 그 다음. 3학년, 4학년도 있더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근로 장학생으로 학교 들어가서 윈도 98 수백 번 깔아가며 등록금 면제 받는 식으로 장학금 받은 적은 있지만, 그걸 제외하면 인생에서의 첫 장학금이다. 직장에서 도망치고 싶어 선택한 유학인데 장학금까지 받게 되다니, 실로 장족의 발전이다. ㅋㅋㅋ
- 다음 학기에서 내야 할 돈을 까주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냥 현찰로 7만円 준다. 그리고 영수증 써서 내라고 하더라. 집에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아무 것도 없고 만円 짜리 일곱 장이 들어 있다. 이래가지고서는 장학금 받았다고 증명이 안 되는데? 그냥 학교 봉투 구해서 내 돈 7만円 넣고 우겨도 될 거 같은데. ㅋㅋㅋ 장학금 들고 단체로 사진 찍었으니까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 들고 오면 나름의 증거가 되겠지.
- 아무튼,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이라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었다. 일단 나카모토 선생님에게 메시지 보내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진짜, 일본에 와서 처음 만난 선생님이 나가모토 선생님이라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좋은 선생님 만나 칭찬 듣는 맛을 알게 된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고 있다. 담임한테도 메시지를 보내는 게 맞는 것 같아 짧게나마 감사 인사 드리고, 바로 마사미 님에게 자랑했다. ㅋㅋㅋ
- 벌써 16시가 되어 버렸네. 오늘 땀도 좀 흘렸고, 비도 맞았으니까 대충 씻고 어슬렁~ 어슬렁~ 모임 장소로 가야겠다. 술 마시는 멤버가 그닥 많지 않아서 꽐라가 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한국 학생들은 죄다 불참인 것 같으니 2차 갈 가능성도 없고.
- 어제 송별회에 못 온다는 학생이 보낸 메시지에 J가 답장을 보냈는데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고 썼더라. 그 짧은 한 문장이 참 먹먹하게 다가왔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인연을 잊어왔는지. 살 날은 점점 줄어들지만 지금의 좋은 인연들은 오래 갔으면 좋겠다. 다녀오면 아직 제 정신일테니(?) 추가로 더 쓰던가 해야겠다. 일단 슬슬 갈 준비해야지.
- 송별회에 다녀왔다. 씻고 나가려고 했는데 빈둥거리다가 늦었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지각할 정도로 늦어버려서 축지 2 정도로 걷는 바람에 땀이 나고 말았다. 옷도 하필이면 긴 팔을 입어가지고. -ㅅ-
약속 장소 앞에 도착하니 다들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는 중. 영업 시작이 17시인데 17시에 예약을 해서 그렇다. 한 30분 늦게 할 것이지.
- 가게의 영업이 시작되어 안으로 들어가 마시기 시작. 18시도 안 됐는데 다른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나중에 나갈 때 보니까 대기까지 있는 듯 했다. 그러고보니 지난 번에도 그랬던 듯. 일본의 금요일 저녁은 진짜 금요일 저녁 같다.
- 세 테이블로 나뉘어졌는데 맨 구석 자리는 찌질이와 그 일당들이 이미 차지했다. 메인 테이블에 앉기가 좀 그래서 옆의 작은 테이블에 앉으려고 했는데 어찌 하다보니 밀려서 메인 테이블에 앉게 됐다.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하다가, 슬슬 얘기해야 되겠다 싶어 목요일과 금요일의 일기 속도 차이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 선생님 두 분이 빵! 터져서 웃고 난리났다. 후쿠다 선생님 같은 경우는 아예 쓰러져서 웃느라 못 일어난다. ㅋㅋㅋ
역시, 선생님들도 뒷담화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이 때다 싶어 지난 번에 나카모토 선생님에게 격한 반응을 얻어냈던 후쿠다 선생님의 '질문 있습니끄아없습니까~' 에 대해 얘기했다. 후쿠다 선생님, 또 빵! 터져가지고. ㅋㅋㅋ
너무나 착해 보이는 선생님들인데 예전에는 꽤나 무서웠다는 이야기도 놀라웠고, 학생들 흉내내는 거 보니 교무실에서는 학생들 뒷담화 하면서 스트레스 풀겠거니 하는 생각도 했다. ㅋ
메인 테이블에서 막 쓰러져가며 얘기하고 그러니까 옆 테이블에 있던 C군이 자꾸 넘어 와서 "나니?" "나니?" 요러고 있다. 모토조노 선생님이랑 떠들고 싶어서 자리 바꾸자고 했더니 그건 또 싫단다. 그래놓고 결국은 작은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메인 테이블로 넘어 왔다.
-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가게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을 때 모토조노 선생님한테 가서 2차 가자고 했더니 내일 알바가 있어서 안 된단다. 학교에서 세 시간 일하고, 알바를 네 시간 한단다. "학교의 급료가 마음에 안 드는군요?" 라고 했더니 뭐라 뭐라 하던데. ㅋㅋㅋ 그러고보니 점심 시간 이후에 퇴근하는 선생님도 있고 그런 걸 보면 09~17시 근무하는 정식 직장은 아닌 모양이다. 선생님들이 전부 파트 타임 식으로 뛰는 건가 싶더라.
가게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뒤 선생님들은 일찌감치 돌아가고, 남은 학생이 열두 명. 하지만 2차로 갈 곳을 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길바닥에서 시간을 버렸다. 열두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모르니까 길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금요일 저녁이라서. 중간에 가라오케 가자는 말도 나왔는데 내가 노래방은 싫다고 했더니 노래 안 해도 소프트 드링크는 무료고 술만 돈 내고 시켜 먹으면 된단다. 하지만 C군이 어제 같은 가라오케에 갔었는데 엄청 비싸다고 반대해서 결국 안 가게 됐다.
화장실 가는 친구들이 있어서 어영부영 역까지 이동했고, 역 앞에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망설이는 동안 찌질이와 그 패거리는 집에 돌아가는 걸로 마음을 바꿨는지 가보겠다 하고. 그 와중에 삐끼가 슬쩍~ 끼어들기에 일곱 명인데 괜찮냐고 했더니 괜찮단다. 그렇게 삐끼에게 이끌려 간 곳은 좀 전에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던 가게. ㅋㅋㅋ
- 장학금 받은 것도 있고 하니까 2차는 어차피 내가 살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다들 배 부르다면서 술만 시키고 뭔가 더 시키지를 않는다. 진짜, 어지간하다 싶을 정도로 착한 녀석들이다. 일곱 명이 마셨는데 7만원 정도 밖에 안 나왔다.
우르과이에서 온 R군은 한 잔 들어가니까 술부심이 확 올라오더만. ㅋㅋㅋ
- 2차를 끝낸 후 다시 전철 역까지 이동.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한 잔 더 마셨으면 좋겠다 싶은데 다들 가는 분위기다. J양은 집까지 어떻게 가겠냐고 물어보니 걸어 간단다. 날도 궂은데 혼자 가게 할 수가 없어서 데려다 주겠다 하고 근처까지 같이 걸어갔다. 교류 센터에 가면서 몇 번 지나다녔던 길이라 익숙하다.
- 비자도 없이 3개월 동안 단기 유학을 왔다기에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숙소를 보니 더 말이 안 나온다. 게스트 하우스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거다. 진짜... 대단하다. 20일에 돌아간다고, 19일에 오사카에 돌아온다고 하기에 19일에 보자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19일에 일본에 없다. 아...
- 좋은 사람들과는 길게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게 참 아쉽다. '내가 J양과 같은 나이로 돌아간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고 물어본다면, 무리다. 절대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무리다. 생각없이 사는 것 같지만 지금의 젊은 사람들, 참으로 잘 해내고 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길게 만나지 못했지만, 불과 3개월도 안 되는 기간이고 서로 얼굴 맞대고 이야기 한 적이 거의 없어서 딱히 아쉬울 이유가 없는데도 불과하고, 일본에 온 이후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첫 이별이라서 그런가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미국인 C군과 이별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얘한테는 뭔가 짠~ 한 느낌 같은 게 없다. 공부 그만두더니 한국과 일본 왔다갔다 하면서 철권 연습하고 있다. ㅇㅇ 게임 철권 맞다. -_ㅡ;;;). 싫어하는 사람과 그렇게 된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말텐데,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과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 비도 오고... 술은 얼마 마시지도 않았고... 하지만 내일 고베에 가야 하니까 오늘 많이 마시면 안 된다. 적당히 맥주 조금만 더 마시고 자야겠다.
- 부디 J양이 일본에서 함께 했던 길지 않은 시간을 행복하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한국에 놀러와서 안내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이 흘러가버리는 게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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