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일기

2019년 04월 13일 토요일 맑음 (축고 보고 / 인생 술집)

스틸러스 2019. 4.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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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은 교류 센터에 가서 서너 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오후에 축구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 갈 거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침 일찍 교류 센터에 가야겠다고 한 뒤 실제로 간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 도. 없었거든. 결국 나란 인간은 적당한 강제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집에서 뒹구는 걸 가장 좋아하는 인간인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_ㅡ;;;


'오전에 뭐했냐' 고 물으면 딱히 뭐했다고 대답하기 곤란할 정도로 그저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슬슬 나가야겠다 싶어 씻고 출발. 출발하기 전에 어제 주문한 핏빗 밴드와 진공 청소기가 도착했는지 확인해봤지만 아직 배송 중이라고 나왔다. 08 ~ 12시 사이에 도착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아마존 프라임으로 배송 받으면 항상 정해진 시간에 갖다 줬는데. 내려가 우편함을 확인해봤지만 텅 비어 있다. '뭐, 언젠가 오겠지.' 라 생각하고 그냥 밖으로 나갔다.




슬렁슬렁 걸어가는데도 엄청 덥다. 이 더운 날씨에, 패딩을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들의 패션. 내가 저렇게 입었다면 근처 초등학교 수영장은 내 땀으로 채울 수 있을 게다. 내가 몸에 열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더위를 느끼는 세포가 엄청 둔한 게 분명하다. 이런 날씨에 '혹시 추울지도 모르니까...' 라는 생각으로 위에 입을 옷을 챙겨 가방에 넣은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속도로 걸었는데도 등으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미나미타나베駅 근처에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공원이 있는데 평소에도 참 예쁘지만 벚꽃이 피니까 더 예쁘다. 벚꽃이 활짝 피었을 때 가서 사진도 찍고 했음 좋을텐데 교토나 오사카 성 생각만 했지, 근처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내년에는 이 쪽으로 사진 찍으러 가야겠다.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한산한 편. 하지만 나처럼 걸어가는 사람보다는 전철을 이용하거나 다른 쪽에서 자전거로 가는 사람이 많아서 경기장은 사람들로 미어 터진다. 이 날도 마찬가지. 경기장에 가니 바글바글하다.

미리 표를 구입하지 않고 경기 당일에 구입하면 500円이나 비싸게 사야 한다. 당일에 구입하더라도 인터넷으로 사면 예매한 것과 같은 가격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래서 그냥 경기장에서 사기로 했다. 예전에는 천막에서 표를 샀기에 그 쪽으로 향했는데 표 파는 곳이 없더라고. 그래서 경기장을 한 바퀴 빙~ 돈 뒤 아까 지나갔던 곳에서 표 파는 곳을 발견했다. ICOCA 어쩌고라 쓰여 있기에 ICOCA로 사야겠다 싶어 그 쪽으로 갔다. '여기에서 표를 살 수 있냐' 고 물어보니까 뭐라 뭐라 하는데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하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예약하지 않았는데 괜찮냐' 고 다시 물어보니까 "아, 그러면 이 쪽에서." 라며 옆 쪽을 가리킨다.

줄 섰다가 차례가 되어 표를 샀다. 항상 홈 서포터 자유석에서만 봤기에 이 날은 지출이 좀 있더라도 다른 곳에 가보자 싶어 카테고리 4 지정석을 구입했다. 티켓 가격은 4,200円. 우리 돈으로는 45,000원 정도 하는 큰 돈이다. 저 돈이면 스틸야드에서 입장권 사고 맥주랑 주전부리 사고도 남을 돈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 춥더라. 가지고 간 옷을 입지 않고 버티려 했지만 결국 후반전에는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옷 괜히 챙겼다면서 스스로 바보 같다 생각한 몇 시간 전의 스스로를 바보 같다 생각했다.




경기를 보고(축구 본 이야기는 여기 → https://40ejapan.tistory.com/278) 여유를 부리며 밖으로 나갔다. 경기장에서 집까지 가는 길의 중간에 인생 술집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면 참새가 아니지. 그건 참새로서의 직무 유기다.

금방 인생 술집에 도착했는데... 그랬는데... 입구에서 이미 분위기가 싸~ 하다. 17시에 오픈인데 내가 17시 20분에 도착했거든. 그런데 가게 앞에 이미 자전거가 잔뜩...

안으로 스윽~ 들어갔더니 안 쪽의 테이블 석은 이미 사람이 앉아 있고, 바 타입의 자리에도 세 팀이나 자리 잡고 있다. 오픈한 지 20분 밖에 안 됐는데. 한 명이라 얘기하고 자리를 정해줄 때까지 뻘쭘하게 서 있었다. 바 타입의 오른쪽 자리에 안내를 받아 앉은 뒤 늘 시키던 안주와 술을 주문했다. 그런데...

술이 없단다. 1合을 주문했는데 술이 없어서 마지막 남은 거 탈탈 털어 잔으로 받았다. 기본 안주 같은 게 없으니 오롯이 술의 향과 맛만 느낄 수 있는 시간. 여러 번 나눠 천천히 홀짝거렸다. 얼마만에 먹는 건지. 이게 행복이라고.

한 잔을 다 마시니 안주가 나왔다. '風の森'는 더 안 되냐고 물어보니까 주문해서 (오후) 여섯 시에 도착한단다. 그 때까지 안주 식히고만 있을 수 없으니 다른 술을 시켰다. 술 주문하면서 사장님과 몇 마디 나눴다. 히메지의 술집에서 들은 게 있어서 '風の森는 나라의 술이냐' 고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하신다. (오후) 일곱 시에 예약 손님이 있는데 괜찮냐고 물어보기에 괜찮다고 했다. 그 전에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빨간 쌀로 만들어서 붉은 빛이 도는 술을 주문했는데, 다른 게 나온 것 같다. 확실히 風の森에 비하면 별로다. 스마트 폰 쳐다보면서 홀짝 홀짝 다 마시고 나니 한 시간 정도 밖에 안 지났다. 하지만 단체 손님 오기 전에 비켜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인사하고 계산한 뒤 나왔다. 사장님이 風の森 도착했다고 하시기에 다음에 또 오겠다고 했다. ㅋ




집으로 돌아오면서 뭔가 일본스러운 분위기가 좋아서, 한국에 돌아가면 100% 그리워 할 거라 생각하며 몇 장 찍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의 공원에 벚꽃 사진을 찍으러 갔다.



축구장에서 전반 시작하기도 전에 맥주 1,000㎖ 마시고 한 시간만에 사케 마셔서인지 술기운이 올라와서 포커스 다 날아갔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자. (술 처먹고 마구 찍어대서 죄다 포커스 날아갔다. 제대로 찍힌 게 한 장도 없어... -ㅅ-)



집에 오니 주문한 진공 청소기가 도착해 있다. 사용자 평가에 제법 강력하다고 되어 있었는데 시험 삼아 돌려보니... 별로다.



원래는 집에서 한 잔 더 마실 생각이었는데 딱히 술이 땡기지 않더라. 경험 상 주말이랍시고 땡기지도 않는 술 마시면 얼마 안 마시고 남긴다는 걸 아니까, 그냥 안 마셨다. 21시도 안 되어 잔답시고 드러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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