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Korea 8일차 - 2018년 12월 27일 목요일 맑음
【 새벽의 미친 놈 】
세상에는 진짜 별에 별 또라이가 다 있는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벽 두 시에 샤워하면서 콧노래 부르는 양키 놈을 보기도 했지만 이 날은 더 기괴한 체험을 했다. 자다가 깨서 시계를 보니 네 시 반이었는데 옆인지 위인지에서 뭔 소리가 자꾸 들리는 거다. 뭔 소리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보니 웬 남자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한 곡을 완전히 따라 부르는 게 아니라 부르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희한한 게 보통은 높이 올라가는 부분에서 안 올라가니까 멈췄다가 낮아지면 다시 따라 부르잖아? 그런데 높게 올라가는 부분도 곧잘 따라 부르더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멈췄다고 또 따라 부르고. 다른 방에서 다 들릴 정도니 얼마나 열심히 따라 부른 거야. 그 새벽에.
한 시간 정도를 그렇게 따라부르더니 여섯 시 조금 못 미쳐서 그만두더라. 친구들이 만날 나한테 또라이라 그러고, 너는 정상 아니라고 하지만, 저런 것들에 비하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 김해 공항 】
옆 방인지 윗 방인지, 아무튼 미친 놈 때문에 잠을 설쳐서 엄청 피곤했다. 하지만 늦으면 안 되니까 억지로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해서 밖으로 나갔다. 어제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 공항에 도착. 나는 모바일로 미리 체크인 했으니까 짐만 부치면 되는데 외국인 한 무리가 앞을 가로 막고 있다. 한~ 참을 기다린 끝에 짐을 맡길 수 있었는데 무게를 달아 보니 21㎏. 진에어는 15㎏까지 무료라서 초과된 6㎏에 대한 돈을 내야 했다. ㎏당 7,000원이라고 해서 42,000원 냈다. 이럴 때 보면 비행기 표 싸게 사려고 발버둥 친 게 헛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ㅅ-
밀가루나 소금을 마약으로 오해 받아 불려갔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던지라 캐리어 안에 든 맛소금이 걱정 됐다.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부를 기미가 없다 싶어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보안 심사 받는데 뭔가 걸렸다. 내 가방을 들고 가더니 이 쪽으로 오란다. 쫄랑쫄랑 따라갔더니, 병원에서 받은 소독수를 문제 삼는다. 100㎖가 채 안 되서 마음 놓고 가지고 간 건데 안 된단다. 남은 걸로 마저 가글하고 빈 통은 가지고 가서 써먹어야지~ 라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에 보안 검색에 걸린 거다. 버리겠다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다.
면세품 찾는 곳에 갔는데 뽁뽁이를 어찌나 잔뜩 휘감아놨는지 커다란 쇼핑팩이 두 개. 한 쪽 의자에 앉아 뽁뽁이 다 뜯어내고 가방에 구겨넣어 쇼핑백 하나로 짐을 줄였다. 그리고 나서 커피나 한 잔 하려고 공항 안을 헤매기 시작했다.
안 쪽으로 가니 푸드 코트가 있더라고. 밥 먹으려고 보니까 식권을 자판기로 구입해야 하는 시스템. 앞 사람이 티켓을 구입하고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외국인이 자판기 앞에 섰는데 한글 밖에 안 나오니까 뭘 어찌 하지 못하고 헤맨다. 계산대 앞에 있던 직원에게 영어 안 되냐고 물어보는데 아주머니께서 제대로 대답을 못해주신다. 뒤에 서 있다가 내가 도와주겠다고 나서서 주문하고 결제하는 걸 도와줬다. 저 정도 도와주는 거야 뭐, 요즘 초딩보다 못한 내 영어 실력으로도 문제 없으니까. 일본어 고작 두 달 배웠답시고 외국인 맞딱뜨리면 영어보다 일본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Yes나 OK라고 해야 하는 타이밍에서 나도 모르게 はい(하이)가 나와버린다.
음식이 나왔는데 그 외국인과 내 음식이 동시에 나왔다. 둘 다 비빔밥이었거든. 그 외국인이 밥에 칠리 소스를 넣으려 해서 식당 아주머니가 깜딱! 놀라며 말렸다. 얘는 왜 말리나? 하는 눈치였고. 내가 "얼레디, 인사이드 코리안 스파이시 소스." 라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설명해줬다. 그 와중에도 '카라이 소스가 모우 하잇떼이마스.'가 먼저 떠올랐다. 학습의 위력이다. ㅋㅋㅋ
밥 먹고 나서 근처 까페에서 얼그레이 주문. 주문하고 나서 보니 차 한 잔에 5,000원이라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기다려도 안 나오기에 잊었나? 싶었는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나오긴 했다. 한 쪽에 앉아서 홀짝홀짝 마신 뒤 컵 버리러 갔더니 난장판도,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진짜... 질서 의식이 개판. 그 더러운 곳에서 컵 뚜껑 버리고, 얼음 버리고, 컵 홀더 버리고, 컵 버리고, 다 따로 버린답시고 분주한데 그 와중에도 애 업은 아줌마가 와서 먹다 남은 음료 그냥 던져놓고 간다. 에휴...
【 도착! 】
탑승구 앞에서 빈둥거리다가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올라탔다. 빨리 내리려고 모바일 체크인 할 때 일부러 앞 쪽으로 잡았더랬지. 제 시간에 이륙했고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 옆을 보니 입국 카드도, 세관 신고서도 그대로 꽂아두고 갔기에 오지랖이 발동하여 혹시 관광 오신 거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란다. 신고서 두고 가셨기에 깜빡하셨나 싶어서 여쭤봤다고 했더니 고맙다며 웃더라. 괜한 오지랖의 부작용이다. -_ㅡ;;;
입국 심사 마치고 나가니 캐리어가 금방 나온다. 세관 심사까지 별 일 없이 통과하여 밖으로 나오니 텐노지駅까지 가는 JR에 탈 수 있는 시각이다. 내려가니 열차가 기다리고 있어서 탑승. 문 옆 공간에 캐리어 눕혀두고 서 있었는데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커플이 린쿠 타운에서 내린다. 잽싸게 짐 옮겨놓고 앉았는데 히네노에서 반대 편에 혼자 앉은 사람이 내리네? 나 혼자 두 자리 차지하고 있음 미안하니까 그 쪽으로 다시 옮겼다. 그리고 스도쿠 하다가, 멍 때리다가 하다보니 도착.
외국 왔다갔다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고등학교 때 포항 기숙사에서 광주 집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ㅅ-
텐노지까지 편하게 와서 바로 동쪽 출구로 나간 뒤 집까지 걸어서 이동. 한~ 참 만에 도착했다. 일본은 엄연히 타지인데 집에 온 것 같이 편안한 기분. 우편함 안이 난리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찌라시가 별로 없다. 방에 캐리어 던져 놓은 뒤 바로 나가 우체국으로 갔다.
【 월세 내고 】
들고 간 돈 중 당장 쓸 돈 조금 남겨두고 나머지는 입금.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입금 마치고 일단 비켰다. 어린 아이와 함께 온 아주머니가 자동화 기기를 이용했고 내가 뒤 쪽의 의자에서 기다리는 동안 남자 분 한 명이 들어왔다. 위치가 애매해서 그 사람은 내가 차례를 기다린다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아주머니가 이용을 마치고 나간 뒤에도 앉아 있었는데 그 남자 분이 나보고 먼저 쓰라며 손짓을 한다. 불과 하루 전에 영감탱이들 새치기 하는 것 때문에 빡쳤었는데.
야칭 송금하고 나니 남은 금액이 66만円? 학교 수업료 내고 나면 반토막 날 거고 월세 다섯 달 내면 땡이다. 생활비로 까먹을테니 결국 일본에서 출금할 일이 100% 생기겠네. 꽤 바꿔 갔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안 된다 생각하니 뭔가 섭섭하고 그렇다. 아무튼... 아르바이트 하게 될 때까지는 아껴 살아야 한다. 생각보다 돈이 없는 상황이니까. 뭐, 여차하면 대출 받아 사는 빚쟁이 인생이라는 최후의 카드가 있긴 하지만서도.
【 짐 정리 】
야칭 내고 집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시작했다.
마사미 님 드리려고 산 라이언 머그 컵.
이것도 마사미 님 드리려고 산 방향제. 손녀, 손자들이 차에 타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ㅋ
이것도 마사미 님 드릴 오설록 유자 차. 뭔가 더 드리고 싶은데 유학생이 뭔 돈이 있냐며 안 받으려고 하신다.
지난 번에 산 안마 목베개는 고모 드리고, 똑같은 걸로 또 사왔다. 꽤 비싸긴 하지만 안마 성능이 제법 훌륭하더라고.
'바른 듯 바르지 않은 듯' 이라는 문구가 저런 거 발라봐야 티도 안 나는 나한테 어울리는 듯(?) 해서... -_ㅡ;;;
간사이 공항에 내려 캐리어 찾으러 가는데 가게가 있더라고. 양주가 너무 싸서 충동적으로 질렀다.
진짜... 어지간히도 포장해놨다. 트럭이 밟고 가도 안 깨지겠다.
비닐 봉투 제거해도 저렇다. 비교하려고 500원 짜리 옆에 두고 사진 찍어 봤다.
저게 뭐냐면... 양키 캔들. 희한하게 일본에서 양키 캔들이 엄청 비싸더라고. 한국에서는 싼데.
└ 경험해보니 작은 집에서 좋은 향 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양키 캔들이다. 불만 안 낸다면.
포항 고모 집에서 먹고 남은 즉석 밥 두 개 싸들고 왔고.
술 마신 다음 날 먹으려고 샀는데 열 개 중에 한 개는 고모가 드시고 두 개는 친척 누나가 먹고. 맛있다고 먹었대. ㅋㅋㅋ
점심 시간마다 찾아와서 사탕 주고 가는 옆 반 처자에게 주려고 한국에서 유명한 사탕 샀다. 자두맛 사탕은 나 어릴 때부터 있던 거.
여행 다닐 때 옷을 돌돌 말면 부피를 덜 차지한다. 그 때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런 고무 밴드 쓰면 좋다.
└ 일본에도 있긴 한데 한국에서 파는 게 훨씬 좋더라고. 500원 밖에 안 하기에 두 개 사들고 왔다.
고추장은 일본에서도 살 수 있지만 어쩐지 있어야 할 것 같아 홈플러스 갔을 때 충동 구매. ㅋ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케이블 자주 잃어버리고 단선되는 일이 잦아서 사봤다. 캐릭터가 귀엽기도 했고.
팩 소주 사려다 못 산 대신 슈퍼에서 산 페트 소주. 참이슬이랑 다른 거다. 경상도의 지역 소주.
└ 예전에는 죽도 시장에서 참이슬 달라 하면 장사 안 한다고 나가라고 하기도 했었더랬다.
달디 단 일본 김치 대신 먹으려고 샀다. 아껴가면서 먹어야지.
통조림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샀고.
참기름도 작은 걸로 한 병 샀다.
이 사이즈의 컵라면 사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포항 슈퍼에서 여러 종류 팔고 있기에 바로 샀다.
팔도 거 어지간하면 안 사는데, 비빔면은 안 살 수가 없었다. ㅠ_ㅠ
이건 전자렌지로 간단하게 계란 반숙 만들어 먹을 때 쓰려고 샀다. 소금은 일본 유학 끝날 때까지 먹을 수 있겠다.
병원에서 준 소독 솜. 혹시 모르니까 들고 왔다. 언제 쓰더라도 쓸 일이 있겠지.
상자 버릴 때 묶어서 버려야 하는데 마땅한 끈이 없어서 이걸로 묶으려고 사들고 왔다. 선물 포장용 끈인데... ㅋㅋㅋ
HJ 누나가 주신 김. 심심할 때 간식으로 먹어도 되고, 술안주로 먹어도 되고, 밥 싸 먹어도 되고. 한동안 든든하다. ㅋ
GB 형님이 주신 죽과 장조림. 죽 하나에 2,000원이라 해도 몇 만원 어치다. 두고 두고 아껴먹어야겠다. 형님, 감사합니다. ㅠ_ㅠ
이렇게 식량 창고가 꽉 찼다. 마사미 님이 주신 간식까지 포함해서 한 달 내내 먹어도 될 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