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일기

2018년 11월 27일 화요일 흐림 (정신없이 시간이 간다)

스틸러스 2018. 11. 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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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익숙함" 이라 했다는데, 유학 두 달을 넘긴 지금의 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일본에 온 지 두 달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는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 딱히 불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스스로가 정한 행복의 범위가 좀 넓은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나름 행복했던 것 같다. 다만, 회사에서 일하는 걸로 행복을 얻지는 않았다. 회사는 그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곳일 뿐이었다. 회사 덕분에 행복했다기보다는 회사에 다님으로써 받는 월급 덕분에 행복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

그냥저냥 다닐만 했는데 같이 일하는 것들 둘 모두 벌레만도 못한 AH 77I 들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그 쓰레기 같은 것들로부터 도망치듯 유학을 온 거고.



유학 오기 직전의 지긋지긋한 마음을 생각한다면 지금은 천국이다. 행복하니까, 즐거우니까, 시간도 잘 가는 것 같다. 이 시간이 지옥 같다면 참 더디게 간다고 느낄텐데 말이다.




익숙함 때문에 찾아오는 게으름을 경계해야 하는 시점이긴 하지만, 지금이 재미있고 즐겁다. 하고 싶은 공부하면서 틈나는대로 놀러 다닐 수 있는 삶이니까. 거기에다 그렇게 동경하던 방학이 있는 삶 아닌가?

원래는 이번 겨울 방학 때 아이슬란드에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일단 내년으로 미뤘다. 여행지도 굳이 아이슬란드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나라로 정하면 될 것 같다. 해외 여행은 일본 말고는 없는데, 그 여행의 경험이 쌓여 유학까지 오게 됐다. 다른 나라에 가서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한다면 앞으로의 인생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만으로 즐거워진다.



일본에서 견인되는 차 처음 보는 것 같아 줌으로 당겨 찍어봤다.


실제로 보는 쪽이 훨씬 예쁜데... 사진 찍는 실력이 형편 없어서 반에 반도 못 담아내는 게 슬프다. ㅠ_ㅠ



뭐, 자기 계발 책에나 나올 법한 재미 없는 얘기는 그만두고, 사는 얘기나 끄적거려 보자.


어제는 인터넷 때문에 고생을 했다. 속도 측정을 하면 50Mbps 이상은 나오는데 체감하는 속도는 엄청 느린 거라. 그래서 수시로 공유기 스위치를 껐다 켜서 리셋하곤 하는데, 어제는 너무 느리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스위치를 눌렀는데 안 꺼진다. 팍, 씨! 하고 몇 번 눌러서 꺼버렸는데... 그렇게 꺼지더니 다시 안 켜진다. 응?




몇 번을 눌러도 안 된다. 별 짓을 해도 안 된다. 결국 일찌감치 잔다고 드러누웠는데 인터넷 안 되는 상태로 자려니까 잠도 안 온다. 일본어도 안 되는데 관리 회사에 전화해서 징징거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학교의 한국어 가능한 스태프에게 말하면 도와주려나?' 하는 생각도 하고. 그러다가... 마지막 수단! 이라 생각하고 화장실에 있는 두꺼비 집의 전체 전원을 내려버렸다. 3초 정도 후에 다시 켰는데... 그리고 나서 공유기를 보니 전원이 들어와 깜빡거리고 있다. ㅋㅋㅋ


기쁜 마음으로 태블릿 붙잡고 유튜브 보다가 잤다. 아침에 일어나 잠시 컴퓨터 좀 쓰려고 노트북 전원을 켰는데... 그랬는데... 유선 인터넷을 못 잡고 와이파이로 연결한다. 아오!


뭐가 문제인지 배터리도 지 맘대로 방전 시키고, 충전도 안 하고, 당최 알 수가 없다. 엉망진창.



아무튼... 그 상태로 학교에 갔다.


두 달만에 새 책을 받아 공부하고 있는데 다행히 11과는 어렵지 않다. 중국어를 모르니 대만 애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어와 일본어의 문법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다. 물론 대만 애들은 한자를 공부하는 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적다는 이점이 있긴 하겠지만, 일본의 한자와 대만의 한자가 다른 경우가 있어서 헤매기도 하는 거 보면, 아무래도 문법이 같은 쪽이 나은 것 같다.




화요일은 하루 종일 담임 선생님 수업이다. 금요일도 마찬가지인데 지난 금요일이 휴일이었기 때문에 1주일만에 담임 선생님 만나는 거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반갑다. ㅋㅋㅋ

지난 면담 때 담임 선생님에게 대만 애들이 너무 떠든다는 얘기를 했었더랬다. 회화 연습을 위해 대화를 나누거나 발표 수업을 한다거나 할 때에는 떠드는 게 당연한데, 수업 중에 선생님이 말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며 떠들어대니 환장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오늘 수업하면서 떠드는 애들한테 앞에 보라거나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서 못 떠들게 하더라. 문제 풀라 시켜놓고 자기들끼리 질문하면서 떠들 기미가 보이면 옆에 딱 가서 질문 받으면서 못 떠들게 하고.   면담 때 했던 얘기를 허투로 듣지 않는고나 싶어 고맙기도 하고, 내가 괜한 말을 꺼내서 선생님 피곤하게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해도... 역시 담임 선생님이 제일 잔인(?)하다. 숙제를 계속 내준다. ㅋ   수업 마치고 남아서 숙제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공부 좀 할까 하다가, 집에 가서 하자 싶어서.



원래는 집에 오면 이른 저녁을 먹고, 빈둥거리다 잔다. 하지만 오늘은 점심 때 치킨 너겟을 무려 열다섯 개나 먹었으니까, 저녁을 건너뛸 생각이다. 배가 고프지는 않은데 자꾸 뭔가 먹고 싶어진다. 생활에 패턴이 생기고 익숙함이 생기면서 식욕이 돌아오려고 한다. 식사량도 늘어나고. 빠지던 옆구리 살이 도로 붙는 느낌이라 점심 때 커피 한 잔 이상을 먹은 날은 저녁 건너뛰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래놓고 편의점에 가스 요금이랑 보험료 내러 가서는 맥주 살까 고민했다. -_ㅡ;;;



집에서 만날 한국 유튜버 영상 보느라 일본어가 당최 늘지 않는다. 못 알아들어도 계속 일본 방송 켜놓고 봐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텐데 말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심심하다는 이유로 자꾸 보게 된다. 일기 써놓고 컴퓨터 꺼버려야지. 켜놓고 있으면 자꾸 딴 짓 하게 된다.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공부 조금만 하고 일찍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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