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흐림 (14일에 술 먹은 이야기 / 마이 넘버 카드)
수요일 오후. 예고된 것과 같이 지난 주에 배웠던 8과 시험이 있었다. 4교시에는 간단히 복습을 했고, 5교시에 시험. 시험 볼 때 선생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책상까지 띄우라고 하더라.
문제를 받았는데... 파스스... 쿠크다스 멘탈이 또 다시 부서진다. 어제 '이것', '그것', '저것'으로 입은 내상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엄청난 충격이!
8과에서 품사에 따른 보통체를 배웠는데 이게 말이 쉽지, 탁탁 변환이 안 된다. '현재형 긍정', '현재형 부정', '현재형 질문', '과거형 긍정', '과거형 부정', '과거형 질문' 등으로 바꿔야 하는데 머리 속에서 맴돌기만 하고 입이나 손으로 나오지 않는 거다. 명사와 な형용사가 같다, い형용사는 です만 떼어내면 된다, 이 정도 까지는 그냥저냥 이해가 되는데 거기에 시점이 과거로 돌아가면 또 헷갈리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동사가 치고 들어오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망할 동사. -_ㅡ;;; 9과를 마친 오늘까지도 저걸 제대로 못하고 헤매는 중이다.
아무튼. 그래서 8과 시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문제를 받아보니 보통체는 문제 될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방심했던 조사가 1번부터 등장! 컥! 뜬금없이! 쉬운 문제도 아니고, 한참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다. 거기에다 지금까지는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자신이 작문하는 식으로 쓰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8과 시험은 본문을 참조하여 생각해서 써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골치가 아프다.
종 치면서 시험지 내고, 선생님 나가자마자 웅성웅성!!! 지금까지 시험 끝나고 이런 적은 없었다. 다들 시험이 끝났다고 안도하는 표정으로 가방 싸서 집에 가곤 했는데... 이 날은 "그거 답 뭐냐?" "뭐!" "아니, 왜!" "진짜?" "아, ㅆㅂ" 한 10분을 이러고 있었던 거 같다. 전부 그랬다.
완전히 바스라져 가루만 남은 상태라서 남아서 공부할 생각은 아예 안 했다. ㅆㅂ 주말이고 나발이고 오늘은 마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방 싸들고 교실을 나섰다. 계단 내려가고 있는데 L양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어디 갔냐고. 빡쳐서 한 잔 먹어야겠다니까 같이 가자고 한다. ㅋㅋㅋ 어디로 오라고 해서 조금 후에 만났다. 집에 들렀다 갈까 하다가 그냥 L양 집 근처로 이동.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술집은 17시부터 영업인데 도착했을 때에는 16시도 안 됐다.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우동 가게 발견해서 우동 먹고, 술집으로 이동. 지난 번에 먹고는 홀라당 반해버린 인생 안주를 시키고 '바람의 숲'도 한 홉(180㎖) 시켜서 홀짝거리며 마셨다. 최고의 행복! 이렇게라도 스스로 힐링하지 않으면 가루가 되어버린 멘탈이 회복되지 않는다.
인생 안주. 비주얼 오지고요. 맛은 지리고요. 진짜... 최강의 안주다.
자주 들락거리며 친해진 뒤 한국에 가서 해먹고 싶어 그러니 레시피와 조리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주실라나? -_ㅡ;;;
술 이름이 바람의 숲(風の森). 이름도 기똥차고, 맛도 기똥차고, 가격도 기똥차고. ㅋ
금방 술 다 마셔서 다른 거 시켰다. 빨간 쌀(赤米)로 만들었다고 적혀 있어서 시켜봤더니 술도 빨간 색. 색도, 향도, 처자들이 좋아할 것 같다. 그거 다 먹고 다른 안주 시키면서 다른 술 하나 더 시켰는데 없다네? 그래서 다른 거 시켰다. 그렇게 나는 일본 술 세 홉을 마셨고 L양은 맥주 두 잔. 술 값은 ¥6,000 조금 넘게 나왔다. 가난한 유학생 입장에서 데미지가 큰 금액이긴 한데... 안주 먹어보면 저 정도는 나와도 즐겁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거다.
잰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맥주 마시면 다음 날 학교 쨀 거 같아서 안 마셨다.
오면서 땀을 조금 흘렸기에 씻어야겠다 싶은데 샤워하기는 싫고, '욕조에 담그자!' 싶어 물 받았다. 욕조에 들어 앉아 있다가 나와서 바로 잤다. 두 시간 채 못 자고 깨서 물만 마시고 또 잤다. 새벽에 몇~ 번을 깨고 자고 반복하다가 아침에 기상.
씻고 학교 갔다. 아직 몸 속에 술이 도는 느낌.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진도를 거의 안 나갔다.
오전 수업 마치고는 L양과 밥 먹으러 갔다. 어제 술 값 안 받았다고 L양이 밥 사겠다고 해서. ㅋ 어제 미국인 C상이 매운 카레라며 먹어보라고 줘서 두 숟갈 떠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 L양이 다른 곳에서 그 가게 카레 먹어봤다(체인점이다)고 해서 거기 가자고 했다. 텐노지 역 근처의 가게에 가서 나는 5단계, L양은 2단계 주문. 5단계가 1단계의 12배 매운 정도라고 되어 있어서 살짝 쫄긴 했는데, 매콤한 맛이 느껴지긴 하지만 매워서 못 먹겠다 정도는 아니다. 불닭볶음면 쪽이 훨씬 맵다. 8단계는 무리일 것 같고 7단계까지는 무난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한데... 괜한 자신감으로 소중한 식재료를 낭비할 수 있으니 다음에 6단계, 먹을만 하면 7단계 이런 식으로 최적의 조합을 찾아봐야지. ㅋ
오후에는 지난 주 시험 봤던 7과 결과를 받았다. 다들 7과는 쉽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점수가 낮았는지 선생님한테 왜 틀린 걸로 채점되었는지 잇달아 묻기 시작했다. 이번 시험 평균은 87.6점이랬나? 뭐, 그랬던 것 같다. 다행히 평균 이상의 점수 획득. 어이 없는 건, で 써야 하는데 て를 써서 깎아먹은 점수가 3점이나 된다는 거다. 정신을 못 차리고. ㅠ_ㅠ
진도 찔끔 나가긴 했는데 쉬운 내용이라 그닥 헤매지 않았다. 만만한 선생님이라 그런가 엄청 떠든다. 시끄러운 젊은 대만 처자 커플은 앞뒤로 돌아보며 떠들기 바쁘고, 내 옆의 G상과 C상 역시 엄청 떠들어댄다. 가만 보니 C상이 수업 따라오는 게 조금 더뎌서 G상에게 자주 물어보는데 그 때마다 가르쳐주면서 농담하고 그러니까 떠드는 것 같다. 저들끼리만 떠들면 괜찮은데 그 소리 때문에 선생님 소리가 묻히니 짜증스럽다. 선생님이 몇 번 눈치 줬는데도 그냥 낄낄낄, 하하하. 거기에다 항상 업 텐션인 M상과 L군도 궁합이 잘 맞아서 틈만 나면 떠들려고 준비하고 있다. 예측하지 않은 소음이나 있어서는 안 되는 소음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내 입장에서는 참으로 짜증스러운 상황. 하지만 참아야지 어쩌냐. 에휴.
수업 끝나고 남아서 공부하지 않고 바로 나왔다. 마이 넘버 카드 받아가라는 엽서가 왔기 때문이다. 남들은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는데 나는 신청하라는 종이도 한 달만에 왔고, 카드 찾아가라는 엽서도 한 달만에 왔다. 입국 두 달만에 마이 넘버 카드 수령.
하지만... 카드 신청하라는 종이 쪼가리에 붙어 있었던 신용 카드 크기의 종이를 안 가져갔더니 그거 가지고 다시 오란다. 오늘은 헛걸음 한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다. 카드는 만들어주는데 거기 개인 고유 번호가 안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종이 쪼가리 들고 아무 때나 가서 번호표 뽑지 말고 바로 얘기하면 된다고 하더라. 일본어가 짧으니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카드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숙제가 조금 있긴 한데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고... 피곤하니까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서 숙제한 뒤 또 잘까 싶다.
주말에는 어디에 놀러라도 갔음 싶은데 갈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교토에 다녀올까? 했는데 사람 엄청 많을 것 같아서. 뭐, 시간 많으니까 조금 고민해봐야겠다.